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갯벌 게 구멍 속에 느릿느릿 들어앉았다 오라
밀물이 들기까지 생은 종종 멈추어도 좋은 것이다”
시인 양광모와 다만 걸어 보는 생의 여정
밀물이 들기까지 생은 종종 멈추어도 좋은 것이다”
시인 양광모와 다만 걸어 보는 생의 여정
시인 양광모의 기행 시집 『와온에 가거든』이 출간되었다. 일상의 언어로 삶을 덧칠해 온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는 세상을 떠돌면서 마주쳤던 낯선 순간들을 담았다. 언뜻 보면 평범하고 진부해 보이는 삶인데 발길이 닿는 곳곳마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은 이토록 다채롭고 동적일 수 있는 걸까. 시인은 걷는다. 먼바다를 건너 낯선 섬에 닿기도 하고 장시간 이동하여 땅끝마을로, 인적 하나 없는 숲속으로, 파도가 오가는 모래사장에 다다르기도 한다. 그런데 왜 하필 와온일까? 모든 기행을 통틀어 명명된 ‘와온’이란 공간은 시인에게 어떤 흔적을 남긴 장소였을까.
시인은 와온으로 가는 길에 설치된 수십 개의 과속방지턱을 발견한다. 자동차의 속도를 늦추어 조심스럽게 방지턱을 넘어가면서 그는 생각한다. 어쩌면 상처라는 건 “신이 만들어 놓은/ 생의 과속방지턱인지도 모른다”(「와온에 가거든」)라고. 과속방지턱은 어떤 길에서는 때때로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걸 ‘아는’ 누군가가 발명한 것일 수도 있다. 경험에서 비롯된 ‘이해’이기도 한 ‘앎’이다. 다가오는 것들에 부딪혔던 경험, 부딪히지 않으려고 몸을 기울였던 경험이 걸음 속도를 늦추고 브레이크를 지그시 누르게 한다. 갖가지 경험으로부터 생긴 생채기들이 내 안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다. 만에 하나 부딪히더라도 무너지지 않도록.
심장이 물 빠진 갯벌로 변해 가는 날들이 있다// 그러나 추자여/ 만년 파도에 깎인들/ 네가 섬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듯/ 천년 유배를 산들/ 내가 어찌 사랑을 묻어 버리겠느냐
-「추자도」 부분
셀 수 없이 많은 시간 동안 파도에 몸이 깎여 온 추자도를 보며 시인은 말한다. “살아가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 뼈를 깎을 때가 있다”(「추자도」)라고. 여기의 ‘사랑하는 일’의 목적어는 ‘너’일 수도 있지만 ‘나’일 수도 있다. ‘나’를 사랑하는 일. 그런 점에서 시인의 여행은 새로운 경험과 인연을 접하는 여정일 뿐 아니라 새롭고 낯선 ‘나’를 만나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어째서 사람들은 더 올라갈 곳도 없는데 “더 높이 올라갈 곳을 찾”는 거며, 더 나아갈 곳도 없는데 “더 멀리 나아갈”(「한라산」) 방법을 찾는 걸까. 이 이해할 수 없는 호기심과 충동이, 어딘가에 미지의 세상이 있을 거란 믿음이 우리의 등 뒤를 계속해서 떠민다. 발길 닿는 대로 걷게 한다. “다시 내려올 걸”(「산」) 알면서도 산을 오르는 마음. 다시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어느 샛길로, 낯선 마을로, 먼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마음이 시집 곳곳에 발자국처럼 남아 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장소일수록 발자국이 겹겹이 쌓여 있는 것처럼, 이번 기행 시집에도 각자의 이야기가 마주치는 지점이 가득하길 바란다.
원대리에 가시거든/ 푸른 잎과 흰 껍질이 아니/ 백 년의 고요를 보고 올 것/ 천 년의 침묵을 듣고 올 것/ 자작나무와 자작나무가/ 어떻게 한 마디의 말도 주고받지 않고/ 만 년의 고독을 지켜 나가는지
-「원대리에 가시거든」 부분
온종일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은 채/ 수평선만 바라보는 주문진 바다// 나, 가장 오른쪽 벤치가 되어/ 일평생쯤 모래에 발목 묻은 채 살고 싶었네/ 그리움으로 포말처럼 부서지고 싶었네// 시월이었으니/ 너라도 그랬으리
-「주문진 바다」 부분
시인은 와온으로 가는 길에 설치된 수십 개의 과속방지턱을 발견한다. 자동차의 속도를 늦추어 조심스럽게 방지턱을 넘어가면서 그는 생각한다. 어쩌면 상처라는 건 “신이 만들어 놓은/ 생의 과속방지턱인지도 모른다”(「와온에 가거든」)라고. 과속방지턱은 어떤 길에서는 때때로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걸 ‘아는’ 누군가가 발명한 것일 수도 있다. 경험에서 비롯된 ‘이해’이기도 한 ‘앎’이다. 다가오는 것들에 부딪혔던 경험, 부딪히지 않으려고 몸을 기울였던 경험이 걸음 속도를 늦추고 브레이크를 지그시 누르게 한다. 갖가지 경험으로부터 생긴 생채기들이 내 안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다. 만에 하나 부딪히더라도 무너지지 않도록.
심장이 물 빠진 갯벌로 변해 가는 날들이 있다// 그러나 추자여/ 만년 파도에 깎인들/ 네가 섬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듯/ 천년 유배를 산들/ 내가 어찌 사랑을 묻어 버리겠느냐
-「추자도」 부분
셀 수 없이 많은 시간 동안 파도에 몸이 깎여 온 추자도를 보며 시인은 말한다. “살아가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 뼈를 깎을 때가 있다”(「추자도」)라고. 여기의 ‘사랑하는 일’의 목적어는 ‘너’일 수도 있지만 ‘나’일 수도 있다. ‘나’를 사랑하는 일. 그런 점에서 시인의 여행은 새로운 경험과 인연을 접하는 여정일 뿐 아니라 새롭고 낯선 ‘나’를 만나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어째서 사람들은 더 올라갈 곳도 없는데 “더 높이 올라갈 곳을 찾”는 거며, 더 나아갈 곳도 없는데 “더 멀리 나아갈”(「한라산」) 방법을 찾는 걸까. 이 이해할 수 없는 호기심과 충동이, 어딘가에 미지의 세상이 있을 거란 믿음이 우리의 등 뒤를 계속해서 떠민다. 발길 닿는 대로 걷게 한다. “다시 내려올 걸”(「산」) 알면서도 산을 오르는 마음. 다시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어느 샛길로, 낯선 마을로, 먼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마음이 시집 곳곳에 발자국처럼 남아 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장소일수록 발자국이 겹겹이 쌓여 있는 것처럼, 이번 기행 시집에도 각자의 이야기가 마주치는 지점이 가득하길 바란다.
원대리에 가시거든/ 푸른 잎과 흰 껍질이 아니/ 백 년의 고요를 보고 올 것/ 천 년의 침묵을 듣고 올 것/ 자작나무와 자작나무가/ 어떻게 한 마디의 말도 주고받지 않고/ 만 년의 고독을 지켜 나가는지
-「원대리에 가시거든」 부분
온종일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은 채/ 수평선만 바라보는 주문진 바다// 나, 가장 오른쪽 벤치가 되어/ 일평생쯤 모래에 발목 묻은 채 살고 싶었네/ 그리움으로 포말처럼 부서지고 싶었네// 시월이었으니/ 너라도 그랬으리
-「주문진 바다」 부분
와온에 가거든 (양광모 기행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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