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시대 촘촘히 드러나는 화교들의 생활상
―한반도화교사를 공부하거나 화교 문제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한글뿐 아니라 어느 언어로 기술된 서적보다도, 이 책은 1880년대부터 1940년대 해방 전후기까지 화교 문제를 가장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비단과 면포 상인으로부터, 공장 경영·노동자, 농업 이민자, 이발소, 양복점, 음식점을 경영하던 기술자들, 그리고 일반 노동자(쿨리)의 삶 등 한반도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았던 화교들의 생활상을 촘촘히 다루고 있다. 청국의 총영사관, 국민당 정부의 외교자료, 일본 총독부 내의 보고서, 경찰보고서나 재판문서, 조선화교들이 쓴 회고록, 화교협회 회의록, 일본 오사카 신용평가회사인 상업흥신소의 자산신용록 자료, 심지어는 한국에 주재했던 선교사들의 개인 서간 등 한국어·일본어·중국어·영어 자료를 이용하고, 거기에 수많은 화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시각에서 한반도화교의 역사적 실체에 접근하였다. 비단 중점적으로 다루는 한반도 근대기는 물론 그것을 넘어서 현대에까지 이어지는 한국화교 문제에 대한 가장 자세하고 방대한 연구임에 틀림없다.
가장 논쟁적인 시대, 가장 그대로의 모습으로 화교상을 보여주다
―화교 문제뿐 아니라 한국의 개화기 및 일제강점기 시기를 연구하는 분들께
책이 다루는 1880~1940년대는 한국사 연구자들에게 가장 논쟁적인 시대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시대에 대한 연구는 근대화론, 식민지 수탈론, 근대성론 등과 같은 다양한 담론을 생산하며 풍성한 논의를 자극하기도 하지만, 거꾸로 그러한 담론에 갇혀 자기에게 유리한 사실만을 강조하기도 한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은 다양한 자료를 분석하여, 담론에 의해 박제된 현실이 아닌 한반도를 살아갔던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삶과 갈등을 생생하게, 심지어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연구에는 이윤을 좇아 일본산 면포을 사서 유통하는 화교, 화교 이발소가 너무 가격을 내리지 못하게 막아달라는 일본인 이발사들의 요구에 마땅한 근거 법령이 없다며 전전긍긍하는 총독부 경찰관, 가격경쟁력과 품질을 지키기 위해 화교 자본의 투자와 화공을 받아들이는 식민지 조선의 ‘민족자본가들’ 등이, 기존의 담론에는 사로잡히지 않고 묵묵히, 더러는 영악하게 자신의 삶을 영위해갔던 한반도의 사람들이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이 자신의 삶을 드러낸다. 그래서 한국의 개화기 및 일제강점기 연구자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자료와 사실의 보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근대동북아의 노동과 자본이 국경을 넘나든 기록들
―한반도사를 넘어 근대 동아시아를 살펴보고자 하는 분들께
책은 비단 한반도뿐 아니라 동시대 동아시아가 하나의 경제권ㆍ생활권으로 어떻게 작동했는가를 화교들의 행적을 통해 추적한 명저이다. 비록 한반도화교 문제에 집중했다고는 하나, 그들의 비즈니스와 이민 네트워크를 따라 중국 상해에서, 하북, 산동, 만주, 일본의 차이나타운, 대만, 심지어는 동남아시아까지 섭렵하고 있다. 그래서 노동시장이 어떻게 국가 권력에 따라 권역화되는지, 상업과 금융은 어떻게 부단히 그 권역의 경계들을 넘나드는지, 일본 정부는 식민지와 점령지, 일본 본토에서 각각 어떤 우선 순위를 가지고 화교 정책을 만들었는지 등 종종 추상적일 수도 있는 질문들에 동아시아의 격동기를 살아왔던 화교라는 역사적 행위자를 통해 아주 구체적으로 답하고 있다. 그래서 만약 제국주의, 자본, 국민국가라는 다양한 개념들이 어떻게 근대 동아시아라는 무대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는지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만한 연구가 드물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한반도 직물상을 주도하던 화교들이 화교배척사건과 중일전쟁을 건너오기까지
―제I부: 화교 직물상의 형성·발전·쇠퇴 과정과 정치사회적 사건들의 영향
제I부는 화교 직물상의 형성, 발전, 쇠퇴의 과정이 동아시아를 무대로 어떻게 펼쳐졌는지 추적한다.
제1장은 화교 직물상이 조선의 직물상업계 및 화교사회 및 경제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검토한 후, 화교 직물상이 산동방(山東幇, 산둥방)을 중심으로 어떻게 형성되는지, 산동성(山東省, 산둥성)과 어떠한 연계가 있는지 고찰한다.
제2장은 화교 직물상이 일본인 직물상 및 조선인 직물상을 압박하는 세력을 형성한 원인을 분석한다. 경성 및 인천 소재 화교 직물수입상이 면직물, 견직물, 마직물을 어떠한 화교 통상망을 통해 대량으로 수입하게 되는지, 수입 과정에서 일본인 직물상과 협력 및 길항(拮抗)의 관계는 없었는지, 그리고 대량 수입을 가능하게 한 조선 내 직물산업의 실태는 어떠했는지에 유의하면서 검토한다.
제3장은 화교 직물수입상이 수입한 직물은 어떠한 화교 유통망을 통해 판매되었는지 검토한다. 화교 직물수입상의 유통망은 각 부(府)에 소재한 화교 직물도매상, 각 군(郡)에 소재한 화교 직물소매상 및 행상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들 관계가 어떠한 유기적 결합을 이루고 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조선인 및 일본인 직물상과의 거래는 어떻게 이뤄졌는지도 주목하여 검토한다.
