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화교사 (근대의 초석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경제사 | 양장본 Hardcover)

한반도 화교사 (근대의 초석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경제사 | 양장본 Hardcover)

$28.01
Description
근대 화교사의 연구 수준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역작!
동북아화교사의 획을 긋는 근대사학의 필독서
―화교 60년의 역사를 한·중·일의 방대한 자료로 분석한 기념비적 대작
이 책은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화교사학의 공백을 메운 경전(經典)과 같은 작품이다. 우리 사회를 함께 일구어온 이웃이면서도 시야에서 놓치기 쉬운 한반도화교의 존재를 방대한 문헌 자료와 체계적인 구술 조사를 바탕으로 하여 새롭게 그려내는 데 성공하였다. 중국·일본·한국 등에서 수집한 대량의 1차 사료를 활용하여 화교사의 큰 공백을 메웠을 뿐 아니라 중국근대사, 동아시아사에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화교의 생태(生態) 발전 이외에도 한·중·일 경제의 공업, 무역발전의 실태 그리고 민족, 정치, 이민의 사실 및 사상 관념, 한·중·일 삼자의 관계영향을 밝혀냈다. 먹거리, 입을 거리 이야기가 풀어져 나오는 생생한 생활사이면서, 도시화에 따른 근교 채소재배 등 농업 현장과 성당 짓기 등 근대 건축업의 현장을 복원하는 중후한 산업사의 면모도 보여준다.

화교에 대한 작은 관심이 대작으로 이어지기까지
―20년간 발로 뛰며 수집한 사료가 ‘한반도화교사’로 태어나다
중국인은 왜 한반도에 이주하여 화교가 된 것일까? 화교사회는 어떻게 조직되고 작동하고 있었던 것일까? 중국의 한반도 주재 외교기관은 화교를 어떻게 보호했을까? 화교와 조선인 및 한국인은 어떤 관계에 있었으며 서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이 책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방대한 연구로 이어진 성과물이다. 기자 생활을 거쳐 일본과 한국의 대학을 오가며 연구와 교육에 매진해온 저자는 발로 뛰면서 20년간 자료를 모았고, 이를 통해 한국의 미진한 화교연구의 빈 공간을 방대한 자료로 채워나간 것이다.
2012년 5월 일본 교토대학 학술출판사에서 『조선화교와 근대동아시아(朝鮮華僑と近代東アジア)』를 출판했고, 이를 바탕으로 하고 이후 7년간의 연구 성과를 추가하여 이제 한국에서 『한반도화교사』를 출간하게 되었다.
저자는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기간의 화교 명칭에 ‘한반도화교’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는 ‘조선화교’, ‘한국화교’.‘북한화교’를 아우르는 명칭이다.
저자

이정희

1968년경북성주군에서태어나경북대학교경제학과에서학사와석사학위를마쳤다.일본교토대학에서조선화교연구로문학박사(동양사학)학위를취득했다.일본교토부소재후쿠치야마(福知山:舊成美大)공립대학에서15년간교수로근무하다2014년8월부터인천대학교중국학술원교수로근무하고있다.1999년대구영남일보기자시절취재중화교의차별문제를인식한후화교연구에매진,20년째한우물을파고있다.2013년도일본화교화인학회가2년에한번우수한저서를집필한소장학자에게수여하는연구장려상을받았으며,일본ㆍ중국ㆍ싱가포르ㆍ대만등의화교학술지에논문을게재했다.일본교토대학인문과학연구소의공동연구원을지냈고,현재중국칭화대학화상연구센터의특별초빙연구원(교수)으로도활동하고있다.주요한연구서에는『조선화교와근대동아시아(朝鮮華僑と近代東アジア)』,『근대인천화교의사회와경제』(공저,2016년도세종도서학술부문우수도서),『동남아화교와동북아화교마주보기』(공저,2016년도대한민국학술원우수학술도서)등이있다.

