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 3: 세계의 일원화와 천문학의 개혁 (거장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근대과학 탄생사 완결편)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 3: 세계의 일원화와 천문학의 개혁 (거장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근대과학 탄생사 완결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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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왜 유럽에서 과학이 탄생했는가”

『과학의 탄생』, 『16세기 문화혁명』을 잇는
서구 근대과학이 탄생한 과정을 풍요롭게 그려낸 역작

거장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근대과학 탄생사 완결편, 마지막 제3권 발간(전 3권)
서유럽 세계관 변화의 역사,
상극적인 세계관의 일원화로 이룩해 낸 천문학의 개혁
15세기 중기 포이어바흐와 레기오몬타누스에서 시작하여 16세기 코페르니쿠스와 튀코 브라헤로 계승된 천문학의 발전은, 케플러에 이르러 동력인에 기반한 수학적 논의로 설명되는 한편, 관측으로 검증되는 수리물리학으로서의 천문학, 즉 천체역학이라는 새로운 독립적인 학문의 가능성을 밝혔다. 이것이 새로운 세계관을 열었고, 중세 스콜라학에서 상위에 있던 논증적이고 철학적·자연학적 우주론과 하위에 있던 실용을 위한 수학적·기술적 천문학이라는 학문의 위계는 파괴되었다.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 제3권에서는 유럽의 16세기에서 17세기 초, 즉 이원론에서 일원론으로 세계관이 이행해 간 시기의 천문학의 개혁 및 세계관 변화의 역사를 논의한다. 이후 갈릴레오 갈릴레이, 보일, 뉴턴으로 이어질 시기의 직전까지를 이 책은 다루고 있다.

혜성에 대한 상극적인 세계관에 균열을 낸 학자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혜성은 달 아래 최상부에 있는 ‘건조하고 뜨거운 증발물’이라는 기상 현상으로 간주되었다. 혜성을 천체로 간주했던 기원후 1세기 세네카의 이론 등은 무시되었다. 그러나 이 세계관에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15세기에는 포이어바흐가 혜성을 관측하면서 혜성에 고유한 운동 개념을 부여했고 혜성까지의 거리를 추정했으며, 레기오몬타누스는 보다 정밀한 측정 방법을 논했다. 1531년에 핼리 혜성이 지구에 접근하자 요하네스 쇠너 등이 이를 관측한 기록을 남겼으며 특히 아피아누스는 혜성의 꼬리가 항상 태양의 반대 방향을 향한다는 점을 파악했다. 이후 지롤라모 카르다노는 기존 아리스토텔레스의 증발물설을 부정하면서 세네카의 이론과 맥을 같이했고, 묻혀 있던 세네카의 이론이 조금씩 부활했다. 또한 파라켈수스는 천상세계를 영겁 불변하지 않고 물체의 성질을 갖는 것으로 보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과 궤를 달리했다. 이러한 논의들은 1570년대에 지구에 접근한 신성과 혜성을 둘러싼 논의에서 고대 이래의 세계상을 해체하도록 촉진시켰다.

16세기 후반의 천체 관측,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관이 해체되기까지
헤센 방백 빌헬름 IV세는 1572년 지구에 접근한 신성의 정확한 관측을 위해 정밀한 관측 장치 사용에 공을 들였고, 이를 통해 일류 관측자가 되었으며 과학 교류에 넓은 통신망을 형성했다. 튀코 브라헤는 이 신성을 가장 인상적으로 관측하여 신성의 이름이 튀코 브라헤 신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1577년에 나타난 혜성은 1572년에 나타난 신성이 불러일으킨 의심을 검증할 기회가 되었는데, 벤(Hven)섬에 건설한 천체관측기지에서 천체 관측에 전념한 튀코는 혜성을 달 아래의 현상으로 보던 기존 관점을 재검토하여 에테르 영역의 존재라고 결론지었다. 또한 코페르니쿠스주의자였던 미하엘 메슈틀린도 혜성의 궤도를 고찰하고 튀코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으며, 달을 관찰하면서 지구가 반사하는 태양빛에 달이 비춰진다는 사실을 공표하여 이론을 더욱 단단히 했다. 이제 아리스토텔레스의 상극적 세계관은 해체의 길로 접어들었다.

튀코 브라헤, 새로운 우주상을 제창하다
튀코 브라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문관을 부정하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체계화된 수학적 천문학 이론에 상당 부분 동의했으나, 지구의 정지를 확신하고 천동설의 입장을 취하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거부했다. 현실주의자였던 튀코는 우주론도 정밀한 관측과 엄밀한 수학에 기반하는 근대 과학으로 변환시키고자 했다. 그에게 그 출발점은 코페르니쿠스와 프톨레마이오스 각자의 결함을 제거하고 통합하는 것이었다.
튀코는 태양과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주회하고 그 태양 주변에서 다섯 행성이 주회하는 ‘지구태양중심체계’를 제창하기에 이르렀다. 이 이론은 오늘날 우주론이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체계로부터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계로 발전하기까지의 과도기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겠다.

