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평전 : 한국사에서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인물

율곡 평전 : 한국사에서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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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꽝꽝 얼어붙은 보수의 대지 위에
홀로 거역하여 진보의 씨앗을 움틔운,
고독한 이단의 초상!
세 살 때부터 글을 읽고 썼던 율곡 선생은 과거에 아홉 번이나 장원 급제하여 ‘구도장원공’이란 별칭을 얻었던 조선 최고의 천재였다. 일찍 출사하여 권력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권력보다는 한사코 백성을 택했으며, 개혁이 가로막혀 벼슬을 내려놓을 땐 낙향하여 대장간에서 호미를 만들어 팔아 생계를 이을 정도로 청렴한 유자(儒者)였다. 이조·형조·호조·병조 판서에 이어 다시 이조 판서로 고위직을 두루 역임하다 49세로 요절했으나, 평생 가난했던 그의 집엔 장례비조차 없었다.

‘법률은 지엄해서 한 번 정하면 하늘이 두 쪽 나는 한이 있더라도 함부로 바꿀 수 없다’고 모두가 두 눈을 부릅뜰 때, ‘백성을 위해서라면 일백 번이라도 바꿀 수 있다’고 홀로 저항하고 개혁을 외친 지식인이었다.

조선왕조의 기왓장이 허물어져 내리던 36세에 이미 당대를 이끄는 중심으로, 동서 사림으로부터 모두 존숭받는 인물이었으며 동서 붕당의 폐단을 멈추라 가장 먼저 외쳤던 선구자였으나, 동시에 동인과 서인 양당으로부터 사후까지 잔인한 핍박을 받았다.
사후 2백여 년이 훨씬 더 지난 뒤 조선 후기의 석학 윤봉구는 ‘율곡 선생은 어떤 스승으로부터 따로 받으신 것이 없으면서도 도체(道體)를 통철하게 보시었다’고 평가했다.

저자

박상하

인간이란무엇인가라는질문에역사는가장진실한통찰을준다는일념위에,‘모든역사는현대사’라는베네디토크로체의철학을얹어,현대적인문학가치로사회성짙은역사를재발견하는글쓰기를지속해오고있다.

1995년허균문학상을수상하면서문단에등단했다.2000년에는문예진흥원소설부문창작지원금을받았으며,발표작품으로는「명성황후를찾아서」,「은어」,「나를성웅이라부르라」,「박승직상점」,「왕의노래」,「다산의열아홉번」등의장편소설과「한국인의기질」,「조선의3원3재」,「경성상계」,「치욕」,「역사소설작가수업」「한국인의원형을찾아서」,「보수의시작퇴계,진보의시작율곡」,「반란의역사」등다수가있다.

목차

들어가는글|한국사에서가장먼저읽어야할인물

제1부I내가되다
49년동안의생애
신비한태몽
어린시인의생각
한길뿐인출사
퇴계이황을만나다
율곡의과거시험
하늘의이치를논하라

제2부I율곡이되다
도탄의수렁에빠진질곡의시대
벼슬길에오르다
6,800리중국을다녀오다
다스리고자한다면임금부터공부하라
「동호문답」을저술하다

제3부I가난으로고통받는백성들을구하라
허물어져내리는왕조의기왓장
청주목사로목민관이되다
「만언봉사」를저술하다
「성학집요」를저술하다
벼슬을사양한채집필에전념하다
‘율곡이돌아오면나라가망하지않는다’
마흔넷,잔인한그해여름

제4부I귓가에가득한솔바람소리
시로율곡을그리다
어린기생유지를사랑하다
천재의천재친구,성혼
천재시인,송강정철
천재의‘숨은친구’,송익필

제5부I서인의영수가되다
퇴계와율곡의‘사단칠정논쟁’
영의정이준경과의악연
동서화합이살길이다
서인의영수가되다

제6부I대장간의호미장사꾼
쉰명이한데모여사는대규모가족
율곡의사학‘은병정사’의풍경
생활고에다시금벼슬길에나서다
호조,이조,형조,병조,이조판서하다
‘십만양병설’을주장한이유

