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싸운 한국전쟁의 날들 (재일조선인과 스이타 사건)

일본에서 싸운 한국전쟁의 날들 (재일조선인과 스이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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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책의 저자 니시무라 히데키(西村秀樹)는 마이니치방송(?日放送)에서 30년이 넘도록 북한취재 전문 기자로 활약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동서로 분단되었던 독일의 과거를 상기하면서 왜 전범국 일본이 아닌 식민지였던 조선이 분단되었는지 문제 삼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전쟁 시기에 일본이 소해정(掃海艇)과 LST(전차양륙함, landing ship tank)를 보내 사실상 ‘참전’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일본국헌법의 토대를 뒤흔들 정도로 중요하다. 일본이 한국전쟁 당시 무기를 수송하고 있었다는 것은 일본국헌법 제9조를 국가가 앞장서서 보란 듯이 위반하고 있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1946년에 공포되어 이듬해 시행된 일본국헌법 제9조 1항과 2항에는 ‘전쟁’과 ‘군대’를 포기한다는 사실이 명기되어 있다. 이는 일본국헌법이 줄곧 ‘평화헌법’이라 불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일본이 미국의 병참기지가 되어 여러 군사작전을 수행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이 사실은 일본국헌법의 중심축을 흔들 수 있는 것임에도 한국과 일본 양쪽 모두에서 이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미비하다. 저자는 방대한 사료와 인터뷰를 통해 일본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사실이 ‘전후’ 일본 사회에서 어떻게, 그리고 왜 은폐되어왔는지를 밝힌다. 그리고 이러한 취재의 여정에서 저자는 재일조선인들의 운동과 사상에 휘말려 들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스이타(吹田) 사건은 1952년 6월 24일 밤, 오사카 스이타시(市)에서 한국전쟁 시기에 일본이 미군의 병참기지로써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등 전쟁에 협력하는 것에 항의하며 학생과 노동자, 조선인이 일으킨 반전(反戰) 투쟁이다. 김시종(金時鍾) 시인은 “한국전쟁에 보내지던 군수 열차를 10분간 멈추면, 1000명의 동포를 살릴 수 있다는 필사의 심정으로 참여했다”고 사건 당시의 경험을 전한다.

900여 명의 시위대가 1952년 6월 25일 오전 0시를 기해 행진을 벌이는 과정에서 경찰대와 충돌, 파출소와 미군 승용차에 화염병과 돌을 던지고 도주하고, 한큐 전철 측에 임시전철을 운행토록 하여 이를 ‘인민전철’이라 부르며 승차하였으며, 20분 동안 조차작업을 중단시킨 것을 이유로 111명이 소요죄 및 위력업무방해죄 등의 혐의로 체포·기소되었다. 소요죄 무죄판결을 받게 되는 1972년까지 재판에 걸린 기간만 해도 무려 19년에 이른다.
저자

니시무라히데키

1951년나고야시에서태어났다.?게이오대학(慶應義塾大?)경제학부졸업후,마이니치방송(?日放送)에입사.1982년김일성탄생70년행사이래,여섯차례에걸쳐북한을방문취재했고,?제주도에서두만강까지한반도를남북으로종단하며취재를해왔다.?
저서로는『北朝鮮·闇からの生還?富士山丸スパイ事件の?相』(光文社、1994),『北朝鮮抑留?第十八富士山丸事件の?相』(岩波現代文庫、2004),『大阪で?った朝鮮???吹田枚方事件の?春群像』(岩波書店、2004)가?있다.?

목차

한국어판서문/서문
1부3대소요사건의하나,스이타사건

1장스이타사건연구모임

1.스이타사건/2.쥬소十三/3.연구모임

2장스이타사건

1.스이타조차장으로향하는시위행진/2.일본공산당·오사카대세포책임자/3.허벅지에총상을입은오사카대학생

3장히라카타사건

1.히라카타방화사건/2.히라카타공창의시한폭탄설치사건/3.사건의막후

4장재판투쟁

1.스이타묵념사건/2.소요죄

2부한국전쟁과일본

5장조선은왜분단되었는가,왜일본이분단되지않았는가

6장일본이한국전쟁에‘참전’한날들
-8천명의도한渡韓과57명의죽음

7장현해탄을건너‘참전’한일본인

1.한국전쟁과일본의재군비/2.특별소해대/3.동원된여성들/4.현해탄을건넌일본인‘병사’/5.기지국가일본

8장압록강을건너‘참전’한일본인

1.만몽개척단/2.팔로군종군간호사/3.또한명의팔로군종군병사

3부스이타사건의해방

9장재일조선인과스이타·히라카타사건

1.주모자의반생/2.스이타사건/3.민족조직/4.55년체제/5.보석/6.무죄판결/7.판결이유/
8.히라카타사건의재판

10장지순한세월

1.검찰측총괄과오사카시의반론/2.공산당간부의증언/3.재일조선인리더/4.이바라키경찰무장트럭사건/
5.일본인측주모자/6.배신자의아들/7.군수열차습격계획/8.진짜목적은무엇이었을까

저자후기/역자후기/연표/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왜전범국일본이아닌
식민지조선이분단되었는가.

