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화산섬 (안도섭 장편소설)

성난 화산섬 (안도섭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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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분단의 슬픈 이야기,
제주 4·3 사건
제주 4·3 사건은 해방 후부터 6·25 전후까지
우리의 분단현실이 안고 있던 비극에 다름 아니다.
이 사건은 급기야 내륙에 비화한 여·순병란에 불을 댕기고
6년간에 걸쳐 지리산, 덕유산, 회문산 등의 유격전이 벌어진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제주도의 참상은 곧 한반도의 비극이요,
죽음의 무도장에서 칼춤을 추는 분단의 슬픈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아무 죄 없이 희생된 제주 4.3 희생자에 대한 진혼곡이자
역사의 이면까지 파헤진 슬픈 현대사의 올바른 복원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저자

안도섭

1933년에태어나조선대국문과에서수학했다.
1958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시「불모지」가,「평화신문」신춘문예에시「해당화」가각각당선되어문단에등단하였다.이후「연가」,「거울」,「우리더욱사랑을위해」등시대적애상을서정적으로읊은시편들을발표했다.1959년전봉건과함께사화집「신풍토」를주재했으며,이듬해시집「地圖속의눈」을발간하여제6회전라남도문화상을수상했다.
한글문학상(대상),탐미문학상(대상),허균문학상(대상),雪松문학상(대상),한민족문학상(대상),한국글사랑문학상(대상)을수상했으며현재한국문인협회자문위원을맡고있다.

목차

선흘곶동백숲
승부수
오름마다횃불
의문의방화
5ㆍ10선거
피는피를부르고
태풍전야
한라산게릴라
시련의길
지하선거
제14연대
유혈의서막
여순병란후
뒤따른숙군
지휘부의궤멸
낮도무섭고밤도두려워
소년은어디로
숭시
선타러간다
북촌이야기
동굴은말햄수다
구사일생
갈림길
한줌의재

출판사 서평

제주도4ㆍ3사건은일제로부터해방된한반도에38선이가로놓이고남ㆍ북으로분단된정부의수립이현실화되고있을때일어난사건이다.그것은휴화산이던한라산이어느날활화산으로폭발한것과같은일이었다.그리고그활화산은8년여에걸쳐제주섬의비극으로이어져갔다.
남로당에의한4ㆍ3봉기-단독선거-5ㆍ10선거의파탄-야산대와국방군의살육전등피의판가름이거듭되면서도민의목숨과삶의터전은깡그리무너져갔다.
이런참극이벌어지는가운데오로지살아남기위해산으로,해안으로,토굴속으로숨어다니다속절없이죽어간섬사람들.
제주4ㆍ3사건은해방후부터6ㆍ25전후까지우리의분단현실이안고있던비극에다름아니다.
이사건은급기야내륙에비화한여ㆍ순병란에불을댕기고6년간에걸쳐지리산,덕유산,회문산등의유격전이벌어진도화선이되기도했다.한마디로제주도의참상은곧한반도의비극이요,죽음의무도장에서칼춤을추는분단의슬픈이야기이다.

*
3월초하루아침,가지가지기를세운학생,시민2천여명이오현중학교교정을가득메웠다.
바람에날리는형형색색의기와플래카드를높이내걸고스크럼을짠데모대는해방가를목청껏불러댔다.
집회가열리려던순간,패트리치대위의지휘아래강동효서장이이끄는기마대가홀연위협발포를하면서대열속으로뛰어들어해산을명했다.이에학생들은투석으로맞서일진일퇴의파상데모를이어갔다.
“집회를10분내에끝내라.”
패트리치대위가타협안을내놓았으나동문통,서문통칠선통에서밀려오는3천여데모대의격류는
“으.”
“으.”
힘차게장단을맞추어대회장으로튕겨나갔다.
급기야‘3ㆍ1독립기념29주년도민대회’는미군과경찰의삼엄한감시속에서진행되었다.
“우리는3ㆍ1독립정신을이어받아외세를이땅에서몰아내고조국의자주통일을쟁취하여민주국가를세우자…….”
도민전의장안세훈의개회사에이어독립선언문낭독과각계각층의대표연설이있고나서대회는끝나는듯했으나,군중은또다시데모로이어갔다.
데모대가감찰청앞에이르자,미군과경찰대는기관총을설치한지프로바리케이드를치고위협사격을하면서즉시해산을명했다.
이때관덕정광장에서는밀고밀리는실랑이가벌어지고있을때다.갑자기3두의기마대가달려들어무차별발포로학생한명을쓰러뜨리고,수명의유혈참사를빚고말았다.
이같은소년의죽음을목격한군중은소리소리절규하면서시신을앞세워불덩이같은분노를터뜨렸다.
그이튿날,군정경찰은전도에검거선풍을몰고와민전간부를비롯,민주인사들을검거투옥하자,민전에서는‘싸우면서해결의실마리를찾자’는방침에따라맹렬한반격투쟁으로맞섰다.
이미일부직장에서는스트라이크가진행되고전도의학생은동맹휴학에들어갔다.
3월9일에는‘제주도총파업투쟁위원회’가각직장별로만들어져전도민의투쟁태세가갖추어졌다.

제주도에해방의그날은왔다.태평양전쟁이막바지에이를때일본군대는미군의상륙에대비해마을마다청년대,소년대를만들어군사훈련과강제노역을시켰었다.미군이제주도에상륙할경우항전을펼치겠다는속셈이었다.
그러나마지막까지발악을하던일제가패망하자이번에는패전한일본군의횡포를막고마을을지키는파수병과치안대로탈바꿈해갔다.
조선의해방군으로이섬에진주해온미군.그들은해방이듬해군정법령94호를발표해제주도를전라남도에서하나의‘도’로승격시켜놓았다.
제주도의군사적가치를높이산때문이었다.짐짓소련과중국에대한극동전략의틀속에서제주도를구상했던것이다.
이렇듯해방군으로상륙한미군정은그러나곳곳에서조선사람과갈등을빚게되었다.마크제인은〈일본일기〉에서‘우리는상륙한그날부터한국인의적으로서행동하였다.’고털어놓고있다.
특히제주도에서는그것이두드러졌다.
현재진행형의비극,제주4ㆍ3사건은해방후부터6ㆍ25전후까지우리의분단현실이안고있던비극에다름아니다.
이소설은아무죄없이희생된제주4.3희생자에대한진혼곡이자역사의이면까지파헤진슬픈현대사의올바른복원의성격을지니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