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골리 작품집

고골리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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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고골리 작품집』에는 눈물을 통한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신랄한 현실 비판과 따뜻한 휴머니즘을 내포한 작품〈외투〉와, 현실과 초자연을 혼합한 듯한 기묘한 환상적 분위기 속에서 기상천외한 사건이 전개되어가는 특이한 작품〈코〉, 그리고 고리대금업자 노인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가 수도원에 들어가 금식 기도로 영혼을 정화함으로써 구원받는다는 내용의〈초상화〉등 고골리의 걸작 3편이 실려 있다.
저자

고골리

저자니콜라이바실리예비치고골리(NikolajVasil'evichGogol;1809~1849)는
러시아의작가.푸슈킨과더불어러시아근대문학의개척자로불림.우크라이나출생.
1821년네진고등학교에편입학,졸업후페테르스부르크(현레닌그라드)에서하급관리로지내며배우를지망함.미술학교에서잠시미술공부를함.1831년에서32년우크라이나인의생활상을취재한소설집《지카니카근교의밤》을발표하여명성을얻었으며,이를계기로P.S.푸슈킨을알게됨.
1834년페테르스부르크대학세계사담당조교수가되었으나이듬해그만두고작품집《아라베스크(초상화·광인일기등수록)》,《미르고로드》를출판함.관료주의부패를통렬히비난하자이에대한반대주의자들의공격을받고,36년러시아를떠나1836년파리에서〈죽은혼〉을집필함.이어1839년〈외투〉집필을시작했으며,41년두작품을완성함.
1842년개작된초상화를잡지《현대인》에발표함.1836년부터48년까지러시아에단두차례돌아간것외에는파리·로마·스위스등지에서보냄.모스크바에서〈죽은혼〉제2부를완성하려했으나이루지못하고정신적고뇌와사상적동요,착란상태에빠져1852년43세로사망함.

목차

이책을읽는분에게05

외투17
코82
초상화139

연보252

출판사 서평

하급관리의비참한생활,몰락지주계급을현실적으로그린러시아리얼리즘의창시자고골리작품집!

눈물을통한웃음을불러일으키는신랄한현실비판과따뜻한휴머니즘을내포한작품〈외투〉와,현실과초자연을혼합한듯한기묘한환상적분위기속에서기상천외한사건이전개되어가는특이한작품〈코〉,그리고고리대금업자노인의초상화를그린화가가수도원에들어가금식기도로영혼을정화함으로써구원받는다는내용의〈초상화〉등고골리의걸작3편이실려있다.

|이책을읽는분에게|

고골리의창작활동은중학교시절부터시작되었으나,그가문명文名을얻은것은고등학교를졸업1828하고도한참후의일로,옛날우크라이나의민족생활을묘사한〈지카니카근교의밤〉1831~1832을발표하면서부터였다.그다음에《미르고로드》라는단편집을냄으로써일약문학상의명성을떨쳐주코프시키와푸슈킨의서클에소개되었다.이두시인은고골리의천재성을인정하고쌍수를들어그를맞았다.이렇게러시아문학은고골리와더불어새시기로접어들었다.러시아의문예비평가들은이시기를‘고골리시대’라고불렀다.
고골리가소러시아의생활을소재로하여쓴소설에내포되어있는유머나위트에대해관념을주려고하면,많은작품에서인용하지않으면불가능하다.그것은인생의충실을맛보는청년의선량한웃음으로,부유한농부나시골아낙네나촌대장장이등의주인공을희극적위치에앉히고,그것을보고웃는웃음인것이다.그는행복으로가득찼고,어두운생각으로인생의기쁨을흩뜨려놓는일은하지않았다.따라서그가묘사하는인물들은무리하게희극화되지않고항상세심하게현실에충실하였다.그러나고골리의희극적천분이참‘유머’라고할만큼인정받게된것은겨우만년에이르러서의일이다.즉희극적인환경과슬퍼할인생의실체와의사이에일종의대조,푸슈킨으로하여금‘그웃음의배후에서눈에보이지않는눈물을느낀다’고고골리의작품에대하여말하게한것은만년의일이다.
고골리의작품중〈이반이바노비치와이반니키포로비치가싸운이야기〉는오늘날에있어서도가장유머가풍부한이야기이다.
니콜라이바실리예비치고골리NikolaiVasil’evichGogol’는1809년우크라이나의소로친츠에서소지주의장남으로태어나아버지의영지바실리예브카촌에서자랐다.그의12형제남동생5,여동생6중성인으로까지자란사람은고골리와여동생넷뿐인것으로보아타고난약한체질의가계였던것같다.
아버지바실리는상당한문재文才가있던인물이었고,어머니마리아는신앙심이돈독한부인이었다.그는1828년네진시의고등학교를졸업하자즉시페테르부르크로상경하여관리가되었다.
1834년그는작가로서문명을얻으면서주코프스키의알선으로페테르부르크대학의역사학강의를맡게되었는데,그의역사학강의는한마디로우스워참을수없는희극이었다고한다.그는위대한작가이며우스꽝스러운역사학교수라는아이러니속에모든생활과인격을일관시켰다.우리는거기서그가러시아사상가장비극적인인물중의하나였음을알수있다.
그는1835년12월그조교수직을사임하였다.
1834년부터35년에걸친이시기는고골리의창작력이폭발적으로솟구치던때로서대학강의에충실하지않은것도당연하다.여기소개되는〈코〉도이때에쓰여진것이다.
그후그는관료주의의부패를통렬히비난한희극〈검찰관〉1836을발표하여물의를빚고러시아를떠났다.그러고는1848년까지두번잠깐귀국한것을제외하고거의12년간을외국에서지냈으며,그동안〈죽은혼〉제1부,1842을썼다.
고골리는하느님의광명에비쳐진진실의길을걷고있음을확신했는데,그것은이를테면자기영혼의정화를위해정해진길이었다.1848년1월성지예루살렘을방문하였다가4월에귀국하여다시외국에나가지않고〈죽은혼〉제2부를쓰기시작했다.1852년1월하순,전부터종교상의지도를해주던신부마트웨이콘스탄지노프키가모스크바에도착하여2월5일까지의사이에그를몇차례만난일이있다.일설에의하면신부는고골리에게,그의작품은악마의행위이며문학자로서살아나가는한,하느님의구원이없을것이라는것과푸슈킨은이교도의죄인이니절연하라는것등을종용했다고한다.그래서그는고민끝에거의완성되었던〈죽은혼〉제2부를불살라버렸다.그리고금식에들어가의사의치료도거부하였다.그러나의사는극도로쇠약한고골리의몸에억지로방혈치료放血治療를시도했는데,효과를보지못해1852년2월21일아침8시경42세를일기로고골리는숨을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