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의 역사 1 : 왕조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경성의 산업

상업의 역사 1 : 왕조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경성의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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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왕조시대의 소란한 상업 풍경에서부터
시끌벅적한 경성의 식민 경제를 거쳐
8·15해방 이후 움튼 기업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사마천의 「화식열전」이 중국의 상인들에게 불멸의 상경(商經)이라 한다면, 일본을 경제 대국으로 굴기시킨 불멸의 상경은 시부사와 에이치의 「논어와 주판」이랄 수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역사에선 이 같은 상경이 없다. 율곡과 퇴계가 남겼다는 무수한 저서 속에도, 개혁 군주의 아이콘 정조의 많은 어록에서도,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의 책 곳간에서도, 문사철의 일체를 추구한다는 조선 선비의 서재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는 왜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라고, 그래서 부유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외쳤던 역사가 없었는지 안타깝다. 2천여 년 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본과 같은 19세기 만이라도 누군가 그 같은 상경을 써내고 널리 읽혔더라면, 우리 역사는 또 어떻게 흘러갔을까?

이 책은 고통받는 격동의 역사 속에 파묻혀 끝내 발굴되지 않은 종로 육의전의 보부상단에서부터 해방 이후 대기업의 탄생까지, 선택된 소수의 사실만이 살아남은 100년 동안의 한국 상업사(商業史)를 그려내고 있다.
저자

박상하

저자:박상하

인간이란무엇인가라는질문에역사는가장진실한통찰을준다는일념위에,‘모든역사는현대사’라는베네디토크로체의철학을더해,현대적인문학가치로사회성짙은역사를재발견하는글쓰기를지속해오고있다.1995년허균문학상을수상하면서문단에등단했으며,2000년에는문예진흥원소설부문창작지원금을받았다.

저서로는「명성황후를찾아서」,「은어」,「진주城전쟁기」,「나를성웅이라부르라」,「박승직상점」,「왕의노래」,「다산의열아홉번」등의장편소설과「경성상계」,「한국인의기질」,「삼성경영현대경영」,「조선의3원3재」,「치욕」,「한국인의원형을찾아서」,「역사소설작가수업」,「보수의시작퇴계,진보의시작율곡」,「반란의역사」,「율곡평전」등다수가있다.

목차

일러두기

들어가는글
사람은누구나,어차피그무언가를팔면서살아간다

「제1장」5백년전통의조선상계‘종로육의전’과‘보부상단’
백여년전서울의풍경,신비로운샹그릴라
5백년을이어온조선의상계,‘종로육의전’
종로육의전,‘금난전권’으로상권을지켜오다
이방인의눈에비친생게망게한옛‘장터풍경’
두메산골의장터까지누빈장돌뱅이‘보부상’
‘조선상계’의길목을장악한전국4대상단商團

「제2장」개항,조선상계‘종로육의전’의붕괴
왕조의도성안에격증하는일본인들
개항으로급조된인천의제물포
호텔의탄생,대불호텔에서손탁호텔까지
개항으로붕괴하고만종로육의전의최후
종로육의전의마지막후예‘대창무역’

「제3장」5백년‘한성’에서상업중심의근대도시‘경성’으로
변모해가는한성,도심속을달리는전차
강철같은별표고무신과안창남에열광하다
유행을키운활동사진,‘몽파리’
돈놓고돈먹기,불붙은전당포와고리사채업
은행의탄생,조선은행에서동일은행까지
우후죽순처럼세워지는근대건축물들

「제4장」경성의젊은상인들,종로거리로돌아오다
궁중의비방으로탄생한동화약방의‘활명수’
왕조가망하자잡화상점차린왕족
개화경장사로종로상계에다시진출하다
경성의자동차왕,민규식에서방의석까지
맨손으로이룬첫근대기업가‘박승직상점

