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의 초상화 (양장본 Hardcover)

음악가의 초상화 (양장본 Hardcover)

$25.05
Description
쇼팽과 들라크루아, 베토벤과 클림트, 바그너와 르누아르
음악과 미술이라는 장르를 넘나들며 나눈 예술가의
진짜 인생과 ‘그림’ 이야기

“모차르트! 그 얼마나 눈부신 소리의 이름인가…”
- 모차르트 기념상 제막식에서 소설가 페르디난트 폰 자르가
저자

이장직

전남대학교에서서양음악사와음악학을강의하고있다.경북대학교,경상국립대학교,국립안동대학교,추계예술대학교,한국해양대학교에도출강중이다.
서울대학교대학원에서음악학박사학위를받았으며1994년부터2009년까지중앙일보음악전문기자를지냈다.중앙일보입사전한국일보와경향신문등에음악평론을기고했고객석평론상(1985),동아일보신춘문예음악평론부문(1986),서울예술평론상(1991)등을받았다.

단행본으로는『국경을넘는음악외교』『음악을보고그림을듣다』『음악사를바꾼결정적순간들』『오페라보다가앙코르외쳐도되나요?』『음악회가려면정장입어야하나요?』등이있으며논문으로는「‘제2의올림픽찬가’로수용된베토벤〈환희의송가〉」「성녀에서귀부인으로:음악의수호성인체칠리아의모습을한초상화」가있다.

목차

책머리에
왜작곡가의초상화인가?

요한제바스티안바흐
조지프리드릭헨델
요제프하이든
볼프강아마데우스모차르트
루드비히판베토벤
니콜로파가니니
조아키노로시니
프란츠슈베르트
엑토르베를리오즈
펠릭스멘델스존
프레데릭쇼팽
로베르트슈만
프란츠리스트
리하르트바그너
주세페베르디
안톤브루크너
스메타나와드보르자크
요한슈트라우스
요하네스브람스
러시아5인조
차이콥스키와라흐마니노프
에드바르그리그
구스타프말러
클로드드뷔시
리하르트슈트라우스
장시벨리우스
아놀드쇤베르크
버르토크와코다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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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낭만주의시대에최고의예술로추앙받던음악
그음악가들의홍보수단이던초상화
모차르트그림하나쯤은가져야고매한취향을뽐낼수있던시대

먼나라에사는생면부지의음악가도이름만알면인터넷검색으로사진을쉽게볼수있는시대다.작곡가나연주자는홈페이지를만들어놓고다양한포즈의프로필사진을곁들여활동상을알리느라바쁘다.요즘은유튜브를통해음악가의일거수일투족을생중계하기도한다.하지만사진이보급되기전음악가의초상화란권력층이나부유층,아니면음악가자신이나가족또는그와친분이있는사람들의전유물이었다.

이책은요한제바스티안바흐부터졸탄코다이까지34명의작곡가초상화와기념상을시대순으로정리하고화가와음악가간의숨겨진이야기,장르를넘나드는우정과그들의인생을담았다.주변에서쉽게접할수있는초상화라면그작품의탄생배경에주목해보자.생생한당시유화,수채화,판화,사진,캐리커처뿐만아니라지금까지남아있는동상,흉상,기념비,데스마스크,부조등의입체작업까지고루담았다.저자가‘음악과미술의만남’을주제를다룬두번째작업이다.


허공으로사라지고마는청각예술의태생적한계를
극복해보려는몸부림으로세운수많은동상과기념비들…

음악가를그린초상화는작곡가의얼굴을충실히재현하려는데있지않다.작가를돋보이게하기위한수단으로작용하기도했기때문이다.모든초상화는화가의손끝에서의식적이든무의식적이든이상화,미화,영웅화,신격화되는페르소나다.

최근모차르트의두개골을가지고생전모차르트의모습을복원했다.우리가흔히알던바르바라크라프트의초상화에서흰색의소라모양의머리를깔끔하게넘긴빨간옷을단정하게입고있는모차르트의모습과는거리가먼모습이다.‘닮게’그리는것이목적이아니라‘위대한’작곡가로보이게끔하는게목적이었을것이다.

음악가의초상화란음악을눈으로느낄수있는또하나의예술이다.영상도,사진도없던시절,연주되는음악은오로지현장연주를통해서만향유할수있다.따라서흘러가는음악은유한한시간성을가지고속절없이흘러가고그아름다움을영원히붙잡을방법은없다.그래서작곡가(음악가)는화가앞에자리했다.

음악가들의초상화에대한대중의관심은지대했다.하이든이유럽최고의작곡가로인기를누릴때때마침판화로제작된초상화를모으려는열풍이불었다.유명인의이목구비를닮아보려는심리에다이제막생겨난셀럽문화가초상화수집을부채질했다.어떤작곡가의초상화사본을수집했느냐에따라그사람의음악취향수준이판가름났다.

음악가에게초상화는대중에게자신의존재를알리는수단이었다.음악계에서성공하려면가능한모든홍보수단을동원해야하는데그때는다른방법이없었다.하이든도초상화제작을위해화가의스튜디오에기꺼이방문했다.유화나드로잉등오리지널이있어야이를바탕으로판화를만들수있기때문이다.하이든과계약을맺은출판사에게초상화는악보판매를위한홍보수단이었다.그런의미에서하이든과악보출판사는운명공동체였다.

18세기이후작곡가의초상화는유화뿐만아니라판화,실루엣등다양한매체로제작되면서개인소장의사적영역에서서점,악보가게,미술상점등에서손쉽게구입할수있는공적영역으로확대되었다.중산층을위한공공음악회가급성장하면서음악애호가들사이에서판화로제작된작곡가초상화의컬렉션붐이일었다.유명음악가의초상화판화를많이소장할수록예술적안목이높다는증거로여겼다.

19세기중반부터는사진초상화가주요홍보수단으로떠올랐다.프란츠리스트는어떤작곡가보다사진스튜디오에서많은시간을보냈다.수십년에걸쳐250여종의다양한사진을남겼다.19세기영웅숭배사상에뿌리를두고있는작곡가기념상은문화적정체성을구축하는과정에서매우중요한역할을해왔다.오스트리아빈이‘음악의도시’로발돋움하는과정에서시내곳곳에세운수많은음악가기념상과기념관이적잖이기여한것도사실이다.미국뉴욕이나샌프란시스코에세운베토벤과베르디기념상은각각독일계와이탈리아계이민사회에서건립했다.


포토저널리즘으로서의초상화

로시니,오펜바흐,베를리오즈,리스트,베르디,바그너등유명음악가들은캐리커처로유명세를톡톡히치렀다.처음엔가까운사람들끼리재미삼아스케치를주고받다가판화로제작되어풍자신문의1면에등장하기도했다.캐리커처는특정작곡가와그의음악을당대의청중이어떻게받아들였는지를가장잘보여주는시금석이다.신문에실린평론의옳고그름을떠나당시의지배적인여론을담아낸일종의다큐멘터리이자포토저널리즘이다.캐리커처는특징적인동작이나자세를과장하고비틀어독자의웃음을자아내는한편세간의평가를한치의양보없이반영했기때문이다.초상화는남에게보여주고싶은이미지를담는데반해캐리커처는작곡가에대한대중의인식을거울처럼비춘다.

결국,작곡가의초상화는음악도상학(IconographyofMusic)의중요한연구대상으로서그가치가높다.작곡가의초상화를자세히들여다보는이유는당대또는후세의평가가그림에담겨있기때문이다.우리의뇌리에박힌특정작곡가이미지도그림이나조각,영화를통해조작되거나부풀려진신화조작의결과일가능성이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