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경의 산악과 불교

신라 왕경의 산악과 불교

$35.00
Description
천년 고도 경주, 왜 ‘부처의 나라’가 되었나
신간 『신라 왕경의 산악과 불교』, 산천 신앙과 불교의 융합으로 본 신라 왕경의 정신사
동아시아 도성사(都城史)에서 신라 왕경만큼 독특한 사례는 드물다. 계획도시가 아닌 자연발생적 도시로서 천 년 동안 단 한 번의 천도 없이 자리를 지킨 신라. 이 거대한 역사적 공간은 어떻게 토착 산천 신앙을 흡수하고 불교라는 보편 종교와 결합하여 '불국토(佛國土)'라는 이상향을 완성했을까?
신간 『신라 왕경의 산악과 불교』는 신라 왕경의 형성 과정과 그 속에 투영된 신앙의 변천사를 '불국토 구현'이라는 관점에서 심도 있게 추적한 역작이다.

- 자연이 빚고 신앙이 채운 도시, 신라 왕경의 독자성
저자는 신라 왕경이 처음부터 일관된 계획 하에 건설된 것이 아니라, 지형지물에 맞춰 자연스럽게 확장된 점에 주목한다. 특히 왕궁인 월성이 왕경 남쪽에 치우쳐 자리 잡은 비정형적 구조는 동아시아 도성 계획의 일반적 문법을 벗어난 신라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이러한 지리적 환경은 신라인의 삶과 정치를 주변 산천 경관과 밀착시켰으며, 이는 훗날 외래 종교인 불교가 토착 산악 신앙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토대가 되었다.

- 호국(護國)과 호법(護法)의 공생: 국가와 종교의 완벽한 결합
이 책은 신라 불교가 단순히 신앙의 차원을 넘어 국가 통치의 핵심 기제로 작동했음을 밝힌다.
국가의 입장: 대외적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강력한 '불력(佛力)'을 빌리고자 했다.
불교계의 입장: 국가의 비호를 통해 교세를 확장하고 신라를 불교 중심지로 만들고자 했다.
저자는 이처럼 국가의 '호국'과 불교의 '호법'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며 신라 특유의 불국토 사상이 뿌리내렸음을 논증한다.

- 황룡사에서 불국사까지, 시대별로 변화한 불국토의 중심지
대외 관계와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신라가 추구한 불국토 구현의 수단과 중심지도 끊임없이 변화했다.
초기: 황룡사를 중심으로 호국과 호법의 기틀을 마련하다.
과정: 정치적 격변기에 맞춰 성지와 사찰의 위상이 이동하며 신앙적 대응책을 모색하다.
완성: 8세기, 마침내 '불국사(佛國寺)'를 창건하고 그 이름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신라가 곧 부처의 땅임을 대내외에 선언하기에 이른다.

- 신라 왕경을 읽는 새로운 프레임: 10편의 글로 엮은 역사적 통찰
총 10편의 연구 성과를 엮은 이 책은 산천과 불교가 어떻게 대립을 넘어 공존의 길을 걸었는지 세밀하게 묘사한다. 저자는 "신라 왕경의 산천에 대한 이해 없이는 신라인의 삶을 제대로 알 수 없다"며, 지형적 제약을 신앙의 힘으로 승화시킨 신라인들의 역동적인 역사를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경주의 구릉과 물줄기 하나하나가 부처의 가르침과 연결되었던 그 시절, 신라 왕경이 꿈꾸었던 이상향의 실체를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주보돈

朱甫暾

경북대학교인문대학명예교수
경북대박물관장,한국고대사학회회장,경북대교수회의장,경북대학교인문대학장.한국목간학회회장,국사편찬위원회위원,문화재청문화재위원회위원역임

주요저서
『금석문과신라사』,『신라지방통치체체의정비과정과촌락』,『임나일본부설,다시되살아나는망령』,『가야사새로읽기』,『김춘추와그의사람들』,『한국고대기본사료』,『가야사이해의기초』,『가야사새로읽기』,『신라왕경의이해』

목차

책머리에
서론-신라초기불교의전개

Ⅰ.불교와산악
1.황룡사(皇龍寺)의창건과그의도
2.남산과불교,그리고천룡사(天龍寺)
3.단석산(斷石山)의역사성
4.법광사(法光寺)의중창(重創)과그의미

Ⅱ.낭산과불교
1.낭산(狼山)의역사성
2.낭산과(전)황복사(皇福寺)
3.성전(成典)사원으로서의봉성사(奉聖寺)창건과그의미
4.낭산과밀교(密敎)

Ⅲ.토함산과불국토
1.토함산(吐含山)의역사성
2.불국사및석굴암의창건과토함산

출판사 서평

신라왕경,천년의길위에서‘불국토’를꿈꾸다
신작『신라왕경의산악과불교』,산천신앙과불교가빚어낸신라왕경의독특한정체성추적

신라의수도서라벌은왜동아시아의다른도성들과달리정형화되지않은독특한구조를가졌을까?자연발생적으로형성된왕경의지형과외래종교인불교는어떻게결합하여‘신라라는땅이곧부처의나라’라는불국토사상을완성했을까?
신라왕경의형성과정과그속에투영된신앙의변천사를심도있게분석한신간『신라왕경의산악과불교』이출간되었다.이책은신라왕경이지닌지리적특수성과그제약을극복하며국가적이상향을구축해나간10편의연구를한데묶었다.

-자연과밀착된신라왕경,‘월성’에깃든독특한구조
저자는신라왕경이처음부터기획된도시가아닌,자연지형에맞춰서서히형성된‘자연발생적도성’이라는점에주목한다.특히왕궁인월성이왕경의남쪽에치우친비정형적구조를갖게된배경과,천년동안단한번의천도없이자리를지킨유례없는역사성을조명한다.이러한지리적환경은신라인들의삶과정치운영에깊은영향을미쳤으며,주위산천경관과의밀착된관계를형성하는근간이되었다.

-토착산천신앙과불교의조화로운결합,‘불국토’의탄생
삼국중불교공인이가장늦었던신라는기존산악숭배세력의저항에직면했다.하지만신라는이를배척하는대신,고유의산천신앙을불교적으로윤색하는독창적인길을택했다.저자는본래신라의땅이부처와인연이깊은‘불국토(佛國土)’였다는믿음이어떻게국가적이데올로기로자리잡았는지서술한다.

-시대의요구에따라변화한호국의중심축:황룡사에서낭산,그리고토함산으로
책은정치·사회적변화에따라호국신앙의중심지가이동하는과정을정밀하게추적한다.
황룡사시기:초기불국토구현의중심으로,장육삼존상과9층목탑을통해국가적수호의지를드러냈다.
낭산시기:삼국통일후당(唐)과의긴장이고조되자호국의중심은황룡사동편의낭산(사천왕사)으로옮겨갔다.
토함산시기:8세기전반,일본과의적대관계가깊어지며동쪽방어의요충지인토함산이중시되었고,이는석굴암과불국사창건이라는문화적결실로이어졌다.

-신라왕경을바라보는새로운시각
이책은신라왕경에서산천과불교가어떻게결합하고융합되었는지를10편의글을통해입체적으로그려낸다.저자는“왕경의산천에대한이해는신라인의삶을이해하는필수요소”라며,당시의국제정세와신앙이어떻게신라라는물리적공간에투영되었는지를명확히제시한다.
신라의역사와불교미술,도성사(都城史)에관심있는독자들에게이책은천년고도경주를바라보는새로운지평을열어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