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행복론

명상록 행복론

$13.02
Description
삶에 대한 통찰과 담담한 태도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사물에 대한 성찰을 담은 생활인의 사색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세네카의 《행복론》
명상록(Meditations)
인간의 영원한 수수께끼- 산다는 것. 그 껍질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그 핵심은 불변하는 것이 아닐까? 고대인을 괴롭힌 문제는 현대인도 괴롭히고 있다. 죽음, 사랑 이상(理想) 등 인간이 갖는 관심의 초점을 생각한 이 책은 고대 정신의 고귀한 윤리적 산물이다. 세상에 태어난 자들 가운데 가장 고매한 영혼을 소유했던 자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양심서, - 자기 자신과 싸우면서 기록한 산 고전이다.

행복론(De Vita Beata)
인간에게 있어 행복이란 무엇일까?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 인간은 행복해질까? 아니면 세속적 권좌(權座)를 차지하면 행복해질까? 결코 그렇지 않다. 예지와 덕성을 쌓고 절제하고 근신하는 가운데 진정한 행복이 오는 것이다. 죽음을 무릅쓰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참된 철학에 입각한 진리를 의연하게 실행하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세네카는 말한다.

로마 황제의 신분으로 권력보다는 철학을 사랑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세네카의 《행복론》은,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인생에 대한 담담한 태도로 옷깃을 여미고 숙독하게 하는 명저들이다. 삶의 내용과 가장 유리되지 않았던 철학이 로마의 스토아 철학이라고 흔히 말하거니와 《명상록》과 《행복론》에는 신기루 같은 사변도 없고 틀에 맞춘 것 같은 논리도 없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성실히 반성하고 또한 주위의 사물을 허심탄회하게 성찰하는 진지한 생활인의 사색이 아무런 수식 없이 펼쳐지고 있다. 따라서 16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을 펴들면,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의 생활을 다시금 반성해볼 수 있고 삶의 슬기를 터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명상록》과 《행복론》이 두 고전은 소리 내어 읽고 덮어버릴 책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한 글자 한 글자 그 뜻을 음미하며 자기반성을 하는 가운데 읽어나가야 할 작품이다.
저자

M.아우렐리우스

MarcusAurelius,A.D.121~180.
로마제16대황제.5현제(賢帝)의마지막황제로,후기스토아철학자.로마에서출생.안토니누스피우스황제의양자가된후일찍부터로마의집정관이되었고,161년안토니누스의뒤를이어로마황제로즉위함.180년다뉴브강변의진중에서사망.공정하고깨끗한정치를하였으나스토아적입장에서그리스도교도를박해했다.이시대문학·철학작품들중뛰어나다는평가를받고있는《명상록》은그의스토아적철인의정관(靜觀)과황제로서의격무사이에서고민하는인간의애조(哀調)를담았다.

