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꽝꽝 얼어붙은 보수의 대지 위에
홀로 거역하여 진보의 씨앗을 움틔운,
고독한 이단의 초상!
홀로 거역하여 진보의 씨앗을 움틔운,
고독한 이단의 초상!
세 살 때부터 글을 읽고 썼던 율곡 선생은 과거에 아홉 번이나 장원 급제하여 ‘구도장원공’이란 별칭을 얻었던 조선 최고의 천재였다. 일찍 출사하여 권력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권력보다는 한사코 백성을 택했으며, 개혁이 가로막혀 벼슬을 내려놓을 땐 낙향하여 대장간에서 호미를 만들어 팔아 생계를 이을 정도로 청렴한 유자(儒者)였다. 이조·형조·호조·병조 판서에 이어 다시 이조 판서로 고위직을 두루 역임하다 49세로 요절했으나, 평생 가난했던 그의 집엔 장례비조차 없었다.
‘법률은 지엄해서 한 번 정하면 하늘이 두 쪽 나는 한이 있더라도 함부로 바꿀 수 없다’고 모두가 두 눈을 부릅뜰 때, ‘백성을 위해서라면 일백 번이라도 바꿀 수 있다’고 홀로 저항하고 개혁을 외친 지식인이었다.
조선왕조의 기왓장이 허물어져 내리던 36세에 이미 당대를 이끄는 중심으로, 동서 사림으로부터 모두 존숭받는 인물이었으며 동서 붕당의 폐단을 멈추라 가장 먼저 외쳤던 선구자였으나, 동시에 동인과 서인 양당으로부터 사후까지 잔인한 핍박을 받았다.
사후 2백여 년이 훨씬 더 지난 뒤 조선 후기의 석학 윤봉구는 ‘율곡 선생은 어떤 스승으로부터 따로 받으신 것이 없으면서도 도체(道體)를 통철하게 보시었다’고 평가했다.
‘법률은 지엄해서 한 번 정하면 하늘이 두 쪽 나는 한이 있더라도 함부로 바꿀 수 없다’고 모두가 두 눈을 부릅뜰 때, ‘백성을 위해서라면 일백 번이라도 바꿀 수 있다’고 홀로 저항하고 개혁을 외친 지식인이었다.
조선왕조의 기왓장이 허물어져 내리던 36세에 이미 당대를 이끄는 중심으로, 동서 사림으로부터 모두 존숭받는 인물이었으며 동서 붕당의 폐단을 멈추라 가장 먼저 외쳤던 선구자였으나, 동시에 동인과 서인 양당으로부터 사후까지 잔인한 핍박을 받았다.
사후 2백여 년이 훨씬 더 지난 뒤 조선 후기의 석학 윤봉구는 ‘율곡 선생은 어떤 스승으로부터 따로 받으신 것이 없으면서도 도체(道體)를 통철하게 보시었다’고 평가했다.
율곡 평전 : 한국사에서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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