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전선과철도,지도,제국의야망
그리고물리학과철학의이야기
19세기말철도와전신의팽창,무선통신의확산,제국의야망에서부터
20세기초물리학의혁신을가져온상대성이론까지
시계와지도의통일과정을한권으로집약하다
오늘날우리는스마트폰만있으면다른나라의시간이언제인지알수있고,지도를통해세계여러나라의모습을살펴볼수있다.그런데시간은어떻게전세계적으로통일된것일까?그어디에도기준점이없는지구는어떻게현재의경도와위도좌표를갖게된것일까?『아인슈타인의시계,푸앵카레의지도:시간의제국들』(원제:Einstein’sClocks,Poincar?’sMaps:EmpiresofTime)은19세기말에서20세기초푸앵카레와아인슈타인이시간동기화와상대성이론을밝히면서전세계적으로본초자오선과경도를정하고시간과지도가통일되어가는과정을소개한다.
시계와지도는세계각지에서각각발달해왔기때문에지역별로각기다른시간과지도를사용하고있었다.하지만19세기말에는철도,전신기술의도입과발달,무선통신의확산,식민지제국의확장등으로시간과지도통합의필요성이커지고있었다.가령,본초자오선을정하는국제회의에서영국과프랑스는자국에본초자오선을위치시키려고설전을벌였다.본초자오선의위치가당시전세계에식민지를확장해가던제국들간의자존심싸움이되었던것이다.이와같은19세기말의상황에서물리학자이자수학자이자철학자이며,프랑스경도국의핵심인물인앙리푸앵카레는전자기신호를이용한규약화된시간의동기화개념을주장한다.
인류는오랫동안시간이과거에서현재를거쳐미래를향해똑같은빠르기로흘러간다고믿어왔다.온우주에서시간이똑같이흘러간다는관념은동서양을막론하고거의보편적으로퍼져있었다.그런데1905년아인슈타인은상대성이론을통해이보편적인믿음이옳지않음을주장한다.시간의동기화과정은관측자에따라상대적일수있다는것이다.이러한동시성에대한아인슈타인의재해석은시간과공간에관한그이전의모든생각들을근대물리학이라는전혀다른세계로전환시켰다.
추천사에서홍성욱교수는“더없이추상적인시간이라는개념이19세기후반이후의철도와전신의팽창,무선통신의확산,제국주의의관료제라는물질문명의요소들과촘촘히얽혀있으며,이그물망속에서아인슈타인의상대성이론과푸앵카레의시간의동기화개념이등장했음을흥미롭고설득력있게보여준다”라고설명한다.시계의동기화는사람들사이의편의를위한규약에불과하다고주장한푸앵카레와뉴턴의절대시간을거부하고상대시간을주장한아인슈타인이,20세기초전세계적으로대두되었던시간동기화와경도결정의문제에서만난것이다.
물리학-철학-기술의교류지역에있던상대성이론은근대지식의상징으로서각분야에서발전해간다.전자의진행경로가휘어지는실험,아서에딩턴의일식관측실험등으로아인슈타인의이론이입증된후,상대성이론은물리학지식의커다란전환점이된다.또한상대성이론의시간좌표화는시간과지도의통일이외에도새로운과학철학의시대의하나의모델이된다.빈학파는동기화된시계의동시성을논증가능한과학적개념으로받아들였고,유럽과미국의물리학자와근대철학자들은신호교환의동시성을적절한근거가있는지식의사례로적극적으로받아들였다.20세기가장영향력있는미국의철학자콰인은“훗날과학을수정해야만할때가오더라도끝까지보존하기위해노력해야할개념”으로아인슈타인의시간개념을꼽았다.또한상대성이론은일종의기술로서전통적인측량도구를대체하며GPS나인공위성과같은최첨단기술로발달한다.
그밖에도19세기후반대부분의물리학자들이믿어왔던에테르가상대성이론의발견으로폐기되는과정,육상과해저에전세계적으로전신케이블을설치하는과학자들의노력,경도를탐색하는과정에서의지도제작자들의어려움,전신신호를이용한시계동기화와세계지도제작과정,미터법규약이국제화되는과정,천문대시간과철도시간사이의반발,시간의규제로프랑스가제3공화국의혁명을제도화하는과정등19세기말에서20세기초제국주의시대의풍경을다채롭게소개한다.