「제5장」조선의3대재벌김성수·민영휘·최창학
조선의3대재벌,김성수·민영휘·최창학
은행장박영철,민대식,김연수의하루
조선은행지하금고와총독부월급3백만원
‘종로삘딍’과‘한청삘딍’의빌딩쟁탈전

「제6장」경성의젊은여성들,시대를거역하다
조선극장과단성사,명월관과식도원
신문사사장월급5백원,4만원저축하는기생
최초의토키-영화‘춘향전’첫날흥행1,580원
60만원던져호텔짓는김옥교여사장
현대‘쌀라리맨’의수입과경성의자동차대수
이루어질수없는사랑‘사의찬미’

「제7장」꿈의노다지,황금열풍에휩싸이다
꿈의노다지,10조원의운산광산
금광왕방응모,조선일보사장되다
노다지꿈이룬간호사출신의금광여사장
신흥광산의광부들,습격폭파사건
동척으로넘어가고만노다지꿈의에필로그

「제8장」조선의물류업계에새벽이열리다
‘조선미창’,조선물류업계의새벽을열다
자본금3조8,500억원,종업원5만명의‘조선운송’
남북종단철도1천km,토목업계의씨앗이되다

출판사 서평

선택된소수의사실만이살아남은100년의도전과응전,‘상계의역사’

우리의근대상업사商業史는일천하다.이웃나라만보더라도우리하곤사정이다르다.중국은이미1872년부터‘상인을초청해서설립한공기업’이란뜻의해운회사‘윤선초상국輪船招商局’설립을시작으로,상업을넘어기업이급속하게늘어났다.일본역시민간철도회사인니혼철도(1881)와오사카방적(1883)을시작으로근대기업들이우후죽순처럼세워졌다.그에반해우리의근대기업사는턱없이짧은데다초라하기까지하다.20세기에들어서야겨우‘경성방직’과같은근대기업이탄생할수있었다.그나마제대로조명된적도없다.왜그랬던걸까?

이건아무리생각해보아도역사를붙잡고따져물을수밖에없을것같다.그러나우리의역사를되돌아보았을때상업사에서기업사에이르기까지움터오를수있는토양이나씨앗이전혀존재하지않았다.땅을칠수밖에없는노릇이다.먼저오늘날우리의토대를이룬다는조선왕조만해도그렇다.조선왕조땐상업을하고싶다고하여아무나상업을할수있었던게아니다.태조가새왕조를창건한이래유교를통치이념으로삼으면서일반백성들에겐상업을허락할수없다는,이른바‘억말무본抑末務本’이라는국시를추상같이견지해온까닭이다.따라서조선왕조는상업에지극히부정적이었다.상업활동은백성들을간사하게만들뿐더러통치이념의교화에도어긋난다해서,심지어농산물의유통에까지소극적이었다.유교의정신주의만을강조했을뿐자본축적의기회에손이미치지못했다.물론선말에이르면통공通共을시행하기도한다.정조(1791)연간에‘누구나상인이될수있다’라고선포하기도했다.하지만그것도다한성의바깥에서나가능한소리였다.도성안의알토란같은상권을제외한찌꺼기나다름없는나머지곳들,그리하여도성바깥으로나가하찮은푼돈이나주고받는상거래에한정한다는논의에불과했다.왕조의기왓장이허물어져내리는그날까지우리에게상업조차존재할수없었다.

