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가 없는 나라 (경계 밖에 선 한반도화교 137년의 기록)

화교가 없는 나라 (경계 밖에 선 한반도화교 137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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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국사회의 화교에 대한 차별의 역사를 기록하다!
지난 137년간 화교와 우리 삶을 담은 『화교가 없는 나라』. 멀게는 정유재란부터, 본격적으로는 임오군란부터 한반도에 정착한 화교는, 1944년 7만 명이 넘었지만 현재는 2만 명 정도 남았다. 137년 동안 우리와 함께 살면서 근현대의 격동기를 함께 겪었음에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화교가 실패한 나라가 된 우리의 오랜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20년에 걸친 연구와 조사를 통해 저자는 화교의 경제, 생활, 사회, 정치 등 화교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룬다. 크게 한반도화교의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으며 다루는 역사적 시간은 중국인의 한반도 이주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1882년부터 현재까지의 137년간이다.

비단 한반도뿐 아니라 동시대 동아시아가 하나의 경제권·생활권으로 어떻게 작동했는가를 화교들의 행적을 통해 추적하면서, 종종 추상적일 수도 있는 질문들에 동아시아라는 격동기를 살아왔던 화교라는 역사적 행위자를 통해 아주 구체적으로 답한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배척과 차별과 혐오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며, 화교에 대해 더 이상 배타적인 이웃이 아니라 공존해야 하는 우리의 이웃임을 일깨워주고자 한다.
화교는 어떤 분야에서 경제 활동을 펼쳤으며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을까? 화교 경제는 왜 쇠퇴했을까? 화교는 어떤 종교생활과 문화생활을 영위했을까? 화교와 조선인 및 한국인은 어떤 관계에 있었으며 서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책은 이러한 의문에 하나하나 답하는 형태로 전개되며, 한반도화교의 역사를 간단하면서도 통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저자

이정희

경북성주군에서태어나경북대학교경제학과에서학사와석사학위를마쳤다.일본교토대학에서조선화교연구로문학박사(동양사학)학위를취득했다.일본교토부京都府소재후쿠치야마(福知山:舊成美大)공립대학에서15년간교수로근무하다2014년부터인천대학교중국학술원교수로재직하고있다.1999년대구영남일보기자시절화교의차별문제를인식한후,화교연구에매진해20년째한우물을파고있다.2013년일본화교화인학회가2년에한번우수한저서를집필한소장학자에게수여하는연구장려상을받았으며,일본,중국,싱가포르,대만등의화교학술지에논문을게재했다.중국칭화대학화상연구센터의특별초빙연구원(교수)으로도활동하고있다.
주요저서로는『조선화교와근대동아시아朝鮮華僑と近代東アジア』,『근대인천화교의사회와경제』(공저,2016년도세종도서학술부문우수도서),『동남아화교와동북아화교마주보기』(공저,2016년도대한민국학술원우수학술도서)등이있다.

목차

一한반도화교는언제,어디에서왔을까?
화교가‘오무장공사’에서제사를지내는까닭
청국조계에서인천차이나타운으로
중국인이조선에이주한이유
한반도화교의인구추이(1883~2015)

二한국식중화요리를창조하다!
짜장면의한국화,그리고세계화
화교중화요리점의비애
명동고급중화요리점‘아서원’의비화

三삼도업(三刀業),가위와면도,식칼기술로이룬경제
상해에서시작된첨단패션의화교양복점
싸고서비스가좋은화교이발소

四화교가주단포목상점을석권한이유
비단장수‘왕서방’의마지막후예
화교주단포목상점의전성기
조선총독부의고관세부과로쇠퇴의길을걷다

五솥과양말제조에두각을나타내다
솥제작의달인,주물업시장을장악하다
화교양말제조의중심지,신의주

六종교건축을도맡아시공한화교건축회사와기술자
명동성당시공을주도한화교건축기술자
노동시장판도를바꾼화공

七화교농민,채소재배의달인이되다
인천최초의채소시장을열다
채소재배의경쟁력은?
화농의쇠퇴,사라진‘왕서방’들

八경제활동에적극참여한북한화교
꾸준하게채소재배를해온북한화교
북한에도짜장면이있다!
북·중무역을주무르는화교무역상

九한국의대표차이나타운:인천vs대림
노(老)화교차이나타운의새로운도약
신(新)화교차이나타운의탄생과급속한발전

十화교사회는어떻게형성되었나?
‘동향회관’의탄탄한조직력
화교사회를결집하는‘중화회관’과‘중화상회’
화교협회,교민협회,그리고북한의화교연합회
재이주한지역에서한화(韓華)의정체성으로뭉치다

十一화교학교의교육흐름
화교학교설립
교동회중심의화교학교운영
중국정부에흔들리는화교의교육과정
사라져가는한국의화교학교
북한정부에좌지우지되는북한의화교학교

十二민간신앙과종교생활
거선당,의선당그리고달마불교회
107년역사의화교교회

十三친일과항일그리고중국과대만사이
중화민국시기부터생겨난조선화교의민족의식
경성총영사관국기교체사건
범한생총영사의친일활동
격렬하게펼쳐진조선화교의항일활동
국민당과공산당,중국과대만사이에서

十四화교배척사건과차별의역사
두차례의화교배척사건
평양사건의피해가큰이유
한국화교에대한차별
나라없는난민

十五조선족신(新)화교와한족신(新)화교사회
한족신(新)화교사회단체
재한조선족신(新)화교사회단체

출판사 서평

불편한진실,반성의역사

우리가배척하고무관심하게대했던화교에대한
고마움과미안함을한권에담다!