스이타사건을쫓은마이니치방송每日放送
북한전문취재기자니시무라히데키의르포르타주!

나는시위대의후미에있었습니다.당시한국전쟁에보내지던군수열차를10분간멈추면,1,000명의동포를살릴수있다고해서필사의심정으로참여했습니다.-김시종,300쪽

두사람은한반도중앙부의잘록한부분을가로지르는선에시선을멈췄다.북위38도선이다.이렇게해서지도에다트를던지는것보다약간복잡한정도의절차를거쳐분할안을제출했다.
-데이비드핼버스탬,133쪽

경찰과대치할강인한정신력이필요했다.시위대의선두에는175센티미터정도의유달리키가크고호리호리한체격의한남자가있었다.돌출된광대와먼곳을응시하는,옆으로길게찢어진눈매는굳건한의지를잘나타내주고있었다.남자의이름은부덕수夫德秀.재일조선인2세다.
시위대는무엇을목표로하고있는가.어디로향하는것인가.부덕수는왜선두에서있나.그리고누가계획한것인가.-니시무라히데키,32쪽

[역자의말]

저자는스이타사건그자체를쫓고있기도하지만,관련자들이살아간사건‘이후’의삶을비춰낸다.스이타사건은일본의3대소요사건중하나로,소요죄와표현의자유사이를왕복하며갈등했던헌법판례로다루어지면서헌법연구분야에서는잘알려져있다.그렇지만스이타사건이지닌또하나의측면,즉제국일본의식민지배가남긴‘얼룩’과도같은존재인재일조선인들이일본인들과함께벌인한국전쟁반대운동이었다는점은충분히공론화되지못했다.한국에서도스이타사건은일본의전후운동사만큼이나낯선이름이다.한국전쟁발발70년에관한신문기사와보도에서도이들의이야기는찾아볼수없다.
주류의거대서사에서생략된존재들은자신들이전하는이야기속에서출몰하고그이야기속에살아있다.저자가사건관련자들을찾아가그들의이야기를전해듣고기록함으로써밝혀낸것은사건의진상이나전모뿐만아니라,사건이후에그들이살아온삶의굴곡과주름에대한것이기도하다.그리고그것을하나씩펼쳐서기록으로담아낼수있었던것은사건당사자가아닌니시무라‘들’이‘공감적청자’를자처하며스이타사건연구모임을만들어함께-듣는장(場)을만든덕분이다.

한국전쟁은저자의표현처럼‘국제적내전’의성격을지녔다.이책의한국어판제목은『‘일본’에서싸운한국전쟁의날들-재일조선인과스이타사건』인데,여기서‘일본’은영토로구획된국민국가로한정되지않는다.오히려민족과국가혹은시민이라는주어진정체성의토대가‘반전’이라는공통의지향으로흔들림으로써연결될수있었던이들이함께싸워낸시공간을의미한다.

예를들면,이책에는삐라를뿌리고경찰에쫓기던부덕수가일면식도없는일본인노동자들의도움을받아도망친에피소드가소개되어있는데,그는일본어가어설펐던자기에게아무것도묻지않고도움을준일본인노동자들을상기하고“한국전쟁에반대하는일본인과조선인의마음이서로통했던것”이라며그런마음이지금도필요하다고말한다.저자는이러한상황이현재에일어난다면어떨지를독자들에게묻는다.“대기업경비원이낯선남자에게과연문을열어줄까.그리고공장안의노동자들은삐라살포를하다가도망쳐온그를도와줄것인가.”

이책곳곳에는조선,조선반도,조선전쟁등생경한단어들이등장한다.지금‘조선’은어디에도없는곳이다.그러나재일조선인들에게‘조선’은식민화되기이전의박제된과거모습그대로회귀하여만날수있는조국도아니며,인민이라는수식어를무색케하는북의‘공화국’을지칭하는말도아니다.제주에서4·3의피바람을피해소중한이들을남겨둔채작은배로밀항한이들이흘러들어와살았던동네이카이노(猪飼野)에도‘조선’은있었고,한국전쟁에사용될군수물자를실어나르는열차를저지하기위해서로의몸을묶고누웠던철로위에도‘조선’은있었으며,한국전쟁반대운동을하며인민전철에올라탄그밤에도일본인과재일조선인청년들의마음에는함께꿈꾸던‘조선’이있었다.따라서‘조선’은국민국가라는정치체제를넘어선의미,즉하나의‘실체’라기보다는어떤공통의‘심정’의장소에가깝다.

이책은김시종이크로포트킨의말을빌려부덕수(夫德秀)에게보낸전언으로끝을맺는다.
“그걸로됐다,거기에는나의지순한시절이있었으니.”
일본의헌법학자마에다아키라(前田朗)는이문구를마음속으로되뇌며“너무상냥하고,너무나슬프고,너무나도격렬한이말의의미를대부분의일본인은이해할수없다”고말했다.그러나과연한국인이라고다를까.이책을통해한국전쟁시기에일본에서겪어낸참전과반전의에피소드하나하나가독자들이발딛고있는세계,즉‘조선’이라는심정과‘일본’이라는장소성이생략된한국전쟁의일면적인토대를흔들며다가갈수있기를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