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숨겨진 자료를 소개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하자. 문헌은 세월 속에 숨어 있다 나타났다. 한 줄로 요약하면, 여러분이 보게 될 자료는 6.25전쟁 때 강화군 강영뫼에서 발생한 집단 학살을 추념하기 위해 비를 세우고 위령제를 지내는 행사에 관한 기록이다. 손으로 일일이 편철한 문서는 일제 강점기에 황해도청에 근무한 이병년(李秉秊) 옹이 1966년부터 1977년경까지 제막식과 위령 행사를 거행하면서 모은 문건이다.
1966년 간곡노인회장을 맡고 있던 그는 ‘강영뫼 73순의자 위령 행사 추진위원 대표’로서 이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했다. 자료는 그의 손자 이희석(李喜錫) 선생이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에 제공하면서 여기까지 이르렀다. 서류철로 묶인 자료는 1966년 병오이강(丙午以降) 「강영뫼 순의자 칠십삼인(七十三人) 위령행사 추진 관계서류철」, 간곡노인회(艮谷老人會)명의로 되어 있다.
이 서류철은 제수용품과 조위금 기부자 명단과 금액, 위령 제사문/제문, 산신제축(문), 초청 말씀, 초청장 발송 대상, 유가족 현황, 순의 비문(초안), 추도사, 전보문, 영수증, 청구서, 참배자 명단, 신문 기사, 애국지사 도륙기, 73명의 위령 행사 추진 경과, 개인 이력서, 위령 비문, 도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병년은 왜 이 자료를 깨알같이 묶어 남겼을까. 전쟁의 참상 때문일까. 전쟁은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다. 전장에서 벌어지는 숱한 일들은 보통의 상상을 넘어선다. 인간성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전쟁이라는 암흑의 세계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선한 의도와 행동으로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다. 전장에서 인간이 벌인 일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파괴되는 존엄성 앞에서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나와 너는 죽음이 다가오는 극한 상황을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까, 책은 이 질문을 던진다. 사람을 가장 손쉽게 죽일 수 있는 때가 전쟁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그러는 것은 아니다. 무기를 들고 상대방을 죽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적이 아닌데도 자신의 무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사람도 허다하다. 무기만 있으면 적이나 민간인이나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다. 마음에서 미움으로 가득 찬 상대를 적으로 둔갑시켜 죽이는 것은 전시에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폭력이다.
이념을 달성하려는 사람도 흔하다. 이 땅에서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은 곧 서로의 적이 된다. 좌익과 우익, 공산주의와 반공산주의를 가르는 선에 대해 후대 사람들은 체험하지 못한 것을 함부로 말하는 건지 모른다. 이 다음에 누군가 자신의 이름 앞에 좌익 또는 우익이라는 수사로 한 평생을 단정하는 일은 아마 그가 살았던 시대를 슬프게 할 것이다. 하나의 기준으로 일생을 가늠할 수 없을테니까. 경계는 조금씩 중첩되어 있고 가치관은 변하기 나름이다.
전쟁은 멈추었고 끝나지는 않았다. 비는 남았고 위령 행사는 끊겼다. 이 책은 1장에서 비를 세우게 된 배경과 지원에 나선 심도직물공업(주) 김재소 사장의 역할, 지역 정치에 휘말린 위령 행사, 우여곡절 끝에 완공을 보게 된 제막식과 위령제를 소개한다. 제2장은 인민군이 점령한 강화도의 뒤바뀐 세상을 조명하고 후퇴와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다. 점령지역에서 행정조직을 건설한 노동당이 통치를 시작하고 인민위원회와 내무서는 ‘반동분자’ 처리에 나선다.
제3장은 시간의 뒤안길에 묻힌 강영뫼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시작해 하나의 사건이 어떻게 반공주의 담론으로 포장되는지 쫓아간다. 눈여겨볼 대목은 전세가 뒤바뀌어 북한이 남한 점령지역에서 후퇴하면서 벌이는 학살의 명령을 되짚어보고, 첩보활동의 주 무대가 되는 강화도와 교동도의 끝자락에 선 사람들을 소환한다.
