경주 첨성대의 기원

경주 첨성대의 기원

$36.00
Description
첨성대의 천문대설에 제기된 여러 가지 의혹에 해답을 제시
첨성대에 관한 기록으로는 선덕여왕 시절에 돌을 다듬어 쌓았다는 삼국유사의 반 줄짜리 기록이 사실상 전부이다. 그렇지만 실물이 남아 전하므로 기록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머지 정보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찾아낼 것이다.

이 책은 역사학, 천문학, 고고학, 음운학, 불교학, 기하학 등을 망라하여 첨성대의 실체에 다가간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첨성대, 나정, 무열왕릉, 박혁거세의 오릉, 신라 종묘, 성부산, 망성산을 관류하는 고대 우리 민족의 망탈리테(mentalités)에 접근하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와 하늘로 돌아간 사람들에 관한 고대인의 집단 심성세계가 남긴 기억의 흔적들을 문헌에서, 유적에서, 풍속에서, 설화에서 찾아내어 펼쳐 보일 것이다.

그동안 첨성대의 천문대설에 제기된 의혹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천문대라면 왜 계단을 설치하지 않았을까? ②출입구로 보이는 창구를 왜 저렇게 높은 곳에 내었을까? ③출입구를 왜 저렇게 작게 만들었을까? ④왜 꼭대기 관측공간을 비좁게 만들어 놓았을까? ⑤기단석, 정자석, 창구는 왜 모두 정남을 향하지 않았을까? ⑥월성 앞에서도 비교적 해발고도가 높은 동쪽을 놔두고 왜 서쪽에 치우쳐 세웠을까? ⑦왜 묘한 곡선 형태를 이루면서 아래쪽이 부풀어 있을까? ⑧우물이라면 중간 높이에 왜 작은 구멍을 뚫어 놓았을까? ⑨첨성대가 천문대가 아니라면, 또 우물이라면 왜 ‘별을 쳐다보는 대’라고 불렀을까? ⑩『세종실록』에서는 첨성대 건립 연대를 633년이라 했고, 『증보문헌비고』에서는 647년이라 했는데 어느 것이 옳으며, 틀린 기록은 왜 남게 되었을까? ⑪『삼국유사』 왕력(王曆)에는 첨성대(瞻星臺)가 점성대(占星臺)로 기록되어 있는데 왜 그런 별명이 생겼을까?
11가지 의혹은 기본적으로는 천문대설에 제기된 의혹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11가지 질문 모두에 답하려 한다.
저자

정연식

鄭演植

1956년에서울에서태어났다.1975년에서울대학교에입학하여국사학과에서학사,석사,박사학위를받았다.1994년에서울여자대학교교수로부임하여박물관장,인문대학장,대학원장을역임하였고2022년에정년퇴임하여현재명예교수로재직중이다.
2015년부터이듬해까지역사학회회장을지냈고,문화재위원회사적분과전문위원,국립중앙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전문위원,동북아역사재단자문위원등으로활동했으며,박물관,사회단체,공공기관,방송등에서의200회에가까운강연으로역사학의대중화에도한몫하였다.

사회경제사,일상생활사,과학기술사,고천문학,역사음운학,지명할등여러분야에관심을기울여저서로는『영조대의양력정책과균역법』,『일상으로본조선시대이야기』(1,2),『조선시대울릉도와독도의우리말이름들』이있고,논문으로는「조선시대의끼니」,「조선시대의시간과일상생활」,「화성의방어시설과총포」,「선덕여왕과성조의탄생,첨성대」,「신라의미추왕과은하수성한(星漢)」,「울릉도,독도의옛이름대섬[竹島],솔섬[松島]의뜻」,「경주부엉산기슭의자산(觜山)돌기촌[珍支村]」등이있다.

목차

책을내면서
머리말

Ⅰ.첨성대연구의지나온길
1.다섯첨성대
2.조선시대의첨성대인식
3.근현대학문에서의천문대설
4.천문대설에대한도전과논쟁
1)1964년전상운의규표설
2)1967년홍사준의천문관상대설
3)1970년대수미산설,주비산경설과논쟁
4)1980년대천문대설의재등장
5)1990년대우물설의대두
6)2000년대마야부인우물설

Ⅱ.탄생의우물
1.우물을형상화한첨성대
2.다산,풍요의우물과복숭아씨
3.우물에서의탄생

Ⅲ.별빛을받아잉태한우물
1.별빛을받아위인을낳은여인들
2.햇빛을받아알을낳은여인들
3.별빛을받아알을낳은우물
4.보랏빛알과자미원(紫微垣)안의북극오성
5.남성말과여성닭