목차

추천의글
서장_중국인의조선이주와‘중국충격(ChineseImpact)’

제I부화교직물상
제1장_화교직물상의위상과형성
제2장_화교직물수입상의통상망
제3장_화교직물수입상의조선내유통망
제4장_조선총독부의화교직물상에대한대응
제5장_1931년화교배척사건이화교직물상에미친영향
제6장_중일전쟁시기화교직물상의몰락
제I부보론_화교경영행잔의해방후무역활동
제I부를마치며

제II부삼도업(三刀業)
제7장_화교중화요리점의형성과발전1880~1920년대를중심으로
제8장_화교중화요리점의위기와응전1927~1945년의시기를중심으로
제9장_화교이발소와양복점
제II부를마치며

제III부화교제조업
제10장_화교주물업
제11장_화교양말제조업
제III부를마치며

제IV부화농(華農)
제12장_화농채소재배의형성과발전
제13장_화농채소재배의위축
제14장_중일전쟁시기화농의채소재배및판매의변화
제IV부를마치며

제V부화공(華工)
제15장_광량만염전축조공사의화공문제
제16장_화교의성당건축시공활동(1880~1930년대)서울과대구를중심으로
제V부를마치며

종장_근대사속의조선화교

부록_일제강점기조선화교회사신용조사목록
참고문헌
책을마무리하며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근대시대촘촘히드러나는화교들의생활상
―한반도화교사를공부하거나화교문제에관심있는분들에게
한글뿐아니라어느언어로기술된서적보다도,이책은1880년대부터1940년대해방전후기까지화교문제를가장종합적으로다루고있다.비단과면포상인으로부터,공장경영·노동자,농업이민자,이발소,양복점,음식점을경영하던기술자들,그리고일반노동자(쿨리)의삶등한반도곳곳에서다양한모습으로살았던화교들의생활상을촘촘히다루고있다.청국의총영사관,국민당정부의외교자료,일본총독부내의보고서,경찰보고서나재판문서,조선화교들이쓴회고록,화교협회회의록,일본오사카신용평가회사인상업흥신소의자산신용록자료,심지어는한국에주재했던선교사들의개인서간등한국어·일본어·중국어·영어자료를이용하고,거기에수많은화교들과의인터뷰를통해다양한시각에서한반도화교의역사적실체에접근하였다.비단중점적으로다루는한반도근대기는물론그것을넘어서현대에까지이어지는한국화교문제에대한가장자세하고방대한연구임에틀림없다.

가장논쟁적인시대,가장그대로의모습으로화교상을보여주다
―화교문제뿐아니라한국의개화기및일제강점기시기를연구하는분들께
책이다루는1880~1940년대는한국사연구자들에게가장논쟁적인시대중하나이다.그리고이시대에대한연구는근대화론,식민지수탈론,근대성론등과같은다양한담론을생산하며풍성한논의를자극하기도하지만,거꾸로그러한담론에갇혀자기에게유리한사실만을강조하기도한다는점을부정할수없다.그러나이책은다양한자료를분석하여,담론에의해박제된현실이아닌한반도를살아갔던다양한인간군상의삶과갈등을생생하게,심지어는적나라하게드러낸다.이연구에는이윤을좇아일본산면포을사서유통하는화교,화교이발소가너무가격을내리지못하게막아달라는일본인이발사들의요구에마땅한근거법령이없다며전전긍긍하는총독부경찰관,가격경쟁력과품질을지키기위해화교자본의투자와화공을받아들이는식민지조선의‘민족자본가들’등이,기존의담론에는사로잡히지않고묵묵히,더러는영악하게자신의삶을영위해갔던한반도의사람들이조금의군더더기도없이자신의삶을드러낸다.그래서한국의개화기및일제강점기연구자들에게도더할나위없는자료와사실의보고가될것으로보인다.

근대동북아의노동과자본이국경을넘나든기록들
―한반도사를넘어근대동아시아를살펴보고자하는분들께
책은비단한반도뿐아니라동시대동아시아가하나의경제권ㆍ생활권으로어떻게작동했는가를화교들의행적을통해추적한명저이다.비록한반도화교문제에집중했다고는하나,그들의비즈니스와이민네트워크를따라중국상해에서,하북,산동,만주,일본의차이나타운,대만,심지어는동남아시아까지섭렵하고있다.그래서노동시장이어떻게국가권력에따라권역화되는지,상업과금융은어떻게부단히그권역의경계들을넘나드는지,일본정부는식민지와점령지,일본본토에서각각어떤우선순위를가지고화교정책을만들었는지등종종추상적일수도있는질문들에동아시아의격동기를살아왔던화교라는역사적행위자를통해아주구체적으로답하고있다.그래서만약제국주의,자본,국민국가라는다양한개념들이어떻게근대동아시아라는무대에서그실체를드러내는지에관심이있는독자라면이만한연구가드물다고감히말할수있다.

