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역사

불평등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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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인류사 속 불평등의 역사를 꿰뚫다!
석기 시대에서 21세기까지 경제적 불평등의 역사를 다룬 『불평등의 역사』. 공간적으로도 유럽과 아시아는 물론 남미, 아프리카 대륙까지 불평등의 사례를 찾아 나서며 그 방대한 불평등의 역사를 살펴본다. 불평등은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증가해왔다. 최근 몇 십 년간 소득과 부는 유럽과 북미에서, 구소련에서, 그리고 중국과 인도 및 기타 지역에서 더욱 고르지 않게 분배되어왔다. 이러한 높은 불평등에는 극도로 오래된 족보가 있다.

수천 년 동안 문명은 평화적인 평등화에 적합하지 않았다. 따라서 기존 질서를 붕괴시키고 소득과 부의 분배를 압박해 빈부 격차를 좁히는 데는 격렬한 충격이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평준화는 대중 동원 전쟁, 변혁적 혁명, 국가 실패 그리고 치명적 대유행병이었다. 이 네 가지의 격렬한 분출이 불평등의 벽을 허물어왔다.

그러나 경제 구조, 사회 규범 및 정치 제도가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여전히 높거나 아니면 새로운 성장 활로를 찾았다. 폭력적 충격이 글로벌 무역망을 파괴하고 사회적 결속과 정치적 화합을 북돋우고 공격적인 재정 정책을 지속시킨 반면, 폭력적 충격의 완화는 소득 분산과 부의 집중에 대한 견제를 약화시켰고, 다시 불평등은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역사를 돌아보며 저자는 한 개별 국가뿐 아니라 인류가 앞으로 불평등을 감소시키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함께 고민하게 한다.
저자는 책에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모든 측면을 다루려 애쓰지 않았다. 국가 내부의 물질 자원 배분에 초점을 맞추고, 특정 사회 내에서의 조건, 요컨대 소득과 부의 분배에 그것이 미치는 영향을 장기적으로 추적하고 비교하고자 했다.

저자

발터샤이델

지은이:발터샤이델(WalterScheidel)
오스트리아출신의역사학자이다.1984~1993년비엔나대학교에서고대사와화폐학을공부했으며,1993년에박사학위를받았다.2003년스탠퍼드대학교에자리를잡기전까지비엔나대학교,미시간대학교,케임브리지대학교등에서근무했다.현재스탠퍼드대학교인문학부딕커슨교수이며,고전및역사학교수이자인간생물학부의케네디그로스먼선임연구원이기도하다.그동안전근대사회·경제사,인구통계학,비교역사학등폭넓은분야에걸쳐관심을갖고연구해왔다.주요저술및편집한책으로는《나일강의죽음:로마령이집트의질병과인구통계학(DeathontheNile:DiseaseandtheDemographyofRomanEgypt)》《로마와중국:고대세계제국에대한비교견해(RomeandChina:ComparativePerspectivesonAncientWorldEmpires)》《고대중국과로마의국가권력(StatePowerinAncientChinaandRome)》《전근대국가의재정체제및정치경제학(FiscalRegimesandthePoliticalEconomyofPremodernStates)》《인간속박에대하여:노예제와사회적사망이후(OnHumanBondage:AfterSlaveryandSocialDeath)》등이있다.현재캘리포니아주팰로앨토에서살고있다.  

옮긴이:조미현
서울대학교신문학과를졸업하고,영화잡지〈월간키노〉에서기자로일했다.그밖에장편영화연출부,독립영화프로듀서,실험극단기획자등으로활동했다.옮긴책으로《세계경제의황금기는다시오지않는다》《불평등의역사》《에드먼드버크와토머스페인의위대한논쟁》《십대의재능은어떻게발달하고어떻게감소하는가》《마음의혼란》이있다.  

목차

그림과표목록
감사의글
서문:불평등이라는도전과제

1부불평등의역사
01불평등의탄생
02불평등의제국
03불평등의기복

2부전쟁
04총력전
05대압착
06산업화이전의전쟁과내전

3부혁명
07공산주의
08레닌이전

4부붕괴
09국가실패와체제붕괴

5부전염병
10흑사병
11대유행병,기근그리고전쟁

6부대안
12개혁,불황그리고대의권
13경제발전과교육
14만일이랬다면?역사로부터반사실로

7부돌아온불평등과평준화의미래
15우리의시대
16우리의미래는?

