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시와 흥남시의 도시계획 (1955~1962년 구동독 도시설계팀의)

함흥시와 흥남시의 도시계획 (1955~1962년 구동독 도시설계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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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90세, 산 증인의 생생한 함흥시와 흥남시 도시재건 사업, 최초이자 마지막 이야기
6?25 한국전쟁으로 인한 남북 분단 시대에 그 무엇보다도 통일이 최대 민족적 과제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은 쌍방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화의 창구를 일방적으로 폐쇄했다가 교류했다 하는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고 있다. 불과 작년만 해도 남북은 서로 다시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실향민을 비롯한 우리 국민은 잠시 통일의 꿈이 당장이라도 이루어질 것 같은 꿈을 꾸게 하였다. 그러나 이내 다시 남북관계는 냉담해졌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어젠다는 “독립”이었듯이 분단시대 우리에게 최고의 어젠다는 “통일”이다.
이 책의 저자 신동삼은 우리의 어젠다인 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다. 그는 함경남도 정평군에서 태어나 1950년 흥남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북한의 인재발굴사업인 제1차 동유럽 국비유학생에 선발되었다. 유학 도중에 북한 함흥시와 흥남시 재건 사업의 통역관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다시 동독으로 돌아가 드레스덴 공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1959년에 서독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인천 출신인 제1차 파독 간호사와 만나 결혼을 하면서 이루지 못한 꿈에도 그리던 통일을 개인적으로나마 이룩했다고 생각한다. 작가 루이제 린저의 도움으로 북한을 2차례 방문하여 고향 땅을 밟고 가족을 만났다. 저자는 독일에서 건축가로 일하다가 정년퇴직하고 〈구동독 함흥시 도시계획〉에 관한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그러면서 함흥시, 흥남시의 도시재건사업의 자료도 정리하였다. 현재 저자는 90세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2013년과 2019년 서울에서 구동독 함흥시 도시설계 사업에 대한 강연과 특강을 하며 북한의 도시 재건사업에 대해 각 전문가와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최근에 ‘일본군 위안부’와 같이 과거 우리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아직 살아있는 사람의 생생한 증언, 기억과 자료를 정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느꼈다. 이 책은 북한의 함흥시와 흥남시의 도시재건 사업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생생한 사료로써 그 가치있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저자

신동삼

1930년함경남도정평군주이면풍양리(후에신경리)에서출생했다.6·25전쟁당시인1950년에흥남고급중학교를졸업했고,그해북한의인재발굴사업인제1차동유럽국비유학생선발시험에합격하여동독의드레스덴공대로유학길에올랐다.
1955년4월,독일함흥시재건단(DAG)통역관으로파견되어활동했으며,그후동독으로돌아가1956년부터드레스덴공대에서건축학을전공했다.1959년서독으로망명한이후,인천출신인제1차파독간호사와결혼하였으니독일에서먼저‘작은통일’을이룬셈이다.
1988년독일작가루이제린저여사의도움으로김일성주석에게북한방문을청원한이래2001년,2009년두차례방북하여누이동생과상봉하고독일과북한간의과학기술교류사업을추진하였다.
1979년에한국을처음방문한이래북한출신재독과학자와그2세들에게한국을소개하고,그들의한국방문을추진해오고있다.
2013년5월에는서울대,조선대등전국5개대학에서구동독함흥시도시설계사업에대한순회특강을한바있다.2019년봄과가을에한국여러곳에서함흥시관련순회특강을했다.저자는독일에서건축가로일하다정년퇴직하고,현재마인츠에서‘구동독함흥시도시계획’에관한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
국내저서로〈동쪽을넘어서쪽으로온사람-독일에서보낸60년,한탈북자이야기〉(2012,코람데오),〈신동삼컬렉션-독일인이본전후복구기의북한〉(2013,눈빛)등이있다.
앞으로저자는주한독일문화원과프리드리히나우만재단을통해서가족을만가기위해북한에방문할예정이다.

목차

감사의말/들어가며/책을펴내며
제1장함흥시와흥남시도시계획과저자의연관
1.연구자료출처와제목에대한다른연구현황2.체계적인접근방법
제2장함흥시프로젝트의배경과주변국의지정학적조건
1.국제정치적긴장속의한국2.북한과구동독과의관계3.설계팀장콘라트퓟쉘과동독건설아카데미동료들
제3장함흥시프로젝트의계획
1.함흥프로젝트의위탁과정1)재건과계획에관한현존(現存)조건2)현재조건:자연,역사그리고북한주민의인간성3)사회주의국가도시계획단위의근린주거지역
2.함흥시도시계획-도시기본설계의연대기록19551)1955년의함흥시건설의기본자료-함흥시총계획도.함흥시역사2)도시중앙광장의변체성(變體性,variant)3)건축공정과유형개발
4)보충적인건축프로젝트,메디컬센터
3.서신및일기항목,2013DAG인터뷰1)함흥에서부친공익현통역사의편지2)구동독함흥재건단참여와나의소감3)2012년9월베를린비스도르프에서전동독재건단(DAG)단원과인터뷰4)게르하르트슈틸러의함흥일기
4.함흥시도시계획요약
제4장인접도시흥남시도시계획
1.흥남공업지대의형성사2.흥남공업지대개요3.흥남총도시계획안4.흥남유정리소지구계획안5.흥남용흥리소구역-본궁의역사6.본궁및용흥리소지구계획안-흥남용흥리
제5장계획된도시의미래전망
1.서울잠실설계의사례2.통일후의남북공동경제체계와한·독도시계획경험의통합가능성에대하여3.약70년후의함흥:지속가능성에대한문제제6장도시설계수출-베트남의사례
1.건축-도시설계수출의역사적현상2.신흥국베트남으로의도시계획·설계수출3.베트남빈(Vihn)시의1974-로란드디틀의설계설명서1)설계구역과주민에대하여2)토지이용설계.직업구조.거주.노동과건설현황
제7장맺음말
참고문헌및관계전문가들(Bibliography)/색인

