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선을 다시 본다

평화선을 다시 본다

$29.00
Description
1952~1965년 ‘평화선’을 규명한다.
이 책은 해방 이전의 한반도 어업 상황, 1945년 일본인 어민의 본국 귀환, 일본인 어선의 맥아더라인 침범, 이승만 정부의 평화선 선포, 1950년대 한일회담과 어업교섭, 그리고 1965년까지의 어업협정 체결과정을 다루고 있다. 1950년대 한일관계에 관한 연구를 집대성했으며, 해방 후 한국정부의 해양주권 선포를 둘러싼 외교교섭과 민간인 동향을 다뤘다. 필자는 첫째, 식민지 해방과 국가 독립에 관한 일본인 어민과 한국인 어민과의 인식 차이를 설명하고 이러한 민간 인식의 차이가 국가 정책 측면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논했다. 둘째, 평화선 문제의 배경으로서 일본의 점령종결을 앞두고 독도문제와 일본인 어민의 억류문제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살펴보았다. 셋째, 한국정부의 평화선 선포에 이르는 정책결정 과정과 함께, 일본어선 나포에 이르는 과정을 영상자료와 관련자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넷째, 평화선 선포 이후 일본인 어민의 억류문제와 관련하여 피해 당사자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국가통치의 문제점을 밝혔다. 다섯째, 제4차 한일회담 재개의 계기가 된 1957년 상호석방을 위한 외교 각서가 실질적으로 외교관계와 한국인 및 일본인 억류 피해자 문제에 대해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실증했다. 여섯째, 1961년부터 1965년에 이르는 국교정상화 협상 과정을 조사하여 한국정부의 일방적 주장인 평화선이 소멸되고 그 대신 한일 외교교섭에 따른 어업협정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정리했다.
저자

최영호

성균관대학정치외교학과를졸업,도쿄대학대학원에서국제관계학석사및박사과정을수료했다.박사학위(Ph.D)논문제목은「전후재일조선인커뮤니티의민족주의운동연구」였다.1997~2020년영산대학교일어학과교수를역임했으며,현재재외동포재단자문위원,정문학원이사등을담당하고있다.www.cafe.naver.com/choiygho

단독저서로,「재일한국인과조국광복」(1995년,글모인),「현대한일관계사」(2002년,국학자료원),「전향」(2005년,논형),「한일관계의흐름2004-2005」(2006년,논형),「한일관계의흐름2006-2007」(2008년,논형),「한일관계의흐름2008-2009」(2010년,논형),「한일관계의흐름2010」(2011년,논형),「일본인세화회」(2013년,논형),「한일관계의흐름2011-2012」(2013년,논형),「한일관계의흐름2013-2014」(2015년,논형),「한일관계의흐름2015-2016」(2017년,논형),「일본의공적개발원조와기업의인프라수출」(2017년논형),「일본경제기초」(2017년,논형),「한일관계의흐름2016-2017」(2018년,논형)등이있다.

단독논문으로,「현대한일관계사연구의회고와전망」(한일관계사연구제60집,2018년),InstitutionalizingJapan'sReliefSystemforRepatriates:KoreansandJapaneseatHakataPortin1945(InternationalJournalofKoreanHistory,Vol.22,No.2,2017),「해방직후아키타에서보인박열의움직임」(로컬리티인문학제17호,2017년),「해방직후박열의행적을통해본재일한인사회의로컬리티」(재외한인연구제36호,2015년),「釜山?域市と福岡市の地域間交流」(日本大?法?部法?紀要第56?,2015年),「終?直後博多港における引揚援護?制」(訪日?術?究者論文集,第21?,2015年),「조선인노무자미수금문제와조련의예탁활동」(동북아역사논총제45호,2014년),「군산거주일본인의귀환과정에나타난지역적특성」(한일민족문제연구제26호,2014년),「카이로선언의국제정치적의미」(영토해양연구제5권,2013년)등이있다.

목차

서장

문제의식/이책의특징/이책의내용

제1장한반도해방과일본인의본국귀환

해방전한반도의어업/조선총독부의트롤어선금지와원양어업진흥책/재조일본인수산업자의본국귀환/구룡포일본인어민의본국귀환/해방후남한의일본인어선단속/연합국군사령부의맥아더라인/한국의맥아더라인유지희망

제2장일본의어업조약준비와한국의‘평화선’준비

한국독도영유권의불안정성/한국의대일강화회의참가좌절/미국·캐나다·일본의어업조약/‘평화선’선포이전의일본측입장/일본수산업계의입장/한국외무부정무국의‘평화선’준비/한국상공부수산국의‘평화선’준비

제3장이승만정부의‘평화선’선포

‘해양주권’선언/제1차~제3차한일회담/‘평화선’에대한연구/‘평화선’에대한사회적평가/일본인어선의나포/한국에억류된일본인어민/일본인어민의억류상황/‘평화선’에관한한일인식

