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수와 조선통신사의 시대 (한류의 원점을 찾아서)

신기수와 조선통신사의 시대 (한류의 원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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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신뢰와 우호의 한일관계를 활짝 연 한류의 원점을 찾아서 『신기수와 조선통신사의 시대』. 임진왜란·정유재란 후 도쿠가와 막부와 조선은 교류 재개를 위해 전후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착수한다. 1607년 제1차 [회답겸쇄환사]가 일본을 처음 방문한 이후 에도시대 260년 동안 조선에서 12차례에 걸쳐 일본과 교류한 우호사절이 조선통신사이다.

정치가와 군인뿐만 아니라 학자와 의사, 화가, 서도가, 음악가, 요리사 등 500명이 넘는 통신사 일행은 일본이 다시 조선을 침략할 속셈은 없는지에 대한 정보 수집도 하면서 큐슈九州에서부터 에도江戶로 향하는 각 지역마다 서민과의 교류를 통해 일본 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 모습은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齊의 [도카이도 53역참東海道五十三次]을 비롯한 많은 그림으로 남아있다.

오늘의 한일 양 시민에게 통신사 연구의 획기적인 전기를 제공한 사람이 신기수이다. 신기수는 일생을 바쳐 잊혀진 역사적 사실을 찾아내 빛을 비추고 영화 [에도시대의 조선통신사]를 제작하였으며, 에도시대에는 ‘쇄국’으로 외국과의 교류는 없었다고 기술해 왔던 일본의 학교 교과서를 바꿔 쓰게 하는 업적을 남겼다. 저자는 신기수와 조선통신사를 테마로 하여 조선통신사가 남긴 찬란한 한일 교류사의 발자취를 찾아 나섰다. 이 책은 바로 ‘조선통신사’가 한류의 원점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저자

우에노도시히코

저자우에노도시히코上野敏彦는1955년가나가와현출생,요코하마국립대학경제학부를졸업하였다.1979년부터교도통신에입사하여사회부차장을거쳐현재편집위원겸논설위원으로재직하고있다.민속학자미야모토쓰네이치(宮本常一)의영향을받아국내외각지역을취재하며,일본과아시아의근현대사,농림수산,의료,환경공해문제를주요테마로삼아왕성하게창작활동을하고있다.
저서로는[釜すし哲物語](筑摩書房),[う純米酒](平凡社),[海と人と魚日本漁業の最前線](農文協),[そば打ち一代](平凡社)외다수의저서가있고,공저로[日本コリア新時代またがる人の物語](明石書店)등이있다.

목차

추천의글①/추천의글②/프롤로그

장영상에거는마음
1.따뜻한민중의시선/2.역사교육의왜곡을바로잡다/3.요원의불길,번져가는상영회/
4.에도시대의국제인,아메노모리호슈/5.교과서에끼친임팩트/6.후세에전하는궁극의사료집

2장통신사의발자취를더듬는여행
1.기개넘치는승려-우시마도/2.시대의교양-도모노우라/3.피로를풀어준최고의음식접대-시모카마가리/
4.닌자탐색대의활약-가미노세키/5.노기장군의뿌리는조선-시모노세키/
6.국경의섬에서아리랑축제-쓰시마/7.비와코호수와조선인가도-시가/
8.배다리와은어초밥-미노지/9.외국인춤-미에/10.문하생의생각-시미즈

3장가교의인물
1.조선인을감싸준미술상/2.대나무숲에있는천황무덤/3.민족을되찾은날/4.기세꺾인최강노조/
5.미래를내다본행동/6.코스모폴리탄(국제인)일가

4장인간적인연대를찾아서
1.철교아래에있는문화의전당/2.미각은국경을넘어/3.이마무라다이헤이에게배우다/4.내선일체의속임수/
5.오시마나기사와의교우/6.한줄기빛/7.재일동포로살아가는자신(自信)

