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정보기관의 역사: 파라오부터 NSA까지

비밀정보기관의 역사: 파라오부터 NSA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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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비밀정보기관과 스파이, 잠재적 적을 염탐하고자 하는 욕구의 실현!
정보기관은 모든 나라에 존재하고, 모두 각 국가의 이익을 위해 복무한다. 그 역사 역시 유구해서 고대 이집트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알렉산더 대왕 시대의 군사 첩자와 오늘날처럼 인공위성과 컴퓨터를 이용해 설명하는 정보원이 똑같지는 않다. 하지만 정치의 기본 원칙, 심지어 군대의 기본 원칙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하다. 특히 인간적 요소, 이를테면 한 사람의 첩자에 대한 신뢰와 불신 사이의 갈등은 더욱 그렇다.
이런 정보기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이중적이다. 잠재적 적의 동태를 파악해 우리를 지켜준다는 인식과 함께 도·감청을 통해 민간인 사찰 등 불법을 자행한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의 광범위한 감찰은 전 세계를 분노하게 했다. 미국 국가안전보장국이 감찰한 대상은 테러 집단뿐 아니라 이들을 지원한 국가, 평범한 시민들, 더 놀라운 것은 독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외국 정상들까지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최근 이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덴마크 공영라디오방송인 DR은 ‘미 국가안전보장국(NSA)이 덴마크 군사정보국(FE)과 맺은 안보 협력을 바탕으로 덴마크의 해저 정보 케이블을 이용해 2012~2014년 독일·프랑스·스웨덴·노르웨이 등의 고위 정치인들과 관리들을 도청했다’고 보도했다(2021년 6월 1일 자 〈서울신문〉)”. 스노든의 폭로 이후에도 이런 일이 계속된 것이다.
한편 미국 국가안전보장국 스캔들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국가 정보기관의 보호를 받는지 잊고는 한다. 사이버 공격은 에너지 공급, 교통망과 통신 체계, 공장, 은행, 병원 등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회간접시설’을 마비시킬 수 있다. 이런 공격을 막으려면 비밀 정보원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아가 대량학살 무기로 인한 위협과 테러 위협이 비밀 정보 업무를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그런 위험을 적시에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비밀 정보 수단과 그에 상응하는 기관이 필요하다.
물론 결코 영웅적이지 않으며, 혐오스러운 동전의 또 다른 측면도 있다. 첩보 업무는 오래전부터 인간을 억압하고 품위를 떨어뜨리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특히 독재자들이 통치할 때 그러했지만, 민주주의의 역사에서도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 책은 비밀리에 행해지는 첩보 활동과 고대부터 냉전의 종식을 거쳐 현재에 이르는 첩보기관의 장구한 역사를 조망한다. 특히 스파이 역사에서 등장하는 유명한 이름이나 부수적 사건보다는 비밀 정보 활동이 역사적 배경에서 어떻게 이해되었는지를 더욱 심도 있게 파헤친다.
저자

볼프강크리거

독일의역사가로1947년뮌헨에서태어났다.뮌헨대학교에서역사학·영어학·정치학을공부했으며,1977년박사학위를받았다.뮌헨과쾰른,볼로냐와파리,프린스턴과토론토등에서가르쳤으며,하버드대학교와옥스포드대학교에서연구원으로일했다.1995~2013년독일마르부르크필리프스대학교에서근대사및국제관계사교수를역임했다.1993년정보부역사연구회(얼마후‘국제정보역사협회’로전세계에이름을알렸다)를공동설립했으며,1999~2007년회장을지냈다.프랑스국방부의자문위원이며,독일역사협회(VerbandderHistorikerDeutschlands),미국외교역사가협회(SocietyforHistoriansofAmericanForeignRelations)회원이기도하다.

