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정신세계의급변,16세기과학과세계관의역사
코페르니쿠스의지동설제창그리고상극적인우주론들
일찍이유럽에서천문학과우주론이공존했던것은,프톨레마이오스가그리는수학적천문학이자연학적우주론에종속했고그큰틀로서아리스토텔레스가논한이원적세계로수렴했기때문이었다.그러나코페르니쿠스이론은지금까지의우주론과천문학이유지했던상하관계에전환을강요할터였다.『과학혁명과세계관의전환』제2권에서는코페르니쿠스가일으킨지동설이등장한이래상극적인우주론들이나타난유럽의16세기,즉이원론에서일원론으로세계관이이행해가는과도기라고할수있는시기의과학발전상및세계관의역사를논의한다.
코페르니쿠스가유럽의세계관에던진화두와한계
코페르니쿠스는지동설을표명하여지구중심의세계상에서태양중심의세계상으로전환한점뿐아니라지구를행성대열에포함시킴으로써태양계를체계화하고세계의일원화개념을정립한점에서높은평가를받는다.요컨대지동설은그때까지아리스토텔레스자연학과우주론전체의기본적인틀,즉지상세계와천상세계가다른종류의물질로이루어졌으며서로다른법칙의지배를받는다는전제에근본적으로저촉되었다.따라서천문학이지동설을올바른태양계상으로주장한것은하위에있던수학적천문학이상위에있던철학적자연학의원리를부정하는일이었으며,학문의서열을전도해버린사건이었다.동시에무겁고비활성적이라고여겨졌던지구를운동하게하는자연학적원인이무엇인가라는,전적으로새로운문제를제기하는것이기도했다.
그러나코페르니쿠스자신은이러한의의를충분히알지못했다.실제로코페르니쿠스일생의대작으로1543년출판된『천구의회전에관하여』(이하『회전론』)는천문학의전환점에위치하기는했지만,예전부터전해져내려오던자연학의개념으로기술되었다.이러한한계를넘은것이첫번째로16세기후반크리스토프로스먼과티코브라헤가주장한강체천구설의파기였으며,두번째로17세기초두케플러가주장한타원운동과면적속도일정의법칙,즉행성운동의원형성과일정성을포기한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이론을지지한학자들
코페르니쿠스의『회전론』출판직후에그의지동설에찬성의뜻을표명한레티쿠스,가서,겜마는코페르니쿠스이론을단순한수학적가정으로서가아니라우주론적진리로이해했다.코페르니쿠스의제자레티쿠스(Rheticus)는지동설해설서인『제1해설』을발간하면서코페르니쿠스이론의책출간을끌어내고자했다.아킬레스가서(AchillesGasser)는레티쿠스의『제1해설』제2판을출간하면서자신도이에찬동한다고표명했으나거의주목받지못했다.
한편네덜란드에거주하던의사이자수학자,천문학자인겜마프리시우스(GemmaFrisius)는간단하고정확하게일식을관측하는방법을담은『천문학의자막대』를출간했으며삼각측량등수학과지도학등에걸쳐큰성과를남겼다.그는코페르니쿠스와교류한적은없는것으로보이나,1545년이후코페르니쿠스이론을지지하게되었다.
코페르니쿠스의지동설에대한신학적세계관의대응
가톨릭측에서는,신학자조바니마리아토로사니만이코페르니쿠스의이론의위험성을제기했을뿐대체로코페르니쿠스의이론에무관심했다.
한편프로테스탄트측에서는레티쿠스와가서가예외적으로코페르니쿠스주의자였을뿐,대부분코페르니쿠스의『회전론』출판후거의4반세기동안코페르니쿠스이론의우주론적·자연학적함의에는눈을감고그수학적측면만을연구했다.예컨대마르틴루터그리고열렬한루터파목사였던안드레아스오시안더에게는신학의우월이중심문제였고,함께신학의하위에놓인철학과천문학의서열은관심밖에있었다.이렇게원리적이고중요한자연학상의이문제는우선방치되면서코페르니쿠스의수학적이론만을중시하는특유의해석으로진행되었다.
독일에서의천문학및수학교육의발전
또한독일에서는종교개혁에동반된교육개혁이일어나면서,인문주의자멜란히톤의영향하에천문학은종교개혁교육전략에서꼭필요한부분이되었다..동시에수학교육도중시되었다.이에따라그간박식한전문학자만이이해할수있었던코페르니쿠스이론을좀더많은사람들이이해할수있었고,베텐베르크대학을비롯한독일의많은대학에서유럽의과학발전에기여하는교육이이루어졌다.다만멜란히톤도신학적세계관을우선순위에두고철학과신앙을준별하고자했으며,천문학이나점성술등을신의계획에준해만들어진법칙으로이해하였다.