5장도요토미히데요시의침략과항복한왜인
1.교토불교회의자기비판/2.유학을전한강항/3.김충선(사야가)과연행자의후예/4.고향은잊기어렵소이다/
5.조국으로의여정/6.중앙정보부(KCIA)의비밀공작/7.한국계일본인으로살아가기

6장다꾸지못한꿈
1.출발점은백정문제/2.잠자는고양이와심미안/3.퍼져가는통신사연구/4.한국유학생의급증/
5.차질과괜찮아요정신/6.유지를잇는작품이히트/7.아직도찾지못한명화[아리랑]

에필로그/한국어판후기/에도시대의조선통신사일람표/참고·인용문헌

출판사 서평

[책속으로추가]
신기수의조선통신사연구는유럽과미국등해외로도번져갔다.메이지정부에의해심어진조선멸시관이확산되는가운데,에도시대의통신사를그린작품은가치가없는것으로취급되어해외로흘러간작품도적지않기때문이다.1988년네덜란드의라이덴대학에서개최된유럽한국학회에참석한신기수는행사장에서[에도시대의조선통신사]를상영하고지참해간사료를전시했더니영국런던대학의문학부장이“런던대학에도두루마리그림이있으니귀국길에영국에들려서봐주지않겠습니까”라는제안을해왔다.
런던대학아시아·아프리카연구소에서소중히보관되어온두루마리그림은길이가약13m나되고그상단과하단부분에금가루가채색되어있었는데,도쿄간다의고미술상에서구입한듯‘1948년7800엔’의가격표가붙어있었다.
이작품은일본인이조선통신사고관이타고있는가마를높이들어올려연도에나온민중의환호에답하는모습과말을탄조선인이관객이보내온동백꽃향을맡고있는모습등이구김살없는자유스런터치로그려져있었다.
같은시기에뉴욕시립도서관도방문하여스팬서컬렉션안에있는가노에이케이의[조선사절내조도권]을처음으로펼쳐볼수있었다.[6장‘퍼져가는통신사연구’에서]

2002년월드컵에서한국과다른나라들과의경기에대해목소리를낼수없던신기수와병원에서필담으로다음과같이주고받은이야기가있다.

──병상에서TV를보고서받은인상은.
“노도와같은민중의힘을느낍니다.‘붉은’이라든가‘빨강’은과거에는사람들의정치생명을빼앗은단어였습니다.그런데한국의응원스탠드는고추색깔의붉은색티셔츠를입은젊은이들로빨강일색.시대는변하는것이군요.무엇보다도그박진감에놀랐습니다.”

──‘리틀서울(LittleSeoul)’이라고불리는도쿄의신오쿠보(新大久保)에서는한일의젊은이들이월드컵을보면서분위기가한창고조되고있습니다.
“일본젊은이들도한국젊은이들도베일을걷어내고교류를시작했다는느낌이듭니다.마치현대의통신사가왕래하는듯하여대단히기쁩니다.”

──거리에서한국팀을응원하는재일동포중에는북한국적을갖고있거나북한을지지하는젊은이도많습니다.“나라의형태는바뀌지만,새삼스럽게민족은하나라고생각했습니다.국가는고작해야100년의역사정도밖에안됩니다.그것을실감했습니다.중요한것은민중끼리의유대이고,거기에시선을맞추고있으면좋겠습니다.”

그로부터2년후일본에서는TV드라마[겨울연가]의방영등한국영화가계속해서히트하고,젊은이는물론이거니와중년여성에이르기까지한글을공부하는등한류붐의한가운데에놓여있다.
독도귀속이나역사교과서문제등국가간의관계라는의미에서는한일간에는여전히힘든국면도있지만,한국에는일본문화가개방되기이전부터일본의애니메이션과음악등이넓게침투해있었고민중들끼리의문화교류는점점돈독해지고있다.
신기수가남긴조선통신사연구업적은일본과한반도의거리를좁혀21세기한류붐이오는데밑바탕을만들었다고도할수있다.[6장‘아직도찾지못한영화[아리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