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불완전한 (극복과 치유 너머의 장애 정치)

눈부시게 불완전한 (극복과 치유 너머의 장애 정치)

$18.00
Description
정상성과 수치심에 맞서는 부서지고 휘어진 불구의 몸들
“우리가 망가져 있음을 수용하고 주장하고 포용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프면 나아지기 위해 병원에 가듯, 크고 작은 사고를 겪은 뒤 이전의 상태를 찾으려고 애쓰듯,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장애를 가진 사람 역시 장애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상태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여긴다. 하지만 『눈부시게 불완전한』의 저자이자 선천적 뇌성마비 장애인, 시인, 장애 및 트랜스 활동가인 일라이 클레어는 이렇게 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손상된 나의 뇌세포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해도 마다할 것이다. 굳고 경련하는 근육이 없는 나를, 어눌한 발음이 없는 나를 상상할 수가 없다. (…) 장애가 없다면 우리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전작 『망명과 자긍심』에서 장애인, 노동계급, 퀴어, 트랜스젠더라는 다중적인 정체성을 바탕으로 교차성 정치의 사유를 보여준 일라이 클레어의 신간 『눈부시게 불완전한』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일라이 클레어의 다중적인 정체성은 “뇌성마비”, “정신분열”, “젠더 정체성 장애”라는 진단명과 ‘치유’에 뿌리내린 정상성에 도전한다. 장애인 당사자로서 자신의 몸을 고쳐져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제도, 문화, 가치 체계를 낱낱이 해부하는 한편, 트랜스젠더로서 자신이 원하는 몸과 마음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 치유와 얽히고 치유를 갈망하며 길어 올린 빛나는 통찰을 다양한 형식의 글로 담아냈다.
장애를 수용하고, 있는 그대로의 몸과 마음을 주장하고,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에 저항하고, 자신이 가진 몸과 마음의 욕망에 관해 이야기하는 『눈부시게 불완전한』은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으로 포착할 수 없는 다양한 몸과 마음의 차이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존할 수 있는 정치를 모색해 간다. 시러큐스대학교의 여성·젠더학과 및 장애학 프로그램 부교수 김은정의 〈해제〉는 한국 사회의 장애와 퀴어, 돌봄에 대한 담론에 이 책의 메시지가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 상세히 안내한다. 요컨대 이 책은 의사 조력 사망이 존엄한 삶과 죽음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 사회에 “의존과 삶에 대한 전혀 다른 상상”을 불어넣을 것이다.
저자

일라이클레어

(EliClare)
일라이클레어(1963~)는백인이자장애인이며젠더퀴어다.(버몬트라고알려진)아베나키족영토의챔플레인호숫가에살고있다.장애,퀴어,여성,환경등의복잡한교차를다루는책『망명과자긍심』(1999)을썼고,15년간쓴시들을묶은시집『골수의이야기:움직이는말들』(2008)을펴냈다.그외다수의학술지와선집에서집필활동을이어오고있다.한편시인이자스토리텔러,사회정의교육자이기도한저자는미국과캐나다전역의대학,콘퍼런스,커뮤니티행사등에서강연,교육,상담등을해왔다.현재는트랜스젠더법률센터장애프로젝트의커뮤니티자문위원단으로일하고있으며,포드재단과앤드루W.멜론재단의지원을받는장애미래펠로이기도하다.그외에도평화운동의일환으로미국대륙을걸어서횡단하거나성폭력예방프로그램을조직하고퀴어장애컨퍼런스를발족하는데에기여하는등활동가로
서의실천을지속하고있다.

목차

서론
차례

읽기전에
◇스트로브잣나무

1장|치유라는이데올로기
◇경련과떨림
2장|치유라는폭력
◇단풍나무
3장|치유와공모하는
◇돌
4장|치유의뉘앙스
◇소라껍데기
5장|치유의구조
◇소라게
6장|치유가작동하는법
◇구르기
7장|치유의한가운데
◇배롱나무
8장|치유를누비기
◇드랙퀸
9장|치유의영향
◇생존노트
10장|치유의약속
◇자전거타기

감사의말
해제
옮긴이의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사회는어떤상태를‘문제’로규정하고‘치유’해왔는가?
“치유는백인서구사상과문화에침투한이데올로기다”

병을치료하여더나은상태로만든다는의미의치유는언제나‘결함이있고’,‘문제가있는’상태를전제하는데,저자에따르면이는정치적인규정이다.의료적,과학적,국가적권한을등에업은권력집단은장애인,유색인,퀴어들을결함이있는존재로공표하며치유라는명목으로폭력과억압을휘둘러왔기때문이다.이러한역사속에서백인,부유층,비장애인,시스젠더로대표되는지배집단의특성은‘자연스럽고’,‘정상적’인것의기준이되었고,이에속하지못하는수많은몸과마음들은가치없으며제거되어야할존재로전락했다.
『눈부시게불완전한』은이러한‘치유’개념이현대의문화및가치체계구석구석에스며들어‘정상성’을설파하는일종의이데올로기로기능한다고주장한다.클레어에따르면치유이데올로기는여전히시행되고있는장애선별적임신중지와같은의료기술은물론,매우일상적인도구들에도스며들어있다.가령흔히판매되는피부미백크림은피부색이어두운신체는매력적이지않은몸,도덕적이지못한몸으로여기는인종차별적인메시지를강화하며백인우월주의를답습하는식이다.
정상성을작동시키는강력한기제로서‘치유’의구조,작동방식,목적,사례,약속들을구조적으로파헤치는『눈부시게불완전한』은단순히치유를거부하자고말하는것이아니다.치유를둘러싼정치적·경제적권력관계를이해하여고통과치유,건강과회복을이해해나가는프레임을새롭게설정해보자는전복적인제안이다.