Ⅳ.우물안항아리와알,그리고별
1.백제풍납토성우물의항아리
2.일본노노가미유적우물의항아리알
3.신라종묘에묻은별항아리

Ⅴ.평양첨성대와연개소문의탄생
1.구요(九曜)별과구지(九池)못의만남
2.평양첨성대의건립시기와형태
3.평양첨성대의주인,연개소문
4.북한에서발굴했다는평양첨성대

Ⅵ.나정을에워싸고조성한시조묘
1.우물과시조
2.나정과시조묘
1)나정에조성한시조묘
2)종묘의시조묘
3.나정의발굴로드러난우물

Ⅶ.성부산과탄생의별삼태성
1.망성산(望星山)에서바라보는성부산(星浮山)별
2.오리온자리삼태성(三太星)을닮은성부산
3.탄생의별삼태성(ᄉᆞᆷ胎星)

Ⅷ.북극오성을낳은나정
1.성부산삼태성을쳐다보는나정
2.나정에서태어난북극오성의구덩이

Ⅸ.첨성대(瞻星臺)라는이름의뜻
1.첨성(瞻星)의뜻
2.별을쳐다보는대(臺)와‘대[胎]’
3.‘점성대[瞻星臺]’와점성대(占星臺)

Ⅹ.성골여왕을낳은마야부인의몸
1.아래가부풀고옆에구멍이난우물
1)여인의몸을닮은우물
2)의문의창구
2.성조(聖祖)석가모니의후예,선덕여왕
1)성스러운석가모니의후예,성골
2)성스러운조상의후예,성조황고(聖祖皇姑)
3.첨성대의창구와마야부인의옆구리
1)마야부인의옆구리로태어난석가모니
2)옆구리구멍이보이도록돌아선마야부인

Ⅺ.선덕여왕의이미지만들기
1.여왕의즉위초에세운첨성대
2.여왕의덕목과흠
1)덕(德)과지(智)를겸비한여왕
2)위엄없는여왕
3)향기없는여왕
3.향기로운여왕만들기
1)향기로운여왕의절,분황사(芬皇寺)
2)지귀(志鬼)의가슴에불을붙인여왕
4.영험하고신묘한여왕만들기
1)영묘사(靈妙寺)와여왕의신묘한힘
2)세가지사건을예언한여왕
5.위엄있는여왕의황룡사구층탑

Ⅻ.첨성대의퇴조
1.나정을에워싼폐쇄형1차신궁
2.나정을메우고세운대형팔각신궁
3.무관심속에방치된첨성대

ⅩⅢ.천문대설비판
1.불편한구조와형태
1)드나들기와오르내리기가불편하다
2)관측공간이좁다
2.부적절한위치
3.진북(眞北)을외면한정자석의해명
1)지자기이동설
2)세차설(歲差說)
3)진북무용설
4)동지일출방향설
4.첨성대의돌숫자
1)첨성대의짜임새
2)첨성대의형태와층단
3)첨성대돌은365개인가?
5.7세기이후천문기록증가의의미
1)첨성대의건립과천문이변기록의증가
2)7세기이후각종이변기록의증가
3)천문이변기록이늘어난이유
4)경주의천문이변발생기록
6.천문대설비판총론

ⅩⅣ.기타학설비판
1.규표설비판
1)절기측정이어려운형태
2)절기관측이불가능한창구
2.주비산경설비판
3.수미산설비판
1)수미산의형태
2)모난횡단면의수미산과둥근횡단면의첨성대
3)허리가잘록한수미산과상체가좁은첨성대

맺음말
[보론]
1.창경궁일영대(日影臺)의연혁
2.고려말파주권준(權準)묘의삼성(三星)과태성(胎星)

[참고문헌]
『삼국사기』신라본기의이변(異變)기록

출판사 서평

첨성대의천문대설은관련전문가들로부터오랫동안많은비판빋아

첨성대는석굴암과함께경주의대표적인상징물이다.그리고우리나라고대과학의수준을가늠하는표상으로,우리민족의자랑스러운문화유산으로소개됐다.우리나라역사책에는삽도가들어간책이라면표지나앞부분에거의예외없이첨성대사진이실렸고,과학사와관련된책이라면더말할나위도없었다.1960년대의10원짜리지폐앞면에는첨성대가,뒷면에는세계최초의철갑선이라알려졌던거북선이그려졌다.그리고1970년대에우리나라최초로현대식망원경을갖춘천문대를소백산에지을때부속건물하나는첨성대모양으로지어첨성관이라는이름을붙였다.

