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늑대 (바이킹의 역사 | 반양장)

바다의 늑대 (바이킹의 역사 | 반양장)

$17.10
Description
침략자, 탐험가, 교역자로서 바이킹의 역사
이 책에서 저자는 위대한 바이킹의 이야기를 통해 서사시인, 영웅, 여행자로 이루어진 빼어난 북유럽 세계를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특히 신세계를 발견한 ‘행운의 레이프’, 프랑스의 골칫덩어리 라그나르 로드브로크, 요크를 지배한 에리크 피도끼왕, 술수에 뛰어난 하랄 하르드라다 등은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 바이킹 시대의 사가를 한층 더 빛내준다. 특히 당시 지도와 인명·지명 등 사전을 실어 이해를 돕는다.
저자

라스브라운워스

저자라스브라운워스(LarsBrownworth)는저술가,강연자,방송인이자교사이다.〈월스트리트저널〉에기고해왔으며,역사의대중화에크게기여한인물로〈뉴욕타임스〉에소개되기도했다.지은책으로《서구에지다:서구문명을일으키고사라진비잔틴제국(LosttotheWest:TheForgottenByzantineEmpirethatRescuedWesternCivilization)》《노르만족:침략자에서왕으로(TheNormans:FromRaiderstoKings)》등이있다.미국메릴랜드주에서살고있다

목차

지도
머리말:북방의망치
서문:바이킹의시대가열리다

침략자
01본국의바이킹
02샤를마뉴의눈물
03라그나르로드브로크
04악마토르길스
05이교도대군세
06사면초가의잉글랜드
07잉글랜드최후의왕
08아일랜드해의바이킹왕국
09클론타프전투
10걷는자롤로

탐험가
11리비에라지역의바이킹
12아이슬란드
13웨스턴아일스와그린란드
14빈란드

교역자
15루스인류리크
16미클라가르드
17비잔티움의매혹
18루스인에서러시아인으로

북유럽본국
19바이킹왕들
20하랄블로탄
21영국은의유혹
22북방의황제
23바이킹시대의종언

맺음말:바이킹의유산
부록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바이킹(Viking)’하면흔히무자비한침략·싸움·약탈을일삼으며스칸디나비아반도를근거지로둔‘해적’을가장먼저떠올린다.서구에서는용모양의배에서뛰어내려수도원을약탈한금발의야만인이미지를떠올린다고한다.이는300년의바이킹시대가서구기독교세계에안겨준트라우마가어느정도인지를말해준다.
이렇듯793년노르드전사들은잉글랜드의린디스판섬을공격해쑥대밭을만들었다.이후영국제도의섬상당수를굴복시키고유럽본토의파리와아헨등수도를차례로습격했다.이들은동쪽으로방향을틀어중부유럽으로나아가키예프를함락하고비잔틴제국의수도콘스탄티노플까지진출했다.
하지만바이킹의이야기에는잔혹한폭력그이상의것이있다.이들은법을만들고배심원에의한재판이라는참신한제도를잉글랜드에도입했다.또한훌륭한상인이었으며,아이슬란드에정착해더블린을건설하고바그다드에서북미연안에이르는정교한교역망을구축한탐험가이기도했다.
이책에서저자는위대한바이킹의이야기를통해서사시인,영웅,여행자로이루어진빼어난북유럽세계를생생하게되살려낸다.특히신세계를발견한‘행운의레이프’,프랑스의골칫덩어리라그나르로드브로크,요크를지배한에리크피도끼왕,술수에뛰어난하랄하르드라다등은‘밤의어둠속으로사라져간’바이킹시대의사가를한층더빛내준다.특히당시지도와인명·지명등사전을실어이해를돕는다.

바이킹이라는단어의기원
‘바이킹’이라는단어의기원은잘알려져있지않다.당시인9세기의기록에서는이침략자들을‘북방인(Northmen)’,‘데인인(Danes)’,‘노르드인(Norse)’,‘이교도(Heathen)’라불렀다.이들이주로공격의표적으로삼은앵글로색슨족은‘바다침략자’라는뜻의‘wicing’이라는단어를사용하긴했지만,이단어는11세기가되어서야처음등장한다.더나은설명은바이킹에게서나왔다.옛스칸디나비아어‘vic’은후미혹은만이라는뜻이고,오슬로피오르부근의만지역은칼을주조하는데쓰는철의주요생산지였다.‘바이킹’이라는단어는그만의지역민을일컫던데서비롯되어점차모든스칸디나비아의침략자를아우르는의미로확장되었을것으로추측한다.