목차

들어가는말

01첩보활동의역사를어떻게그리고왜연구할까
02현대이전정치권에서의첩보활동
03새로운적:종교적,혁명적,반혁명적,민족적세력들
04강대국의정치와혁명에대한공포
051900년이래관료적이며기술에바탕을둔현대적비밀정보업
0620세기네가지적:공산주의자,파시스트/민족사회주의자,자본주의자,제3세계의‘테러리스트’
07냉전에서의비밀정보활동전쟁
08은폐작전,스파이,분석
09비밀정보업무로인한인권및시민권침해,그리고정치적통제가능성의한계
10비밀정보,인터넷과사이버전쟁:간략한조망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첩보활동이란무엇인가
영어권에서는‘intelligence란적에대한정보’라고짤막하게소개한다.하지만이개념을실질적으로정의하려면내용에집중해야한다.즉첩보활동은무엇으로이루어져있는가?이와관련해서크게네가지영역으로나눈다.(1)적에대한정보획득,(2)은폐된영향력,(3)첩보원들의공격을막기위해자신들의통치기구보호,(4)적의첩보활동내부로침입.
정치적지배의주요한세가지영역은1)외부적에대한방어,2)국내갈등통제,3)이러한정치적지배의재정지원을위한세제시스템이다.이렇게놓고보면권력이어떤방식으로특정지식에종속되어행사되는지알수있다.대외적안전을위해사람들은스파이를이용하고,정보를훔치거나심지어폭력적으로강탈해오기도한다.
대부분의보편적정부가알고있는정보보다첩보활동을통해얻은지식은해석할게더많다.게다가이런정보는조심스럽게진짜인지를검증해봐야하는데,적이거짓된정보를의도적으로흘릴수있기때문이다.게다가첩보활동으로얻은정보는대부분불완전한데반해,지배자나결정권자는신속하게행동해야할때가많다.
정보를획득하고조사하고분석한뒤얻은지식을사용하는것은중요한역할을한다.이를미국에서는‘actionableintelligence’라고하는데,결정하는데기본으로사용할수있는유용한비밀정보라는의미다.마침내결정권자는정보를확보하기위해특정한임무를내린다.이것이‘정보사이클(intelligencecycle)’의대략적인윤곽이다.
하지만좁은의미에서‘정보사이클’은첩보활동에속하지않는다.적에대한지식이라기보다적의지배영역에개입하는것을중요시하기때문이다.이를‘비밀공작’이라고하는데,은밀한자금·물건·무기등을제공하는일이중요할수있다.비밀공작에는적의정치나군사적과정에직접개입하는것도포함되며,이때자신들의직원이나외부의인원(대부분돈으로고용한)을투입한다.정치적·인종적소수나이념적으로무장한집단을이용할때도드물지않다.또군인들처럼특공대작전을통해방해공작을펼치거나침투를통해적의지도자를축출하기도한다.
모든첩보활동에서반드시필요한것은적의첩보기관이공격하는것에대비해자신들의지배기구를보호하는것이다.따라서적의첩보활동을공격하는것이야말로적국의비밀을획득할뿐아니라첩보활동을마비시킬수있는최고의가능성을제공한다.


스파이란어떤사람인가
스파이의사전적의미는‘(국가의)에이전트’다.하지만이런정의는애매하다.따라서‘스파이가무슨일을하는가’라는질문을함께해야한다.이들은적국의지도자나적국의국가비밀을염탐하므로정부에서어렵사리마련하는정부기관의일부다.
스파이와배반자의경계를나누는일은매우어렵다.스파이는파견되는데반해,배반자는이미국가비밀을이용할수있는장소,즉적의권력장치안에있다.그래서스파이의임무를알고그에게도움을주는직원들이있다.예를들어다른인물로살고있는스파이나국가조직의핵심에있는배반자는자유롭게돌아다닐수없고,아무하고나얘기하고임무를내린당사자에게직접정보(특히문서로된)를건넬수없다.그래서이들에겐정보원이나정보원으로구성된네트워크가필요하다.
스파이활동의전형적인조건은두가지로요약된다.첫째,스파이는극단적인충성심사이를오간다.그는자기편에대해서는지극히충성을해야하지만,배반자가되기위해서는특별한방식으로자신을신뢰하는적에대해충성심을깨야만한다.둘째,스파이는큰위험에처하게되는데,그를아는사람이존재하기때문이다.대체로스파이는조력자없이는활동할수없으며,이들조력자는가령처벌을피하기위해스파이나혹은배반자를밀고할수있다.
규범적차원에서는스파이활동이나배반이윤리적으로정당화될수있는지질문할수있고,이런활동을경멸해야하는지존중해야하는지에관해물어볼수있다.이에대한대답은대체로임무를내리는당사자와이들과싸우는상대방의윤리적잣대에달려있다.구동독국가공안국에서활약한사람과구동독밖에서국가공안국을위해배반자가된사람들을예로들어보자.한측에서는사법적처벌을요구하고,공안국을위해일한비공식적인사람들에게는통일된독일에서공직을맡지못하도록요구한다.다른측에서는무엇보다구동독공안국을위해일한사람들은당시에국제법상인정받은국가를위해‘정상적인업무’수행했을뿐이라고주장한다.
반면나치독일이나소련혹은다른독재자에맞서싸운스파이나‘배반자’는윤리적으로완전히다른평가를받는다.인간성의원칙과정당한평화원칙은상위법에속하는까닭이다.하지만독일의전후역사의정치적·법적경우에서보듯이런견해를항상관철시킬수는없다.독일이항복하고얼마후인1944년7월20일쿠데타(히틀러의반대파가히틀러를암살하려한쿠데타)를벌인암살범들은영웅이되었다.그러나나치정권에대항한전투에서서구의정보기관에소중한도움을준‘배반자들’은그와같은인정을받지못했다.