제4장‘평화선’직후의한일교섭

‘평화선’직후의한국측대응/‘평화선’직후의일본측대응/일본의1952년교섭방침안/가와카미의수정안/제2차한일회담의결렬/제3차한일회담의결렬

제5장1958년한국과일본의상호석방

1957년외교각서의의미/상호석방각서에대한연구/한국의미국입장relevant문구수용/계속되는한국의일본인어민억류/일본에억류된한국인밀항자와‘불법’체류자/1957년외교각서의결과

제6장한국에억류된일본인어민과의인터뷰

선행인터뷰조사/가후리의어민2명/가후리어민1명/후쿠오카시내의어민1명/인터뷰로부터얻은교훈

제7장‘평화선’에관한영상자료

영상자료의효용성/‘평화선’에관한영상자료군/RKB방송국의영상자료/RKB방송국의뉴스영상/RKB방송국의보도특집영상/RKB방송국의영상자료목록

제8장‘평화선’소멸과정

박정희군사정부의국교정상화의지/1964년한일농림장관회담/어업협정대강에대한합의/하코네회의에서협정문조정/‘평화선’최종소멸/1965년어업협정체결

결론

어업협정체결에대한한일사회의평가/한일어업협정체결에대한연구경향/오늘날한국중학교역사교과서의기술/오늘날일본중학교역사교과서의기술/오늘날한국과일본의인식차이

부록

참고문헌/일본어초록/영문초록/연표/조사기관/저자의논저/색인

출판사 서평

평화선을다시본다:국가와인권의관점에서

이책은전반적으로해방이전의한반도어업상황,1945년일본인의본국귀환의움직임,1948년부터단행한맥아더라인침범어선에대한나포,1952년1월‘평화선’선포와한일회담어업교섭과정,그리고1965년6월까지의한일어업협정체결과정을주된내용으로하여,약20년간에걸친해방후해양주권국가건설과정을외교교섭측면과민간인동향측면에서기술하고있다.서론에서는넓은시야에서해양주권을둘러싼식민지종주국과신생국가사이의정책차이로보아야한다는논점을제공하고있다.종래의연구에서는대체로‘평화선’문제를이승만대통령의개인리더십을긍정적으로,혹은부정적으로평가하는데초점이맞추어져있었다.그러나오늘날에는1950년대한국이국제정치적으로어떤상황에놓였는지를연구중심이놓여있는것과같이,이책도‘구조적인접근’을보다중요시하고있다.‘평화선’문제는정부수립후에국내사회에서민족주의에팽배한대중들에게있어서정치적지도자로서는대체로내놓았을주장이다.

다만이때독도를‘평화선’직선기선안에끌어들인문제와함께,‘외국인수용소’에일본인어민을1년이상억류한일,그렇다고하여이들이중노동에처한일도없었고대체로‘평온’한수용소생활을보내게했던일,등은부분적으로‘구조적문제’였다고평가하기어려운측면이있다.이책에서는종래의어업관행을유지하고자하는일본의수산업자에대해신생한국정부가주권을‘선언’하지않을수없는구조를가지고있었고,이러한구조속에서일본인어민의억류라고하는비인간적사건은독립국가의논리와개별인간의생존논리가상호충돌하면서비극을빚어낸것으로보고있다.시대를막론하고국가와민간의‘역사적화해’는절대적으로중요하며,역사구조를깨트릴어느국가나개인도없다.

이책은첫째,필자는식민지해방과국가독립에관한일본인어민과한국인어민과의인식차이를설명하고이러한민간인식의차이가국가정책측면에어떻게반영되는지논하고있다.과거식민지시기조선총독부체제하에서관리되던어족자원보호에대한입장이해방이후어떻게변화해가는지를언급하고있다.급격한변화와함께과거로부터의관습에따르기쉬운인간의모순을한국인어민은물론일본인어민에서찾아나가고있다.나아가식민지해방에대한양국어민의상호인식차이를맥아더라인관련자료를통해규명하고있다.아울러일반공개된외교사료를통하여,한일회담을앞둔시점에서일본정부의기본방침을양국어업담당자의관점에서재해석하고있다.

둘째,‘평화선’문제의배경으로서부산‘외국인수용소’의발단과경위를살펴보고있다.일본패전직후한반도거주일본인의체계적인일본귀환과민간인권익보호를위해탄생한「일본인세화회」는미군점령기내내일본인의보호를위해활동했다.이기구는38도선이북지역을통과하여일본으로귀환해가는일본인전재민에대한인도적구호를내걸고활동했다.또한맥아더라인안에서일본인어민을비롯한어족자원에대한보호움직임도강했다는점을함께밝히고있다.또한휴머니즘의시각에서‘외국인수용소’가애초에일본인부녀자와아동들의귀국대기소로활용되었다는점과‘평화선’선포이후에일본인어민의일시대기소로사용되었다고하는점을규명하고있다.

