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22.00
Description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이후 6년,
김승섭이 읽고 만나고 부대끼며 분투한 기록
공부는 무엇이고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소수자의 건강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질문해 온 김승섭이 그간의 연구를 소개하는 공부의 기록이자, 그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고백하는 분투의 기록이다.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노동자 등 한국 사회에서 지워진 존재들의 고통에 구체적 데이터와 정확한 문장으로 응답하기 위해 그는 “읽고 만나고 부대끼며” 막막한 상황에서도 길을 찾아 분투한다. 책에는 과학의 이름으로 소수자에게 낙인을 부여했던 19세기 논문부터 국내 성소수자의 건강에 대한 최신 연구까지, 풍부한 학술 자료가 적재적소에 소개된다. 데이비드 윌리엄스, 캐런 메싱 등 세계적 학자들과 김승섭이 만나 나눈 대화들은 한국 상황을 객관적 시각에서 돌아보게 하며, 그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은 현장감을 더한다.

김승섭은 말한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질문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6쪽). 그의 질문은 현실적 해결책만을 구하지도, 정치적 올바름만을 좇지도 않는다.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화장실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도 “한국 여성에게 공중화장실은 불법 촬영과 폭력을 걱정해야 하는 불안한 공간”(124쪽)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함께 지적한다. HIV 신규 감염을 줄일 보건정책을 논하면서도, 동시에 그 질병과 함께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감염인의 사회적 존엄을 지킬 길을 고민한다. 그가 말하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란 공기처럼 존재하는 차별을 정확한 데이터로 마주하고, 당사자의 고통을 함께 이야기하고, 문제의 복잡한 맥락을 헤아리는 모든 과정이다.

“제가 서 있는 자리에서는 이미 생산되어 있는 지식만으로는 답할 수 없는 질문에 답해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는 읽고 만나고 부대끼며 길을 찾으려 했습니다.”(6쪽)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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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승섭

연세대학교의과대학을졸업하고,서울대학교보건대학원에서석사학위를,하버드대학교보건대학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조지워싱턴대학교보건대학원과고려대학교보건과학대학보건정책관리학부에서일했고,2022년부터서울대학교보건대학원환경보건학과부교수로재임중이다.
의학과역학을이용해차별경험과고용불안등사회적요인이장애인,성소수자,비정규직노동자와같은사회적약자의건강을어떻게해치는지연구하고있다.환자를치료하는것만큼사람들이아프지않도록예방하는게중요하다고생각하고,열심히살아가는보통사람들이자기삶에긍지를갖지못한다면그것은사회의책임이라고생각한다.현재지체장애인,발달장애인,발달장애인가족의삶과건강에대한장기추적관찰연구와이주민을비롯한취약계층노동자의근무환경과건강에대한연구를진행하고있다.
천안소년교도소에서공중보건의사로일한이후,재소자인권에대한관심을이어가다국가인권위원회의「구금시설건강권실태조사」에참여했다.2014년「인턴·레지던트근무환경연구」,2015년「쌍용자동차해고노동자건강연구」,국가인권위원회의「소방공무원의인권상황실태조사」,2016년「한국성인동성애자·양성애자건강연구」,세월호특조위의「단원고학생생존자및가족대상실태조사연구」,2017년「한국트랜스젠더건강연구」,2018년「천안함생존장병건강연구」,「백화점·면세점화장품판매직노동자근무환경및건강연구」,2021년「소방공무원의COVID19관련근무환경과건강연구」,2022년「코로나19취약계층의건강불평등연구」,2023년「LG전자지체및뇌병변장애인접근성개선연구」등을진행했다.삼성반도체직업병소송,동성결혼소송,트랜스젠더성별정정소송,군형법위헌소송,성폭력생존자PTSD소송등에서법정증언을하거나전문가소견서를제출한바있다.
지은책으로『아픔이길이되려면』,『우리몸이세계라면』,『미래의피해자들은이겼다』,『오롯한당신』(공저),『우리의상처가미래를바꿀수있을까』(공저)가있으며,옮긴책으로『장애의역사』가있다.