부록:불평등의한계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우리인간이영원히풀수없는딜레마,불평등그폭력의역사

1.
억만장자가몇명있어야세계인구절반의순자산과맞먹을까?2015년에는지구상최고부자62명이인류의절반인하위35억명의개인순자산을합친것만큼소유했다.전년도(2014년)에는그문턱을통과하는데억만장자85명이필요했고,아울러그리오래전도아닌2010년에는지구상나머지절반의자산을상쇄하려면388명이자기의재원을그러모아야했다.
서두에이런내용을언급하는것은평화가오래지속될수록빈부의격차는커지며,부와소득이더집중된다는사실을말하기위함이다.물론빈부격차는국가간차이도있을수있고,한국가내에서도서로다를수있다.그렇더라도평화스러운시간이오래지속될수록빈부의격차가커진다는사실엔변함이없다.
그런데물질적불평등은우리모두를살아있게하는데소용되는최소한도이상의자원에대한접근성을필요로한다.잉여란수만년전에도이미존재했으며,그것을불균등하게나눌채비가된인간들역시항상있었다.옛날마지막빙하기의수렵·채집인은시간과재물을할애해어떤개인을다른사람들보다훨씬더호화롭게매장했다.그러나전적으로새로운차원에서부를창출한것은바로식량생산―농경과목축―이었다.불평등의증가와지속은충적세(沖積世)를규정하는특징이됐다.작물재배와가축사육으로생산자원을축적하고보존하는일이가능했다.이런자산에대한권리를규정하기위해사회규범이발전했고,여기에는후손에게그것을전해주는능력도포함됐다.이러한조건아래소득과부의분배가다양한경험에의해형성되기에이르렀다.요컨대건강,결혼전략과번식성공,선택적소비와투자,대풍년,메뚜기떼와우역(rinderpest,牛疫:소나그비슷한동물에게발생하는전염병―옮긴이)등이한세대에서다음세대로전해질재산을결정했다.운과노력의산물은시간의경과와더불어장기적으로불균등한결과를초래했다.
물론이론상으로는체제가물질자원의배분과노동결실의균형을바로잡기위해고안한개입을통해막고개를쳐들던격차를고르게다질수있었을것이다.일부전근대사회가실제로시행했다고알려진것처럼말이다.하지만사회적진화는일반적으로현실에서는역효과를가져왔다.식량의가축화는또한길들여진인간을만들었다.고도로경쟁적조직형태인국가의형성은소득과부에대한접근기회를편중시키는가파른권력위계와강제력을구축했다.정치적불평등은경제적불평등을강화하고증폭시켰다.대부분의농경시대에국가는다수를희생시켜소수의배를불렸다.급료와공공서비스혜택에서오는이익은부패,갈취,약탈로얻는것에비하면아무것도아니었다.결과적으로많은전근대사회는성장과더불어최대한불평등해졌고,낮은1인당생산량과최소성장이라는조건아래서소수엘리트들이잉여를전용하는한계를시험했다.그리고좀더온건한체제가더왕성하게경제발전을촉진할때―이는부상중이던서구에서가장두드러졌다―높은상태의불평등은끊임없이지속됐다.도시화,상업화,금융부문의혁신,갈수록세계적규모를갖추어가는무역그리고마지막으로산업화는자본소유자들에게풍성한수익을안겨줬다.노골적권력행사에서비롯된지대(rent,地代)가줄어들어엘리트를살찌우던전통적원천이차단되자좀더안전한재산권과국가공약이세습적인개인자산의보호를강화했다.경제구조,사회규범및정치제도가달라졌음에도불구하고소득과부의불평등은여전히높거나아니면새로운성장활로를찾았다.
수천년동안문명은평화적인평등화에적합하지않았다.안정은다양한사회와각기다른발전수준을망라해경제적불평등을편애했다.이는빅토리아시대의영국에서처럼파라오의이집트에서도그랬고,미국에서와마찬가지로로마제국에서도그러했다.기존질서를붕괴시키고소득과부의분배를압박해빈부격차를좁히는데는격렬한충격이그무엇보다중요했다.역사를통틀어가장강력한평준화는예외없이가장강력한충격으로인해발생했다.네가지다른종류의격렬한분출이불평등의벽을허물어왔다.요컨대대중동원전쟁,변혁적혁명,국가실패그리고치명적대유행병이그것이다.저자는이것들을‘평준화의네기사(騎士)’라고부른다.이것들은성경의4인방처럼“땅에서평화를거두”고“칼과굶주림과흑사병과들짐승으로사람들을죽”였다.이것들은때로는독자적으로움직이고때로는서로협력하며현대인에게흔히묵시록이나다름없어보이는결과물을양산했다.수억명이이것들의뒤를따라목숨을잃었다.그리고사태가잠잠해질때쯤가진자와못가진자사이의간극이줄어들었다.가끔은극적일정도였다.

