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아들

$5.48
Description
투르게네프는 작품을 통해 농노해방 이후 수년에 걸친 러시아의 중요한 문제들을 다룬다. 철학 윤리적 문제, 인생의 의의, 인간의 의무와 권리, 사랑과 죽음 그리고 러시아의 본질적인 역사성이 그의 작품세계를 이룬다.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어조와 우아한 필치, 미에 대한 섬세한 감각은 그가 시인으로서의 날카로운 감각을 아울러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언뜻 보기에 평범한 방관자처럼 보이지만 내적인 정열과 주관적인 감정의 불길을 간직한 인물을 묘사함으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작품의 전반적인 객관성을 확보한다.
저자

이반세르게예비치투르게네프

저자이반세르게예비치투르게네프는
1818년11월9일중앙러시아의오룔스파츠스코예마을에서태어났다.아버지는기병대령,어머니는부유한여지주였고형니콜라이,아우세르게이(16세에사망)가있다.
1827년온가족이모스크바로이사한다.베이덴간멜기숙학교에들어가2년남짓지내고
1829년알메니야전문학교(뒤의라자료프전문학교)부속기숙학교에들어갔다가다시집으로돌아와가정교사에게배운다.
1833년9월에모스크바대학문학부에입학한다.
1834년가을에페테르부르크로이사했으므로,페테르부르크대학철학부언어학과에편입한다.11월에아버지가사망한다.
1836년6월에페테르부르크대학을졸업.셰익스피어의〈오셀로〉,〈리어왕〉,바이런의〈맨프레드〉등을번역한다.이무렵바이런,하이네등의영향을받아시작에몰두하며그리스고전을연구한다.
1838년시〈해질녘〉을잡지《현대인》에발표한다.베를린대학에유학.헤겔철학,역사학등을공부한다.
1839년가을에러시아로귀국한다.
1840년1월에외국으로출발하여이탈리아,독일에체류한다.스탄케비치,바쿠닌등과알게된다.베를린대학에서공부를계속하여
1841년5월에베를린대학과정을마친다.잡지《조국잡지》에단시를발표한다.
1842년4월에어머니의침녀에게서딸을낳는다(폴리나라고이름하고나중에파리로데리고갔다).5월에철학박사시험에합격하고그해말페테르부르크에정주한다.
1843년비평가벨린스키와알게된다.4월에서사시〈파라샤〉를발표하고《조국잡지》에시와희곡〈경솔〉을발표한다.
1844년11월에중편소설〈안드레이콜로소프〉를발표하고네그라소프와가까이지낸다.
1845년페테르부르크에서도스토예프스키를알게된다.
1846년희곡〈돈이궁하다〉를발표한다.
1847년1월에《사냥꾼의수기》의첫째작품〈호오리와칼리느이치〉를잡지《현대인》에발표하고연초에외국으로떠나7월까지독일에체류하다가그후비아르도부인을따라파리로가서《사냥꾼의수기》집필을계속한다.이무렵상드,메리메,구노등과알게된다.비알드부인의남편과함께러시아문학(고골리의작품등)을프랑스어로번역하여소개한다.
1848년파리에서게르첸,바쿠닌등과만난다.《사냥꾼의수기》의여러편을계속《현대인》에발표한다.2월,프랑스에서혁명이일어난다.
1849년2월,〈시치그로프군의햄릿〉을발표한다.희곡〈식객〉은발표금지처분을당한다.
1850년희곡〈마을의한달〉,중편〈쓸모없는인간의일기〉를발표한다.어머니가돌아가셨으므로귀국하여이듬해농노해방과인두세제도를고치는등이상주의적귀족으로서의신념을실천으로옮긴다.
1851년10월에모스크바에서배우시추프킨과함께고골리를방문한다.11월에고골리에의한〈검찰관〉의낭독회에참석한다.
1852년2월에〈세해후〉를발표한다.고골리의죽음즈음하여발표한추도문이원인이되어스파츠스코예마을에연금당한다.그동안단편〈무무〉를쓴다.8월에《사냥꾼의수기》의출판을허가한검열관리포프가면직당한다.
1853년12월에스파츠스코예마을에서의연금이해제되어페테르부르크로온다.
1854년《사냥꾼의수기》가프랑스어로번역출판된다.
1855년1월에모스크바대학기념축전에참석한다.4월에중편〈야코프파신코프〉를발표하고,여름에는스파츠스코예마을에서장편《루딘》을집필한다.
1856년1~2월《현대인》에〈루딘〉을연재,8월런던의게르첸을방문한다.10월에장편《귀족의보금자리》를쓰기시작한다.페테르부르크에서《투르게네프저작집》3권발간한다.연말파리에체류하며프랑스작가루콘드리르,빅토르위고등과알게된다.