목차

들어가며

1.차별은공기처럼존재한다

타인의고통에응답하는공부1
당신은‘정상인’입니까?그럼특권층입니다
:흑인,여성,성소수자를차별해온기득권의논리
절대로차별하지않는다는착각
:미국의흑인범죄율과한국의난민수용논란
당신들의쉽고잔인한,어떤해결책에대하여
차별은실제로경험하지않아도아프다
:인종차별과건강연구본격화한사회학자데이비드윌리엄스
벽장을벗어난당신의목소리가필요하다
:정신질환당사자운동강조하는심리학자패트릭코리건
이동,낙인,정치,합리성

2.지워진존재,응답받지못하는고통

타인의고통에응답하는공부2
‘오줌권’을위한투쟁은아직끝나지않았다
:화장실로살펴보는차별과배제의역사
한국사회의‘상아없는코끼리’는누구인가
:생존경쟁속인간에대한최소한의예의를묻다
가장아픈사람이가장앞에나선싸움‘미투’
:용기를낸사회적약자가겪는2차고통
‘보이지않는고통’을응시하다
:여성의일터로걸어들어간과학자캐런메싱
누구를위한반지하방퇴출인가

3.한국사회의‘주삿바늘’은무엇인가

타인의고통에응답하는공부3
1980년대에머물러있는에이즈에대한인식
:주삿바늘교환프로그램과비과학적낙인
균열과혼란에서시작되는변화
:김도현,김지영활동가와의HIV감염과장애대담
손쉬운낙인으로는아무것도해결할수없다
:HIV감염인에대한낙인연구하는보건학자돈오페라리오
두려움도검열도없는하루
:스무번째서울퀴어문화축제를축하하며
누구도두고가지않는사회를위하여
:포괄적차별금지법단식농성제정활동가미류,종걸
차별에침묵하는정치움직이려면
:정치권의‘합리적주장’을데이터로반박하는경제학자리배지트
근거의부재인가,의지의부재인가

4.우리의삶은당신의상상보다복잡하다

내본질은누구도무엇도바꿀수없어요
:서지현검사가말하는한국사회피해자의‘말하기’
피해자는피해자답지않다
:고통의개별성을포착한영화「공동정범」의김일란감독
헬렌켈러의빛과그림자
:오류와모순을품고당대를살아낸한인간과의대화
이것의저의싸움입니다
:미래의피해자들은이길수있을까?유희경시인과나눈이야기

출판사 서평

차별은실제로경험하지않아도아프다
지워진존재들의고통에응답하는공부

응급의학과의사인녹스토드박사연구팀이1993년발표한논문은큰논란을일으킨다.연구팀은의료진의진통제처방에가장큰영향을준요인이환자의인종이었다는결과를보여주었다.긴뼈골절로응급실을찾은히스패닉환자중에서진통제를처방받지않은비율이,백인환자와비교해2배에육박했던것이다.명시적으로는누구도차별하지않는다고말하는의료진조차이처럼인종에따른‘불평등한치료’를한것은무의식에내재된‘암묵적편견’탓이다.문제는암묵적편견이실제차별행동으로이어지지않더라도소수자의몸을아프게한다는점이다.부정적시선을보내는사람과의관계가여러질병을유발하는스트레스호르몬인코르티솔을증가시키기때문이다.

한국의상황은더심각하다.어떤이들은아파도병원에가지못한다.2020년국가인권위원회조사에따르면,출생시법적성별과외모에드러나는성별정체성이다른트랜스젠더5명중1명은신분증을제시해야하는상황에서부당한대우를받을까두려워병원이용을포기한적있다고응답했다.휠체어를사용하는장애인들은많은경우,운전기사나승객들의따가운시선이두려워대중교통이용을포기한다.김승섭은한국사회가종종암묵적편견을넘어명시적편견을드러낸다고지적한다.실제로2018년내전을피해제주도에온예민인484명에대한난민수용논란에서많은호응을얻은주장은이들이‘범죄를일으킬수도있다’는,명시적편견에호소하는목소리였다.

