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의 가부장제: 젠더, 재생산 그리고 커먼즈

임금의 가부장제: 젠더, 재생산 그리고 커먼즈

$18.00
Description
재생산과 돌봄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것이 진정한 페미니스트 혁명의 시작이다
페미니스트 저술가이자 교사이고 투사이기도 한 실비아 페데리치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책 《임금의 가부장제》는 20세기 초에 새롭게 등장한 비공식적인 성적 계약과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비판 및 자본주의 발전의 구조적 요소로서 성차별주의는 여성이 공장에 들어가 임금 노동자가 된다고 제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조망한다. 즉 페미니스트는 마르크스가 재생산 노동에 대한 무지로 자본주의 자체에 할당한 해방적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며 새로운 변혁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이 페데리치의 메시지다.
가사 노동 임금 캠페인을 출발점으로 하는 페데리치의 분석은 일관되게 자본주의에서 국가가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어떻게 여성·가족·섹슈얼리티에 대한 개입과 규제를 강화해나가는지를 면밀히 추적한다. 페데리치는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임금 노동이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유일한 노동 형태로 자리 잡는 과정, 임금 노동이 생산 영역을 독점해나가는 과정, 그럼으로써 재생산이 노동이 아닌 것, 즉 비노동과 비생산의 영역으로 배제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역사적 재구성을 바탕으로 페미니즘 관점의 혁명은 ‘공장’이 아니라 ‘부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임금의 가부장제’가 갖는 한계에 주목하며 ‘부엌으로부터의 혁명’으로 나아갈 것을 제안하는 페데리치의 논의는 ‘전환의 시대’를 맞은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재난과 기후 및 돌봄 위기 등 복합 혹은 다중 위기에 직면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고와 인식이 필요하며, 삶을 꾸려나가는 데서도 다른 접근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모든 것을 비용으로만 간주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삶·생활·생명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인간의 노동력이든 자연의 산물이든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최대한 높은 이윤을 뽑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용은 적게, 이윤은 높게’를 외치는 체제에서는 인간을 비롯해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갖고 보살피는 활동으로서 재생산과 돌봄의 가치에 주의를 기울이기는 쉽지 않다. 재생산과 돌봄은 이윤이 아니라 삶·생활·생명의 지속과 유지를 통한 좋은 삶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 착취를 분석하는 데 마르크스는 여전히 없어서는 안 될 기반이다. 실제로 마르크스 시대를 거치며 자본주의가 겪은 변화 이후에도 《자본론》이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는 현대의 사회적 현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 전체를 사유하고 그 재생산을 추진하는 논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언어와 범주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에 대한 반식민주의적·반인종주의적 비판 못지않게, 페미니즘적 관점에서도 마르크스 정치 이론의 한계가 드러난다.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볼 때 마르크스 정치 이론은 노동과 혁명 주체에 대한 배타적 개념에 기반하며, 자본주의 축적 과정에서 가사 노동이 갖는 전략적 중요성을 간과하고, 젠더에 따른 차이를 노동에 대한 탈신체화 개념으로 단순화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의 목적은 두 가지다. 먼저 이런 것들이 마르크스의 작업에서 사소한 누락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임금 노동을 계급 투쟁의 핵심 영역으로 우선시하고 우리의 삶이 재생산되는 가장 중요한 활동 중 일부를 간과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계층을 성차별적·인종차별적 정책의 도구로 동원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회복력과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특히 재생산 노동에 대한 과소이론화는 여성의 무급 가사 노동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가족의 형성 같은 자본주의 전략의 주요한 발전을 예상하는 그의 능력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실질 임금 인상과 결합해 20세기 초의 새롭고 비공식적인 성적 계약 및 새로운 가부장적 질서의 기초를 이루었다.
다른 하나는 불평등과 모든 형태의 착취를 없애겠다고 약속하는 페미니즘적 반자본주의 이론 및 정치 전략과 양립하기 어려운 마르크스 분석의 측면들을 규명한다. 이를 위해 페미니즘 연구와 마르크스 비판의 중심에 있는 일련의 쟁점을 재검토한다. 첫 번째는 자본주의 축적의 도구로서 ‘노동’ 문제 및 노동자와 자본의 대결 지형이다. 마르크스와 그 추종자들로 하여금 노동을 오로지 산업 노동과 임금 노동으로만 사유하게끔 만든 것은 무엇인가? 두 번째 핵심 쟁점은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시작으로 자본주의가 세계 프롤레타리아 내부에 만들어낸 분열 문제다. 마르크스는 가부장적 관계와 인종주의를 모두 비판했지만, 자본주의가 그 역사적 과정을 통해 구축한 노동의 위계, 특히 ‘인종’과 ‘성별’에 기초한 노동의 위계와 이것이 자본주의의 발전 경로와 계급 연대를 이해하는 데 미친 영향에 대한 진지한 분석은 빠뜨렸다. 여기서도 페미니즘적 관점이 필수적인데, 성차별주의가 자본주의 발전의 구조적 요소이고, 진정한 사회 변혁조차 가로막는 물질적 힘이며,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믿음과 달리 여성이 공장에서 남성과 나란히 일한다고 해서 제거되는 게 아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묘사한 해방적 역할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이 비판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욱 중요하게, 페미니스트는 마르크스가 노동과 생산의 가장 합리적인 조직이자 가장 높은 형태의 사회적 협력이라고 생각한 자본주의 자체에 할당된 해방적 역할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책 전반에 걸쳐 시종일관 언급하듯 마르크스 정치 이론에 비판적 견해를 취한다고 해서 그의 작업을 거부하거나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도 때로 자기 이론에 확신이 없었고, 그것이 아마 자신의 생애 동안 《자본론》 제2권과 제3권을 출판하지 않고 여러 차례 개정본을 남긴 이유일 터다. 게다가 말년에는 러시아 포퓰리스트와 교류하면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가 공산주의 건설을 위해 자본주의 단계를 거칠 필요는 없으며 농민 코뮌에 기초한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하면서 혁명으로 가는 길에 대한 자신의 개념을 수정하기도 했다.
저자