첨성대는처음에는현존동양최고(最古)의천문대로소개되었으나,1973년에는세계최고의천문대라는타이틀이붙여졌다.지금까지남아있는천문대로7세기이전에세워진것은세계어디에도없었다.이미1982년판기네스북에는세계최고의천문대로수록되기도하였다한다.우리에게첨성대는지금까지그렇게각인되었다.그런데이자랑스러운문화유산에대한해외의반응은미지근했다.첨성대는꽤이른시기에유럽에알려졌다.프랑스에서기상학을공부하고온일본인기상학자와다유지가제물포에기상관측책임자로와서1910년에첨성대에관한글을쓰고이를영어로번역하여유럽에소개했다.그로인해첨성대는일찍이1911년에과학학술지네이처의뉴스난에소개되기도하였다.그런데네이처편집자의반응은싸늘했다.그저탑처럼생긴조형물에는천문대로볼수있는구석이전혀없다는것이었다.
1959년에는중국과학사의세계적인학자조지프니덤의『중국과학문명사』3권에삽도와함께중국어발음잔싱타이(ChanHsingThai)라는이름으로소개되었다.그런데그것의주공측경대라는규표(圭表)를설명하는과정에서주공측경대가첨성대와닮은것같다고하여단7줄분량으로스쳐지나가듯언급되었고내용에도오류가있었다.별관심이없던유럽과는달리우리나라와가까운일본의천문학자들은가끔자기나름의의견을제시했다.1981년경주에서열린제3차첨성대토론회에참석했던교토대학의야부우치기요시는결정적인반대증거가나오지않는한천문대로생각한다고‘조심스럽게’말했다한다.충분히짐작이간다.이름이‘별을쳐다보는대[瞻星臺]’라는데야천문대가아니라는생각을하기가쉽지않을것이다.그리고도쿄대학의나카야마시게루는1971년에첨성대를답사한후에다목적용천문대일것이라는견해를밝히고는그해에일본천문학회의『천문월보(天文月報)』에한국의첨성대는꼭대기에올라육안으로관측활동을하기위해세운천문대라고발표했다고전한다.그러나1984년에출간된자신의저서에서는말이딴판으로바뀌었다.그는첨성대를‘냉각탑형태의원통형탑’으로소개하면서천변(天變)을관측하기위한것이라면굳이탑위로올라가서관측할필요가없고,한밤중에천변을재빨리보고하기에는탑내부가너무어둡고좁으며발딛는곳도불안하고위험스럽다고논평했다.첨성대가세계최고의천문대라는외침은동굴안에서만울릴뿐이다.
외국처럼냉담하지는않지만국내의반응도썩만족스럽지는않다.국내의교과서,대중서적,학술서적에거의모두천문대로소개되고있어서국내학자들이대부분천문대설에동의하고있는듯보이지만내면을들여다보면사실그런것도아니다.천문대설은관련전문가들로부터오랫동안많은비판을받아왔다.우리나라역사연구자들도연구분야가첨성대와관련이없는사람들은천문대라고하니그렇게받아들일뿐이다.

첨성대를관심을갖고꼼꼼히살펴보면천문대라하기에는구조나형태에이상한부분이한두군데가아니다.첨성대를천문대라고주장하는사람들은그런지적에대해종종이렇게답하기도한다.과거의천문학은지금과는달리종교적,주술적인점성술의색채가짙었기에첨성대가엄밀한조건을갖춘천문대처럼생기지않았다고해서이상하게생각할것이아니
라고.점성술과뗄수없는관계에있었던것은사실이며,더나아가점성술에서잉태되었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당(唐)의『개원점경(開元占經)』이나조선의『천문류초(天文類抄)』는천문학을위한책이아니라별점을치기위한책이라고봐도무방할정도이다.천상열차분야지도의분야(分野)라는말도하늘의별들이각각12조각으로구획된땅의운명을쥐고있다고믿어서그나눠진구역을가리키는말이었다.서양이라고다를것이없었다.아이작뉴턴도만유인력을떨어지는사과에서영감을얻어발견했다고는하지만,실제로는케플러의법칙을수학과물리학으로풀어알아낸것이다.그런데요하네스케플러는‘점성술은고도로지적인어머니,천문학을먹여살리는모자란어린딸’이라면서자신에게호구지책이었던점성술에대해연민의애정을드러냈다.또한케플러의법칙에활용된자료는그의스승튀코브라헤의관측테이터였는데,망원경이나오기전에경이로울정도의시력과관찰력으로완벽하고정밀한데이터를구축했던스승브라헤도점성술에몰두했고또상당한조예가있었다.
점성술사라고해서대충관측하는것이아니다.하늘의별을관찰하는행위자체는천문학이나점성술이다를까닭이없다.다만관찰한사실을어떻게해석하고어떠한의미를부여하느냐가다를뿐이다.천문대설에반기를들고자국의문화재에붙여진세계최고의천문대라는명성에흠집을내는일은썩내키지않는일인데다가때로는쏟아지는비난을감내해야하는일이기도하다.천문대설찬반논쟁에중립적입장을견지하고있는송상용은1981년에경주에서열린제3차첨성대토론회에서논쟁이있었던사실이신문에보도된후의분위기에대해이렇게말했다.“사학계일각에서는노골적인불만이튀어나왔다.국보를가지고이러쿵저러쿵해서국위를손상한다는얘기였다.작가는좀생각을달리한다.진실을밝혀보려는역사가들의노력이어째서국위를실추시킨다는것인가?설사첨성대가천문대가아니라는것이드러난다해도큰일날것은없다."