제4장은 동아시아에 걸친 통상망과 조선 내 쇠사슬처럼 연결된 유통망을 토대로 조선의 직물상업계에서 상당한 세력을 형성한 화교 직물상에 대해 조선총독부는 어떠한 정책으로 대응했는지 수입을 제한하는 관세정책을 중심으로 검토한다.
제5장은 1931년 화교배척사건이 화교 직물수입상을 비롯한 화교 직물상 전체에 어떤 타격을 주었는지 검토한다. 화교 직물수입상의 통상망, 국내 화교 직물상의 유통망이 이 사건으로 어떻게 파괴되고 약화되는지 중앙과 지방으로 나눠 살펴본다.
제6장은 화교 직물상은 화교배척사건이 진정된 후 점차 회복하지만 중일전쟁과 조선총독부의 전시통제강화로 완전히 쇠퇴하게 되는데 그 궤적을 추적한다.
제I부 보론은 조선화교의 중요한 경제활동의 하나로 객잔과 무역업을 병행한 행잔(行棧)이 어떻게 경영되고 있었는지 인천 화상 만취동(萬聚東)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호떡집과 짜장면의 사회사, 한반도에 자리 잡은 화교의 직종들
―제II부: 화교의 3대 직종, 중화요리점, 이발소, 양복점의 흥망성쇠
제II부는 중화요리점, 이발소, 양복점의 이른바 삼도업(三刀業)에 대해 검토한다. 세계의 화교는 이주지서 삼도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많았는데 조선화교도 똑같았다. 조선화교의 삼도업의 생성 및 발전의 과정을 추적한다. 이발소와 양복점은 1930년대에 들어 쇠퇴한 반면, 중화요리점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검토한다.
제7장은 화교 중화요리점이 화교의 이주 초기인 1880년대에 이미 형성되고 1920년대는 호떡을 중심으로 중화요리가 조선사회에 대중화된 것을 밝힌다. 화교 중화요리점의 성공 원인이 중화요리의 특징, 싼 가격, 화교중화요리조합에 있다고 보고 검토한다.
제8장은 1927년과 1931년 화교배척사건 그리고 중일전쟁이 있었음에도 화교 중화요리점은 1930년대에도 발전을 거듭하는데 그 실태를 추적한다. 조선총독부의 전시통제강화로 인해 화교 중화요리점의 경영이 위축되는 실태도 분석한다.
제9장은 화교 이발소와 양복점의 생성과 전개과정을 조선인 및 일본인 업자와의 경쟁관계에 주목하여 살펴본다. 이발소와 양복점은 화교의 이주 초기에 생성되어 조선인 및 일본인이 위협을 느낄 정도로 발전하지만, 1930년대는 쇠퇴의 길에 들어선다. 그 이유를 화교 중화요리점과 비교하여 검토한다.
솥·냄비 그리고 양말, 화교가 주도한 제조업종들
―제III부: 주물업, 양말 제조업을 통해 본 화교 제조업의 양상과 길항관계
제III부는 일제강점기 화교 제조업의 실태를 주물업과 양말 제조업을 중심으로 검토한다. 화교의 제조업은 상업에 비해 미약한 세력을 형성했지만, 주물업과 양말 제조업 분야에서는 조선인과 일본인을 압박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공업의 입장에서 두 제조업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본다.
제10장은 화교 주물업은 일제강점기에 솥, 냄비의 제조 분야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구축하게 되는데 그 원인을 동향(同鄕) 네트워크와 높은 기술력에 두고 논의를 전개한다. 조선인 및 일본인 주물업과의 길항관계에 주목하면서 검토한다.
제11장은 신의주의 화교 양말 제조업이 1920년대 평양의 조선인 양말 제조업에 위협을 주는 일대 세력으로 부상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생산, 판매의 각 측면에서 검토한다. 또한 화교 양말 제조업이 1931년 화교배척사건에 의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을 받게 되는 실태도 살펴본다.
화교 채소재배상, 희망의 땅 한반도로 진출해 오다
―제IV부: 채소 농사와 판매까지, 한반도에서 농사를 지은 화농의 역사
제IV부는 화농(華農)의 채소재배 실태 파악을 통해 화농이 일제강점기 조선의 농업에 어떻게 연관되는지,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를 중심으로 검토한다.
제12장은 화농이 대도시 채소 공급을 독점하는 실태 및 원인을 개항기부터 1920년대까지의 시기, 경기도를 대상으로 검토한다. 화농의 채소재배의 특징, 화교 채소 판매망, 산동성과의 연관성에 주목하여 논의를 전개한다.
제13장은 화농의 채소재배활동이 1931년 화교배척사건에서 중일전쟁 발발 이전까지 시기에 위축된 원인을 분석한다. 1931년 화교배척사건의 영향, 조선총독부의 화교 이주 제한 조치, 인천부청의 화교 경영 채소시장 운영개입, 인천 화농의 농회(農會) 내분 등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제14장은 화농의 채소재배 및 판매활동이 중일전쟁 및 조선총독부의 전시통제강화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검토한다. 조선의 채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농을 활용한 사례를 소개하고, 채소 배급제로 인해 화농의 수입이 감소한 점을 분석한다.
염전 축조와 성당 건축, 화교 노동자들의 이주와 삶
―제V부: 화공의 염전 축조와 건축 그리고 단순 육체노동까지
제V부는 화공(華工) 문제를 다룬다. 화공이 중국에서 조선으로 이주한 원인과 경위, 그들의 이주에 따른 조선인 노동자와의 관계, 화공 문제로 인한 외교 마찰 및 교섭 등을 다룬다. 또한 화공이 조선의 노동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