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전지 (양장본 Hardcover)

두류전지 (양장본 Hardcover)

$23.92
Description
김선신의 『두류전지』는 그동안 학계에서 종종 인용되곤 했으나 번역본이 없어 일반 독자들이 전체적인 면모를 살필 수 없었다. 이번 번역 출간을 계기로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바라본 지리산의 자연지리와 명승지, 문화유산, 문학작품, 일화 등을 총망라한 인문지리서의 면모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됐다.
저자

김선신

역자전병철은경상대학교한문학과에서동양고전학전공으로문학박사를받았다.현재경상대학교경남문화연구원의HK교수로재직하고있다.주요관심사는조선시대경전해석학및유학사상이며,특히그두가지의상호연관성을해명하는데에연구목표를두고있다.

저서로『남명의심학』,『송정하수일』,『마음의전쟁에서이겨라-남명학파잠(箴)작품해설-』,『중국경학가사전』(공저),『송원시대학맥과학자들』(공저),『주자』(공저)등이있으며,역서로『선인들의지리산유람록』(공역)이있다.논문은「남당한원진『대학』해석연구」(석사학위논문),「대산이상정성리설의회통적성격」(박사학위논문),「『논어』‘요산요수’장에관한조선시대학자들의해석과내재적수양론」,「명대양긍의『무이지』가조선에끼친영향」등이있다.

목차

옮긴이의말

해제김선신의『두류전지』

권상
제1장두류산조상산들의계보[頭流祖宗譜]
제2장두류산본체산들의기록[頭流身記]
제3장두류산자손산들의기록[頭流子孫錄]
제4장두류산족당산들의고찰[頭流族黨考]
제5장세물줄기의흐름[流水經]
제6장두류산주변고을들의기록[麗山郡邑志]
제7장명승지선별편[選勝編]
부론(附論)금강산과두류산중어느산이더뛰어난가?[附論金剛頭流孰勝]
제8장사당ㆍ서원ㆍ누각ㆍ정자등의개요[祠院樓亭略]

권하
제9장불교사찰총표[梵天總表]
제10장고적개요[古蹟箚]
제11장두류산시화[貼山詩話]
제12장보충하는장[補塞遺脫章]
제13장두류산잡록[頭流雜識]

해제부록
1.「두류신기」의주요산맥
2.「두류자손록」의주요산맥
3.「두류족당고」의주요산맥
4.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조선의3대산지山誌이자
지리산에관한조선시대의유일한산지,『두류전지』!
지리산의자연지리와명승지,문화유산,문학작품,일화등을총망라한종합인문지리지가
드디어번역되어첫선을보이다!

백두산,금강산과더불어우리민족을대표하는산이자수천년의역사와문화를이어온인문의산지리산.그지리산에관한조선시대의유일한산지『두류전지』가처음으로번역되어나왔다.

김선신의『두류전지』는그동안학계에서종종인용되곤했으나번역본이없어일반독자들이전체적인면모를살필수없었다.이번번역출간을계기로조선시대유학자들이바라본지리산의자연지리와명승지,문화유산,문학작품,일화등을총망라한인문지리서의면모를한눈에볼수있게됐다.

백두대간이흘러내린두류산,인격체에비유하여설명한『두류전지』
이책의편찬자인김선신(1775~?)은1823년무렵2년간영남의소촌역(현재경남진주시문산읍)찰방을지낸적이있는데이기간동안『두류전지』를저술한것으로추정된다.김선신은“중국곤륜산에서나온천하의세산줄기중하나가동북쪽으로흘러백두산이되고,백두산에서다시남쪽으로흘러조선의여러산이되고,마침내두류산에이르러그흐름이다한것”으로봤다.‘두류頭流’라는이름은‘백두대간이흘러내린산맥(백두대간白頭流脈)’을뜻한다고했다.백두산의근원을중국곤륜산으로본점은아쉽지만백두산에서두류산에이르기까지백두대간산맥들의흐름을국토전체와유기적으로파악한점은높이평가할수있다.