1857년파리에서네그라소프,톨스토이,페에토,곤잘로프등과만나고런던에서는게르첸,카알라일등과만난다.중편〈짝사랑〉을쓴다.
1858년1월〈짝사랑〉을발표한다.
1859년1월《현대인》에《귀족의보금자리》발표하고2월모스크바대학부설‘러시아문학회’정회원으로선출된다.가을에는스파츠스코예마을에살며장편《그전야》를완성한다.문예기금회의위원으로선출된다.
1860년1월문예기금을위한독서회에서〈햄릿과돈키호테〉라는주제로강연한다.잡지《러시아통보》에《그전야》를,《독서문고》에중편〈첫사랑〉을발표한다.《그전야》에관한도브로류보프의논문〈그날은언제오느냐?〉가《현대인》에게재된것을둘러싸고발행자네크라소프와충돌한다.표절문제(《그전야》속에곤잘로프의미발표작품〈벼랑〉의유명한대목이인용되었다고비난)로곤잘로프와절교한다.5월부터꼬박1년동안주로파리에서지낸다.11월과학아카데미회원으로선출된다.
1861년2월에농노해방령이공포되어이개혁을환영한다.5월에귀국,톨스토이와언쟁을일으켜그후17년동안절교한다.7월에장편《아버지와아들》을완성하고9월에파리로떠난다.
1862년3월《러시아통보》에《아버지와아들》을발표한후,신·구양세대로부터혹독한공격을받는다.연말에게르첸과의서신왕래가위법이라하여32명이고발당하고재판을받는다.
1863년푸슈킨의운문소설〈예브게니오네긴〉을비아르도와함께프랑스어로번역한다.
1864년1월페테르부르크로돌아온다.원로원의재판에서32명을위한증언을한다.2월잡지《세기》에단편〈환영〉을발표한다.곤잘로프와화해하고3월에외국으로출발한다.
1865년딸폴리나가파리에서프랑스인가스톤프류엘과결혼한다.5월투르게네프가프랑스어로산문역한레로몬도프의서사시〈무치리〉가출간된다.장편《연기》에착수하고단편〈충분하다!〉를발표한다.
1867년잡지《러시아통보》에《연기》를발표한다.니힐리스트비평가피사레프와알게된다.피사레프에게《연기》에대한의견을구한다.7월작가로서의사회적견해차이로도스토예프스키와충돌한다.장편《연기》를메리메의감수하에프랑스어로번역한다.
1868년《유럽통보》에중편〈여단장〉을발표하고〈문학적회상〉을집필한다.
1869년2월《러시아통보》에중편〈불행한여인〉을발표한다.4월에《유럽통보》에〈벨린스키의추억〉을발표하고11월에〈문학적회상〉발표한다.
1870년보불전쟁이일어난다.6월《유럽통보》에르포르타주〈트로프맨의사형〉을발표한다.8,9월《페테르부르크통보》에〈보불전쟁통신〉을게재한다.10월《유럽통보》에중편〈광야의리어왕〉을발표한다.
1871년1월《유럽통보》에단편〈돈,돈!〉을발표한다.3월‘가르바르지당원구명운동’을위해페테르부르크의예술가클럽‘문학과음악모임’에서〈여단장〉을낭독한다.4월에중편〈춘수〉를집필한다.8월에W.스코트의‘성탄백년제’참석을위해에든버러에간다.11월정주할생각으로파리로돌아온다.
1872년이한해동안마지막장편《처녀지》집필에몰두한다.1월《유럽통보》에〈춘수〉를발표한다.
1873년장편《처녀지》를구상한다.
1874년《유럽통보》에〈푸닌과바브린〉을발표하고단편〈살아있는유해〉를써서《사냥꾼의수기》에추가한다.‘5인의회식회’(투르게네프,플로베르,공쿠르,졸라,도데)가시작된다.
1876년스파츠스코예마을에서《처녀지》를발표한다.프랑스어번역판을동시출간한다.
1877년1,2월《유럽통보》에《처녀지》를발표한다.
1878년틈틈이《산문시》를노트에써넣는다.톨스토이로부터화해편지가온다.여름귀국하던중야스나야폴리야나로톨스토이를찾아간다.
1879년봄에러시아로돌아와열렬한환영을받는다.옥스퍼드법학부로부터명예법학박사학위를받는다.
1880년프랑스의신문《19세기》에톨스토이의《전쟁과평화》를소개한다.모스크바에서거행된푸슈킨동상제막식에참석하여도스토예프스키와더불어〈푸슈킨에관하여〉라는제목으로강연한다.모스크바대학명예회원으로추천받는다.이해에플로베르가죽는다.
1881년여름에마지막으로귀향하여스파츠스코예마을에서플로베르의추억에바치는〈사랑의개가〉를쓴다.이무렵병상에눕는다.
1882년《산문시》를집필한다.3월병세가악화된다.연말에《유럽통보》에《산문시》를발표한다.
1883년1월《유럽통보》에단편〈구라라미리치〉를발표하고4월건강상태가악화되어파리에서프지바르교외로옮긴다.6월병상에서프랑스어로회상적소품〈해상의화재〉를,8월에〈종말〉을비아르도부인에게구술한다.9월3일척추암으로사망해유언에따라페테르부르크의보르코보묘지에매장된다.