한반도직물상을주도하던화교들이화교배척사건과중일전쟁을건너오기까지
―제I부:화교직물상의형성·발전·쇠퇴과정과정치사회적사건들의영향
제I부는화교직물상의형성,발전,쇠퇴의과정이동아시아를무대로어떻게펼쳐졌는지추적한다.
제1장은화교직물상이조선의직물상업계및화교사회및경제에서어떠한위치를차지하고있는지검토한후,화교직물상이산동방(山東幇,산둥방)을중심으로어떻게형성되는지,산동성(山東省,산둥성)과어떠한연계가있는지고찰한다.
제2장은화교직물상이일본인직물상및조선인직물상을압박하는세력을형성한원인을분석한다.경성및인천소재화교직물수입상이면직물,견직물,마직물을어떠한화교통상망을통해대량으로수입하게되는지,수입과정에서일본인직물상과협력및길항(拮抗)의관계는없었는지,그리고대량수입을가능하게한조선내직물산업의실태는어떠했는지에유의하면서검토한다.
제3장은화교직물수입상이수입한직물은어떠한화교유통망을통해판매되었는지검토한다.화교직물수입상의유통망은각부(府)에소재한화교직물도매상,각군(郡)에소재한화교직물소매상및행상으로구성되어있었는데이들관계가어떠한유기적결합을이루고있는지살펴본다.그리고조선인및일본인직물상과의거래는어떻게이뤄졌는지도주목하여검토한다.
제4장은동아시아에걸친통상망과조선내쇠사슬처럼연결된유통망을토대로조선의직물상업계에서상당한세력을형성한화교직물상에대해조선총독부는어떠한정책으로대응했는지수입을제한하는관세정책을중심으로검토한다.
제5장은1931년화교배척사건이화교직물수입상을비롯한화교직물상전체에어떤타격을주었는지검토한다.화교직물수입상의통상망,국내화교직물상의유통망이이사건으로어떻게파괴되고약화되는지중앙과지방으로나눠살펴본다.
제6장은화교직물상은화교배척사건이진정된후점차회복하지만중일전쟁과조선총독부의전시통제강화로완전히쇠퇴하게되는데그궤적을추적한다.
제I부보론은조선화교의중요한경제활동의하나로객잔과무역업을병행한행잔(行棧)이어떻게경영되고있었는지인천화상만취동(萬聚東)을중심으로고찰한다.

호떡집과짜장면의사회사,한반도에자리잡은화교의직종들
―제II부:화교의3대직종,중화요리점,이발소,양복점의흥망성쇠
제II부는중화요리점,이발소,양복점의이른바삼도업(三刀業)에대해검토한다.세계의화교는이주지서삼도업에종사하는인구가많았는데조선화교도똑같았다.조선화교의삼도업의생성및발전의과정을추적한다.이발소와양복점은1930년대에들어쇠퇴한반면,중화요리점은지속적으로발전하는원인이어디에있는지검토한다.
제7장은화교중화요리점이화교의이주초기인1880년대에이미형성되고1920년대는호떡을중심으로중화요리가조선사회에대중화된것을밝힌다.화교중화요리점의성공원인이중화요리의특징,싼가격,화교중화요리조합에있다고보고검토한다.
제8장은1927년과1931년화교배척사건그리고중일전쟁이있었음에도화교중화요리점은1930년대에도발전을거듭하는데그실태를추적한다.조선총독부의전시통제강화로인해화교중화요리점의경영이위축되는실태도분석한다.
제9장은화교이발소와양복점의생성과전개과정을조선인및일본인업자와의경쟁관계에주목하여살펴본다.이발소와양복점은화교의이주초기에생성되어조선인및일본인이위협을느낄정도로발전하지만,1930년대는쇠퇴의길에들어선다.그이유를화교중화요리점과비교하여검토한다.

솥·냄비그리고양말,화교가주도한제조업종들
―제III부:주물업,양말제조업을통해본화교제조업의양상과길항관계
제III부는일제강점기화교제조업의실태를주물업과양말제조업을중심으로검토한다.화교의제조업은상업에비해미약한세력을형성했지만,주물업과양말제조업분야에서는조선인과일본인을압박했다.일제강점기조선의공업의입장에서두제조업이어떠한의미를가지는지살펴본다.
제10장은화교주물업은일제강점기에솥,냄비의제조분야에서독점적인지위를구축하게되는데그원인을동향(同鄕)네트워크와높은기술력에두고논의를전개한다.조선인및일본인주물업과의길항관계에주목하면서검토한다.
제11장은신의주의화교양말제조업이1920년대평양의조선인양말제조업에위협을주는일대세력으로부상한원인이어디에있는지생산,판매의각측면에서검토한다.또한화교양말제조업이1931년화교배척사건에의해회복할수없을정도로타격을받게되는실태도살펴본다.

