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 4 (충무공 금남군 정충신 | 이계홍 역사소설)

깃발 4 (충무공 금남군 정충신 | 이계홍 역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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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바다에는 이충무공, 육지에는 한반도를 지켜낸 정충무공이 있었다 - 열일곱 소년의 나이로 2천5백리 길을 달려 의주로 피란 간 선조에게 장계를 전달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직전까지 오직 군인 외길을 걸어온 금남군 정충신 장군의 일생은 드라마적 파노라마 바로 그 자체이다. 정충신은 우리 역사상 가장 불행했던 시기인 선조-광해군-인조 대의 무장으로 시대모순을 헤쳐나간 보기 드문 개혁파로서의 일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이 책은 만 16세에 무과에 차석으로 급제한 뒤 생애 60년 동안 44년을 국방의 최일선에서 오직 군인의 외길을 걸어온 충무공 정충신의 삶을 그린 역사소설이다. 작가는 특히 광주광역시의 주 도로이자 5ㆍ18 민주화항쟁의 본거지인 ‘금남로’가 정충신의 업적을 기려 내린 시호(諡號)인 ‘금남군’에서 유래된 점에 유의하면서 광주 정신과 일치된 정충신 장군의 일대기를 그려냈다.

작가 이계홍(74)은 30 수년의 언론 현업에서 근무하다 물러난 뒤 긴 침묵 끝에 ‘깃발’이라는 대작을 들고 세상 밖으로 뛰쳐나왔다. 청년기 작품활동을 활발하게 펴는 듯했으나 언론계 생활을 하면서 사실상 문학을 중단했는데, 10여년 전 퇴직과 함께 우리 역사의 내면, 그 중에서도 역사의 수난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 수난기는 임진왜란-정유재란-정묘호란-병자호란 시기, 구한말과 해방 공간 등 크게 세 시기로 본다. 이때 우리가 좀더 역사의식에 투철하고, 갈등과 분열과 대립상을 성찰하는 가운데 창조적으로 미래 세계를 설계했더라면 어두운 시기를 극복하고 향기로운 역사를 가졌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그런 중에서도 묻힌 역사적 인물을 호출해 그들의 행로를 더듬어 재생함으로써 우리가 나아갈 바를 되돌아보는 거울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충무공 금남군 정충신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것도 그런 이유다.
저자

이계홍

동아일보문화부체육부기자및문화부차장여론독자부차장,문화일보문화부장체육부장특집부장사회2부장,서울신문논설위원수석편집부국장통일문제연구소장(국장급).서울여자대학교,용인대학교겸임교수,동국대학교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객원교수,한국보건사회연구원(국책연구기관)연구기획조정팀전문위원역임.
1974월간문학신인상소설부문당선으로문단데뷔.
▶작품집
《틈만나면자살하는남자》(책나라),중편소설집《비껴앉은남자》(신원문화사),소설집《밑천》(문학아카데미),장편소설《초록빛파도》(아사달의꽃),소설집《서울노마드》(문학나무)외.
▶인물전기및휴먼스토리
《이계홍의휴먼스토리》(모아드림·월간‘신동아’연재‘이사람의삶’인터뷰집),인물전기《장군이된이등병최갑석》(화남출판사),《빨간마후라하늘에등불켜고-장지량전공군참모총장이야기》(이미지북),《역사를넘어시대를넘어-전주월한국군사령관채명신장군전기》(국방일보연재),소설《행군-어느민족주의자를위한변명》(월간문학34회연재),역사소설《깃발-충무공정충신이야기》(‘남도일보’650회연재).
현재세종포스트주필근무중.

전남무안출생
동국대학교국문학과및동대학원석사졸업
동대학원박사과정수료(현대문학전공).

목차

35장 이괄의난·7
36장 안현전투·77
37장 전라도군사들·109
38장 이괄의최후·124
39장 “충신은이름대로충신이로다”·145
40장 고향의푸른하늘·180
41장 다시벼랑끝에서서·217
42장 팔도부원수-모문룡을치다·250
43장 용골산성전투·288

출판사 서평

|작가의말|

역사적인물의행로를더듬는것은
우리삶의이정표를찾는길이다
-충무공금남군정충신장군의일대기간행에부쳐


(1)

역사에대해성찰하지못한민족은반복된역사를갖는다고했다.나침반이없는항해와같이방향을잡지못하고과오를다시범할수있기때문이다.우리는근자에들어역사의식이부족하거나무디다는말을자주듣는다.먹고살기도바쁜세상에역사를달달외운다고해서무슨살림에보탬이되느냐고냉소하는이도있다.
사실상투적으로역사인물과사건을외는것이역사공부라고생각해왔던것도사실이다.그런암기가과연우리삶에무슨소용이있을까.
그러나누구의말대로역사는박물관에존치된화석이아니라,과거와현재와의끊임없는대화다.재구성되고재해석되어야하는이유다.특정정권이나특정세력의호불호에따라파기되거나복원될영역이아니다.
한시대의사건과인물들의행로를더듬는것은우리가나아갈바를되돌아보는거울이된다.그런취지에서묻혀있는역사적사건과인물을발굴하고재조명하는작업은오늘을살아가는우리에게유용한삶의이정표가될것이다.미래를살아가는길잡이가될것이다.