바이킹의본거지
오늘날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로나뉜당시의스칸디나비아는극한의땅이었다.이들중기후가가장좋은나라는덴마크였다.덴마크는서부연안을오늘날의독일과공유하고있어자연스럽게서쪽방향으로탐험에나섰다.덴마크바이킹은저지대국가와프랑스각지로퍼져나갔고,마침내영국해협을건너영국으로까지진출했다.이들은거기에서부터에스파냐·이탈리아도공략했다.
오늘날노르웨이·스웨덴이자리한스칸디나비아반도는덴마크보다기후가한층더험악하다.이지역의동부해안은러시아쪽을바라보고있어서스웨덴바이킹은대부분러시아쪽으로항해했다.침략이아닌통상을위해서였다.
바이킹의땅에서가장험준한곳은영토의약3분의1이북극권보다더높은지역에위치한노르웨이다.노르웨이의기다란서부연안은암석으로이루어진섬들,배를타고북극권으로나아갈수있는연안항로,즉‘북쪽길〔northernway:노르웨이(Norway)라는이름이여기서비롯됐다〕’을만들어주는절묘한피오르들이마치장벽처럼차가운대서양의파도를막아준다.당연히노르웨이바이킹은북해로모험을나설때면서쪽을택했다.이들은그린란드에정착지를건설했으며1000년경신세계에도착했다.

바이킹역사에관한부족한자료
8세기에바이킹이왜본거지에서벗어나침략을일삼게되었는가하는문제를둘러싸고추측이난무한다.갑작스러운인구증가,정치적압력에서부터기후변화와기술혁신에이르기까지온갖설이분분하다.바이킹은공통의언어를사용했지만결코단일한민족이아니었으며,바이킹시대에도스칸디나비아에서살아가던이들대다수는결코고향을떠나지않았다.침략자들은모험에나서지않으면안되는모종의이유를가진다소수상쩍은소수의무리였다.한층복잡한문제는바이킹의이야기가그피해자들이기록한역사,좀더오래되고문명화한국가들의기록이들려주는이야기고,고고학이말해주는것역시몹시빈약하다는사실이다.
현존하는바이킹유적이변변찮은데는바이킹예술가들이나무로작업을한탓도있다.이들은여름에나무를잘라처음에는연회장이나배를만들고나중에는그들의문명을이루는목조교회(stavechurch)를세웠다.이가운데비교적원형을잃지않고끝까지살아남은유적은목조교회뿐으로,여기에는바이킹세계의쇠락기가반영되어있다.
바이킹은거의기록을남기지않았다.그들의룬문자는서사시나역사기록보다는마술적주문이나푯돌을표기하는데더알맞았다.

바이킹시대의시작
린디스판이라는별칭으로불리는홀리아일랜드,6세기에번잡한세상사에서벗어나영적피난처를구하던일군의수도사들이이섬에터를잡았다.그로부터100년이못되어섬남쪽곶에소(小)수도원이들어섰다.8세기말의새로운자신감을이수도원보다더잘보여주는곳은없었다.
대왕국4개와소왕국3개등7개의왕국으로분열되어있던잉글랜드는8세기에전역이번영을구가했는데,특히북부지역은문화적으로크게융성했다.787년앵글로색슨족연대기는잉글랜드농부들이“더할나위없이평온하게”일하고있다고기록했다.그러나그해가을,불길한전조가드러났다.웨섹스남부포틀랜드섬연안해에서경비병이정체가확인되지않은배세척을발견한것이다.
배를발견하면일단왕이파견한지방행정관에게보고하는것이해안경비병의의무였다.포틀랜드섬의지방행정관비두허드는그들을안내하려말을타고해안으로달려갔다.그런데미처입을열기도전에그들이비두허드를향해화살을쏘아댔고,그는그자리에서죽고말았다.비두허드는유럽에서처음으로바이킹과접촉한비운의주인공으로기록되었다.
이들의습격소식은삽시간에퍼져나갔다.두려움에떨던주민들은방어조치를취하기시작했다.하지만바이킹은단순한해적이아니었다.머잖아영국의대비책은터무니없이허술하다는사실이드러났다.793년마침내바이킹은대규모공격을감행했다.
이재난은유럽전역에커다란충격을안겨주었다.영국기독교사회의심장부가무너졌다면어딘들안전하겠는가.이러한사태가터진것은영국교회의도덕적해이탓이라는설이널리받아들여졌다.이에교회의개혁을촉구하는움직임이뒤따랐다.그러나제아무리치열한자기성찰도당시의도도한흐름을막아내지는못했다.이듬해에는동부연안의자로수도원과서쪽의스카이섬이피해를입었으며,795년에는아이오나수도원이약탈당했다.바이킹시대의시작이었다.

바이킹의문화
스칸디나비아인은서로싸우지않을때에는더러동물들을싸움붙이곤했다.이런식의취향은오늘날우리에게는무지막지한것처럼들린다.하지만바이킹은그외다른점에서는매우현대적이었다.
바이킹문화에서는남성과동등하다고는할수없으나여성도서구기독교사회의그어느곳보다많은권리를누렸다.많은소녀가열두살이라는이른나이에혼례를치렀지만,남편이없을적에는부인이가정의대소사를모두챙기고온갖중대사를직접결정했다.유럽의나머지지역에서와달리아내는재산을상속받고,남편과이혼하고,파경을맞았을때결혼지참금을돌려달라고요구할수있었다.
또이들은아이들에게부모를도와가사를거들도록장려했다.
사회질서는혹독한처벌을통해유지했다.간통을저지르다걸린남성에게는거꾸로매달아놓거나말에게짓밟히는형벌을내렸으며,방화범은화형에처했다.그런가하면이같은폭력적시대에어울리지않게바이킹은문화인이라면응당음악을즐길줄알아야한다고믿었다.
바이킹은신을모시기는하나‘종교’라는단어는사용하지않았다.예배를올리는‘공식적’방법도보편적교리도중앙교회도따로없었다.대신이들은지역에따라편차가크기는하지만일련의일반적인믿음을지니고있었다.얼음에뒤덮인대재앙으로부터몸을피할곳은없었지만그럼에도바이킹은끊임없이신들,특히바다의신들에게도움을호소했다.바이킹의세계는바다의세계였다.