셋째,한국정부의‘평화선’선포에이르는정책결정과정과함께,일본어선나포에이르는과정을영상자료와관련자인터뷰를통해밝히고있다.이때당면한북한과의전쟁과대결에집중할수밖에없는취약한정부였지만,샌프란시스코강화회의에따른일본의독립이예상되는시점에서과거식민지문제에대한해결에서미국중심의국제질서에따를수밖에없는한국정부의고뇌를확인하고있다.아울러‘평화선’선포이후일본어선의나포상황과일본어민의억류통계를분명히하고,이들을외교적인카드로하여한일회담의청구권교섭에서유리한입장을견지하고자하는한일양국의외교교섭상황을다루고있다.

넷째,부산‘외국인수용소’에억류된일본인어민문제에대해서비극적인역사를돌아보고있다.오늘날일본사회일부에서지나치게한국을비하하는혐한(嫌韓)움직임이나,한국사회일부에서지나치게일본을비난하는반일(反日)움직임에대해서,이를정면으로맞서고있는것이다.무엇보다1950년대에있어서일본사회에서일본인어민의억류상황에대해그들의석방을국제사회에널리알리고단체활동을통해한국인에대한배척운동을조직적으로전개하는움직임을추적하고있다.이와함께한국사회에서어족자원의보호를중시하는논리를내세우면서일본에대한응징과일본인어민의억류를주장하여한일회담을유리하게이끌어내고자했던움직임들을정리하고있다.또한이러한한일양국사회의양극화움직임에따라일본인어민피해당사자의견해를부각시키는한편,재일한국인과재조일본인과같은중간자적존재가점차사라져가고있는현실을논하고있다.

다섯째,제4차한일회담재개의계기가된1957년상호석방을위한외교각서교환이실질적으로외교관계와억류피해자문제에대해어떠한결과를가져왔는지실증하고있다.이각서를이해하기위해서는1953년10월제3차한일회담에서교섭이중단된이후,경색된관계에서미국을주축으로하는한국과일본의반공전선을재확인하는외교적활동을이해해야한다.한국인과일본인의상호석방문제는휴머니즘을강조하는한일쌍방의정책적이슈가되었고,미국은어업전문가를포함하여여러옵서버를일본에파견하여인도적인차원의억류문제를최우선으로다뤄야한다고제안하기에이르렀으며,과거사문제에대해서전향적인태도를보일것을주문하고한국에대해회담재개에나설것을종용했다.이러한배경을이해하지않고서는제4차회담의재개를설명하기어렵다.일본의오무라(大村)수용소에억류된재일한국인문제와한국의외국인수용소에억류된일본인어민문제가회담재개를위한외교적실마리가된것을이해해야한다.

여섯째,1958년부터1965년에이르기까지어업협정의변화과정을조사하여결과적으로한국정부일방의‘평화선’이소멸되고국교정상화에따르는한일쌍방의어업협정으로대체되는과정을분석하고있다.한일회담속에서도어업협정교섭을중심으로하여상호각서의이행과정과4.19혁명이후제5차제6차회담에서어업문제를둘러싸고한일간의외교교섭과정을밝히고있는것이다.순탄하게진전되지않는한일회담가운데,어업협정교섭중에도끊임없이어선의나포가이루어지고있었으며,결과적으로오무라수용소와외국인수용소의억류문제는종식되지않았다.이러한우여곡절과정을거쳐어업관계자와‘평화선’관련전문가에의한교섭이이뤄지는과정을언급하고있다.아울러제4차회담에서제6차회담에이르기까지회담자료를분석하여막바지어업협정교섭내용을밝히고있다.

마지막으로결론부분에서는13년간이상에걸친‘평화선’과한일회담을통해얻어진어업협정에대한재평가,즉우리에게국교정상화움직임이무엇이었는지이를양국사회에서어떻게평가하고있는지논하고있다.그리고한국의‘평화선’이어족자원보호라는명분아래일본인에대한국민적혐오를조장하고,일본사회도일본인어민의억류라고하는구실아래한국인에대한국민적혐오를불러일으키는상황을서술하고있는것이다.이책의특징은한국에억류된일본인어민의현실을가능한소개하고,일본사회일각에서혐한감정을극대화하는사회적부조리가발생하고있다는것을고발하고있다는점이다.1950년대에일본인의억류피해자단체와일본정부가주장해온일본인어민의한국억류현실을직시하는가운데,일본의시민단체와한국정부가공통적으로문제시했던재일한국인의일본억류현실이존재했음을언급하려고하는것이다.오늘날한일양국에커다란논쟁이되고있는것과마찬가지로1951년부터1965년까지예비회담에서제7차한일회담에이르기까지청구권문제가가장중요한의제가되었고그다음으로어업문제가양국외교의협상대상이되었다.이와함께이책은한일양국의외교적공방속에간과하기쉬운문제로비인도적측면의민간인억류실태가가려져있었다고하는사실을부각시키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