반면이웃나라들의사정은사뭇달랐다.중국의경우4천여년전대륙최초의국가인하夏나라때부터벌써상업이출현했다.3천여년전주周나라땐상인들이등장했고,춘추전국시대가되면이미‘재물의신’이라고불렸던범려와자공,백규와같은큰상인들이경영의진수를한껏뽐냈다.이후에도누대에거쳐상업이천하와두루통하다通行天下,19세기에이르러상업과기업의중간단계랄수있는‘매판買辦’을거쳐,근대기업으로까지연착륙하게된다.일본역시일찍부터상업과금융업이상업자본으로꽃피웠다.대표적인상업자본으로지금까지도건재한고노이케鴻池,스미토모住友,미쓰이三井등을들수있다.고노이케는1656년환전업에서일반금융업으로성장해갔으며,스미토모는1691년이래부동산개발과함께동銅거래를시작해서금융업으로사업을전개해갔고,미쓰이는1673년의류상을시작으로대자본을일궜다.이쯤되면다시금의문에빠지게된다.한·중·일삼국이오랜역사속에서다같이불교와유교문화의지배를받아왔음에도,자본축적의기회에서만은우리가뒤처진다.유독뒤처진데다초라하기까지하다.그저단순히유교를국시로삼은왕조의탓만이었을까?

‘만일집이가난하고,어버이가늙은데다,처자식은연약하며,명절이되어도조상에게제사조차올리지못한다면,더구나가족이한데모여도음식을변변히먹지못하고,입을옷이없어사람들과어울리기어려우면서도,그같은가난을진정으로부끄러워할줄모른다면참으로못난사람이아니겠는가?바로이런이유로재물이없어가난한사람은힘써일하고,재물이조금이나마있는사람은지혜를짜내며,이미많은재산을가진사람은시기를노려보다많은이익을좇게된다.이것이곧삶의진리가아니고무엇이겠는가…?’

중국고전「사기史記」의한대목이다.지금의시점으로보면이같은대목이아무문제가될리없다.하지만2천여년전으로거슬러오른다면사정이달라진다.「사기」는2천여년전인중국한나라때사마천이쓴대륙의역사서이다.<본기本紀>12권,<표表>10권,<서書>8권,<세가世家>30권,<열전列傳>70권등모두130권52만6,500자로구성된방대한분량이다.그130권중<열전>의70권가운데예순아홉권째가곧「화식열전」이다.앞서인용한문장은이「화식열전」에서가려뽑은일부이다.여기서화貨는재산이며,식殖은불어난다는뜻이다.춘추전국말기부터한대초기에이르기까지상업으로막대한부를축적한이들의활약상을꿰뚫어본,요컨대재산을늘리는숨은비책을섭렵하고있다.특히‘재주있는자는부유해지고,모자란자는가난해진다’라거나,‘사람의모든행위는오직부귀해지려는몸부림이다’랄지,‘이익을추구하고,가난을치욕으로여기라’는먹고사는민생문제를정면으로제기하고있다.다시말해경제능력이사회생활에서얼마나중요한가를강조하면서,명분보다는실질을택하라고목청을돋운다.가난을돌이킬수없는수치로여기라고외친다.‘사농공상의시대’에상업을천시했던가치관을일관되게부정하고거역하는,당시로선불손하기짝이없는혁명적발상이아닐수없었다