바이킹과조선술
바다를중시한바이킹은남쪽으로가는세계를잘알고있었다.스칸디나비아는펠트·호박·철광상같은방대한자연자원을보유하고있었고,9세기경이미수백년전부터남부나동부지역과활발하게교역하고있었다.로마인과접촉한초기몇백년동안이‘이상하게생긴배’가내려온이유역시약탈이아니라통상을위해서였다.
최초의‘바이킹’침략은육상을통해이루어졌다.8세기말,대대적인바이킹의침략이가능했던것은조선술의혁신적인발달덕분이었다.
초기의바이킹선박은로마와켈트족의디자인을본뜬것이었다.여느선박과마찬가지로바이킹의배도속도가느리고거친바다에서잘뒤집혔다.그러던8세기어느때쯤이들은용골을창안해냈다.이단순한구조물이야말로항해술의발전에서가장괄목할만한성과였다.육지를벗어나멀리까지모험을나서는유럽인이거의없던시절에바이킹은목재·동물·식량따위의화물을싣고대서양을종횡무진누비고다녔다.
화물선,연락선,어선등수많은배가앞다퉈개발되었다.하지만특히군함,즉롱십(longship)은힘·유연성·속도가기막히게어우러진결과물이었다.해수면에서미끄러지듯나아가도록고안된롱십은특수기술없이도지역에서확보한재료만으로제작할수있었다.이배는참나무널빤지를겹붙여서만들었다.이렇게하면배가파도속에서방향을틀기가한결수월해진다.
바이킹의롱십은해양을횡단하는큰배에달린용골이없었으며,상대적으로흘수가얕아서깊은항구가필요한다른선박들과달리사실상어느뭍에든댈수있었다.따라서롱십은강위쪽까지항해하는것이가능했다.게다가일부롱십은들고나를수있을만큼가볍기까지했다.
바이킹시인들은롱십을‘파도타는준마’라고불렀지만‘먹이를찾아어슬렁거리는늑대’라고표현하는게더알맞았다.하지만롱십과관련하여가장놀라운점은속도였다.이들은평균적으로4노트로항해했으며,최대8∼10노트까지속도를낼수있었다.그덕에바이킹은거의실패없이기습공격에성공했다.

바이킹시대의종언:하랄하르드라다
노르웨이남동부에있는소왕국의두왕과혼인한아스타구드브란드대테르(?staGudbrandsdatter)의막내아들로태어난하랄하르드라다는거구(225센티미터에이르렀다고전해진다)였는데체구만큼이나대담한인성을지녔다.그는어머니로부터교활한마음과함께아이답지않은야심을물려받았다.
하랄이자신의야심에걸맞은명성을원한다면그것을충족할만한장소는딱한군데밖에없었다.하랄은부하들을이끌고드네프르강의급류를따라콘스탄티노플로향했다.그곳에서그는자신의역할이간절히필요하고또자신에게무한한자금을지원해줄주인을만났다.비잔틴제국사람들은스칸디나비아인왕족이바랑기안친위대에합류하는걸꺼렸으나미카엘은까다롭게굴처지가아니었다.
비잔틴해군에게는지중해동쪽에서아랍해적을무찌르라는과업이주어졌다.하랄은롱십을이끌고수많은공격을지휘했다.그런다음소아시아로건너가아랍인을비잔틴영토에서몰아냈다.같은해미카엘4세는그의생애에서가장야심찬군사작전에착수했다.시칠리아섬침공이었다.
하랄은대규모군대내에서도두각을나타냈다.그러나시칠리아군사작전은성공하지못했고,간질을앓던미카엘4세는1041년12월끝내숨을거두었다.그의뒤를이은미카엘5세는하랄에대한후원을내켜하지않았다.그런데하랄로서는다행스럽게도허약한미카엘5세는넉달만에유혈쿠데타로쫓겨나고말았다.이때쯤하랄은비잔티움을상당부분차지한상태였다.빛나는명성을등에지고키예프로돌아온그는거절했던야로슬라프에게딸을신부로줄것을요구해,마침내혼인하게되었다.이는모두그의부덕분이었다.
하랄은유일하게아쉬운점을채우기위해아내와함께노르웨이로항해를떠났다.거기서는조카망누스가왕위에올라있었다.하랄은왕의보물과영토의절반을요구함으로써자신의존재감을과시했다.망누스가거부하자하랄은호기롭게육지파괴자깃발을펼쳐들고자신의권위를인정하지않을수없게만들었다.
절박한망누스는삼촌을제지하기위해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