김승섭은차별을연구하는과정에도차별이존재한다고,모든고통이동등하게주목받지는않는다고고백한다.그는연구에참여한보상으로지급한기프티콘에있는‘트랜스젠더연구’라는말이아웃팅이될수도있었음을깨닫는다.이후장애인이동권연구에서같은실수를피했지만,휠체어를사용하는동료에게편의점기프티콘을받아도직접사용하기힘들다는말을들었다는일화는‘차별은공기처럼존재한다’는사실을실감하게한다.한편쌍용자동차해고노동자연구를처음진행했던2015년당시연구자인자신조차해고노동자의아내를‘고통의당사자’로생각하지못했다는성찰은후속연구와백화점·면세점여성노동자의‘보이지않는고통’에응답하는공부로이어진다.

“저는연구자이지만제가비평가가아니라무대위에올라와있는플레이어라고생각합니다.(…)사회적약자의관점에서세상을바라보며생산되지않은지식을생산하는일은누군가가매우의도적으로준비하고행동하지않으면진행되지않습니다.”(47쪽)

성급한해결책이지워버린당사자의삶
정말‘합리적인’기준은무엇인가?

2022년여름,기록적인폭우로인해서울시신림동반지하방에서3명이숨지는참사가발생했다.이틀뒤서울시는지하·반지하주거를금지하겠다는‘안전대책’을발표했다.반지하방에서살수밖에없는당사자의복잡한사정을고려하지않은결정이었다.김승섭은세월호참사당시‘해경폐지’를연상시키는이런성급한해결책으로는문제를해결할수없다고단언한다.반면1988년미국뉴욕시는당사자의삶을중심에놓고이른바‘주삿바늘교환프로그램’을시행했다.HIV신규감염을줄이기위해사회적낙인에굴하지않고마약중독자들에게깨끗한주삿바늘을무상제공한것이다.이정책은곧바로커다란논란을일으키지만,결과적으로수많은생명을살리는성과를거둔다.

HIV감염인낙인을연구하는보건학자돈오페라리오는김승섭과의대담에서“보건학적개입은개인의삶에가치판단을하지않”는다고(212쪽)말한다.마약중독에대한가치판단에앞서당장생명을지킬길을찾은주삿바늘프로그램처럼말이다.그러나‘죽음보다는삶이낫다’는보건학의대전제앞에서,김승섭은한걸음더들어가이렇게질문한다.“과연모든개인에게서죽음보다삶이나은것일까?”“‘치유’되지못하는질병을가진이들은내내그멍에속에서허우적대야하는가?”(176~177쪽)그질문은곧한국사회에포괄적차별금지법을필요하다는논의로이어진다.“모든소수자가두려움없이자신을긍정할수있는세상,그것이민주주의의기본이라고생각합니다.”(220쪽)

책에서김승섭은직업병피해자,성폭력생존자,성소수자와관련된소송에서전문가소견서를쓰거나법정증언을했던경험을소개한다.그때마다상대측대형로펌변호사들은주장을뒷받침할근거를마련하고,우아한얼굴로합리적주장을펼치며종종승소했다고한다.“그러나어떤이들은자신이살아온고된역사와몸깊숙이새겨진상처말고는자신의주장을뒷받침할근거를갖지못”한다.그는“그러한조건위에서합리성과억지를구분하는‘합리적인’기준은무엇이어야할”지(97쪽)묻는다.사회적합의라는‘합리적’근거를이유로차별금지법을‘나중에’처리할일로치부하는한국사회에서,과학적합리성을누구보다치열하게고민했을연구자의질문은큰울림을준다.