출판사 서평

함흥시와흥남시는어떻게복구되었는가
6?25한국전쟁으로인해북한은우리보다훨씬더많은국토가파괴되었다.한국전쟁시미국이한반도전체에투하한폭탄은무려635,000톤의폭탄이다.제2차세계대전에서태평양전지역에투하한503,000톤의폭탄보다도많은양을한반도에투하하였다.이는우리나라보다도북한지역에더많은양을투하한것은자명한사실이다.그로인해이책의배경이된함흥시는95%가파괴되었다.
이에북한정부는정부가수립되자마자파괴된도시의재건사업에중점을두었으며,이를사회주의국가들의도움으로해결하려고하였다.이에북한정부는1953년8월5일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제6차회의에서전후북한재건을위한3단계계획을제시하였다.1953년은재건을위한준비기간으로,1954년부터1956년까지는1950년이전수준으로경제를회복시키고,1957년부터1961년까지는국가전분야의사업화를달성하려는계획을제시한것이다.
동독정부는1955년2월17일에북한함흥시와흥남시도시재건사업에도움을주기위한정령을발표하였다.동독정부는1955년4월〈동독함흥시와흥남시도시재건단(DGA)〉을파견하였다.당시함흥은북한의2대도시였다.인구수로만보더라도,당시325.5만명의인구가살고있는평양다음으로66.9만명이함흥에살고있기때문이다.또한함흥과흥남에는질소비료공장,화학공장등대단위공단이들어선신흥도시였다.
동독정부는독일도시재건단을파견하면서,함흥시와흥남시를중심으로한사회주의도시건설의모델조성을목적으로1956년에서1962년까지매년3,500만루블을지원하며,도시재건의작업구역은함흥시중심지,반룡산,회상리,삽오리,함주의5개구역이며,기반시설건설은도로건설팀,상수도팀,다리건설팀,지하건설팀,배수및관개시설팀의5개팀을파견하였다.또한함흥시만세교건설을위한정밀설계,지상공사작업반과공동으로교각의건축구조를건설하기위한토목공사작업반을두고,주택건설추진을위한지상공사작업반과주택건축을위한자재생산을위한건설운영팀으로구성하여파견하였다.

[동독함흥시도시설계자와북한의인력들]
함흥시와흥남시도시재건사업의도시계획가들은서양도시건축의여러이론들을활용하여사회주의도시건설을시작하였다.예를들어,서양에서는네이버후드유닛NeighbourhoodUnit설계기법의기본아이디어를활용하여근린주거지역Wohnkomplex를기본최소단위로,북한에서는소구역이라는칭하며응용하였다.이를기반으로사회주의적도시설계를구성하여함흥시와흥남시도시재건계획을세우게되었다.또한동독은제2차세계대전이후널리퍼진도시계획의중요한기본패턴인사회주의도시계획의16개기본조항에따라도시재건을실행하기도하였다.

우리는왜북한의도시재건사업에관심을가져야하는가
함흥은조선왕조의발상지이자,북한지역의제2의도시로써위상을가지고있기때문에북한정부가평양다음으로재건에힘을기울인곳이다.특정도시전체를외국의기술적원조를받아재건한것은세계적으로도독특하여그유례를찾기힘든사례이다.함흥시의재건을통해북한정부수립후동유럽과의관계가역사적으로어떻게형성되었는지살펴볼수있는좋은사례이기도하다.현재함흥시는조선시대유적(함흥읍성등유교적도시경관,함흥본궁등)이파괴되었지만,일제강점기시대의경관,동독에의한재건유산,북한자체개발에의한모습이혼재되어있는문화유산을보유하고있어,남북관계개선을통한교류협력시이를전략적자원으로활용할여지가있다.
도시연구관점에서함흥의동독원조에의한도시재건경험은북한의도시형성과발전과정에대한보다심도있는연구를수행할수있는좋은출발점이다.특히북한의타도시의경우에도전쟁으로인한파괴-〉사회주의국가의원조에의한재건-〉북한자체사회주의적도시건설-〉개혁개방등을위한도시건설및과소투자로인한도시쇠퇴등과같은경험을가지고있기때문이다.
이외에도함흥시와흥남시의도시재건사업에활용된도시건설의이론적인배경이우리나라잠실지구의개발과같은이론적배경을지니고있어,그비교와우리나라도시개발의연구에도많은자료로써의가치를지니게된다.그러나무엇보다도우리는우리의최고어젠다인“통일”이후의시대를준비하는차원에서북한에대한,북한도시에대한관심과연구,그리고여러문화적,역사적단절에따른사항을공유하고이해할필요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