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센코의 망령 (소비에트 유전학의 굴곡진 역사)

리센코의 망령 (소비에트 유전학의 굴곡진 역사)

$16.00
Description
20세기 가장 악명 높은 과학자 리센코,
그가 옳았다고?
리센코는 20세기 가장 악명 높은 과학자다. 우리에게 리센코는 20세기 중반 소련 생물학계를 망하게 만든 원흉으로 알려졌다. 스탈린의 비호 아래 니콜라이 바빌로프를 비롯해 자신의 반대편에 있던 과학자들을 숙청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리센코가 옳았다는 주장이 속속 제기되었다.

“현대생물학에 의해 트로핌 데니소비치 리센코의 진리가 확인되었다.”
“센세이션!: 리센코 원사가 옳았던 것으로 드러나!”
“트로핌, 당신이 옳았소!”
“위대한 생물학자 리센코를 기리며”

러시아 언론이나 블로그에서 리센코를 재평가하며 붙인 제목이다. 리센코가 옳았다고? 이제 와서? 논란의 발단은 후성유전학이다. 리센코를 ‘틀린’ 과학자로 규정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획득 형질 유전설’이었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주로 러시아에서 활동한 리센코는 당시 서방에서 주류를 이루던 다윈주의 유전학을 거부하고 획득 형질도 유전된다는 일종의 후성유전학을 받아들였다. 다윈주의 유전학에서는 획득 형질의 유전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서방 세계의 과학자들에게는 틀린 이론을 붙들고 자국의 과학계를 좌지우지한 리센코가 공포의 대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획득 형질이 유전되는 것으로 보이는, 후성유전학으로 설명해야 할 사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비록 리센코가 정치적으로 ‘나쁜’ 과학자였을지언정, ‘틀린’ 과학자는 아니었던 것인가? 리센코는 수많은 비운의 선지자들처럼,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할 운명을 지녔던 걸까?
이 책은 ‘리센코는 옳았을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당시 러시아 생물학계의 상황, 후성유전학의 전통, 리센코의 이론, 소비에트 과학계의 모순, 현재 러시아의 실상을 폭넓게 조망한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않으면, 아직 끝나지 않은 이 ‘리센코 현상’은 하나의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마치 미스터리 소설 같은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을 곁들이며 리센코 현상에 숨어 있는 디테일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리센코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갈수록 과학과 정치, 국가,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구조가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음 질문의 답은 명확해질 것이다. 리센코는 옳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왜 중요한가?
저자

로렌그레이엄

LorenGraham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과학기술학및하버드대학교과학사명예교수이다.1933년인디애나주에서태어나1955년퍼듀대학교에서화학공학학사학위를,1964년컬럼비아대학교에서역사학박사학위를취득했다.이후인디애나대학교,컬럼비아대학교,MIT,하버드대학교에서교편을잡았으며,영미권에서소련및러시아과학사분야를개척했다고평가받는원로학자이다.주요저서로는『소련과학원과공산당,1927~1932(TheSovietAcademyofSciencesandtheCommunistParty,1927-1932)』(1967),『소련의과학과철학(ScienceandPhilosophyintheSovietUnion)』(1972),『처형당한엔지니어의유령(TheGhostoftheExecutedEngineer)』(1993),『우리는러시아의경험으로부터과학과기술에대해무엇을배웠나(WhatHaveWeLearnedaboutScienceandTechnologyfromtheRussianExperience?)』(1998)등이있다.2016년에출간된『리센코의망령』은그의최신단행본연구서이다.고령임에도코로나19팬데믹직전까지정정한모습으로매사추세츠주케임브리지곳곳에나타나후학들을격려해주었으며,이책의한국어판의실물을받아보기를고대하고있다.