세계에서유일하게화교가실패한나라.
격동의근현대사를함께겪은우리이웃화교,
오랜불평등과차별에대해사과하며,20년에걸친연구와조사를통해그정직한역사와불편한진실을137년만에그려냈습니다.
그래서우리역사의마지막남은한쪽의공백을겨우메웠습니다.

뙤놈,짱깨또는짱꼴라,
이부끄러운언어들.어원은있으나(본문72쪽)차별과배척만100년넘게내려온이혐오의언어들.그리고“밀수업자,아편쟁이,원수의생간을내어형님과한점”(오정희『중국인거리』)한다는이민족에대한무서운프레임.
이말은세계에4,000~5,000만이두루퍼져막강한경제적영향력을행사하고있고,스터링시그레이브말처럼“어느한국가에속하지않은세계적규모의인종세력”인화교에대한우리의표현이고인식이다.
멀게는정유재란부터,본격적으로는임오군란부터한반도에정착한화교는,1944년7만명이넘었지만현재는2만명정도남았다.137년동안우리와함께살면서,근현대의격동기를함께겪었다.대다수가산동성(山東省,산둥성)출신인그들은당시농부의임금이2.8배나되었던조선으로살기위해건너왔다.삶에억척스럽고재주가좋은이들은중화요리점과이발소·양복점의삼도업(三刀業)을비롯한주단포목점,주물공장과양말제조,그리고채소재배에능력을발휘하며근대초기조선경제에큰역할을담당한다.건축기능공도뛰어나서서울의명동성당과약현성당등의건축물에도숙련된그들의노동력의공이컸다.
우리와함께격동의근현대사를같이살았다.일본의조선강점기를함께겪었고6.25민족전쟁의와중에끼어남과북이갈라지고이념이충돌하는혼란도함께했다.조선인의혐오와일제의방조에의한‘만보산사건’을비롯한두차례화교배척사건에200명이넘게숨지는참화를겪기도했고,서대문형무소에서4명이옥사하는등항일운동도같이했다.북한화교의남한이주도같이겪었다.대다수가산동반도(山東半島,산둥반도)출신이지만해방후대만국적으로살다가지금은중국과의이중국적의문제로신음하고있다.상징적으로서울명동에있는중국대사관에지금은오성홍기가걸려있지만,100년동안에5번국기가바뀌어걸렸다.참으로기구한질곡의현대사를살아왔다.
아울러우리가현재까지자행한차별과배척역시엄연히기록하고반성해야한다.우리는일본의재일동포법적지위문제로많은요구를했지만,우리스스로화교의법적지위를위해논의하거나해결하려고노력한적이거의없다.지금재일동포의법적지위에비하면,화교의법적지위는문명국가로서는부끄러울정도이다.상업용토지50평이상을소유할수없다는일제강점기의외국인토지법을1961년다시공표해재산상의불이익을주었고(1999년에철폐)거주자격과영주권,참정권문제는미개한수준이다.그래서그들은한국인도대만인도중국인도아닌‘나라없는난민’이되었다.
21세기들어조선족을중심으로중국의노동력이급속도로유입되어2015년대림동에만3만여명정도가정착해있다.이를‘신(新)화교’라부르는데,더욱더늘어날것이고동남아를비롯한이민족의유입은가속화될전망이다.바야흐로우리는다민족국가,다양성의시대에살면서이들과이웃으로살아가기위한많은준비가필요하다.그런측면에서이책이시사하는바는크다.
역사가과거를통해미래를보는거울이듯이,지난137년간화교와우리삶을담은이책은한국근현대사에공백으로남아있던마지막남은한쪽을채워준역작이면서,동시에우리의미래를말해주는역사서이기도하다.