또한독자들에게당시의모습을보여주기위해십진법을이용한프랑스혁명시계,간섭계,이동식천문대,공기압시계제어실,아인슈타인이보았을스위스무리의시계탑,시간의전자기좌표화에관한특허등다양한삽화를실었다.저자피터갤리슨은그가과학사학자인만큼상대성이론을사회적,역사적관점에서접근했기때문에,독자들에게어려운수학과물리학지식을요구하지않는다.또한20세기초천재과학자였던아인슈타인과푸앵카레와관련된재미있는일화들을흥미롭게들려준다.
아인슈타인의스위스특허국,푸앵카레의프랑스경도국은최적의환경이었다!
아인슈타인과푸앵카레가상대성이론과시간동기화를밝혀내기까지
이들을둘러싼삶을세세하게추적하다
《북리스트》에서“아인슈타인과푸앵카레의업적을이보다더쉽고매혹적으로설명해주는책은없다”라고소개했듯,저자피터갤리슨은20세기초아인슈타인과푸앵카레가속했던사회는물론이들의세세한일상생활까지꼼꼼하게살펴본다.
우연히북유럽기차역에서서승강장에걸려있던시계들을바라보던피터갤리슨은시계들이분단위,초단위까지일치하는것을목격한다.이때갤리슨은원거리동시성의의미를파악하기위해애썼을1905년의아인슈타인도당시기차역의승강장에서좌표화된시계를바라보았을것이라는생각을하게되고,이를계기로이책을집필하게되었다고한다.
1800년대중반부터유럽국가들을중심으로시계좌표화가퍼져나가기시작했다.스위스에서의기술하부구조발달은꽤늦은1890년에시작되었는데,스위스의철도,전신,시계네트워크,시간동기화의중심에는베른이있었고이후철도가놓인지역을따라제네바,바젤,뇌샤텔,취리히로빠르게퍼져나갔다.아인슈타인은이처럼시계좌표화기술에둘러싸여있었을뿐아니라그기술의발명,생산,특허의중심인베른특허국에서일하고있었다.
시계동기화의한복판에있었던또다른과학자로프랑스의푸앵카레가있었다.1893년부터푸앵카레가주요일원으로활동했던프랑스경도국은경도의결정과시간좌표화에앞장서고있었다.경도국을책임지고있던푸앵카레는수천킬로미터의해저케이블을통해시간신호를보내어정교한세계지도를창조하는전세계적인프로젝트의중심에서세계를바라보았다.
아인슈타인에대한대중의이미지는철학자-과학자이지만,사실아인슈타인은현실적문제해결력을가진특허심사관-과학자였다.푸앵카레또한상아탑에갇힌사색가라기보다는유명한드레퓌스편지사건의수학적해결에참여하고당시항해와국제관계의뜨거운쟁점이었던경도결정문제를주도적으로해결하려한인물이었다.이들이빛을이용한시간동기화와상대성이론을밝혀낼때,푸앵카레가속해있던프랑스경도국이나아인슈타인이일했던스위스특허국은이를밝혀내기위한최적의환경이었던것이다.
또한저자는아인슈타인과푸앵카레가각자상대성이론의개념을밝혀내기까지이들이속했던학교나직장이어떠했고,누구와교류했고,또어떠한생각을하고있었고,무엇을밝히려고노력하고있었는지등을편지,연설문,강의자료,회의기록물,특허신청서등각종자료를통해세밀하게추적한다.아인슈타인이공부했던스위스연방공과대학은이론과실천의즉각적인연결과직접적인실험과정을중시했다.사고실험과이론물리학자로알려진아인슈타인은실제로장치를만지기좋아하는만물수리공이었으며,고감도전위계에관한특허를받으려고도했다.특허국에다니는시간이외에는올림피아아카데미라는소모임을통해과학적,철학적사고를길렀다.한편푸앵카레는프랑스최고의교육기관인에콜폴리테크니크에서순수과학과응용기술을모두중시하는교육을받았으며,이후광산엔지니어로일하면서공학적인사고를길렀다.그밖에도에밀부트루,오귀스트칼리농등철학자들과의교류를통해과학철학적사고를넓히고,천체역학의거대한도전과제인삼체문제해결에도이바지한다.