고대의첩보활동
파라오의외교업무와관련해서는아크나톤으로더잘알려진파라오아멘포테프4세때자료가존재한다.기원전13세기중반에이집트를다스렸고종교와사회를대대적으로개혁한이파라오는카파도키아(오늘날터키의카파도캬)에거주하던히타이트인들과싸워참패했다.히타이트는이집트왕국의동쪽국경에인접한여러속국이이집트를등지게만드는데성공했다.
히타이트는비밀스러운수단을사용하는데매우탁월했다.람세스2세의원정과카데시전투에관한보고에따르면,이집트는다양한민족과연대한히타이트로말미암아상당히놀랐던것같다.게다가파라오는변장한첩자두명에속아너무성급하게도시에진입했다.이들외에두히타이트첩자의정체가밝혀지고잔인한고문을통해자백을받아내고서야이집트는자신들이덫에걸렸음을알아차렸다.히타이트인은전차1000대를이끌고강의얕은곳을건너서기습공격하는데성공했다.이집트의2개사단이순식간에파괴되었다.람세스는군대를퇴각시켜야만했다.그의충실한친위대는파라오가체포되는것을겨우막아냈다.그는휴전해야만했고시리아를잃는것을받아들일수밖에없었다.

페르시아의지도자키루스대제는비밀첩보의기능에매우중요한가치를두었다.이들첩보기관의구조와성취에대해서는그리스철학자헤로도토스가남긴수많은자료를통해알수있다.다리우스1세가지배할때그리스에서부터인도에이르기까지확장된거대한왕국은20개의지방으로나뉘어있었고,각각의지방을총독한명이페르시아출신고문한명과함께다스렸다.지방에있던군대는왕의군대관할아래에있었고,죽지않는다는‘불사부대’근위병1만명이왕을호위했다.궁정에는모든지방과관리를감시하는관청이있었다.이관청의관료는‘왕의눈’으로간주되었는데,그리스장군이자작가크세노폰은이관료를더욱위대한시스템의일부라고서술했다.키루스왕은수많은‘눈’과‘귀’를거느리고있었으며,그들에게는선물과명예를안겨주었다.
페르시아의왕들은고위직관리들을매년지방으로파견해그곳의상태를알아보고,각지방을다스리는총독과사람들을신뢰할수있는지를알아보게끔했다.

페르시아의소식과정보기관에대한그리스인의감탄은모든그리스장군과마케도니아왕국의알렉산더대왕에게큰영향을미쳤다.10년만에페르시아왕국을정복하고,특히인도까지출정한알렉산더대왕은잘정비된조직을통해적군의군대에대한정보를얻지못했더라면그같은일은불가능했을지모른다.이민족들의정치분위기와지리조건에대한정보를통해군대에보급품을보내기어렵다는사정을미리알아냈던것이다.알렉산더는의심하지않고페르시아의경험과실행방식을바탕으로삼았다.
하지만기원전333년11월이소스(터키의도시이스켄데룬의북쪽)에서결정적인전투를벌였을때,군정보원이임무를제대로해내지못해서하마터면대재난이일어날뻔했다.알렉산더는상세한보고를받았는데,이에따르면페르시아의왕다리우스3세가군대를이끌고먼곳에가있는상태라는것이었다.그런데사실이두군대는자신들은몰랐지만서로를지나쳐서행진해갔고,이로인해페르시아인들은알렉산더의등뒤에있었으며그리하여두군대는거꾸로된전투대형으로싸워야만했다.만일패배했다면알렉산더는퇴각할수없었을것이다.
다리우스와맞서싸운전투가운데세번째로대대적인전투가기원전331년10월가우가멜라평원(오늘날이라크북부)에서일어났는데,첩보원으로부터들은보고는처음에틀렸다.그러니까알렉산더에게보고하기를,다리우스가소수의선발대만이끌고이미행진중이라는것이었다.그밖에올라온거짓정보들은체포된페르시아스파이들로부터나온내용으로,마케도니아왕을혼란에빠트릴목적이틀림없었다.그와같은덫에걸리지않기위해알렉산더는페르시아에능통하며신뢰하던미틸레네의라오메돈(알렉산더3세의친구이자장군)에게포로들가운데신분이높은사람들을염탐하도록했다.시대를막론하고전쟁포로는군스파이의중요한원천이었다.