김선신은다른산지에서는볼수없는독특한주제설정으로『두류전지』를서술하고있는데이것은우리나라의산줄기와산의위치를일목요연하게표表로나타낸지리서『산경표』의영향으로보인다.김선신은『산경표』의족보와같은체제를응용하여지리산을인격체에비유하여조상(祖宗),본체(身),자손(子孫),족당(族黨)등으로표현하여각기[두류조종보]ㆍ[두류신기]ㆍ[두류자손록]ㆍ[두류족당고]등의독특한방식으로설명했다.

금강산은재주있는선비,지리산은덕이있는노인
그는우리나라산중에서빼어난경치는금강산이최고이며웅장한모습은지리산이가장뛰어나다고평가했다.하지만금강산은나라의중심에있어사람들이빼어난경치를모두알고있는데,지리산은남쪽에위치하여아는사람도찾아오는사람도드물다고했다.그는차라리지리산의묵묵함을배울지언정금강산의찬란함을본받지말며,지리산의엄숙함에처할것이지금강산의깨끗함을가까이하지말라고자신의견해를피력했다.

그리고금강산을재사才士에비유하고지리산을덕로德老에빗대어빼어난금강산보다덕스러운지리산을더높이평가했다.대부분의사람들이유람자의관점에서경치가빼어난금강산을최고의명산으로꼽는데비해,거주민의입장에서금강산의빼어남보다지리산의풍부한토양과너른품을높이평가한김선신의참신한식견을엿볼수있는대목이다.

조선의3대산지,두류전지의색다른구성
『두류전지』는서원모(1787~1858)의『주왕산지』,이세택(1716~1777)의『청량지』와더불어문학,역사,지리등의종합적인체계를가지고편찬된조선시대의3대산지로알려져있다.『두류전지』는두산지에비해더방대한자료를바탕으로지리산의자연지리ㆍ군현ㆍ누정ㆍ고적ㆍ문학작품ㆍ일화등을총망라하고있다는점이특징이다.

『두류전지』는상권의여덟주제와하권의다섯주제로총열세주제로구성되어있다.그주제들을살펴보면,지리산의조상(조종)이되는산들의계보를밝힌[두류조종보],지리산의몸체(본체)에해당하는산들을기록한[두류신기],지리산의자손에해당하는산들을기록한[두류자손록],지리산의계통(족당)에속하는산들을살펴본[두류족당고],지리산의물줄기를다룬[유수경],지리산을둘러싸고있는고을들을기록한[이산군읍지],지리산의명승지를선별하여소개한[선승편],지리산의사당?서원?누각?정자등을기록한[사원누정략],지리산의불교사찰과암자를총괄한[범천총표],지리산의유적이나옛터를기록한[고적차],고려시대부터조선시대까지지리산을읊은시들을소개한[첩산시화],여기까지누락된내용을보충한[보색유탈장],지리산에얽힌다양한전설과이야기들을소개한[두류잡지]등으로구성되어있다.

열세주제는다시크게세주제로나눌수있다.자연지리에관한내용을다룬[두류조종보]?[두류신기]?[두류자손록]?[두류족당고]?[유수경]등의다섯주제,지리산권의지역적범위와명승지를서술한[이산군읍지]?[선승편]등의두주제,문화유산을기록한[사원누정략]?[범천총표]?[고적차]?[첩산시화]?[보색유탈장]?[두류잡지]등의여섯주제이다.현재『두류전지』는국립중앙도서관본과고려대학교도서관본두종의필사본만전해진다.이책의번역은고려대학교에소장되어있는『두류전지』를저본으로삼았다.