케플러의 법칙을 수용해 가는 유럽의 세계관
메슈틀린의 제자였던 케플러는, 행성운동 법칙을 제창하여 해석할 때 그것이 물리학적·동력학적 원인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분열되었던 천문학과 자연학을 통합했다. 그는 행성운동의 동력인을 태양에서 찾아 행성 궤도는 태양을 포함한 부동의 평면상에 있다는 명제를 발견했고, 지구 궤도와 태양중심이론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17세기 초 케플러의 법칙이 정립되고 1627년에 『루돌프 표』가 완성됨으로써, 행성운동(궤도와 주어진 시각에서 갖는 위치)을 예측하고 확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고대 이래의 천문학은 일단 완성되었으며, 유럽에서 이러한 세계관이 점차 수용되어 갔다. 케플러의 법칙은 엄밀한 수학적 개념으로 표현되고 정밀한 관측으로 검증되며 역학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첫 근대물리학 법칙이었던바, 이 책의 부록에서 케플러의 법칙을 더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저자

야마모토요시타카

山本義隆
과학사가,자연철학자,교육자,전도쿄대전공투의장.
1941년오사카(大阪)에서태어났다.안보투쟁이한창이던1960년에도쿄(東京)대학교이학부물리학과에진학하여,1964년졸업후같은대학원에진학하여입자물리학을전공했다.동학들사이에서수재로촉망받던그는박사과정3년차에베트남반전회의에참여한것을계기로도쿄대전공투(全共鬪)의장을맡아도쿄대투쟁을이끌었던것으로유명하다.1969년야스다강당공방전에앞서경찰의지명수배를받아지하에잠복했으나,같은해9월히비야공원에서열린전국전공투연합결성대회에서체포되었다.
‘지식인의자기부정’을외쳤던그는박사과정을중퇴하고학자로서보장된대학을떠나다시제도권학계로돌아가지않았다.1970년초중반에는도쿄대지진연구소의임시직원투쟁에참여하거나후지쓰우주개발연구단의2차하청업체에서근무하기도했는데,이때천체역학을공부하거나철학서를번역하며과학사가,자연철학자의길을걷기시작했다.이후에는유명대학입시학원인순다이(駿台)예비학교에서물리강사로재직하며재야에서연구와집필을계속했다.
‘왜유럽에서과학이탄생했는가’라는질문에대한답을찾기위해분투한그의긴여정은『과학의탄생』,『16세기문화혁명』,『과학혁명과세계관의전환』이라는근대과학탄생사3부작시리즈의완결로결실을맺었다.이작업은전공투시절품었던‘일본사회가근대화를경험하지못한것이아닌가’라는의문에서시작되었는데,공교롭게도2011년본서집필중후쿠시마에서전대미문의원전사고가발생했다.저자는이를계기로일본과학기술사회에대한비판이시급하다고판단해,『후쿠시마,일본핵발전의진실』,『일본과학기술총력전』등의집필과강연을이어가일본사회에큰경종을울리기도했다.

목차

제9장혜성에대한시각의전환-이원적세계가용해되기시작하다
1.혜성의자연학적이해
2.혜성징조설과점성술
3.정량적혜성관측의시작
4.포이어바흐와혜성관측
5.시차를사용한혜성고도추정
6.1531년의핼리혜성
7.아리스토텔레스기상론의권위가흔들리기시작하다
8.혜성에관한새로운시각의등장
9.세네카의『자연연구』를둘러싸고
10.파라켈수스의우주

제10장아리스토텔레스적세계의해체-1570년대의신성과혜성
1.1572년의신성
2.헤센방백빌헬름IV세
3.튀코브라헤와신성
4.미하엘메슈틀린과신성
5.고대적우주상이붕괴되기시작하다
6.튀코브라헤와천문학
7.1577년의혜성관측
8.튀코와메슈틀린의아리스토텔레스비판
9.메슈틀린의달관찰
10.아리스토텔레스비판에서코페르니쿠스이론으로
11.튀코브라헤와점성술

제11장튀코브라헤의세계-강체적행성천구의소멸
1.튀코브라헤와코페르니쿠스이론
2.튀코브라헤의천체관측
3.튀코브라헤의관측정밀도
4.튀코브라헤의체계에대하여
5.파울비티히
6.크리스토프로스만
7.강체적행성천구의부정
8.로스만과코페르니쿠스이론
9.튀코의체계가야기한것
10.조르다노브루노와무한우주
11.파트리치와리디어트

제12장요하네스케플러-물리학적천문학의탄생
1.메슈틀린과의만남
2.케플러의출발점
3.우주의조화로운질서
4.튀코브라헤와만나다
5.케플러와우르수스
6.천문학의가설에관하여
7.기하학적가설과자연학적가설
8.물리학으로서의천문학
9.물리학적태양중심이론
10.케플러의제0법칙
11.원궤도의붕괴
12.지구궤도와태양중심이론의완성
13.등속원운동의폐기와면적법칙
14.타원궤도를향한길
15.케플러의제1법칙
16.제2법칙의완성
17.제3법칙과케플러의물리학
18.플라톤주의와원형이론
19.케플러에게있어서의경험과이론
20.마치며-물리학의탄생