이제이책에서이야기하겠지만경주의유적들은첨성대,나정,무열왕릉,신라종묘,성부산,망성산그리고나아가서는박혁거세의오릉까지모두하나의서사(敍事)구조로연결된다.인간과제왕의탄생,우물과별그리고알,말과닭,죽음과별.이렇게일관된의미의연결고리를지닌고대인의스토리텔링자원이세계어느나라,어느도시에,얼마나있을까?첨성대는천문대라는집착으로인해첨성대뿐아니라경주의여러귀중한자원이문화재로서의가치를제대로발현하지못한채방치되고있다.1910년에와다유지가첨성대를천문대로규정한이래로110여년의세월이흘러지나가는동안첨성대의성격에관해서는여러주장이있었다.그렇지만거의전부가첨성대가전적으로천문대이거나부분적으로천문대라고생각해왔다.즉매일천체를관측하는상설천문대가아니라특별한때에만관측하는비상설천문대라할지언정,기본적으로천문대가아니더라도때로는천문대로쓰이기도했다는사실을부정하지는않았다.왜냐하면이름이‘별을쳐다보는대’이니까.그러나잘라말하건대첨성대는천문관측과아무런연관이없다고생각한다.첨성대의성격을한마디로규정하기에는여러가지의심스러운부분들이있었다.그것은천문대설만이아니라나머지학설들도마찬가지였다.그부분에대해새로운학설들이의혹을제기하고,기존의학설들은해명을했고,해명이미진하다하여논쟁은되풀이되었다.

그의혹에는다음과같은것들이있다.①천문대라면왜계단을설치하지않았을까?②출입구로보이는창구를왜저렇게높은곳에내었을까?③출입구를왜저렇게작게만들었을까?④왜꼭대기관측공간을비좁게만들어놓았을까?⑤기단석,정자석,창구는왜모두정남을향하지않았을까?⑥월성앞에서도비교적해발고도가높은동쪽을놔두고왜서쪽에치우쳐세웠을까?⑦왜묘한곡선형태를이루면서아래쪽이부풀어있을까?
이7가지의혹은기본적으로는천문대설에제기된의혹이었다.그러나다른학설들도7가지의혹에서자유로울수가없었다.근래에참신한주장으로관심을끌었던우물설도천문대로서의기능을완전히부정하지는못했으므로기존천문대설의의혹을떠안은채새로운의혹에맞닥뜨려야했다.특히⑦의아래가부푼형태는천문대설에는사소한문제였지만우물설에는중대한문제거리가되었다.우물이밑으로내려갈수록넓어지다니?또한⑧우물이라면중간높이에왜작은구멍을뚫어놓았을까라는새로운의문이추가된다.물론이는천문대설에제기된②의의문과중복된다고답할수도있지만그렇지가않다.천문대설에서는출입구가높게있는것이문제이지만우물설에서는구멍뚫린우물이라는새로운문제가발생하게된다.그리고천문대설을부인하는학자들의발목을잡아왔던가장무거운질문이남았다.⑨첨성대가천문대가아니라면,또우물이라면왜‘별을쳐다보는대’라고불렀을까?
지금까지의천문대설이나그대안으로제시된학설들은7가지질문또는9가지질문가운데단몇가지에만답변했을뿐,나머지는대개언급조차하지않고넘어가는경우가많았다.필자는이책에서9가지질문모두에답하려한다.
더나아가서⑩『세종실록』에서는첨성대건립연대를633년이라했고,『증보문헌비고』에서는647년이라했는데어느것이옳으며,틀린기록은왜남게되었을까?⑪『삼국유사』왕력(王曆)에는첨성대(瞻星臺)가점성대(占星臺)로기록되어있는데왜그런별명이생겼을까?이두가지질문에도해답을내어놓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