또다른추천사에서임경순교수가“그의놀라운통찰력덕분에난해한중력방정식을칠판에적고있는이론물리학자아인슈타인은벤처사업가의아들이자베른의특허국직원으로본래의모습을되찾았고,천재수학자푸앵카레는에콜폴리테크니크의엔지니어전통을계승한파리의경도국장으로우리앞에자신의정체를드러냈다”라고설명한다.시간과지도가통일되는과정에결정적인역할을했던아인슈타인과푸앵카레가상대성이론을발견할무렵이들을둘러싼20세기초의여러상황들과과학적사건들과일상적인일화들을쉽게지나칠수없는것은,아인슈타인과푸앵카레를둘러싼상황들이상대성이론을밝혀내는데결정적인영향을주었기때문이다.
시간에대한인류의믿음을근본적으로뒤흔든아인슈타인의논문
1905년특수상대성이론을밝혀내기전,아인슈타인은푸앵카레의논문을읽었을까?
협력자이자경쟁자였던아인슈타인과푸앵카레의관계를파헤치다
과학사학자들은아인슈타인의논문다섯편이나온1905년을‘기적의해’라고부른다.그중아인슈타인이특수상대성이론에관해썼던「움직이는물체의전기동역학에관하여」라는논문은,인류의절대시간이라는믿음을근본적으로뒤흔드는혁명적인주장을담고있어20세기를통틀어가장널리알려진물리학논문이되었다.
그런데아인슈타인은1905년논문을쓰기전에,푸앵카레가1898년에썼던논문이나그후속작인1900년논문을읽었을까?1905년에아인슈타인이상대성에관한논문에서동시성을재정의하기7년여전,앙리푸앵카레역시비슷한아이디어를발전시키고있었다.푸앵카레는1898년「시간의척도」라는논문에서‘동시성’이사람들사이의동의로형성된단순한규약일뿐이며,진실이기때문이아니라인간에게가장편리하다는이유에서약속으로채택된것이라고주장했다.따라서동시성은빛과같은신호의교환을통해시계를맞추는것으로정의되어야한다는것이다.아인슈타인이푸앵카레의논문을읽었을가능성은높다.피터갤리슨은아인슈타인이올림피아아카데미회원들과독일어로번역된푸앵카레논문의발췌본을읽었을가능성까지추적한다.
또한그는1905년아인슈타인의논문이일반적인물리학논문과다른형식을취한점에주목한다.일반적으로물리학논문에는다른학자들의연구에대한논의와논문각주를포함하고있지만,아인슈타인의1905년논문에는각주를찾아볼수없었다.이에아인슈타인의논문이특허세계의형식을따른것이라고설명한다.특허에서는절대적인독창성을증명하기위해이전의작업에대한각주를달지않는것이관행이다.아인슈타인의논문에는특허국의심사관으로서의아인슈타인의습관이고스란히담겨있던것이다.하지만훗날아인슈타인이물리학자들과의모임에참여하는일이많아지면서논문에참고문헌과각주를실을때에도,끝내푸앵카레의이름을싣지않는다.아인슈타인은철처한침묵으로일관하며푸앵카레를피했던것이다.
아인슈타인과푸앵카레가처음이자마지막으로만난것은1911년말브뤼셀에서열린솔베이학술회의에서였다.회의이후아인슈타인은푸앵카레가“상황을이해하지못한다”라며부정적으로판단한다.한편학술회의에서“역학이없다”라는아인슈타인의말에놀라워했던푸앵카레는파리에돌아온후“내가알고있는사람들중가장독창적인정신을가진사람중하나”라며극찬한다.이처럼시계동기화가기술-철학-물리학의교차점에놓여있던20세기초에빛동기화와상대성이론을발견한푸앵카레와아인슈타인은좌표화된시간의증인이고대변인이며,경쟁자이자협력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