목차

이책을읽는분에게7
아버지와아들13
연보133

출판사 서평

예술적표현의서정성을담은투르게네프의《아버지와아들》

투르게네프는작품을통해농노해방이후수년에걸친러시아의중요한문제들을다룬다.철학윤리적문제,인생의의의,인간의의무와권리,사랑과죽음그리고러시아의본질적인역사성이그의작품세계를이룬다.작품에서공통적으로찾아볼수있는어조와우아한필치,미에대한섬세한감각은그가시인으로서의날카로운감각을아울러가지고있음을나타낸다.언뜻보기에평범한방관자처럼보이지만내적인정열과주관적인감정의불길을간직한인물을묘사함으로《아버지와아들》이라는작품의전반적인객관성을확보한다.

“마차는농장을지나쳤다.눈앞에보이는풍경은그리아름답지않았다.지평선은가도가도벌판으로덮여있었다.아르카디는생각에잠겼다.찌그러진집,가난한농부들을그대로내버려둘수없다?농부들은하나같이헌누더기를걸치고바짝여윈말을타고있었다?,그들에게필요한건교육이었다.”

발표된후이처럼논란거리가된작품도드물다.보수와진보진영에서찬반양론을낳았고보수진영의평가도둘로나뉘었다.급진적인청년을부정적인모습으로묘사했다는점에서러시아사회에좋은영향을줄것이라고호평하는한편,그에대한부당한예찬이라며작가를비난하기도했다.바자로프는실제투르게네프에게강한인상을줬던젊은의사가그모델이며이와대립하는파벨페트로비치는귀족적문화의표상으로등장한다.(이책을읽는분에게)