실비아페데리치

(SilviaFederici)
페미니스트저술가이자교사·투사이다.뉴욕주호프스트라대학교명예교수로사회과학을가르쳤다.1972년마리아로사달라코스타,셀마제임스등과함께‘가사노동임금캠페인’을시작한국제페미니스트컬렉티브(InternationalFeministCollective)를설립했다.나이지리아에서오랫동안학생들을가르쳤으며,조지카펜치스와함께아프리카학문의자유위원회(CAFA)를설립하기도했다.지은책으로《캘리번과마녀(CalibanandtheWitch)》《세상을다시매혹시키다(Re-enchantingtheWorld)》《우리는당신들이불태우지못한마녀의후손들이다(Witches,WitchHunting,andWomen)》《혁명의영점(RevolutionatPointZero)》등이있다.

목차

서문

1부엌으로부터의저항계획
2자본과좌파
3마르크스《자본론》에서의젠더와재생산
4마르크스,페미니즘그리고커먼즈의구성
5혁명은집에서시작된다
619세기영국가사노동의구성과임금의가부장제
7미국과영국성노동의기원과발전


참고문헌
옮긴이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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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책에수록한7편의논문은1970년대중반부터2020년까지폭넓은시간대에걸쳐썼다.그중두편은1970년대중반에,나머지는지난20년동안에집필했다.각각의논문은마르크스에대한페미니즘담론의발전시점을나타내는동시에샤흐르자드모잡(ShahrzadMojab)이제기한어떻게우리는“역사상최초의큰분열”을극복하고,“2개의주요해방프로젝트인마르크스주의와페미니즘”을결합해우리시대의정치가요구하는“돌파구”를제공할것인가라는질문에답하려는시도다.
니콜콕스(NicoleCox)와함께쓴〈부엌으로부터의저항계획〉과〈자본과좌파〉는저자가가사노동임금캠페인에몰두하던시절의논문이다.당시그들의주요임무는한편으로가사노동을전(前)자본주의세계의잔여요소로정의하던좌파의비판에대응하는것이었고,다른한편으로는가사노동을시장의지배와국가의개입으로부터자유로운가족관계구성을위한마지막전초기지로서목가적방식으로묘사하던자유주의적페미니스트에대응하는것이었다.두논문의논쟁적어조는그들을곧바로자본주의발전의역사를재구성하도록이끈논쟁의강도를반영하며,이는부분적으로사실상가사노동의기원과자본주의사회에서성차별의구체적특성을설명하기위함이다.
〈마르크스《자본론》에서의젠더와재생산〉은마르크스에대한페미니즘의새로운관심으로부터일부자극을받았고,부분적으로는마르크스가여성의재생산노동에대한언급을피하고젠더차이를노동비용차이로환원했음을보여주기위한논문이다.
