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이면의본질을읽어내는세밀한눈
일본인은겉과속이다르다,친절하다,내성적이다,사과를잘한다…….한번쯤들어봤을속설이다.정말그럴까?저자는일본의어떤문화적인특성때문에우리가그런인상을갖게되었는지를다양한예시를통해설명하면서오독을방지한다.
예를들어‘일본인은겉과속이다르다’라는속설은‘다테마에(建前)’와‘혼네(本音)’라는,일본문화특유의화법과태도에서비롯되었는데,다테마에는‘외부에밝히는공식적생각’,혼네는‘진짜속마음’을가리킨다.업무를마친상사가직원에게회식을제안했다고하자.업무에시달려혼자만의시간이간절한직원은“안타깝지만업무가남아서회식에갈수없습니다”라고거절했다.직원은업무가남아있다는말(다테마에)로회식에갈마음이없다는본인의의사(혼네)를에둘러서,하지만명확하게표명한것이다.이처럼혼네는숨겨두는속마음이아니라,상대방에게들켜야하는속마음이다.다테마에는속마음을감추는수단이아니라,속마음을들키기위한수단이다.다테마에와혼네의문화는겉과속이다른이중성이아니라,간접적이나마속내를분명히드러내는능동적인방법이라는것이다.
또한,일본인이‘스미마센’을입에달고산다고해서,상대방에게진지하게용서를구하는겸손의정서로해석해서는곤란하다.스미마센은감사함과미안함을동시에표현하는것으로,‘남에게빚지고싶지는않다’라는자기만족적인생각이더강하게작용한표현이기때문이다.
‘진심을담은극진한접대’를뜻하는오모테나시라는개념역시그속에숨어있는독특한문화적코드를이해하지않으면,일본인의친절에대해오해할수있다.오모테나시는손님에대한배려와서비스로가시화되지만,친절의실천기술을가다듬고궁극의수준으로끌어올리겠다는,자기만족적환대의문화에가깝다.
한국과일본,서로를거울삼아비춰보다
저자는또한일본과한국을서로비교하여살펴보는비교문화론적관점을제시하는데,이를통해일본문화를깊이이해할수있을뿐아니라우리의문화를돌아보게된다.
일본의‘우치’는가족이나친구등나와가까운사람들을뜻한다는점에서는한국의‘우리’와비슷한개념이다.하지만한국의‘우리’는사적인교류와친근함으로뭉친사람들이라는의미가,일본의‘우치’는공적인뉘앙스가강하다.‘우치’의잘못은‘나’의허물이라는공식이성립해,남편의불륜에대해아내가사과하는뜻밖의일도벌어진다.일본의‘우치’는장벽이높아서,결혼이나입학,취직,개업등의공적인계기를통해서만‘우치’공동체에소속되는경우가많다.‘우리’와‘남’의경계선이변화무쌍한한국과는달리,일본인들은사적인간관계를넓히는데소극적이다.일본인이내성적으로보이는까닭이다.역동성과인간미가넘치는한국사회에비해,일본의인간관계가차갑고건조하게느껴질수있겠지만무엇이더좋다나쁘다평가할수는없다.다만,한국은‘우리가남이가’정신이정치나자본등권력근처에뿌리내린점을,일본은외국인에대한뿌리깊은반감과차별을비판적으로성찰할필요가있다고저자는말한다.
한국와일본의문화차이에따라같은기술이다르게진화하는사례도흥미롭다.1990년대에널리사용된개인용무선호출기(한국의‘삐삐’,일본의‘포케베루’)는한국과일본에서큰인기를끌었다.그런데한국의삐삐는목소리나음악등소리를전달하는시끌벅적한구술미디어로탈바꿈한반면,일본의포케베루는문자를매개하는과묵한문자미디어의길을택했다.이는인터넷이용에서한국은구어중심,일본은문자중심이라는차이로이어졌다.한국에서는팟캐스트나유튜브등음성이나동영상을활용하는플랫폼이빠르게보급되었지만,일본에서는문자나이미지로소통하는SNS에대한선호도가높다.
겉으로는비슷해보이는양국의성씨제도이지만자세히들여다보면역시큰차이가있고,이는가족개념의차이까지빚어낸다.한국의성씨는씨족과혈통의계보를강조하는‘속인주의’사고방식을따르는데비해,일본의성씨는고향이나거주지의특성이드러나는‘속지주의’사고방식에가깝다.씨족의계보를중시하는속인주의전통에서는혈연을멋대로바꿀수는없으니성씨는개인에게주어진본질이자숙명이다.반면,속지주의전통에서성씨는상황에따라바뀔수있다.혈연관계에배타적으로구속되는것이아니라,가족이나개인의의지에따라끊을수도있고새로이맺을수도있는상대적인가족개념인것이다.
한일관계를지배해온단어‘혐오’.
이를대체할언어를찾다
미디어인류학자인저자는한국과일본의미디어가상대방을어떻게보여주는지에주목한다.우리는미디어라는렌즈를통과하면서‘가공’된결과로외부세계를인식하고,그에근거해서행동하기때문이다.한국의미디어가묘사하는일본은극우사상과배타주의로얼룩진사회이다.일본의한국사회의반일감정을불필요하게부각해사람들의감정을자극한다.저자는한일양국에서‘혐한’이라는말의존재감이커진경위를자세히소개하면서,혐한이한일매스미디어의캐치볼속에서무럭무럭자라무시할수없는정치세력으로진화했음을보여준다.
“예를들어,‘재일한국인의특권을용납하지않는시민모임在日特?を許さない市民の?’,줄여서‘재특회’라고부르는단체는자이니치나한국인에대한헤이트스피치를일삼는대표적인혐한세력이다.이단체가발족한것은2006년.한일언론이입을모아정체불명의혐한을걱정하기시작한지무려10여년뒤의일이다.”(271쪽)
“언어에는기묘한힘이있다.우리는언어가현상을기술하는수단이라고생각하기마련이지만,일단언어로형상화된현상이거꾸로우리의생각을지배하는일이다반사이다.혐오라는언어가오랫동안한일관계를지배해왔다.이제이를대체할언어의실마리를고민해야하지않겠는가?”(276쪽)
‘혐오’를대체할언어의실마리를과연찾을수있을까?다행히저자는우려에그치지않고그가능성까지소개한다.1923년간토대지진때조선인학살이라는비극적인사건이있었다.하지만이러한과거의비극을반면교사로삼은일본시민사회의노력역시존재한다.바로‘FM요보세요’라는라디오방송이다.1995년1월한신대지진이고베를강타했을때,일본의시민운동가들은비영리단체를꾸리고‘FM요보세요’(한국어‘여보세요’에서따온명칭)라는라디오방송을한국어와일본어로송출한다.지진피해를입은자이니치(해방이후일본에남은한국인과북한국적의조선인)들에게신속하게재해정보를제공하고,일본인들에게자이니치역시지진피해자이자지역공동체의일원임을정확하게알리겠다는취지였다.
한일관계가평행선을달리는동안에도,일본젊은이들은인터넷을기반으로하는글로벌플랫폼에서자발적인정보공유로한국에대한호감도를꾸준히키웠고,그결과제3차한류의흐름이탄생했다.또한저자는『82년생김지영』을제자들과함께읽으며,한국사회와는다른문화적배경,다른젠더감수성을가진일본의젊은이들이공감한것에서,평범함뒤에숨은크고작은억압에대항하는문화적연대의가능성을발견한다.
『같은일본다른일본』은친일반일의프레임에서벗어나한사회를세밀하게들여다보는다채로운이야기들로가득하다.인류학자가안내하는이흥미로운여행에함께할것을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