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빈손과 빈 붓의 시적 조우
몇 년 전, 백양사에서 시대의 언저리를 쓰다듬던 전라도 출신 몇 사람이 모인 적이 있는데, 옅은 미소만 머금고 쓸쓸한 표정으로 자리가 파하기만을 기다리는 듯한 한 사람이 있었다. 이강 선생이었다. 형제들을 죄다 끌고 혁명의 격랑을 헤쳐왔다는 말을 들었다. 형제 가운데 누구도 혁명의 과실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혁명이라는 바구니에는 야만과 새로움이라는 두 주제가 함께 담겨 있다. 낡은 질서가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면 일거에 무너뜨리고 야만에 빠진다. 소위 혁명이다. 야만의 정당성은 새로움을 향한 깃발이 보장한다. 자신을 혁명하지 않은 채 일어난 자칭 혁명가들은 야만에만 머물고, 새로움의 길을 열 덕성이 없다. 마침내 혁명의 깃발을 찢어 완장을 만들어 차는 것이다. 혁명의 과실들은 완장들의 손아귀에 잡혔다. 혁명가와 고작 반항아의 차이는 깃발을 품고 계속 흔들리느냐, 아니면 깃발을 찢어 완장을 만들어 찼느냐의 차이다. 또 하나는 과실을 움켜쥐었느냐, 아니면 빈손이냐의 차이다.
이강은 빈손이다.
눈이 밝지 않은 사람에게 김호석의 그림은 덜 그린 것 같이 보일 수도 있다. 붓놀림에 절제와 겸손이 가득하다. 『주역』은 음과 양의 두 효를 이리저리 놀리면서 인생사 대부분을 설명하는데, 여섯 효로 되어 있는 모든 괘에는 길과 흉이 다 들어있다. 겸(謙)괘 하나만 예외여서, 길(吉)한 점사로만 가득하다. 겸괘는 땅 안에 큰 산이 숨겨져 있는 형상이다. 마음속에 큰 산하나 품고 하는 절제라야 비로소 겸손이다. 그림으로 짐작하건대, 김호석의 마음속에는 큰 산하나가 자라고 있을 것이다. 운동할 때 힘을 빼는 것은 정확하고 강한 타격을 위함이다. 절제와 겸손이 큰 산을 더 크게 하는 것 같은 이치다. 김호석은 어느 초상화에 이르러 눈 그리는 동작을 아예 절제하였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진짜 눈! 눈의 진실이 현현하였다. 누군가의 가장 밝은 눈이 되었고, 더 나아가 이 세상의 눈동자가 모두 그 자리에 가득 들어앉았다.
김호석은 빈 붓이다.
남길 말만 겨우 남겨서, 문자가 차라리 사라지기 일보 직전의 벼랑에 걸려 있는 상태라야 인위적 표현은 비로소 자연스럽게 완성된다. 문자가 차라리 사라져버리려고 몸부림치면서 벌려놓은 틈새에는 신의 세계에 살던 소리가 찾아들어 큰 산처럼 박힌다. 시는 이렇게 태어난다. 빈손과 빈 붓의 시적 조우는 천둥처럼, 번개처럼, 비처럼, 바람처럼 빈틈없이 세상을 가득 채운다. -최진석교수 글에서
몇 년 전, 백양사에서 시대의 언저리를 쓰다듬던 전라도 출신 몇 사람이 모인 적이 있는데, 옅은 미소만 머금고 쓸쓸한 표정으로 자리가 파하기만을 기다리는 듯한 한 사람이 있었다. 이강 선생이었다. 형제들을 죄다 끌고 혁명의 격랑을 헤쳐왔다는 말을 들었다. 형제 가운데 누구도 혁명의 과실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혁명이라는 바구니에는 야만과 새로움이라는 두 주제가 함께 담겨 있다. 낡은 질서가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면 일거에 무너뜨리고 야만에 빠진다. 소위 혁명이다. 야만의 정당성은 새로움을 향한 깃발이 보장한다. 자신을 혁명하지 않은 채 일어난 자칭 혁명가들은 야만에만 머물고, 새로움의 길을 열 덕성이 없다. 마침내 혁명의 깃발을 찢어 완장을 만들어 차는 것이다. 혁명의 과실들은 완장들의 손아귀에 잡혔다. 혁명가와 고작 반항아의 차이는 깃발을 품고 계속 흔들리느냐, 아니면 깃발을 찢어 완장을 만들어 찼느냐의 차이다. 또 하나는 과실을 움켜쥐었느냐, 아니면 빈손이냐의 차이다.
이강은 빈손이다.
눈이 밝지 않은 사람에게 김호석의 그림은 덜 그린 것 같이 보일 수도 있다. 붓놀림에 절제와 겸손이 가득하다. 『주역』은 음과 양의 두 효를 이리저리 놀리면서 인생사 대부분을 설명하는데, 여섯 효로 되어 있는 모든 괘에는 길과 흉이 다 들어있다. 겸(謙)괘 하나만 예외여서, 길(吉)한 점사로만 가득하다. 겸괘는 땅 안에 큰 산이 숨겨져 있는 형상이다. 마음속에 큰 산하나 품고 하는 절제라야 비로소 겸손이다. 그림으로 짐작하건대, 김호석의 마음속에는 큰 산하나가 자라고 있을 것이다. 운동할 때 힘을 빼는 것은 정확하고 강한 타격을 위함이다. 절제와 겸손이 큰 산을 더 크게 하는 것 같은 이치다. 김호석은 어느 초상화에 이르러 눈 그리는 동작을 아예 절제하였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진짜 눈! 눈의 진실이 현현하였다. 누군가의 가장 밝은 눈이 되었고, 더 나아가 이 세상의 눈동자가 모두 그 자리에 가득 들어앉았다.
김호석은 빈 붓이다.
남길 말만 겨우 남겨서, 문자가 차라리 사라지기 일보 직전의 벼랑에 걸려 있는 상태라야 인위적 표현은 비로소 자연스럽게 완성된다. 문자가 차라리 사라져버리려고 몸부림치면서 벌려놓은 틈새에는 신의 세계에 살던 소리가 찾아들어 큰 산처럼 박힌다. 시는 이렇게 태어난다. 빈손과 빈 붓의 시적 조우는 천둥처럼, 번개처럼, 비처럼, 바람처럼 빈틈없이 세상을 가득 채운다. -최진석교수 글에서
이강, 이강은 이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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