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민의 전투일지로 임진왜란을 다시 쓰다

김시민의 전투일지로 임진왜란을 다시 쓰다

$15.84
Description
『김시민의 전투일지로 임진왜란을 다시 쓰다』는 사천전투·진해전투·창원전투·지례전투·사랑암전투에 이어 4박 5일 동안 10회의 진주성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끈 김시민 장군의 서사에 대해 다룬 책이다. 이 책을 통해 김시민 목사가 국난을 맞아 어떻게 대처했는지,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지켜온 우리 역사가 얼마나 잘못 기록되어 있는지 함께 느낄 수 있다.
저자

박희봉

저자박희봉(朴熙峯)은중앙대학교공공인재학부교수.
한양대학교를졸업하고,미국TempleUniversity정치학과에서행정학전공으로박사학위를취득했다.중앙대학교공공인재학부에서조직론과리더십론을강의하고있고,주요연구분야는사회자본이다.2015년신동아4월호에행정학분야논문인용지수(KoreaCitationIndex)1위의학자로소개된바있다.
주요논문은홈페이지(www.socialcapital.re.kr)에실어놓았다.대표저서로는『사회자본:불신에서신뢰로,갈등에서협력으로』(2009),『좋은정부나쁜정부』(2013),『교과서가말하지않은임진왜란이야기』(2014)등이다.
이책은2014년『교과서가말하지않은임진왜란이야기』를저술하면서역사속에묻혀있던김시민장군의공적을기리고,일제에의해철저하게왜곡된우리역사의진실을보여주기위해쓰게되었다.앞으로2차진주성전투에서산화한5,800명의열사에대한이야기를쓸계획이다.

목차

책을펴내며
01.8:1전설적승리
02.내신원을밝혀라
03.전투를준비하라
04.거짓역사를벗겨버리자
05.왜적이올것이다
06.준비된자가승리를쟁취한다
07.왜적은강했다
08.싸우다죽기는쉬우나,길을내어주기는어렵다
09.우리는사실과다른역사를알고있다
10.백성을지키는것이우선이다
11.왜곡된역사는바뀌어야한다
12.훈련안된병사는군인이아니다
13.왜적의선봉을일거에격퇴하라
14.새로운증거로역사를새로쓰자
15.가자,왜적을물리치러
16.조선은왜란에대비해전쟁준비를하였다
17.김시민을진주목사에임명한다
18.1년6개월동안일본군22만명중에서10만이상이죽었다
19.나를따르라
20.모두내백성이다
21.일본군은왜이유없이후퇴했을까?
22.명령만내리십시오목숨을걸고따르겠습니다
23.역사왜곡의증거가명백하다
24.승리를기획하라
25.왜적에게도약점이있다
26.선조임금은결코무능하지않았다
27.왜적의힘이약해졌다
28.진해성을수복하라
29.왜적을물리친주인공은조선관군이다
30.훈련한대로전투에임하라
31.왜적의목을쳐라
32.조선군이전쟁의주도권을잡았다
33.창원성을넘어라
34.기필코왜적을몰아내겠습니다
35.연합에의해전라도를지켜내다
36.기병과보병의연합작전을펼치다
37.이기는맛을알다
38.황강나루를공격하다
39.현재는과거의연장이다
40.진해성에서또승리하다
41.전투는우리가맡는다
42.꼭승리해주시오
43.우리가이긴다
44.함께싸우겠습니다
45.어서오라.적들이여
46.한놈도남기지마라
47.170문의대포가발사됐다
48.곧저들이물러갈것이다
49.일본가부키에서조선의목없는귀신이김시민목사이다?
50.님이시여,이대로가지마소서
51.운명이라면받아들여야한다
맺음말

출판사 서평

사천전투·진해전투·창원전투·지례전투·사랑암전투에이어4박5일동안
10회의진주성전투를모두승리로이끈김시민장군의역사다큐멘터리서사


임진왜란이발발한지6개월이지난1592년10월,3만명의일본군이진주성으로몰려들었다.대병력을집결시켜진주성을단숨에함락하기위해서이다.당시낙동강을사이에두고조선군과소규모전투를벌이던일본군은일거에조선군의요충지를점령하여그간의대치전을끝내버릴계획이었다.
그때까지소규모전투에서는공방전이이어졌지만,대규모전투에서조선군이일본군을물리쳐본적이없었다.그러나김시민목사가이끄는3,800명의진주관군은3만명의일본군을맞아4박5일간의밤낮을가리지않은10회의전투를모두이겨냈다.
이전투로말미암아임진왜란은국면이바뀐다.일본군은낙동강서쪽으로진출할계획을포기해야만했다.더나아가조선군은수세에서공세로바뀌고,일본군수뇌부는퇴각을고민해야했다.
전쟁터에서의승리는이겨야한다는정신력만으로는이룰수없다.정신력뿐만아니라병사의수와병사의훈련상태,무기,그리고전략이모두구비되어야한다.더욱이3만명대3천800명,8대1의열세를딛고승리를거두기위해서는더욱그렇다.
나는임진왜란에대해알아갈수록김시민진주목사의승리가주는의미가어떤것인지알게되었다.피가끓어올랐고,김목사에대한존경심이더해졌다.도요토미히데요시가왜김목사를두려워했는지알게되었다.일본군이1차진주성전투에서완패한후,왜도요토미히데요시가2차진주성전투에9만3천명이라는대군을진주성에파견했는지알게되었다.
독자들도이책을통해김시민목사가국난을맞아어떻게대처했는지,그리고우리조상들이지켜온우리역사가얼마나잘못기록되어있는지함께느끼길바란다.