화교를통해새로운시각으로해석하는
우리근현대의생활사,경제사,사회사,정치사

『화교가없는나라』는화교의경제,생활,사회,정치등화교문제를종합적으로다루고있다.크게한반도화교의경제활동과사회활동을나누어설명하고있으며다루는역사적시간은중국인의한반도이주가본격적으로이뤄지기시작한1882년부터현재까지의137년간이다.
책은이러한의문에하나하나답하는형태로전개된다.궁금증에서시작되는이야기는이내독자들의호기심을불러일으킨다.
화교는어떤분야에서경제활동을펼쳤으며어느정도의경제력을가지고있었을까? 화교경제는왜쇠퇴했을까?화교는어떤종교생활과문화생활을영위했을까?화교와조선인및한국인은어떤관계에있었으며서로를어떻게인식하고있었을까?
책은비단과주물업시장노동자,건축노동자,이발소,양복점,중화요리점을경영하던기술자들,그리고일반노동자의삶등한반도곳곳에서다양한모습으로살았던화교들의생활상을촘촘히다루었다.또화교사회가어떻게조직되고운영되어그들의경제활동을지탱하고있는지,화교타지에서개인을마음과문화로이어주는종교생활도함께분석했다.
특히세계화교사중연구공백으로남아있던한국화교뿐아니라북한화교도이책에서언급하고있어더욱반갑고소중하게느껴진다.책을읽다보면‘한반도화교’를오롯이담아냈다는느낌을받을수있다.저자는독자들이관심을가질수있도록화교에관한역사적내용을쉽게풀어썼으며실제로화교를취재하고인터뷰한내용을곳곳에넣었다.책을읽다보면자연스럽게137년화교의역사가머릿속에그려질것이다.마지막으로책에한반도화교에대한이해를돕기위해중국각정부의한반도주재외교기관및외교관대표의명단과한반도화교의연표를부록으로넣었다.연표를통해독자들이한반도화교의역사를한눈에살펴볼수있게돕고있다.

우리가화교200명이상을학살한‘만보산사건’을비롯한
화교에대한부끄러운역사를아십니까?
한때7만가까웠던화교가2만도남지않은,
배척과차별과혐오의부끄러운민낯을기록합니다.

우리가재일동포와관련해일본의차별에분개하면서,정작한국은화교에게어떻게대했을까?
역사시간에서배운만보산사건은중국당국의재만조선인에대한탄압과일제의조선인과중국인이간질에의해발생한것으로서술되어있다.하지만이사건의본질은길림성장춘만보산에서발생한사건이아니라이사건으로촉발된1931년화교배척사건에있다.화교200여명이살해되고화교경제가초토화된이중요한사건을남북한의근대사에서다루지않고있다.
우리는과거부터현재까지일어난사건에대해그동안알든모르든무관심하게대하며배척해왔고화교에대한핍박은‘현재진행형’임을부인할수없다.
외국인토지법은일제강점기때부터공포된법률이었다.박정희정부이후외국인토지법이더욱강화되었고화교는줄곧부동산소유제한에가로막혔다.이로인해화교들의경제력은취약해져갈수밖에없었다.일제강점기부터시작하면약100여년간토지취득에제한을받았던것이다.
한국정부는2002년노화교에게영주권을부여했지만법적지위는아직도매우취약하다.한국인과똑같이세금을내고있는데도불구하고아동수당은물론이고의료,교육등복지혜택은거의받을수없다.
화교는단순히화교문제에서그치는것이아니라화교연구자체가중국을분석하는중요한수단이될수있다.지금이라도우리는한반도화교에대한역사를바로알고반성하는시간이필요하다.
화교사회와의갈등,공생의경험은앞으로중국과의관계뿐아니라오늘의다문화사회를헤쳐나가는데도중요한시사점을줄것이다.

근대한반도화교사혹은동아시아화교사의필독문헌!
인천대중국학술원이정희교수가
20년간의연구와취재끝에완성한‘한반도화교’교양서

이정희교수는1999년대구영남일보기자시절취재당시한남학생이“한국인,정말싫어요!”라고외친것을목격했다.이때부터기자로서한국사회의화교에대한차별문제와처한상황을한국사회에고발해야한다는사명감을느끼고일본으로건너가본격적으로화교연구를시작하게되었다.20년간을화교연구에힘써왔고화교학술지에30여편의논문을게재했다.현재는인천대중국학술원교수로있으며,중국칭화대학화상연구센터의특별초빙연구원(교수)으로도활동하고있다.
저자는이책을위해한국화교50여명을인터뷰했다고한다.이정희교수가지금껏스쳐지나간화교는100명도훨씬넘는다.이들의이야기를담았기에책은현실성있고촘촘하게구성되었고다양한시각에서한반도화교의역사적실체에접근할수있었다.전직기자답게청국의총영사관,화교협회회의록,일본총독부보고서등방대한자료들도한데모으고조사해이책을출간했다.
책은비단한반도뿐아니라동시대동아시아가하나의경제권·생활권으로어떻게작동했는가를화교들의행적을통해추적했다.종종추상적일수도있는질문들에동아시아라는격동기를살아왔던화교라는역사적행위자를통해아주구체적으로답하고있다.
이정희교수는화교에대해더이상배타적인이웃이아니라공존해야하는우리의이웃이라고말한다.또독자들이관심을가지고따뜻한시선으로화교를바라보길원한다.책에는화교의역사뿐아니라화교에대한우리의부끄러운모습도담겨있다.이정희교수는이책을출간하며자신을더깊이성찰하는시간이었고,한민족과한반도의경제와사회를다른시각에서바라본유익한시간이라고말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