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풍경과 노동에의 직시(直視)라고 이 책을 정의하는 것은 크게 무리라고는 생각
하지 않는다. 그것이 분리되었을 때의 불통은 다소 적대적인 관계가 형성되었
지만 지금은 모든 문제가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밀접한 생존의 관계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산업의 분야로서 점진적 발전은 물론 상생의 기본적인 조건이 된
다. 시혜가 아니라 호혜가 된다.
우리는 흔히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이야기하지 않는가 말이다. 생업을
위한 치열한 경쟁과 무한질주의 일과 자신의 삶의 무게와 삶의 질을 균등하게
배분하여 만족한 삶을 꾸리는 것을 지칭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이 책의 잔잔함은 거기에서 시작된다. 넌지시 엿보는 한가한 게으름이 너무 좋
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한가로움과 게으름은 성정의 산물이 아니다.
직업적 관료로서의 치열한 성정과 통하는 열쇄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필부
필부의 삶이 그 거대한 역사를 이룸에도 불구하고 흔적도 남지 않는다. 시간은
개인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록은 중요하다. 작은 흔적이 그 시대를 증
명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맑은 봄날의 파릇한 잎의 기억과 작열하는 여
름의 열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이제는 저 높은 감나무 끝에 매달린 바알간
홍시 같은 겸손의 결정체로 사람들의 손길을, 공감을 기다리고 있다.
한가한 세상이 아니다. 조용한 치열함을 말하기엔 너무나 급박한 세상이다. 그
렇다고 모든 개인에게 그렇게 몰아 부칠 일은 아니다. 모두가 자기가 처한 역
할이 있고, 거기에 충실해야 할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생업에 몰두할수록 다
른 삶을 구축할 기회를 포착할 수도 있고, 혹은 도움이 되거나, 돌발이지만 새
로운 전환의 포인트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인생은 언제나 노력과 기회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두루두루 넓게 멀리 보고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반성과
전망은 진정한 성찰에서 비롯되는 것은 그 다음의 이야기이다. 깊다고 박학(博
學)이 아닐 수 있고, 다식(多識)이 전부를 대변할 수는 없다.
언제나 삶은 벽(壁)이다. 그 벽을 정면충돌하며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고, 자근
자근 두드려 스스로 무너지도록 끊임없는 시도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
회하거나 혹은 도리어 물러서서 관망하며 최선의 방법 혹은 차선의 방법, 궁극
의 문제에로의 해결책을 모색할 수도 있다.
이 책은 한가함의 산물이 아니다. 묻고 확인하고 대화하고 명상하고 사색하여
지금의 문제를 치유할 방법을 모색하는 책이다. 호사가 아니라 궁극의 질문을
향해 조용하게 질주하는 기록의 문장이다. 차용한 문장이나 법어들의 낯익음이
조용히 몸으로 스며든다. 몸과 마음으로 체득한 진솔한 깨달음은 텅 빈 가을
들녘처럼 그 여백의 나눔으로 가득하다. 좀 더 익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어나
우리의 근처에는 그런 농익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충분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아쉽지 않으리라는 미덕 또한 있다.
심월상조(心月相照)라고 썼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문둥이들도 서로 만나면 반
갑다고 했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했다. 초점을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다만 조금 아쉽
다.
광풍제월(光風霽月)이면 더욱 좋았겠다. 앞에서 언급했듯 풍경과 노동이 다름
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생업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워라밸의 가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 반성과 성찰과 전망이 기회가 되지 않을까? 이 책은
그 작지만 소중한 가능성을 아주 낮은 목소리지만 극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하지 않는다. 그것이 분리되었을 때의 불통은 다소 적대적인 관계가 형성되었
지만 지금은 모든 문제가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밀접한 생존의 관계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산업의 분야로서 점진적 발전은 물론 상생의 기본적인 조건이 된
다. 시혜가 아니라 호혜가 된다.
우리는 흔히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이야기하지 않는가 말이다. 생업을
위한 치열한 경쟁과 무한질주의 일과 자신의 삶의 무게와 삶의 질을 균등하게
배분하여 만족한 삶을 꾸리는 것을 지칭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이 책의 잔잔함은 거기에서 시작된다. 넌지시 엿보는 한가한 게으름이 너무 좋
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한가로움과 게으름은 성정의 산물이 아니다.
직업적 관료로서의 치열한 성정과 통하는 열쇄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필부
필부의 삶이 그 거대한 역사를 이룸에도 불구하고 흔적도 남지 않는다. 시간은
개인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록은 중요하다. 작은 흔적이 그 시대를 증
명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맑은 봄날의 파릇한 잎의 기억과 작열하는 여
름의 열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이제는 저 높은 감나무 끝에 매달린 바알간
홍시 같은 겸손의 결정체로 사람들의 손길을, 공감을 기다리고 있다.
한가한 세상이 아니다. 조용한 치열함을 말하기엔 너무나 급박한 세상이다. 그
렇다고 모든 개인에게 그렇게 몰아 부칠 일은 아니다. 모두가 자기가 처한 역
할이 있고, 거기에 충실해야 할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생업에 몰두할수록 다
른 삶을 구축할 기회를 포착할 수도 있고, 혹은 도움이 되거나, 돌발이지만 새
로운 전환의 포인트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인생은 언제나 노력과 기회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두루두루 넓게 멀리 보고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반성과
전망은 진정한 성찰에서 비롯되는 것은 그 다음의 이야기이다. 깊다고 박학(博
學)이 아닐 수 있고, 다식(多識)이 전부를 대변할 수는 없다.
언제나 삶은 벽(壁)이다. 그 벽을 정면충돌하며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고, 자근
자근 두드려 스스로 무너지도록 끊임없는 시도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
회하거나 혹은 도리어 물러서서 관망하며 최선의 방법 혹은 차선의 방법, 궁극
의 문제에로의 해결책을 모색할 수도 있다.
이 책은 한가함의 산물이 아니다. 묻고 확인하고 대화하고 명상하고 사색하여
지금의 문제를 치유할 방법을 모색하는 책이다. 호사가 아니라 궁극의 질문을
향해 조용하게 질주하는 기록의 문장이다. 차용한 문장이나 법어들의 낯익음이
조용히 몸으로 스며든다. 몸과 마음으로 체득한 진솔한 깨달음은 텅 빈 가을
들녘처럼 그 여백의 나눔으로 가득하다. 좀 더 익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어나
우리의 근처에는 그런 농익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충분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아쉽지 않으리라는 미덕 또한 있다.
심월상조(心月相照)라고 썼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문둥이들도 서로 만나면 반
갑다고 했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했다. 초점을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다만 조금 아쉽
다.
광풍제월(光風霽月)이면 더욱 좋았겠다. 앞에서 언급했듯 풍경과 노동이 다름
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생업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워라밸의 가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 반성과 성찰과 전망이 기회가 되지 않을까? 이 책은
그 작지만 소중한 가능성을 아주 낮은 목소리지만 극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따스한 햇볕이 비치는 창가에 서서
$1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