프랑스드레퓌스사건
드레퓌스사건은비밀누설과전혀관계없으며,나중에증명되었으나유죄판결을받은참모부소속대위알프레드드레퓌스는그어떤반역도저지르지않았다.오히려군사기밀조직,군지휘관,높은지위의정치가,언론과법정이나서서저지른수치스러운스캔들이었다.독일을위해첩보행위를했다는이유로1894년12월드레퓌스대위에게유죄판결을내린뒤에죄없는드레퓌스가다시금복권될때까지12년이라는세월이걸렸다.
1894년9월26일여자청소부마리바스티안(가명오귀스트)은자신에게임무를내려주는프랑스참모부소속비밀정보부에놀라운문서를제공했다.그녀는5년전부터파리의독일대사관에서일했고,쓰레기통이나열려있는금고에서문서를꺼내어근처에있는교회에넘겨주었다.이번에문제가된것은참모본부의서류에접근가능한프랑스장교로부터나온,이른바프랑스군사문서를손글씨로쓴목록이었다.
육군방첩대장장상데어대령과정보국소속부하직원들은,목록을작성한혐의를드레퓌스에게씌우려했다.우선드레퓌스는참모본부에확고하게자리를잡은기득권자가아니고,알사스지방출신의유대인이었다.그리고드레퓌스를통해이중간첩으로독일과함께모험적이고의도적인혼란을불러일으켰던또다른장교에대한의심을다른방향으로돌릴수있었던것이다.
드레퓌스는1895년여름방첩대장이던육군대령장상데어의죽음으로명예를회복하기시작했다.그의후임자조르주피카르중령은우연히에스테라지소령의필체가독일에비밀을누설했다는‘목록’의필체와똑같다는사실을발견했다.게다가앙리소령이병적으로유대인을싫어한다는사실을알고있었고,앙리와매우가까운자가군사정보부의재정관리자로있으면서사기사건을일으켰던사실도떠올렸다.피카르는이로써진정한반역자는에스테라지라는사실과마주하게되었다.피카르는1896년8월이사실을프랑스국방부장관에게알렸으나,장관은이사실을받아들이기는커녕오히려피카르를참모본부장에게보냈다.참모본부장은피카르에게호통을쳤다.“당신만입다물고있으면,그누구도알수없을것이오.”피카르는튀니지로좌천되었고,문서를조작한앙리는군정보부장으로승진했다.이후피카르는비밀누설죄로기소되었다.
일련의사태와관련해에밀졸라는,1898년1월13일〈로로르(여명)〉지에프랑스대통령에게보내는편지를기고했다.이편지의제목은“나는고발한다”였다.에밀졸라는사건의책임은참모본부에있으며에스테라지를진짜반역자라고지명했는데,이로인해에밀졸라는벌금형과1년감금형을당했다.
1899년여름에피카르는풀려났고,드레퓌스는상고법원에서재판을앞두고가이아나섬에서돌아왔다.드레퓌스는1899년9월재심끝에10년형을받았으나대통령특사로석방되었다.마침내상소법원은이판결을폐기했다.1906년에야비로소프랑스군은명예를회복한드레퓌스를군인으로복귀시켰고,90년이지난1995년에야군은공식적으로드레퓌스가‘군의음모’에희생되었다는사실을발표했다.


영국의군사비밀정보과보어전쟁
19세기말의영국군은전략적군사비밀정보분야에서탁월했다.그럼에도비밀활동에서보어전쟁은그야말로재난에해당했는데,런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