후기
부록C케플러의법칙과관련하여
부록D케플러와점성술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왜유럽에서과학이탄생했는가
서구근대과학탄생사시리즈의완결편,마지막제3권발간

16세기는소위‘14~15세기의르네상스’와‘17세기의과학혁명’에끼인골짜기처럼여겨지던시대라고할수있다.이시기에‘문화혁명’이라고불러야할지식세계의지각변동이일어났다는점은매우주목할만한점이다.대학의아카데미즘과거리가멀고문자문화의세계에서소외되었던직인(職人)과기술자,예술가나외과의,상인이나뱃사람들이생산·유통이나각종직업활동을하는과정에서습득하고축적한경험지식이자연과세계를이해하는데유효하다는것을깨달았기때문이다.이는당시까지대학에서가르치던중세스콜라학에대치하는것이었으며,고대문예의부활을통해인간성의회복을추구했던후기르네상스의인문주의운동마저도뛰어넘는새로운지식의가능성을시사했다.
『과학혁명과세계관의전환』(원제:世界の見方の転換,2014)은『과학의탄생』,『16세기문화혁명』의저자이자,일본차세대노벨상수상자로불리는거장야마모토요시타카(山本義隆)가쓴서구근대과학탄생사3부작중완결편인마지막제3부이다.참고로,『과학의탄생』(원제:磁力と重力の発見,2003)은국내에2005년에번역·출간되었고,『16세기문화혁명』(원제:一六世紀文化革命,2007)은2010년에번역·출간되었다.
책은15세기중기부터17세기까지,북방의인문주의운동과종교개혁을배경으로하여중부유럽을무대로한세기반에걸쳐전개된천문학과지리학,즉‘세계인식의부활과전환’에대한이야기를다룬다.저자의전작인『16세기문화혁명』을보완하는의미로,16세기문화혁명과나란히진행됐던천문학개혁의전말을추적하는것을주된내용으로삼는다.왜그리고어떻게서구근대에서과학이탄생했는가에대한문제의식에서출발한탐색은,야마모토요시타카의역작들인『과학의탄생』,『16세기문화혁명』과함께3부작을이루는이책으로완결된다.『과학혁명과세계관의전환』은세권으로분권되어,2019년에제1권,2022년에제2권이번역·출간된후2023년6월에마지막제3권이출간되었다.

『과학의탄생』,『16세기문화혁명』의저자
거장야마모토요시타카는누구인가

저자는총3부작의긴여정을통해서구에서과학이탄생한과정을풍요롭게그려냈다.저자가이처럼오랜기간동안근대과학사3부작을저술할수있었던배경은그의독특한이력을통해살펴볼수있다.1941년오사카에서태어난야마모토요시타카는과학사가,자연철학자,교육자이자전도쿄대전공투(全共鬪)의장이었다.안보투쟁이한창이던1960년에도쿄대학교에진학하여,베트남반전회의에참여한것을계기로도쿄대전공투의장을맡아도쿄대투쟁을이끌었던것으로아주유명하다.1969년야스다강당공방전에앞서경찰의지명수배를받아지하에잠복했으나,같은해9월히비야공원에서열린전국전공투연합결성대회에서체포되었다.
1960년대의급격한경제발전과함께정치·사회적으로요동치는상황을직접체험한저자는‘일본사회가사실근대화를경험하지않은것이아닐까’라는의문을품었고,과학도출신인만큼이와관련해‘왜유럽에서과학이탄생했는가’라는질문의답을추구하게되었다고한다.이런문제의식은재야학자로서그가걸어온연구의발자취로이어져,1970년대에는주로물리학과철학에관련된번역서,1980년대부터2010년초반까지는과학사연구서,그리고2010년대에는근현대일본과학기술사회를비판한평론서를세상에내놓게된다.
과학사가인저자의가장큰특징은,역사에서중요한함의를읽어내는통찰력뿐만아니라각시대에등장한이론체계를수리적으로해석할수있는수학적·물리학적지식을겸비한다는데있다.이책『과학혁명과세계관의전환』에서는주제에따라두요소의절묘한균형점을찾아내면서이러한장점이특히잘드러난다.15세기까지사변적인학문의세계와경험적인기술의세계는서로분리되어존재하고있었으며,그경험적인기술의세계는육체적이고천한것으로여겨졌다.그러나그이후학자집단과직인이서로접근하면서일어난‘16세기문화혁명’을통해학문과기술의융화가일어났으며,이것이17세기과학혁명으로이어졌다는것이저자의주장이다.
과학과사회를바라보는기존의여러편견에서벗어나,학문적으로도사회적으로도뜻깊은경험을저자는독자들에게전달하고있다.생업을병행하면서도지킨극한의학문적성실성,과학과사회에관한깊은성찰과시민의식은,읽는이로하여금저자의저술에경의를표하게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