[책속으로추가]

월아산月牙山
월아부곡에있다.두봉우리가마주서서두류산의울타리가된다.동쪽에는날아오르는봉황飛鳳의형국이있으며서쪽에는천마天馬의형세가있다.그러므로옛날에산의동쪽에는재상이태어나고산의서쪽에는장수가출생한다고일컬었다.(재상은강맹경과강혼을말하며장수는조윤손과정은부를가리킨다.)또한우리나라인재의절반이영남에있고영남인재의절반이진양에있으며진양인재의절반이월아산에있다고일컫는다.신령한기운이감화한것으로속일수없다.(120쪽)

남해의금산에두대臺가있다.하나는금산의본봉이며다른하나는문장암(고운최치원이손수새긴것이다)이다.제2봉에대장암이있으며제3봉에의상암이있다.의상암아래에보리암이있다.남쪽에음성굴이있으니절굿공이로치는소리가북소리처럼울린다.위에는용굴이있는데사람들이감히엿보지못한다.아래에는석문이있으니,승려의말에세존대사가돌배〔石船〕를만든곳이라고한다.모양이매우기이한저두암이있다.옛날에엄청차가운감로수가있어세번마실수있는사람이적었다.또한천장봉ㆍ일월봉ㆍ화암봉ㆍ청계수ㆍ옥계수ㆍ유홍문ㆍ좌선대ㆍ인적암등이있으니온갖기괴한형상을드러내고있다.(121쪽)

동국의산가운데나라에서이름난산은백을헤아릴수있다.하지만빼어남은금강산의빼어남을능가하는산이없으며웅장함은두류산의웅장함보다더한산이없다.이두산은참으로동방의걸웅이다.그렇지만금강산은나라의중심에자리하여현달한선비가앞을다투어즐거움으로삼는다.(…)두류산은나라의남쪽에처하여요행히아는자가드물며알게되어찾아오는자도매우적다.(132쪽)

지금금강산이두류산만못하다고말하지만,갑작스레남들에게이야기하면사람들이반드시믿으려하지않을것이다.금강산은재주있는선비이다.재주있는사람을사람들이사랑하지만,사랑이극심하면해치게된다.그러므로그모습이오히려시름겹다.두류산은덕이있는노인이다.덕이있는사람을사람들이공경하지만,공경함이오래되면반드시점차멀리하게되며멀어지면잊어버리게된다.아!내가어찌하면공경함이오래되어도잊지않는사람과함께살면서두류산의온전한덕을같이논할수있을까?(134쪽)

진양의촉석루와남원의광한루는두류산상봉까지의거리가둘다100여리나되며강물이그사이로흐르고있어두류산지경과상관이없는듯하다.그러나두류산의수많은봉우리들이광한루가있어읍을올리는듯하고,두류산의무수한골짜기들이촉석루가있어받아들이고있는듯하다.두누각의명승이두류산의동쪽과서쪽을나누어주인이되니기록하지않을수없다.(148쪽)

이전기록에“두류산의사찰은예로부터팔만아홉곳이라고일컬어진다”라고했다.과장되게말한것이라고의심된다.옛날신라와고려가불교를숭상하여백성의재물을없애사찰을윤택하게했다.사찰과암자가국토에널리가득차서이름난산과큰골짜기에는장엄한사찰들이더욱극에달했다.화엄사도두번째에해당하는사찰로떨어질정도였다.지리산안팎의법계에총일백육십곳의사찰이있는데그것이과장되어팔만개소로일컬어졌다고보는것이아마도옳은듯하다.우리국조에이르러유교를숭상한후로불교는모두세력을잃었고사찰도주인이사라져이름난가람중에서남은곳이열에두셋도되지않는다.그러나다시중수되기도하고폐사되기도하면서어떤곳은남고어떤곳은없어졌다.(162쪽)

우리나라에는두견이가없다.뻐꾸기라고한다면그나마말이된다.미수이인로의시에“숲건너편흰원숭이울음을부질없이듣는다”라는표현과유방선의시에“지는해아래에서원숭이울음만들릴뿐”라는말과같은것이니원숭이는본래우리나라에없다.어찌두류산에원숭이가있다고하겠는가?하곡허봉은[지소록識小錄]에이문제를거론하여비웃었다.그렇지만민간에전하는말로는원숭이가우리나라에오면입을닫고울지않지만,악양에데리고가면운다고한다.소상ㆍ군산등이예전살던곳과비슷하기때문이다.이인로와유방선의시도혹이런것일까?(2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