화교채소재배상,희망의땅한반도로진출해오다
―제IV부:채소농사와판매까지,한반도에서농사를지은화농의역사
제IV부는화농(華農)의채소재배실태파악을통해화농이일제강점기조선의농업에어떻게연관되는지,어떠한위치를차지하고어떠한역할을하는지를중심으로검토한다.
제12장은화농이대도시채소공급을독점하는실태및원인을개항기부터1920년대까지의시기,경기도를대상으로검토한다.화농의채소재배의특징,화교채소판매망,산동성과의연관성에주목하여논의를전개한다.
제13장은화농의채소재배활동이1931년화교배척사건에서중일전쟁발발이전까지시기에위축된원인을분석한다.1931년화교배척사건의영향,조선총독부의화교이주제한조치,인천부청의화교경영채소시장운영개입,인천화농의농회(農會)내분등을중심으로논의를전개한다.
제14장은화농의채소재배및판매활동이중일전쟁및조선총독부의전시통제강화로어떻게변화하는지검토한다.조선의채소부족문제를해결하기위해화농을활용한사례를소개하고,채소배급제로인해화농의수입이감소한점을분석한다.

염전축조와성당건축,화교노동자들의이주와삶
―제V부:화공의염전축조와건축그리고단순육체노동까지
제V부는화공(華工)문제를다룬다.화공이중국에서조선으로이주한원인과경위,그들의이주에따른조선인노동자와의관계,화공문제로인한외교마찰및교섭등을다룬다.또한화공이조선의노동현장에서어떤역할을했는지구체적으로검토한다.
제15장은광양만(廣梁灣)염전축조공사에1909~1911년도에고용된약4,000명의화공을둘러싼문제를다룬다.화공은나쁜작업조건으로잇따라공사현장에서도주하는데그원인을추적한다.또한이문제를둘러싼청국과일본간의외교교섭이펼쳐지는데,이교섭을통해일제강점직전과일제강점직후에양국교섭에미묘한차이가발생한사실을밝힌다.
제16장은단순육체노동자인쿨리[苦力,coolie]가아닌벽돌조적공과미장이와같은숙련기술자인화공이조선에서어떤활동을펼치는지살펴본다.이들숙련기술화공이근대조선의종교건축의시공활동에큰기여를하게된원인과화교건축청부회사와의관계를일본인건축청부회사와비교하여검토한다.

[책속으로추가]
조선인주물공장이제조하는솥은경쟁력이낮았기때문에대일본및중국수입품이증가하여,일본인이조선내에주물공장을잇따라설립하여솥을제조했다.그보다조금늦게화교가솥제조에참가하여값싼가격,우량의품질을무기로조선인공장및일본인공장제조의솥뿐아니라대일본및중국수입품을대체했다.결과적으로화교주물공장이솥시장에서독점적인지위를차지하게된것이다.
-395쪽,제10장「화교주물업」중에서

화농은가지,호박,파,옥수수등의채소를근면히재배하고일본인거류민의집집마다방문하여염가로판매해,재배와판매의뛰어남이일본인농민이도저히경쟁할수없을정도였다는것을알수있다.주인천일본영사관의보고와같이,개항기채소재배및판매에서화농과일본인농민을비교하여일본인농민의분발을촉구하는목소리가적지않았다.
-453쪽,제12장「화농채소재배의형성과발전」중에서

화공은왜도착한지얼마되지않아공사현장에서도주한것일까?그원인에대해도주한화공78명의연명으로주진남포영사관에제출한6월18일자탄원서를근거로보도록하자.
제1의원인은초공두측의불성실함이었다.공두(工頭)는출발전승선과동시에금전(전대금으로보임)을지불한다고약속했는데도화공대부분은금전을받지못했다는것이다.(…)또한탄원서에의하면,초공두측은화공을모집할때철도공사의작업을한다는것,임금과식대를합하여1일50전을지급한다고속였다는것이다.
-547쪽,제15장「광량만염전축조공사의화공문제」중에서

이들벽돌직공은조선에정주하지않는계절노동자였다.그들은대체로11월말경짐을싸서중국의고향으로돌아갔으며,이듬해4월경봄이되면다시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