제7부I선한핍박,악랄한핍박
서인을공격하면출세한다
사림정치의속살‘당파싸움’
율곡의다섯가지죄목‘오국(誤國)’
나를차라리‘율곡의당’이라고부르라
슬퍼하지마라,탄식하지말라

제8부I율곡,그뒤
그의졸기
그의문인록
사후에도그치지않는핍박
아직다끝나지않은당쟁
다시부활하는율곡
간추린「율곡연보」

마치는글I율곡의마지막미스터리

출판사 서평

진보의시작율곡,소통,화합,민생을위한정치를실현하다

율곡(栗谷)그는천재였다.백년에한사람이나올까말까하는그런수준이아니었다.우리가이땅에살아온억겁의세월동안전대미문의첫째가는천재였다.

일찍이누구도경험해보지못한그이상의세계였다.조선왕조가길러낸숱한선비가운데지금껏회자되어마땅한표상이었다.국법은지엄해서한번정하면하늘이두쪽나는한이있더라도함부로바꿀수없다고모두가두눈을부릅뜰때,제아무리지엄한국법일지라도백성을위한것이라면일백번이라도바꿀수있다고외친학자였다.꽝꽝얼어붙은보수의대지위에홀로거역하여진보의씨앗을움틔워낸,새로운역사의지평을연정치가였지만죽는날까지흔들림이그칠줄몰랐다.

왕조의기왓장이속절없이허물어져내릴때36세의그는이미당대의중심인물이었다.개혁이가로막혀벼슬을내려놓을적마다대장간에서호미를만들어팔아생계를이어가면서도,구태에젖어헤어나지못하는지배세력을혁신하고도탄에허덕이는백성들을구하자고외친고독한이단이었다.나무가크면바람잘날이없다.무언가를고집스럽게하려거든반대의벽도없지않았을터이다.

개혁을외친그는생전에환대받지못했다.영의정(정1품)이준경은그를경계하라고점찍었다.동인과서인으로갈라지는붕당이전만해도그는분명전체사림으로부터존숭받는인물이었으나,동인과서인양당으로부터동시에핍박을받았다.나중에는‘나라를팔아먹은간신’이라는배척속에끝내탄핵당하기에이른다.

심지어그가죽기몇달전에는조정에서압도적인세력을이룬동인으로부터‘소인(小人)’으로내몰렸다.당대에소인이라는규정은그저단순한비난이아니었다.성리학이이데올로기였던왕조에선곧배제와박멸의대상으로낙인찍힌시대의주홍글씨가다름아니었다.이같은핍박은그의사후에도그칠줄몰랐다.성균관유생모두가일찍이동방에없던성인이라고그를추앙하였음에도,사후백골이진토되었을즘에야겨우문묘종사에배향(숙종7년)될수있었다.그도모자라예송논쟁(1674)과기사환국(1689)을거치면서서인이몰락하고말자,문묘종사에서그를축출해야한다는상소가또다시빗발쳤다.

김지하의시「무화과」에이런논쟁이오간다.꽃없이열매맺는것이무화과인가,열매속에속꽃으로피는것이무화과인가.해석의차이를두고역사는다툰다.우린그에대해과연얼마나알고있는걸까?무얼안다고말할수있을까?학창시절얼핏엿들은이기일원론이며주기철학,그가순자의성악설(性惡說)이아닌노자의성선설(性善說)에더주목했다는정도를빼고나면,과연또무엇을이해하고있다고말할수있을것인가?아니굳이이사람을가슴에또품어야한단말인가?
과거는과거다.지나간것은지나간대로흘려보내야한다.삼각산이일어나더덩실춤을추더라도기어이부서져스러지고마는것이있다면,햇볕에발하고달빛에젖더라도꼭스러지지않는불멸또한존재하게마련이다.

그가죽은지2백여년도훨씬더지난영조(21대)대에이르러서야마침내재평가가이뤄지기시작했다는,그의저서「성학집요」가군왕과대신들이학문을배우고국정을논의하는경연(經筵)의자리에서가장중요한지침서가되었다는기억을떠올리지못했다면,아주오래된시간들로부터그에대한기억을끝내되살려내지못했더라면아마도사나운바람속에제비꽃들의흔들림이멈출때까지하염없이앉아그를기다리고있어야만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