*책속으로추가*

“그렇지.나도동감이야.『일본전사』중간중간에조선의주요도시를점령한일본장수의이름이나오지않던가?이들중에1차출전군명단에없는장수들은추후에자신의병력을이끌고조선땅에들어온것으로추정하면되겠지.그럼결론은무엇인가?”
“예.임진왜란때조선에서전투를벌인일본군은최소한22만명이넘습니다.그리고1년2개월이지난1593년6월,제2차진주성전투가벌어지기전까지이들중10만명이상이사망한것이지요.”
“그래.22만명의45%가넘는일본군이1년2개월만에조선땅에서죽었다는것아닌가?그것도9일동안25차례치른제2차진주성전투에서죽은일본군을계산하기전에말이지.”
“그럼,제2차진주성전투에서일본군이얼마나죽었을까요?”
“그것을추정할수있는자료는현재로서는없네.그런데내추정으로는전투참여자1/3이상이죽었다고봐야할거야.”
“당시진주성을공격하던일본군병력수는9만3천명에이릅니다.그렇다면8박9일동안일본군이3만명이상이사망했다는것이됩니다.그렇게되면임진왜란에참여한일본군22만명,사망자는13만명이니1년2개월간의전투에서일본군은60%이상이사망했다는것이됩니다.일반적으로한부대의사망자가1/3이넘으면그부대는더이상전투를지속할수없다고합니다.그런데60%가사망했다면그야말로전멸했다고보아야할것입니다.이것만으로도역사가바뀌어야할것입니다.”〈왜곡된역사는바뀌어야한다·11〉

“그런데왜역사에마치명군이조선을구한것처럼서술되었을까요?”
“그러니역사왜곡아닌가?일본군이조선군에쫓겨물러났다고하면조선의독립성을인정하는격이니일본이일시물러난이유를조선의힘이아닌다른데서찾으려고하다보니명군에게그공을돌리는것이지.”
“교수님.그래도의병의공적은크지않나요?”
“의병의공적은크지.그런데문제는아주묘해.의병을폄하하겠다는것이아니라실질적으로관군의역할이더크다는것이야.우선병력수만비교해도임진왜란때동원된관군의수는총16만명에이른반면,의병수는모두합쳐봐야3만명을넘지않아.또한일본군과대규모전투를치른당사자는대부분조선관군이고,의병이일본군을상대로한전투는소규모이거든.전투의수만을비교해도관군대일본군의전투는총31회였던반면,의병대일본군의전투는11회에불과하지.결론적으로관군이지리멸렬했다면조선은임진왜란을극복할수없었어.물론의병이많은힘이되긴했지만.”
“예.알겠습니다.일본군을맞아싸운당사자는관군이고의병이보조적인역할을한것인데,상대적으로의병의공적만을역사에표현한이유역시조선정부의무능을부각시키려는일제의술책으로보아야한다는말씀이시군요.”
〈왜적을물리친주인공은조선관군이다·29〉

“일제강점후총독부가조선에서처음시행한일중의하나가조선의역사왜곡입니다.총독부는조선의관습과제도를조사한다는명목하에1910년11월부터이듬해12월까지1년2개월동안전공무원과경찰,헌병대를동원하여조선의서점,향교,가정에있는조선의역사책20여만권을압수하였습니다.이중에서조선사왜곡에필요한사료만을남기고모두불태웠다고합니다.”
“음…그렇지.우리가일본인이저지른역사왜곡의흔적을찾아야해.임진왜란은공식적으로조선과일본이처음으로긴기간동안대면한사건이지.그렇기때문에일본은임진왜란에대해자기들좋을대로역사왜곡을해야했던것이지.따라서임진왜란전과정을살펴보면앞뒤가맞지않는것들이발견되거든.”
“예.어떤점에서인가요?”
“임진왜란전과정에서일본의조선역사관은분명하지.첫째,임금이무능하여백성을보호하기는커녕자신만이살겠다고도망갔다는점.둘째,조정이무능하여의사결정을하지못하고우왕좌왕했다는점.셋째,관군이무력하여싸움다운싸움을해보지도못하고무너졌다는점.위의세가지는공통점이있어.조선은백성을지켜주는국가의기능을하지못했다는것아닌가.기본적으로조선정부가무능하여백성이고생했다는것.한마디로역사적으로조선정부는무능하여백성을보호하지못하니오히려일본이조선을통치해야조선백성에게유익하다는점을말하고자하는것이지.게다가일본군이조선을점령하지못한이유를명군과의병에돌리고있지않은가?이것역시조선이라는국가와정부를부정하려는의도인것이야.이러한일본역사가의저술이아직까지도우리들의사고를지배하고고착시키고있지않은가.”
〈역사왜곡의증거가명백하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