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넝쿨이 덮은 집 : 2026년 구상솟대문학상 수상 시집

포도넝쿨이 덮은 집 : 2026년 구상솟대문학상 수상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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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성진

저자 : 박성진
1985년 광주 출생으로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2006년 시 모임 ‘아나키’를 결성하여 송수권 시인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배웠다. 2013년 순천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2013년 계간 『애지』에 시 <가시박> 외 9편으로 등단하였다.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구상솟대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목차

시인의 말 5

1부 포도넝쿨이 덮은 집
나무 의자 12
미용실 천동설 13
비누에 대하여 14
통영 꽃길 16
손맛 18
5일장 20
팬티를 말하다 22
목련 아래서 24
화사한 책장 26
문법서에 없는 말 28
칡과 등나무 30
벚꽃 핀 날 32
포도넝쿨이 덮은 집 34
대답 없는 메아리 36
그 겨울에 37
슬링 38

2부 쑥
쑥 40
신성한 죽음 42
생선 그리스도 44
도자기에 대하여 46
간절곶 느린 우체통 48
하늘에 걸린 지도 50
무릎 속의 기상청 52
아버지의 산 54
귀를 줍다 56
가시박 58
죽어야 빛나는 59
쳇기 60
품속의 문 62
호수 식탁 64

3부 사막을 걷는다
산뜻 66
왕버들나무의 하루 67
사막을 걷는다 68
백발백중 맹인 낚시꾼 70
나팔꽃 필 무렵 72
뿌리 뽑힌 나무 74
스파티필룸 76
테트리스 78
나사못 조이는 시간 80
안마 일지 81
외팔이의 힘 82
화살표 따라 걷다가 83
까만 꽃 84
나무의 걸음 86
종교를 허물다 87
고구마를 생각한다 88

4부 독
독 90
강 92
대천항에서 94
불면 96
태풍 98
비결 100
떨어져도 좋을 가을 102
첨단 시민의 숲에서 104
뜨거운 연탄 105
개기월식 106
차가운 연대 108
종점을 향하여 110
성탄절 112
판 114
블랙홀에서 화이트홀에 이르기까지 116
마흔 118

출판사 서평

〈심사평〉

박성진 시인의 〈포도넝쿨이 덮은 집〉을 선정했습니다. 서정성과 묘사력을 작품의 구성(plot)으로 통합해 완성도가 높습니다. 인간 가치를 추구한 작품의 주제 의식도 구체성을 갖추어 감동을 줍니다.

“집안 곳곳에 배인 추억들마저 삼켜 버릴 작정”을 하는 넝쿨손을 “기억들을 썩은 두엄쯤으로 여기”는 “뇌종양”을 앓고 있는 환자의 처지로 이어 놓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환자가 치유되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은 큰 목소리로 호소하지 않는데도 간절하게 전해 옵니다.

시인의 그 희망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생생히 썩어 가는/환한 등불이 되고 싶은 밤”에 솟아오릅니다. “자꾸만 병실을 기웃거리던 머리털자리 별 하나”가 “창가에 바짝 붙어/새하야니 빛나고 있”습니다. 서정과 묘사의 조화로운 통합을 이룬 〈포도넝쿨이 덮은 집〉은 깊은 감동의 울림을 줍니다.
_맹문재(안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시인의 말〉

수상 소식을 듣고 송수권 교수님이 무척 보고 싶었습니다. 그 어떤 이름보다도 그리운 이름입니다. 지금은 이 하늘 아래 계시지 않지만, 시를 이렇게 쓰면 되겠냐고 호통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언젠가는 〈우리말 겨루기〉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어리바리라는 단어를 보시고 제 생각이 났다면서 널 위한 시니까 한번 잘 들어 보라며 〈종소리〉를 읊어 주시기도 했습니다. 제 등단 소식 앞에서는 누구보다 기뻐하시면서 깊은 계곡에 흐르는 물 같은 시로 바다를 이루라며 현곡(?谷)이라는 호도 내려주셨습니다. 긴 시간을 돌고 돌아 이제야 첫발을 내딛게 되어 죄송스럽고 부끄럽기만 합니다. 이제라도 부단히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사실 지금도 저는 시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써야 좋은 시가 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구상 선생님의 이름이 새겨진 이 상을 더욱 무겁게 여기며 저와 저를 둘러싼 이 세계를 더욱 깊이 들여다보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_〈수상 소감〉 중에서


책 속에서

포도넝쿨이 집을 덮고 있다
잿빛 시멘트 바닥인 마당 한편에서 뻗어 나와
새하얀 담장을 휘감아 덮고 있다
구두 한 켤레 놓여 있을 섬돌이 온데간데없다
녹슬어 버린 자물쇠가 채워져 있을 현관문도
붉은 커튼 드리워져 있을 창문도 보이지 않는다
넝쿨손은 집 한 채를 통째로 밑거름 삼아
양철 지붕마저 덮어 버렸다 시퍼렇게 덮고서는
아직도 뭔가 부족하다는 듯 뻗어 나가는
저승사자 같은 것들
집안 곳곳에 배인 추억들마저 삼켜 버릴 작정인가

어디서부터 뻗어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암세포 줄기 탓에
엠알아이에 찍힌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흑빛이었다
둥글게 부풀어 오른 뇌종양들
그녀의 기억들을 썩은 두엄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일까
어두운 그늘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흡수된 좌뇌에 이어
새하얗던 중뇌마저 까맣게 자취를 감춰 버렸다
몇 번인가 툭
포도송이 그 까만 알들 떼어 내듯 종양들을 잘라 보지만
소용없다 끊임없이 자라는 넝쿨손들
힘겹게 남아 있는 우뇌마저 덮어 버릴 기세로 뻗어 나오는 것이다

포도넝쿨이 덮어 버린 집이라니!
저 넝쿨손들 다 걷어내면
굳게 잠겼던 자물쇠 스르르 풀릴 것만 같아
그녀의 머릿속에서 생생히 썩어 가는
환한 등불이 되고 싶은 밤
자꾸만 병실을 기웃거리던 머리털자리 별 하나
반들반들한 머리 위로 금세라도 떨어질 듯 창가에 바짝 붙어
새하야니 빛나고 있다
-「포도넝쿨이 덮은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