목차

한국독자에게보내는편지
서론
1장시베리아의다정한여우들
2장획득형질의유전
3장생물학계의이단아파울캄머러
4장1920년대러시아인간유전대논쟁
5장리센코와의조우
6장리센코의생물학
7장후성유전학
8장리센코주의의부활
9장신리센코주의의충격
10장반리센코주의적획득형질의유전
결론
감사의말
옮긴이의말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수천년간이어져온후성유전학의전통
후성유전학과러시아생물학,그리고우생학

리센코의현상을이해하기전에반드시알아야할제반사항이있다.바로후성유전학과20세기초반러시아생물학계의상황이다.획득형질의유전에관한믿음은,그것을연구한학자에따르면“2000년이넘도록거의보편적으로유지되어온관념”이었다.히포크라테스와아리스토텔레스,찰스라이엘도획득형질이유전된다고믿었다.심지어는다윈도자신의진화론으로설명하기어려운일부변칙들을설명하기위해획득형질의유전을수용했다.
현재의관점에서보면획득형질이유전한다는관념은라마르크가내세운이론과동일시된다.하지만라마르크이전에도획득형질이유전한다는관념을받아들인생물학자는많았고,그런전통에서연구를수행하는것이이상한일도아니었다.이는러시아에서도마찬가지였다.19세기후반까지러시아에서는라마르크주의와다윈주의간의모순이심각하게여겨지지않았는데,어쨌든둘다‘진화론’이었기때문이다.20세기들어영국과미국등에서는자연선택에의한진화가힘을얻으며획득형질유전에관한이론이비판을받기시작했지만라마르크주의자들이많던러시아에서는라마르크주의에유리한방식으로최신유전학을수용했다.요컨대소련내에서획득형질유전의중요성은리센코가본격적으로역사의무대위에등장하기훨씬전부터이미확립되어있었다.
그리고유전학이발전함에따라떠오르던우생학은정치적으로여러논란을일으킨다.생물학이어떤방식으로든국가운영에도움이될수있을지모른다는희망이커지던시기였기때문이다.이책에따르면특정한정치적입장을가진사람들만우생학적기획에찬성한것은아니었다.심지어는마르크스주의에따라우생학을적용하려던생물학자들도있었다.이렇게복잡한과학적ㆍ정치적지형이리센코주의가태동할토양이되었다.

논란의당사자를직접대면하다
역사가의앞에둔리센코의변명

이책에서가장흥미로운,가장손에땀을쥐는대목은저자인로렌그레이엄이리센코가직접대면하는장면일것이다.이책을쓴로렌그레이엄은1933년생으로90세를넘긴노학자다.영미권에서러시아과학사분야를개척했다는평가를받는다.1971년어느날그는러시아최고도서관인레닌도서관에서리센코에대해연구하다가점심식사를하기위해‘과학자의집’이라는레스토랑을찾는다.그곳에서이미명예가실추된,평생의연구대상인리센코를직면한다.그리고아주짧은시간이야기를나눈다.리센코는세간의평가에대해격정적인반응을보이는데,이를통해우리는리센코가악명을떨치게된행위를한개인적인이유를추론할수있다.이책은과학책이기도역사책이기도하지만,한편으로는스토리텔링에매우신경을쓴다.단순히상황을서술하거나이론을설명하는데그치지않고,캐릭터를부각하고구체적인상황을묘사해서독자들로하여금내용에빠져들도록만든다.
하지만‘리센코는옳았는가?’라는질문에답하기위해서는‘리센코가내세운이론이무엇인지’밝혀야한다.이책에서는한장을할애해리센코의연구방식,이론의핵심,결론,파급효과등을알기쉽게소개한다.리센코이론은신화화되었지만한편으로는특별할것이없는것이었다.하지만몇몇부분에서현대유전학과결정적으로입장을달리한다.이부분때문에서방세계과학자들은리센코를인정할수없었다.그리고논란의한축을담당하는후성유전학도다룬다.현대후성유전학이등장하고발달한과정을차근차근설명함으로써독자들이기초적인수준에서후성유전학을이해할수있도록돕고리센코주의와의관련성을논한다.

현재진행형인리센코주의의논란들
리센코주의는러시아에어떤흔적을남겼을까?