““그친구는니힐리스트예요.”
“니힐리스트라니?”
니콜라이가되물었다.파벨은나이프끝에버터를찍으면서말했다.
“니힐리스트라면,내가알기로는허무라는뜻의라틴어니힐(Nihil)에서온말이다.아무것도인정하려고들지않는인간을뜻하는것일테지?아니,아무도존경하지않는인간이라고하는편이좋겠지.”
파벨페트로비치는참견하고빵에버터를마저바르기시작했다.
“모든것을비판적으로바라보는사람을말하는것입니다.”
아르카디가말했다.
“아무래도좋은것아닌가.”
“아니요,아무래도좋은것은아니지요.니힐리스트란어떤원리앞에도굽히지않는인간입니다.그원리가어떠한존경에둘러싸여있더라도조금도동하지않는인간이지요.”
“그래서어떻다는말이냐,그게좋단말이냐?”하고파벨페트로비치가말했다.
“어떤사람에게는좋고어떤사람에게는아주나쁘겠지요.”
“그래?그렇다면우리들과는아주다르구나.구세대인우리는원리(파벨페트로비치는이말을프랑스식으로부드럽게발음했고아르카디는반대로첫음절에힘을주어발음했다)없이는,이른바네가말하는그믿을수없는원리없이는한발짝도걸을수없고숨쉴수도없다는말이다.참뭐라고했지…….”
“니힐리스트요”하고아르카디는똑똑하게말했다.
“그래,전에는헤겔학파라는게있었는데지금은니힐리스트로군.너희들이그공허,진공속에서어떻게존재해나갈지두고보겠다.””

““배고플때빵한조각입에넣기위해무슨논리가필요합니까,추상적인논리라는것이우리에게무슨소용이있느냐는말입니다!”
파벨은두손을내저었다.
“그런말을하다니,나는정말자네를이해할수없네.자네는러시아국민을모독하고있어.원리와규칙을어째서인정할수없다는건가,난도무지알수가없군.도대체자넨무엇에의해행동하고있나?”
“큰아버지,제가이미말씀드렸지만저희는어떤권위도인정하지않아요.”
아르카디가참견했다.
“우리자신에게유익하다고인정되는것에의해서만행동합니다.지금은부정하는것이가장유익하다고생각하기때문에부정하는겁니다.”
“모든것을말인가?”
“예,모든걸말입니다.”
“어떻게예술이나시뿐만아니라그리고또……입밖에내기도무섭군.”
“모든것을요.””

“아르카디와바자로프는바스락소리가나는건조되긴했어도아직푸른빛깔이남아있는풀을두아름쯤밑에깔고마른풀더미그림자에누워있었다.
“인간은참이상한동물이야,이곳에서아버지가보내는무미건조한생활을멀리떨어져서바라보고있노라면이보다더좋은것이없는것처럼느껴지거든.먹고마시면서가장옳고분별있게행동하고있다고믿고계시니말이야.하지만사실은그렇지가않아,권태에짓눌려있는거지.그래서인간은교류하고싶어하는거라네.비록서로헐뜯을지라도관계맺고싶어하는거야.”
“그순간순간이의미를갖도록생활하지않으면안되지.””(본문중에서)

분량이많거나어려운책을읽으면소화가되지않아체하기도한다.그럴때면어느시인의문장처럼“펼쳤다가내려놓는형편없는독서”를하게된다.범우다이제스트는독자들이문학의향취를물큰느끼면서또한가볍게읽을수있도록기획했다.
다이제스트(Digest)는‘요약’‘소화하다’라는뜻을갖는다.요약은자신이소화한내용으로자기만의이해의속도를정리하는일이다.다이제스트를통해속도와깊이를갖는독서의방식을고민했다.독자들과나눌수있는고민이기를고대하며다이제스트를통해작지만단단한독서가가능하길.새로운독서와독자의자리를고민했다.조금다르고특별한읽기를통해부정적긍정성으로서읽기의효용을생각했다.
범우다이제스트를통한세계문학의복기.(편집자의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