적응하고협상하고의존하고욕망하는몸과마음들
극복과치유너머,불완전한존재들의다채로운가능성에관하여

장애및질병캠페인광고에서흔히쓰이는수사들을떠올려보자.낙마사고로전신마비장애인이된이후최첨단의치료를찾아다니며두발로서기를끊임없이갈망했던《슈퍼맨》의주연배우크리스토퍼리브.누구나노력하면난독증을극복할수있다는광고판속우피골드버그.불운과불의의상징으로소비되는수많은장애와질병들.『눈부시게불완전한』은장애를‘결함’이자‘극복’해야할문제로바라보는지배적인관점이장애를개인의문제로축소시키고,장애및질병을둘러싼사회적맥락과쟁점을지워버린다고주장한다.
막대한돈과부작용을감수하며마비된다리를고치기보다,휠체어를타고어디든다닐수있는사회가된다면어떨까?수어와점자를비롯한다양한언어의접근성이보장된다면청각장애인과시각장애인의삶은어떻게달라질까?정신병에대한낙인이덜해진다면환영을보고목소리를듣는경험이지금처럼끔찍한일은아닐수있지않을까?『눈부시게불완전한』은의료적치유에만집중된기존의논의에서눈을돌려,특정한몸과마음을장애화(disabling)하는문제를검토해보자고제안한다.
이책이장애정체성과자긍심을주장하는전략으로치유에반대하는단일한입장만을고집하는것은아니다.일라이클레어는책의후반부에서FTM(FemaleToMale)트랜스젠더로서가슴재건수술과테스토스테론치료를선택하기까지의여정을고백하며,그과정에서경험한자기모순과치유,욕망의정치성에관해치열하게사유한다.백인이라는특권과선천적뇌성마비장애인이라는자신의위치성을객관적으로인식하고있는저자는,다양한인종,계급,젠더,질병,섹슈얼리티를가진당사자들이치유와관계맺는여러방식을조명한다.소수자들의자긍심과정체성이치유와양립할수있음을보이고,자긍심을주장하는일이교차적인정체성을가진이들에게어려움으로작용할수있음을사려깊게논의한다.이렇듯서로다른정체성과차이에기반해연대의가능성을탐색하는『눈부시게불완전한』은진화중인장애,퀴어,젠더,페미니즘담론에귀중한길잡이가되어줄것이다.

지워지고잊힌존재들을되살리는문학적상상력
환경과비인간생물로뻗어나가는클레어식연대

개인의고통에서출발해역사속소수자,나아가비인간생물의삶으로확장하는이책은형식적으로도눈여겨볼만하다.〈7장치유의한가운데〉는우생학적법안아래에서‘정신박약’으로낙인찍히며강제불임수술을받아야했던캐리벅과그녀의어머니에마벅의이야기를소개한다.일라이클레어는다양한문헌과자료를바탕으로캐리벅의목소리를상상하며,그녀를글의화자로직접등장시킨다.역사의빈칸으로남아있는존재들의목소리를되살리고,그들에게질문하고말을건네는클레어의서술은이책에특별한생명력과문학적상상력을불어넣는다.
『눈부시게불완전한』에서권력집단의소수자억압은,인간의자연억압으로확장된다.저자는서로다른몸과마음의차이를지우고‘정상적’인존재만을양산하는치유이데올로기에서하나의작물만을재배하는‘단일재배농법’을읽어낸다.이러한다양성의축소가얼마나많은생태계를파괴했는지기억해야한다는클레어의이야기는자못섬뜩하다.‘문제’를제거해이전의상태로되돌리는회복개념대신,다양한생물들간의상호의존성을되살리는관점으로‘회복’을새롭게상상해보자는클레어의독창적인통찰이빛난다.
각장사이에배치된산문(〈스트로브잣나무〉,〈경련과떨림〉,〈돌〉,〈소라껍데기〉,〈구르기〉,〈배롱나무〉,〈드랙퀸〉,〈생존노트〉,〈자전거타기〉)은“장들을연결하면서도,장마다개진되는주장과논증에포섭되지않는순간과느낌에주의”를기울인다.이글들은감각을연채자연과인간의상호의존성을함께느껴보자는,독자들을향한클레어의초대다.미국의지명을원주민부족의영토로표기한작업역시자연과땅에새겨진폭력과역사를폭넓게인식하는클레어만의감수성이엿보이는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