끝으로 사건이 지역공동체에 남긴 상처를 보듬는다. 전쟁이 남한과 북한에 남아 있는 흔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죽고 죽이는 광경이 사회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라고 에둘러 말해도 상관없다. 망자는 그렇게 잊혀졌다 부활하고 세계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여기에는 어떤 고상함이나 추함이 있을 수 없다.
1966년 간곡노인회장을 맡고 있던 그는 ‘강영뫼 73순의자 위령 행사 추진위원 대표’로서 이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했다. 자료는 그의 손자 이희석(李喜錫) 선생이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에 제공하면서 여기까지 이르렀다. 서류철로 묶인 자료는 1966년 병오이강(丙午以降) 「강영뫼 순의자 칠십삼인(七十三人) 위령행사 추진 관계서류철」, 간곡노인회(艮谷老人會)명의로 되어 있다.
이 서류철은 제수용품과 조위금 기부자 명단과 금액, 위령 제사문/제문, 산신제축(문), 초청 말씀, 초청장 발송 대상, 유가족 현황, 순의 비문(초안), 추도사, 전보문, 영수증, 청구서, 참배자 명단, 신문 기사, 애국지사 도륙기, 73명의 위령 행사 추진 경과, 개인 이력서, 위령 비문, 도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병년은 왜 이 자료를 깨알같이 묶어 남겼을까. 전쟁의 참상 때문일까. 전쟁은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다. 전장에서 벌어지는 숱한 일들은 보통의 상상을 넘어선다. 인간성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전쟁이라는 암흑의 세계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선한 의도와 행동으로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다. 전장에서 인간이 벌인 일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파괴되는 존엄성 앞에서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나와 너는 죽음이 다가오는 극한 상황을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까, 책은 이 질문을 던진다. 사람을 가장 손쉽게 죽일 수 있는 때가 전쟁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그러는 것은 아니다. 무기를 들고 상대방을 죽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적이 아닌데도 자신의 무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사람도 허다하다. 무기만 있으면 적이나 민간인이나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다. 마음에서 미움으로 가득 찬 상대를 적으로 둔갑시켜 죽이는 것은 전시에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폭력이다.
이념을 달성하려는 사람도 흔하다. 이 땅에서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은 곧 서로의 적이 된다. 좌익과 우익, 공산주의와 반공산주의를 가르는 선에 대해 후대 사람들은 체험하지 못한 것을 함부로 말하는 건지 모른다. 이 다음에 누군가 자신의 이름 앞에 좌익 또는 우익이라는 수사로 한 평생을 단정하는 일은 아마 그가 살았던 시대를 슬프게 할 것이다. 하나의 기준으로 일생을 가늠할 수 없을테니까. 경계는 조금씩 중첩되어 있고 가치관은 변하기 나름이다.
전쟁은 멈추었고 끝나지는 않았다. 비는 남았고 위령 행사는 끊겼다. 이 책은 1장에서 비를 세우게 된 배경과 지원에 나선 심도직물공업(주) 김재소 사장의 역할, 지역 정치에 휘말린 위령 행사, 우여곡절 끝에 완공을 보게 된 제막식과 위령제를 소개한다. 제2장은 인민군이 점령한 강화도의 뒤바뀐 세상을 조명하고 후퇴와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다. 점령지역에서 행정조직을 건설한 노동당이 통치를 시작하고 인민위원회와 내무서는 ‘반동분자’ 처리에 나선다.
제3장은 시간의 뒤안길에 묻힌 강영뫼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시작해 하나의 사건이 어떻게 반공주의 담론으로 포장되는지 쫓아간다. 눈여겨볼 대목은 전세가 뒤바뀌어 북한이 남한 점령지역에서 후퇴하면서 벌이는 학살의 명령을 되짚어보고, 첩보활동의 주 무대가 되는 강화도와 교동도의 끝자락에 선 사람들을 소환한다.
끝으로 사건이 지역공동체에 남긴 상처를 보듬는다. 전쟁이 남한과 북한에 남아 있는 흔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죽고 죽이는 광경이 사회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라고 에둘러 말해도 상관없다. 망자는 그렇게 잊혀졌다 부활하고 세계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여기에는 어떤 고상함이나 추함이 있을 수 없다.
강영뫼의 창 (남북한 사이의 강화와 학살)
$15.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