2.
일본은한때지구상에서가장불평등한나라중하나였다.1938년이나라의‘1퍼센트’는총신고소득의19.9퍼센트를벌어들였다.그다음7년안에그들의점유율은3분의2가량떨어져6.4퍼센트까지곤두박질쳤다.이런손실의절반이상은최상층중에서도가장부유한0.1퍼센트가유발했다.그들의소득점유율이같은시기9.2퍼센트에서5분의4가량떨어져1.9퍼센트를기록했기때문이다.
이런소득분배의변동이아무리급작스럽고심각했다해도엘리트의부가훨씬더극적으로무너진데비하면아무것도아니다.일본에서가장큰1퍼센트재산의실질신고가격은1936~1945년90퍼센트,1936~1949년거의97퍼센트떨어졌다.전체재산중상위0.1퍼센트는훨씬손해를많이봤다(각각93퍼센트와98퍼센트이상).이런사실들은국민소득지니계수(0에가까울수록평등하고1에가까울수록불평등)가1930년대후반0.45~0.65어디쯤이었다가1950년대중반0.3근처로떨어졌음을통해서도상류층의소득및부점유율의위축이심대했을뿐아니라어마어마한평준화가이루어졌다는사실을알수있다.그렇다면이렇듯소득및부의불평등이완화된이유는무엇일까?그것은제2차세계대전으로인한엄청난살육과파괴때문이었다.
그렇다면일본의경험은정말전형적인경우였을까?다른대답이필요없다.무조건‘그렇다’이다.“드라마같은30년간의전쟁”이라고샤를드골이말했듯이1914~1945년은모든선진국에의미있고가끔은극적인소득과부의분산을낳았다.즉근대대중전쟁과그전쟁의경제적?정치적?사회적?재정적요소및결과가유례없이강력한평준화수단으로작용했다는데의심의여지가없다.
프랑스는양차대전으로가장큰피해를입었는데,첫번째전쟁으로자본금의3분의1이파괴되고국민가계소득의자본소득비중은3분의1로떨어졌으며GDP또한동일한비율로추락했다.그리고1920년대중반무렵최대0.01퍼센트재산의평균가치는전쟁이전수준에비해4분의3이상떨어졌다.엘리트의재산붕괴는제2차세계대전중에계속되었다.이번에는자본금의3분의2가소멸했는데,첫번째전쟁때수축률의2배에달했다.프랑스최대재산의4분의1을차지하던국외자산이증발했으며,상위소득점유율은이시기에급격하게떨어졌고,이어진전후인플레이션은단몇년만에공채의가치와전쟁채무를무너뜨렸다.상위0.01퍼센트의재산가치는결과적으로1914~1945년90퍼센트훨씬넘게떨어졌다.
영국은제1차세계대전중국부의14.9퍼센트를잃고,제2차세계대전때다시18.6퍼센트를잃었다.소득상위0.1퍼센트의문턱은제1차세계대전때는평균소득의40배에서20배로,제2차세계대전때는30배에서20배로떨어졌다.세금공제후상위소득점유율의하락세는한층더두드러졌다.요컨대1937~1949년상위1퍼센트는거의절반,상위0.01퍼센트는3분의2가떨어졌다.전체사유재산중가장큰1퍼센트의비중은70퍼센트에서50퍼센트로줄었다.
미국의경우도마찬가지여서양차대전과그사이대공황을거치며소득점유율은세차례에걸쳐하락했다.전체적으로1916~1945년상위1퍼센트는총소득에서그들이차지한비중의40퍼센트를잃었으며,상위0.01퍼센트의소득점유율은같은기간동안80퍼센트하락했다.또한미국에서대공황은다른주요교전국에서보다소득과부의격차를평준화하는데전쟁자체와비교해더큰역할을했다.
따라서우리는피케티가“20세기에불평등을줄인것은단연코전쟁이라는혼돈이었고,그에수반된경제적?정치적충격이었다.더큰평등을지향하는점진적이면서도합의에기반을둔갈등없는발전이란없었다.20세기에과거를지우고사회를새롭게다시시작할수있게끔한것은바로전쟁이지,조화로운민주주의나경제적합리성이아니었다”고한주장은타당하다.
그렇다면교전국에서상이한결과를경험한나라는없는가,또전쟁에직접관여하지않은나라들이겪은결과는어떠한가?결론은전쟁에직접참여하지않은국가는그정도가훨씬작지만,마찬가지로불평등이완화됐음은분명한다(211~277쪽참조)
지금까지양차대전이불평등을어떻게,어느정도완화시켰는지살펴보았다.물론군사적충돌은오랫동안인류역사에만연한특징이었지만,오직특정유형의전쟁만이그만큼보편적인또다른현상―소득과부의불평등한분배―을약화시켰다.승자든패자든매한가지로근대의대중동원전쟁은평준화의잠재적수단이었음이드러났다.전쟁과관련한시책이전사회에스며들고,자본자산이가치를상실하고,부자들로하여금공정한몫을지불하도록할때마다전쟁은비단“인간을죽이고사물을박살내기”만했던게아니라빈부격차를좁혔다.제2차세계대전에서는이런영향이전쟁중은물론그이후에도전시정책의지속으로유지되면서제대로작동했다.선진국시민이한세대혹은그이상불평등하락을누린것은이런전례없는전지구적충돌의폭력성덕분이었다.유사한물질적격차의압착은제1차세계대전도중과그이후에도일어났다.그보다과거에는이특별한스타일의전쟁사례가드문데다보통은평준화와연결되지않는다.다시말해범위가좀더국한된전쟁은역사를통틀어보편적현상이었지만,일관된성과를내놓지는못했다.약탈과정복이라는전통적인전쟁은보통이긴쪽엘리트에게혜택을주고불평등을신장시켰던것이다.
이처럼나라간충돌이불평등을감소시킬때가있다면,국가내부의충돌은어떤결과를가져올까?우리는최근역사에서내전이확실한영향을끼치지못했으며,영향을끼쳤다하더라도기존의격차를악화하는쪽이었음을이미알고있다.그런데권력을쟁취하고소득과부의분배를고르게하는데성공한더욱야심찬운동은비교적가까운과거에일어났다.큰전쟁의경우와마찬가지로행동의강도가결정적변수였다.대부분의전쟁이평준화성과를내지못한데반해,대중적군사운동은기존질서를뒤엎을수있었다.반란중에서모든개별중소도시와개별마을의자원을비슷한정도로속속들이동원한경우만이급진적평준화로귀결됐다.