『리센코의망령』은국내에는처음으로번역출간된리센코에관한단행본분량의책이다.‘리센코’라는이름을아는국내독자들은대부분그이름을생물학이나과학사책에서스쳐가듯보았을것이다.예전소련에리센코라는가짜과학자가있었는데,그때문에소련생물학계가많은피해를입었다정도의내용을알고있을것이다.‘리센코’라는이름의중요성과파급력을생각했을때그를집중적으로다룬단행본이이제라도출간된것은다행이라고할수있다.그런데이책에서지적하는건,이게단순한옛날이야기가아니라는점이다.리센코와관련된논란은현재까지이어지고있으며그의미또한매우중층적이다.러시아에서일어나고있는리센코와관련된논란은역사적인맥락에서뿐아니라현재적인맥락에서도커다란시사점을던진다.
일단러시아내에서극우공산주의(자칫형용모순처럼들리는이표현은현재러시아의상황에서는성립될수있다)성향의세력이리센코를복권시킴으로써민족주의를강화하고스탈린시대의향수를일으키려한다는점이다.알고보니리센코가옳았고,리센코에힘을실어줬던스탈린체제도옳았다는논리구조는이들의의도를짐작케한다.반대로러시아주류유전학계에서는리센코가옳았다는결론을지지하게될까봐후성유전학연구를기피하는일이벌어지고있다.또한후성유전학의주요한사례가될수있는기근연구가러시아에서이루어지지않는것도그것이리센코주의를확증할까두려워서라는분석도나온다.한편으로는러시아내부의종교,정치상황때문에후성유전학의연구가왜곡되는사례도발견되고있다.

사라지지않는리센코의망령
우리는어떤교훈을얻을수있을까?

이책을보면과학사에나타나는여러부조리를알수있다.몇번이고강조되는,‘용례(usage)’가‘정확성(accuracy)’을압도하는사례들이대표적이다.라마르크는획득형질유전설의대표자로알려져있다.심지어‘획득형질유전설’을‘라마르크주의’라고부르기도한다.그리고리센코는획득형질유전설을신봉한것으로알려져있다.그렇다면당연히리센코또한라마르크주의자였어야한다.그런데리센코는다음과같이말한다.“라마르크주의적관점에서행해진작업에서는그어떠한긍정적인결과도얻을수없다.”이게말이되는가?‘획득형질유전설’을‘라마르크주의’와동일시하지않는다면이의문은어렵지않게풀린다.라마르크는당대를대표하는생물학자이자유전학자였고,획득형질유전설은그가주장한다양한이론가운데하나였을뿐이다.획득형질유전설과라마르크주의를동일하게취급하기엔,획득형질유전설을주장한다른생물학자도매우많았고라마르크의이론도그렇게단순하지않다.하지만일반대중뿐아니라과학자들도획득형질유전설과라마르크주의를동일시한다.용례가정확성을압도했기때문이다.이런부분은과학자보다는과학사가들이더잘지적할수있다.
그리고정치와과학의관계,과학과이데올로기의공모를리센코현상처럼상징적으로보여주는경우는없을것이다.우리는심심치않게한국연구진이세계최초로과학적발견을했다는뉴스를본다.많은경우과학적발견의내용이나과정보다는그발견이향후이뤄낼수있는성과나‘한국인’이그발견을해냈다는사실에초점이맞춰지곤한다.그러니까과학이한국인의긍지나위상을높여주는수단으로써작동하는것이다.이렇게되는이유는자명하다.뉴스수용자입장에서과학적내용을이해하기는쉽지않다.하지만그게엄청난발견이라든지,한국인이이룬업적이라는건눈길을끌기쉽다.다행인것은한국만그렇지는않다는것이다.최근리센코를재평가하는움직임을이런흐름에서이해할수있다.그리고역사적상처를간직한러시아과학계는후성유전학의발전을아주복잡한심정으로바라볼수밖에없는상황이다.
우리는리센코의사례를마냥남의나라이야기라고치부할수는없다.우리에게도황우석의그림자가남아있기때문이다.이책은“예전에그런일이있었다”라는차원이아니라바로지금일어나는현상을이해할수있도록도와주는역할을한다.이책만큼과학과역사,정치등다양한분야에서시사점을던지는연구도많지않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