(2)

조선조중기의무장충무공정충신(1576~1636)장군이야기를우연한자리에서듣고상당히충격을받았다.평상시역사에관심이있던필자도정충신장군의존재를잘몰랐다.필자는그렇다치고,이순신장군과똑같이충무공시호를받은금남군정충신에대해아는사람이많지않다는데놀랐다.
임진왜란과정유재란,이괄의난,정묘호란,병자호란발발직전까지오직군인외길을걸어온금남군정충신장군의일생은드라마적파노라마바로그자체였다.우리역사상가장불행했던시기인선조ㆍ광해군ㆍ인조대의무장으로시대모순을헤쳐나간보기드문개혁파로서의일생을살았던인물이다.그런데도잘몰랐다.
그이유는신분제사회였던조선조사회에서한미한집안출신이라는한계때문에그의활약상이묻힌측면이있을것이다.주류권력층에게비주류로서견제를받은점과서민계급출신이라는이유로역사적으로저평가되었을것이라는것이다.거기에외교적역할이당시의정치풍토에서는인정받지못하는구조라는점도작용했다고보여진다.
정충신장군은최전방의무관이면서도사서삼경과천리에능한지식인이었으며,외교와첩보전에밝아광해군시기,명ㆍ청양대세력의동향을살피며중립노선을걷자고주장한장수다.임진왜란과정유재란을겪으며현실적인국제적감각으로중립외교와개혁담론으로나라를새롭게구성하자는정치철학을갖고있었다.상관인장만장군과그의사위인최명길과함께주화파논지를폈다.그는후금국에전하려는선전포고문과다름없는조정의서찰을중간에가로채불살라버린사건으로귀양을갔다.
정충신은주화파인최명길과나눈군사대담집에서현실주의에입각해친금노선이나라의진로방향이라고주장하는데,이것이주류사회인척화파로부터배척을받아최명길과함께평생비주류로살았다.그는또북방변경최일선에있었기때문에중앙정치무대에자주등장하지못했다.이런것이그가역사에크게호명되지못한요인이되었다고본다.
정충신장군이활동하던시기에중앙정치는당쟁의소용돌이에묻혀정파끼리헤게모니쟁탈전으로하루도편할날이없었다.선조ㆍ광해ㆍ인조대,명나라에대한충성경쟁과함께동인대서인,훈구대사림,북인대남인,대북대소북의정치투쟁과미래를내다보지못한원리주의,공리공담에빠져나라가허우적거릴때,오랑캐(여진-후금-청나라)를외면해선안된다고주장했으나양파벌로부터동시에웬생뚱맞은논리냐며배척받은것이다.사대부의세계관이이렇게좁은대신에그들은언제나작은것에목숨걸고싸우는진창속에파묻혀버렸다.

(3)