거듭말하지만관건은폭력의양자체였다.양차대전이인류역사상최악의유혈낭자한전쟁이었듯세상을가장평등하게만든혁명역시기록으로남겨진국내의격변중에서가장피비린내사는사건이었다.평준화의수단으로서대규모폭력이야말로핵심골자라는것을반란과혁명에관한비교에서명확하게드러날것이다.가장유의미한증거는역시공산주의혁명이소득과부의극적분산을초래한20세기에일어났다.또프랑스혁명과기타농민봉기처럼무력으로국내상황을타개하려한전근대적시도들을고찰하는데(305~335쪽),대개는최근의혁명만이대다수인구의부와소득분배에영향을미칠만큼충분히강력했던것으로밝혀졌다.
제1차세계대전이후가장극적인불평등감소가뒤따른곳은러시아였다.하지만다른사례들과대조적으로평준화는전시의개입과전이혹은전후의재정붕괴가아닌,오히려전쟁의잔해로부터탄생한급진적혁명의대격변으로부터초래됐다.1917년의대대적인경기침체는이미대토지장악으로귀결된농민봉기를촉발했고,파업노동자들은많은공장의통제권을확립한뒤11월6일과7일볼셰비키에의한수도무장탈환에서극에달했다.상트페테르부르크의겨울궁전을기습한바로다음날인11월6일,신설된인민위원회는레닌이손수작성한‘토지령’을통과시켰다.무엇보다강제재분배가초대의제였다.뒤이은법령은모든은행을국유화하고,공장을노동자평의회통제아래두고,개인의은행계좌를압수했다.
여러급진적인법령을거친끝에모든것을국유화하고징발했다.그렇게강압은승리했다.요컨대1937년소비에트농업의93퍼센트가강제로집단화하고,개인농장은완전히붕괴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