그럼에도사마천은물러서지않는다.당대의유학자들이‘이익을추구하고가난을치욕으로여긴자’라며거침없이손가락질했던상인들의진가가,딴은본질적으로유교의정신과도합치한다는주장을굽히지않는다.때문에방대한역사서속에별도로「화식열전」을따로구성해서,‘이익을추구하고,가난을치욕으로여겼던’상인들의삶을조명하여기탄없이칭송하고있다.이유는너무도자명했다.상인들이라할지라도‘평범한사람들로정치를어지럽히지않을뿐더러백성들의생활을방해하지도않았고,단지상품의매매에서기회를포착해서재산을증식하였을따름’이라고대변한다.그런만큼‘지혜로운자라면여기서반드시깨달은점이있어야한다’고,「화식열전」을엮은자신의의도를분명히밝히고있다.
사마천의「화식열전」이중국의상인들에게불멸의상경이라한다면,일본을경제대국으로이끈불멸의상경은시부사와에이치의「논어와주판」이랄수있다.우리와같이‘상업은곧악’이라고일컫던‘사농공상’의에도막부시대에,그는전혀딴목소리를낸다.‘부귀는인류의성욕과도같은가장원시적이고근본적인욕구’라고주장하면서,‘에도시대의유학자들이나송나라의유학자들이생각하고있는것처럼도덕과이익추구는상호모순의관계가아니라고주장한다.그런만큼도덕과이익추구는더불어추구할수있다’라며강조하고나섰다.
시부사와는「논어」에결코부귀를천시하는내용은없으며,공자가부귀를악으로보았다는해석도후세의오독이라고단언한다.본래공자는부귀하여방탕해지는것을경계했을뿐인데,마치이것을공자가부귀를혐오했다고이해하는건잘못이라고지적한것이다.또그는이같은폐해를해소하기위해공자의「논어」를거듭찾는다.송나라의주자학에뿌리를두고있는에도막부시대의유학은,‘이利를배척하고인仁만을강조’했기때문에「논어」와다르다고말한다.공자가당초에의義와이利는불과물처럼서로섞일수없는관계라고주장한것이아니라,‘의리합일’을외쳤다고주장한다.
에도막부말기에농업과상업을겸한집안에서자란시부사와는,27세때파리만국박람회(1867)시찰을계기로선진자본주의국가의산업제도가얼마나우수한지몸소체득했다.유럽에서돌아온그는메이지정부의조세국장과구조개혁국장을지내며,일본의화폐·조세·은행·회계제도를근대적으로개혁했다.그러나33세때‘상업이부흥해야나라가산다’는일념으로탄탄대로를걷고있던고위관직을스스로버린다.그런뒤‘만약부를추구해서얻을수있고떳떳한것이라면,비록말채찍을잡고서왕의길을트는미천한마부의일일지라도마다하지않겠다’라는각오로상계에투신한다.이후그는미즈호은행,도쿄가스,도쿄해상화재보험,태평양시멘트,데이코쿠호텔,지치부철도,도쿄증권거래소,기린맥주,세키스이건설등500여개에달하는기업을설립했다.
유교적윤리와더불어현실적시장감각의조화를꾀하면서‘일본경제의아버지’,‘일본근대화의아버지’로추앙받고있다.왼손에는건전한부의윤리를강조한「논어」를,오른손에는화식의「주판」을들고서당당하게경제활동을하라는메시지가담겨있는그의저서「논어와주판」은,곧일본상계의나침반이자상경이되었다.일본경제를일으킨‘비즈니스의바이블’로불리며지금껏끊임없이읽히고있다.

불행하게도우리의역사에선이같은상경이없다.율곡과퇴계가남겼다는무수한저서속에도,개혁군주의아이콘으로불리며가난한백성들을그리도생각했다는정조의수많은어록속에서도,무려500여권이넘는책을펴냈다는다산정약용의책곳간속에서도,평생출사하지않고종루거리의거지왕초로살아가면서애오라지저작에만몰두했다는연암박지원의도서목록을다뒤져보아도,아니그들말고도문사철의일체를추구한다는수많은조선선비들의서재어디에서도찾아보기어렵다.누구한사람복숭아씨같이단단한그런불멸의상경을남겼다는이는끝내찾을길이없다.우리는왜가난을치욕으로여기라고,그래서부자가되어야한다고피를토하듯부르짖는역사가없었는지안타깝다.요란한빈말들이아닌역사의물줄기를바꾸어낼그같은고뇌가부재했는지,결과적으로먹물들의해오解悟는있었을지몰라도,그것을헤쳐나갈수있는대각大覺은없었는지아쉽기그지없다.2천여년전까지는아니더라도,일본과같은19세기만이라도누군가그같은상경을써내고널리읽힐수있었더라면,우리의역사는또어떻게흘렀을까?

이책은고통받는격동의역사속에파묻혀끝내발굴되지않은종로육의전의보부상단에서부터해방이후대기업의탄생까지,선택된소수의사실만이살아남은100년동안의한국상업사(商業史)를담담하게그려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