정충신의군인외길은장엄했다.소년시절기축옥사(1589)를겪고임진왜란(1592)때이치ㆍ웅치전투에소년병사로참전하고,이천오백리길을장계를들고뛰고,정유재란(1597)-이괄의난(1623)-인조반정(1624)-정묘호란(1627)-병자호란(1636)직전까지한평생무장으로서피흘린전선의복판에있었다.
이과정에서그가거친직책은만16세에무과에차석으로급제한뒤군기시정(軍器寺正)-선사포첨사-조산보만호-보을하진첨사-포이만호-창주첨사-만포진첨사-안주목사겸방어사-평안도병마좌우후-이괄의난전부대장(前部大將)-영변대도호부사-팔도부원수-주사원수(舟師元帥)-오위도총부도총관-포도대장-경상우도병마절도사등이다.
직책이말해주듯생애60년동안44년을국토방위최일선에있었다.오직직업군인외길의경력으로서충무공시호를받은인물은정충신이유일하다.그럼에도불구하고그는현세에뚜렷하게호출되지못했다.
《남도일보》에금남군정충신장군일대기인역사소설〈깃발〉을650회에걸쳐장기연재한것은이렇듯묻힌역사적인물을복원하자는취지였다.필자는특히광주광역시의주도로이자5ㆍ18민주화항쟁의본거지인‘금남로’가정충신의업적을기려내린시호(諡號)인‘금남군’에서유래된점에유의하면서개혁적인광주정신과일치된정충신장군의파란만장한일대기를그리고자했다.
정충신은임진왜란3대육전(陸戰)중하나인이치ㆍ웅치대첩(전라도금산ㆍ완주ㆍ무주ㆍ진안ㆍ장수)에서소년척후병으로활동하며승리로이끈숨은주역중한사람이었다.이전투승리로전라도가왜군에점령되지않고,아군병력충원은물론후방병참기지로서의역할을다하면서이순신이바다에서왜군을물리친원동력이되었다.
이치ㆍ웅치전전과를기록한권율의장계를소년병사정충신이품에안고단20여일만에달려가압록강변에서명나라배가오기만을기다리던선조에게전달한것은그의우국충정에서나온행동이다.장계는“호남이지키고있으니도강하지말아달라”는권율의간절한사연이담겨있었다.만약왕이압록강을건넜다면조선이란나라는영영지도상에서사라졌을지모른다.
임진왜란은전라도군사들에의해승리한전쟁이었다.현대에들어와전라도군사들의활약상이의외로묻힌것에유의하면서사적자료를통해이들의활동상을주마간산격으로나마복원하고자노력했다.이순신장군휘하의전라좌수영과이억기장군이거느린전라우수영의수군은대부분해남진도완도강진보성장흥순천광양여수영광함평무안출신바닷가청장년들이었다.
육상전에서는광주목사이자전라도순찰사권율이이끈호남관ㆍ의병들이이치ㆍ웅치전에이어행주대첩을승리로이끌었다.1593년10월2차진주성싸움에서진주목사서예원이도망치고,도원수김명원이출진을회피하는가운데진주땅에들어간김천일,고종후,부사이종인,병사황진,최경회,임계영,의기논개등호남인들이고군분투하다최후를맞았다.전투에참가하지못한호남의남녀노유들은임금의행재소소요식량은물론조선군과명군,의병들의군량미를조달하는병참기지역할을다하였다(김환태‘호남의구국항쟁,민족자부심’일부인용).
임진왜란때의장수들의면면을보면,경상우도의정인홍김면곽재우,충청도의조헌,함경도의정문부가있었으나호남은기라성같은의병장들이임립(林立)해있었다.
즉,고경명고인후고종후3부자,김덕령김덕홍김덕보3형제,김천일,백광언,유팽로,나대용(거북선제작자),선거이를비롯하여,이대원(함평),위대기(장흥),이종인(광주),임계영(보성),최경회(능주=화순),김익복ㆍ양대박(남원),변이중(장성ㆍ화차제작자),정명세(고흥)가있다.또한공시억,황박,정운,김보원,노인,노흥,이종인,김극추,유사경,양응원,문위세,김제민,고성후,김억희,김충선,라덕명,신여극,김팽수,이대유,김율,이인걸,백민수등관ㆍ의병장수뇌부만해도50여명에이르렀다.타지역에서따를수없는인물분포다.이러니임진왜란은전라도병사와전라도의병참지원에의해극복되었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이런숨은이야기들을전하고싶었다.
그중입지전적인물인정충신장군이야기를그리고자했다.그러나사료의부족과발품의부족,그리고무엇보다아둔한머리로정충신장군의웅혼한기상과개혁정신을담기에는역부족이었다.그럼에도불구하고용기를내서써내려갔던것은남도일보의격려가컸다.대략인터넷클릭의2만5천뷰중필자의연재소설이10분의1정도를차지한다는말을듣고알게모르게용기를냈다.

(4)

집필과정에서역사적사실과소설적허구사이에서고민했던경우도많다.전기소설을쓰기에적합한대상은사료가풍부한인물인데,사료의빈곤을메우기위해서는부득불소설적허구로메울수밖에없었다.있을수있는진실을차용해쓴것이다.
사료는금성정씨종친회(회장정환민)가보유하고있는세보등자료와정환호저〈금남군충무공정충신전기〉를인용했다.정충신장군이직접쓴《백사북천일록(白沙北遷日錄)》과만운집을비롯하여,금남집,조선왕조실록,연려실기술,국조인물고,광해군일기,이조5백년기담전,택리지,호남지방임진왜란사료집등을활용했다.이중에정충신장군의일기가집필에큰도움이되었으나청년기의기록이빈약해청년기를재생하는데상당부분애를먹었다.
사실은청년기기록물이멸실되었는데,이는그것들을몽땅도둑맞았기때문이다.정장군이서울반송방(오늘의서대문구냉천동)에살때장군집이라하여도둑이물건훔치러들어갔다가너무도궁벽하게사는지라문서궤짝을들고달아났는데이통에일기등서책이없어진것이다.그러나입지전적인물인그는의외로전설적일화가많이인터넷상에올라있다.그런자료도일부가져다썼다.대부분출처를밝혔으나출처가불분명한것도있었으니이부분에대해서는집필자여러분의넓은양해를구한다.
어려운가운데서도선뜻출판을맡아준도서출판범우사에감사를드린다.그동안책으로내기위해몇군데출판사에의사를타진했지만출판시장이좋지않다는이유로대부분응하지않았다.200자원고지7000장의대하물이다보니5권이상의책이나와야하는데한결같이주저하였다.범우사로서도독자들이끝까지따라올것인가하고고민이있었을것이다.
흔히역사소설은베스트셀러성격보다스테디셀러범주에들기때문에범우사가긴호흡으로받아들인것같다.다시한번고마움을전한다.
이소설이나오기까지격려한분들이적지않았다.이름을일일이올리며감사의인사를올려야하나길이길이마음으로간직하고자한다.다만이책출판과함께어느덧고2로올라간외손자이형준과,지난해12월10일태어난손자이재이에게선물하는것으로그뜻을대신하고자한다.

-2021년1월이계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