이렇듯서유럽의16세기는코페르니쿠스이론의등장으로세계관에큰화두가던져진이래신학적세계관이이를방어하면서도한편으로과학의발전을추동한,정신세계가급변한시기였다고하겠다.
왜유럽에서과학이탄생했는가
서구근대과학탄생사시리즈의완결편,제2권발간
16세기는소위‘14~15세기의르네상스’와‘17세기의과학혁명’에끼인골짜기처럼여겨지던시대라고할수있다.이시기에‘문화혁명’이라고불러야할지식세계의지각변동이일어났다는점은매우주목할만한점이다.대학의아카데미즘과거리가멀고문자문화의세계에서소외되었던직인(職人)과기술자,예술가나외과의,상인이나뱃사람들이생산·유통이나각종직업활동을하는과정에서습득하고축적한경험지식이자연과세계를이해하는데유효하다는것을깨달았기때문이다.이는당시까지대학에서가르치던중세스콜라학에대치하는것이었으며,고대문예의부활을통해인간성의회복을추구했던후기르네상스의인문주의운동마저도뛰어넘는새로운지식의가능성을시사했다.
『과학혁명과세계관의전환』은『과학의탄생』,『16세기문화혁명』의저자이자,일본차세대노벨상수상자로불리는거장야마모토요시타카(山本義隆)가쓴서구근대과학탄생사3부작중완결편인마지막제3부이다.참고로,『과학의탄생』은국내에2005년에번역·출간되었고,『16세기문화혁명』(원제:一六世紀文化革命,2007)은2010년에번역·출간되었다.
책은15세기중기부터17세기까지,북방의인문주의운동과종교개혁을배경으로하여중부유럽을무대로한세기반에걸쳐전개된천문학과지리학,즉‘세계인식의부활과전환’에대한이야기를다룬다.저자의전작인『16세기문화혁명』을보완하는의미로,16세기문화혁명과나란히진행됐던천문학개혁의전말을추적하는것을주된내용으로삼는다.왜그리고어떻게서구근대에서과학이탄생했는가에대한문제의식에서출발한탐색은,야마모토요시타카의역작들인『과학의탄생』,『16세기문화혁명』과함께3부작을이루는이책으로완결된다.『과학혁명과세계관의전환』은전작들과달리국내에는세권으로분권되어출간되며,2019년에제1권이출간된데이어제2권이2022년에전격번역·출간되었다.
『과학의탄생』,『16세기문화혁명』의저자
거장야마모토요시타카는누구인가
저자는총3부작의긴여정을통해서구에서과학이탄생한과정을풍요롭게그려냈다.저자가이처럼오랜기간동안근대과학사3부작을저술할수있었던배경은그의독특한이력을통해살펴볼수있다.1941년오사카에서태어난야마모토요시타카는과학사가,자연철학자,교육자이자전도쿄대전공투(全共鬪)의장이었다.안보투쟁이한창이던1960년에도쿄대학교에진학하여,베트남반전회의에참여한것을계기로도쿄대전공투의장을맡아도쿄대투쟁을이끌었던것으로아주유명하다.1969년야스다강당공방전에앞서경찰의지명수배를받아지하에잠복했으나,같은해9월히비야공원에서열린전국전공투연합결성대회에서체포되었다.
1960년대의급격한경제발전과함께정치·사회적으로요동치는상황을직접체험한저자는‘일본사회가사실근대화를경험하지않은것이아닐까’라는의문을품었고,과학도출신인만큼이와관련해‘왜유럽에서과학이탄생했는가’라는질문의답을추구하게되었다고한다.이런문제의식은재야학자로서그가걸어온연구의발자취로이어져,1970년대에는주로물리학과철학에관련된번역서,1980년대부터2010년초반까지는과학사연구서,그리고2010년대에는근현대일본과학기술사회를비판한평론서를세상에내놓게된다.
과학사가인저자의가장큰특징은,역사에서중요한함의를읽어내는통찰력뿐만아니라각시대에등장한이론체계를수리적으로해석할수있는수학적·물리학적지식을겸비한다는데있다.이책『과학혁명과세계관의전환』에서는주제에따라두요소의절묘한균형점을찾아내면서이러한장점이특히잘드러난다.15세기까지사변적인학문의세계와경험적인기술의세계는서로분리되어존재하고있었으며,그경험적인기술의세계는육체적이고천한것으로여겨졌다.그러나그이후학자집단과직인이서로접근하면서일어난‘16세기문화혁명’을통해학문과기술의융화가일어났으며,이것이17세기과학혁명으로이어졌다는것이저자의주장이다.
과학과사회를바라보는기존의여러편견에서벗어나,학문적으로도사회적으로도뜻깊은경험을저자는독자들에게전달하고있다.생업을병행하면서도지킨극한의학문적성실성,과학과사회에관한깊은성찰과시민의식은,읽는이로하여금저자의저술에경의를표하게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