〈혁명은집에서시작된다〉에서는19세기중반유럽에서임금노동이제도적으로인정받는유일한노동형태가되는과정을역사적으로재구성했다.그러나이책전체를관통하는주요주장은노동을구성하는게무엇인지정의하려면페미니즘적관점이꼭필요하다는것이다.자본주의가무급노동에어느정도의존하고있는지,자본주의가여성의몸과삶의모든측면을어떻게생산력으로변화시켰는지,자본주의사회에서얼마나광범위한노동영역이기계화로환원될수없는지를보여줄수있기때문이다.이는산업화가필요노동을대폭줄임으로써,더높은목표를추구하기위한우리의시간을자유롭게할것이라는마르크스의믿음에대한도전이다.
〈마르크스,페미니즘그리고커먼즈의구성〉은‘인지자본주의’라는자본주의발전의새로운단계에관한자율주의적마르크스주의이론화에대한비판적대응이다.(인지자본주의에서는자본주의가스스로초월을위한조건을창출한다는마르크스의예측이실현된것으로가정한다.)안토니오네그리와마이클하트가노동의디지털화를자본으로부터노동자의자율성을증진하는수단으로본반면,여기서는디지털기술이오늘날전세계의생태계를파괴하는채굴주의적충동을부추겨자연계에남아있는것을파괴한다고강조한다.
마지막두장〈19세기영국가사노동의구성과임금의가부장제〉와〈미국과영국성노동의기원과발전〉에서는자본의계획과계급투쟁에관한마르크스의개념을확장할필요성이있음을확인한다.두논문모두20세기전환기에노동력재생산에서새로운자본주의적투자의시작,그리고더생산적인노동계급을창출하기위해가족관계와섹슈얼리티규제에대한새로운국가의관심을살펴본다.또마르크스의가정과달리노동력재생산은시장에의해서만이루어지지않으며,계급투쟁은공장뿐만아니라우리몸에서도벌어진다는것을보여준다.아울러계급투쟁은노동과자본사이에서는물론남성이여성에대해가족과더폭넓은공동체에서국가의대표자가되는것을받아들이는정도에따라프롤레타리아내에서도벌어진다는점을설명한다.


우리사회는지금심각한초저출산·초고령화문제에직면해있다.‘경제성장’이라는이름아래‘이윤중심사회’를향해앞뒤돌아보지않고달려온결과다.사람·자원·에너지를비롯한모든것이수도권에집중된가운데지역은소멸위기에처해있고,좋은삶을위해서는재생산과돌봄책임을모든시민이함께나누어야함에도여전히여성의값싼노동에기대려는방식은대한민국의쇠퇴를부추길뿐이다.
이런시대적맥락에서우리사회에무엇보다시급한과제는재생산과돌봄이갖는가치에대한재평가를바탕으로삶·생활·생명이중심이되는사회,즉‘재생산중심사회’혹은‘돌봄중심사회’로의전환을통해‘이윤의생산’이나‘상품의생산’이아닌‘삶의생산’이우리일상에서핵심적위치를차지하도록하는일이다.이를위해서는페데리치가강조하듯노동이란무엇이고생산이란무엇이며경제란무엇인지를비롯해지금까지우리가자명하다고여겨온개념들에대한근본적질문이선행되어야한다.이윤을위한활동이아니라삶을지탱하는활동으로무게중심을옮겨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