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으로 간 최순이

궁으로 간 최순이

$20.20
Description
조선시대 진주 최고의 예인
칼춤으로 고종 앞에 선 열세 살 소녀, 궁중 관기에서부터 근대 신여성, 기생의 삶까지 논픽션과 픽션을 넘나드는 한 여성의 인생 이야기
“가무 그것은 예술이며, 우리는 예술가로소이다.”
-『장한』 기생들이 창간한 잡지 중에서

이 책은 조선시대에 태어나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현대를 거치며 관기의 삶을 살아온 한 여성에 대한 대서사다. 또한 훗날, 궁중의 검무를 국가무형문화재 ‘진주검무’로 전승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최순이에 대한 ‘헌사’이자 조선시대 전문 예술인이었던 기생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집필되었다.
자주적이며 예술에 헌신적이기까지 했던 조선의 ‘관기’. 남성을 위해 살았던 ‘도구’로서가 아닌, 높은 수준의 가무를 익혔던 전문가로서의 그녀의 인생을 다시 정의한다.
저자

양지선

벚꽃이만발하는경남하동군화개면쌍계사고을에서태어났다.
중고등학교를서울에서수학하고다시진주로내려와대학을다녔다.성계옥
선생님에게서국가무형문화재로지정된‘진주검무’를처음배웠고,정금순선
생님에게서경남무형문화재‘진주포구락무’를배우고춤에입문하게되었다.
몸으로익힌춤에학문적지식을더하고자무용학박사학위를받았다.기생과
한국의교방문화에대해연구하고있다.지금은「근대영남교방의해체와
기생의정체성변화를통한여성의문화예술적위상」이라는주제로학술연
구를하고있으며,저서로는『경남교방문화를말하다』가있다.현재경상국
립대학교인문학연구소학술연구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저자의말
최순이의일생
프롤로그

1장춤,운명의시작
양반아버지,천민어머니
조선의종합예술교육기관,교방
조선의아티스트가되다
조선의아이돌연습생들의연향
최순이궁으로들어가다
장악원의스승들
고종의앞에선최순이
최순이,궁에남기로하다

2장나라를잃었으나춤은잊지않았다
교방의해체,낙향
기생스스로만든기생조합
기생과명월관
예기조합,스승의길로
나의권리를주장한근대신여성의탄생,권번기생
기생,예인의길로
구시대의유물이된기생

3장직업예술인이되다
대중의곁으로나아간궁중예술
개천예술제와최순이
진주검무의뒤편에서서
진주검무의씨앗이되어
최순이와그의제자들
빛을보게된궁중의검무
최순이의마지막제자,성계옥

출판사 서평

진주에서올라간열세살소녀최순이의눈으로바라본
조선말궁중의연향(宴享)

책의전반부는최순이의궁중생활기다.그녀가진주에서상경하여궁중의관기가되고,일제강점기,더이상연회가열리지않자낙향하여진주권번의스승이되기까지의그녀의인생을시간순서대로서술하면서자연스럽게조선말과대한제국을거쳐일제강점기에이르는궁중연향(연회)모습도묘사한다.일제강점기,연회담당인원을줄이면서궁중악사가무동의역할까지하는과정,프랑스왕실못지않은조선왕실연향의격식과예에맞춘초호화궁중음식코스,화려한꽃장식,그리고연회에참가했던모든여령이왕과같은종류의음식을대접받았던사실까지,그사료를찾아생생하게묘사하고있다.
책은『의궤』와진찬도병(그림)등의기록을고증하여궁중의무희들이어떤종류의춤을추었고,몇명이추었는지어떤복식을했는지흥미롭게서술한다.독자들은책을읽으며마치궁중의연향에참가하는듯한느낌을받을수있을것이다.

나라를잃었으나춤은잊지않았다.

후반부는조선의왕실에서더이상연향을하지않자,설자리가없어진관기들이궁에서나와요릿집에취업하거나,‘기생조합’을만들어직접운영하고경제활동을한이야기다.조선의흥망성쇠와궤를같이하는기생들의일생을좇다보면독자들은어느새폐허가된1950년의진주성까지마주하게된다.
최순이를비롯한진주기생들은모의당이라는공간에서의기창렬회를조직하여다시금논개의제를지내고자했다.그리고그들은6.25전쟁가운데서개최된예술제인영남예술제(개천예술제의전신)에서국립국악단원과함께다시금무용을선보인다.
시,서,화와인문교육을받았던궁중의관기출신기생들은자주적이며능동적이었다.그들은노동환경을개선해줄것과매출을공개해줄것을사용자측에요구하면서파업하기도했다.그들은예술을통해경제활동을하는노동자였으며,자신의권리를당당하게주장했던신여성이었다.

최순이는평양이나서울의요릿집대신낙향하여진주의기생조합에서궁중에서배운춤을제자들에게가르치기로마음먹는다.최순이가스승의길을걸으면서,최순이인생2막이시작되었으며,훗날,이결정은진주검무가국가무형문화재로지정되어교방문화라는꽃을피워내는데씨앗이된다.
국가무형문화재인진주검무이수자인저자는최순이에대한자료와궁중교방문화에대한방대한학식으로최순이의인생을복원해내는데성공했다.저자는최순이가직접가르쳤던권번제자들과김천흥이라는궁중악사가최순이가진주검무를전승하기위해어떤노력을했는지말해준다.

진정한신분해방을위해

올해2023년은진주에서천한신분인백정이형평운동을시작한지100년째되는해다.백정은형평운동을통해그신분이해방되었다.그러나천민신분인백정과기생,그들은여전히신분에따른편견의굴레에서벗어나지못했다.그리고유독기생은아직단순히성(性)을팔고술을따르는이미지로만소비된다.이책은기생의예인으로서의면모를부각하고자했다.전문예술인이었던관기가아니었다면궁중의춤과노래는다음세대에전승되기어려웠을것이다.
그러나일제강점기,권번문화가들어오면서일제는기생을풍기문란한존재로편견을조장한다.1941년일본이전시체제로돌입하면서‘기생’이라는이름이전시에어울리지않는다고하여‘접대부’라는이름으로고쳐부르게했다.시간이지나면서‘기생=접대부’라는등식이생겼다.1910년이전의관기,선상기,여령과같이전문예술인에해당하는한국기생의참의미는사라졌다.기생이라는단어의오염은일제에의해주도되었다.

진주검무,국가무형문화재로재탄생하다

오늘날관기를재평가해야하는이유는그들이조선의연향문화를습득한예술인이기때문이다.이들은어린시절부터조선의체계적인학습시스템을통해궁중연향에서행해지는모든퍼포먼스를익혔으며,가·무·악과시·서·화심지어예절교육까지받았다.이는관기개개인에게는혹독하고도힘든과정이었으나,아름답고도찬란한문화유산이다.최순이가평생제자를가르친이유도이궁중의춤이후대에널리전승되기를간절하게원했기때문이다.
1969년,최순이는숨을거둔다.그녀의곁에는몇몇기생들만이자리를지키고있었다.문갑안서랍장안에는몇장의사진이있었다.그러나제자들조차그유품을챙길여력이없었다.자신들이그동안해왔던일이결코자랑스럽다고여기지않았기때문이다.그렇게최순이는쓸쓸하게마지막을맞이했다.진주에서태어난그녀는‘진주검무’라는꽃을피우고흙으로돌아갔다.
〈궁으로간최순이〉는경상국립대학교출판부가기획한‘지앤유로컬북스’의의열번째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