“선한의도가선한결과를낳지않는다.세상은복잡하다.사회문제해결은그복잡함을받아들이는데에서시작한다.복잡하게얽힌매듭을푸는대신,큰칼을휘둘러자르는것은칼을휘두른이를영웅처럼보이게할지모른다.하지만그영웅적결정은종종상황을악화시킨다.”(161쪽)

고유한역사를지닌한사람,한사람
피해자는피해자답지않다

책에서김승섭은2018년미투운동을촉발한서지현검사,용산참사피해자들이겪는개별적고통을포착한영화「공동정범」의김일란감독을만난다.1~3장에서대담을나누는데이비드윌리엄스,패트릭코리건,리배지트는각각인종차별,정신질환낙인,성소수자혐오를겪은당사자들이기도하다.이들이일관되게말하는것은피해자나소수자에게도저마다의고유한역사와욕망이있고,다양한정체성이있다는점이다.서지현검사는“피해자야말로행복해져야할사람”(254쪽)이라고말하며한국사회에서요구하는전형적인피해자다움을거부한다.김일란감독은우리가아는“피해자의모습은일부분”(266쪽)이라며피해자들이지닌입체적면모를바라보아야한다고말한다.

그점에서헬렌켈러의이야기를주목할만하다.헬렌켈러의삶에는빛나는성취뿐아니라시대적한계와모순이분명존재한다.그러나김승섭은헬렌켈러가이룬성과뿐아니라,한계와모순을함께본다고해서그녀의삶을폄하할이유는없다며오히려“‘장애를극복한’박제된영웅보다,오류와모순을품고당대를살아낸한인간과더많은대화를나누길원한다”라고(285쪽)말한다.그가이번책에서연구중에느낀서운함이나고충을스스럼없이고백한것은그때문일것이다.이는“앞뒤맥락을잘라낸채몇마디말을인용하며사람과사건에대해함부로판단하는일이정의의이름으로행해지는시대에”(8쪽)우리가‘타인의고통에응답하는공부’를해야할이유이기도하다.

“모든참사나재난에서도각인간은고유하거든요.개인마다고유한관계와역사와상황속에서서로다른욕구와고민이있어요.그런데우리는어떤공통의사건을겪었다는이유로,그들을하나의동일한집단으로여길때가많아요.”(300쪽)

데이터와감정사이에서
학자로서내놓을수있는가장나은무기

김승섭은첫책『아픔이길이되려면』의내용이“모두에게환영받는보편의지식보다는,기댈곳없는이들이손에쥘수있는작은무기로쓰이기를원했”다고(8쪽)말한다.천안함생존장병들의이야기를담은전작『미래의피해자들은이겼다』에대해서도“학자로서내놓을수있는가장나은무기를세상에내놓고싶었”다고(294쪽)말한다.이를위해,김승섭은사람들이다가오기어려운학술언어에머물지도,데이터가뒷받침되지않는감정적인글에그치지도않도록섬세하게언어를갈고닦는다.그의표현을빌리자면,“감각을곤두세우기위해내몸을사건속에던져놓는씨줄”과논문과책을읽으며“사건을바라보는통찰을기르는날줄”이만나는지점을넓히는과정이다(311쪽).

『타인의고통에응답하는공부』는김승섭이‘성실한학자’로서내놓은또하나의무기이다.책에서그는‘예멘난민수용논란’,‘포괄적차별금지법제정’,‘장애인이동권투쟁’등한국사회에서가장민감한주제,혹은여론이한쪽으로기운사건에대해서도신중하지만단호하게목소리를낸다.주제에대한엄밀한태도,원인의원인을파고드는치열한질문,특유의정갈한문장은한층깊어졌다.『아픔이길이되려면』을통해질병의사회적책임을,『우리몸이세계라면』을통해생산되지않는지식에대한학계의책임을물었던김승섭이,이번책에서는‘타인의고통에응답하는공부’를하는사람으로서의책임을자기자신에게묻는다.그공부가과연우리와무관하다고말할수있을까?

“『타인의고통에응답하는공부』는제가연구를하는과정에서겪었던숱한시행착오와길이보이지않는막막한상황에서도계속질문하기를포기하지않는사람들과만나나눴던이야기를모은책입니다.이책으로한국사회에서대중을상대로지금의제가할수있는이야기는마무리됩니다.”(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