목차

이책을읽는분에게5
명상록17
행복론173

출판사 서평

|이책을읽는분에게|

아우렐리우스와《명상록》에대하여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안토니누스(MarcusAureliusAntominus,121~180)의원래이름은마르쿠스안니우스베루스가틸리우스세베루스로,121년4월26일안토니누스베루스와도미티아루키라사이에서태어났다.아버지안토니누스베루스는로마의두번째왕인누마(재위B.C.715~673)의자손이라고한다.아버지는집정관의지위에있었으나마르쿠스가아홉살때죽었다.어머니는로마의유복한여자상속인의한사람으로,두번이나집정관을지낸루키우스카탈리우스세베루스의손녀였다.
아버지가죽은다음마르쿠스는외할아버지밑에서자랐다.외할아버지도역시집정관과원로원의원을지낸사람이었다.
마르쿠스는어릴적부터하드리아누스황제의귀염을받았다.성인식을올린후마르쿠스는하드리아누스의명령으로당시집정관이었던명문루키우스케이오니우스콤모도스의딸케이오니아파비아와약혼을했다.
하드리아누스황제가죽은후왕위를계승한안토니누스피우스는마르쿠스와파비아의약혼을파기하고자기딸인안니아갈레리아파우스티나와약혼시키고이듬해140년에는재정관,다음해에는집정관으로임명하고145년에는결혼을시켰다.마르쿠스는열살때부터스토아적교양을쌓기시작했고열한살때는짚으로만든침대에서모피를사용하며검소한생활을했다.그의신체는섬세하고연약했으나훈련을게을리하지않았다.그는스포츠에뛰어나복싱,레슬링,달리기를좋아했다.
그는가정생활을소중하게여기고아내나자식을사랑했으며어머니를공경했다.어릴적에는언제나어머니와함께있었다.그의젊은시절의경건함은중년에이르러서깊은종교적정열로변하는데,이것은어머니의감화때문이었다.그와아내파우스티나사이에는열세명의자식이있었는데쌍둥이도몇쌍있었다.그런데아내는정숙하지못했다고한다.
안토니누스피우스황제는죽음이가까워지자측근들을불러놓고정식으로마르쿠스를후계자로지명했다.161년3월7일피우스황제가죽고마르쿠스가즉위했다.황제로즉위한후의마르쿠스의생활은다난하여몇번의전쟁을치렀다.
그는“철학자가지배하든지,지배자가철학을하든지해야만나라가번영한다”는플라톤의말을입버릇처럼되뇌곤했다.그야말로글자그대로의철인왕(哲人王)이라고말할수있다.그의근본사상은어디까지나스토아철학이었고스토아적세계시민,스토아적박애였다.그러나로마는대국이기는했지만한나라임에는틀림없었고,그는현실적으로로마라는한나라의왕이었다.결국스토아적인것은그의이상,그의위안에지나지않았다.그러나그는현실과이상사이에서번민하면서도스토아적정신에바탕을두고바르게처신하며,검소한생활을하고공공의일을위해사재도아끼지않았다.그러나180년마르쿠스황제는북방의전투에서돌아오던중페스트(?)에걸려엿새를앓고,3월17일로마에서멀리떨어진지금의빈에서세상을떠났다.
마르쿠스의저서로는《명상록》이남아있는데,이《명상록》은말할것도없이그의수기다.그밖에연설,원로원에전한말,유언,명언,편지등이약간남아있다.《명상록》은그가정무중이나혹은싸움터에서틈을내어쓴것으로,전12장으로되어있다.각장의각절은모두짧고어느것에나체험이담겨있다.그러나제1장을제외하고는개인적기록이아니다.또한체계적으로12장으로나눈것이아니라쓰다보니까12장으로갈라진것이다.
그의사상은후기스토아의특색대로매우종교적이고윤리적이다.《명상록》을읽으면그가자연계의사물하나하나에서아름다움을찾아내고그것을예술품못지않게훌륭하다고찬양하면서도,그기조는애수어린무상관에있음을알수있다.모든것은생성했다소멸하게마련이다.장군도,의사도,부자도,황제도,생사를초월했다는철학자도죽고도시는폐허가되며동상은부서진다.
이것은피할수없는운명이다.그는이러한운명앞에서체념하고쫓지도않고거부하지도않는마음가짐을강조한다.결국그의근본사상도마음이전부라는사상으로집약되는것이다.내면으로파고들라--샘은마음속에있다고하는것이다.이러한마음은우주의로고스의분신으로우주와상통하는것이다.
스토아철학은코스모폴리탄적입장에서박애와인류애를강조했다는것은앞에서말한바있다.이러한의미에서스토아철학은인간중심의사상이라는일면을갖고있다.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의경우이박애는더욱현저하다.죄인을사랑하는것은인간만이갖는특성이라고그는말한다.이러한점에서그는기독교와일맥상통하는바가있지만결코기독교적인것은아니다.그가받은교육은전적으로그리스적이었고스토아적이었다.오히려그는기독교의박해자였다.그의인류애와박애는기독교와는근원이달랐다.
이러한점에서그의사상은플라톤과차이가있다.플라톤에게는인류애나세계시민이나박애사상은없었다.플라톤은단지한나라를강하게하고잘다스리는것이문제였지,적을사랑한다든지박애따위는문제가아니었다.플라톤의이상국가에는무사계급이있고따라서국방이중요한자리를차지한다.그러나스토아철학의입장에서는국방이나군인은있을수없다.스토아철학은사해동포(四海同胞)와세계시민을강조하며,따라서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의경우에는적조차도동포처럼사랑하려는일면이있다.
그러나현실은단순하지않다.철학자아우렐리우스는적을사랑하고세계시민을말할수있어도황제아우렐리우스는국경을지키고영토를넓히기위해스스로군대를이끌고진두에서지않을수없었다.그는궁정(宮廷)과철학을계모와친모에비교한바있지만이것은어디까지나그의이상속에서만가능한일이었다.
현실과이상의틈에끼여고뇌하는인간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우리는《명상록》에서이러한그의육성을들을수있을지도모른다.

세네카와《행복론》에대하여
세네카(LuciusAnnaeusSeneca,B.C.4~A.D.65)는스토아학파의철학자로서스페인의코르도바에서태어났다.그당시스페인의코르도바는로마제국의식민지로서크게번성하고있었다.세네카의가계는안네우스라는무사의집안으로,웅변가이던아버지세네카와어머니푸르비아사이에서삼형제중둘째로태어났다.부자의이름이같기때문에흔히아버지를웅변가세네카라고부르고아들은철인세네카라고부른다.
세네카는어렸을때아버지를따라로마로이주했다.로마에서세네카는수사학을공부했으나차츰철학방면에소질을보였으며특히윤리도덕에남달리취미를갖고깊이연구했다.그러나아버지는세네카의이러한학구열을조금도달가워하지않고법률을공부하여후일원로원에진출할기반을닦게하였다.
그후세네카는원로원에서고매한인격과격조높은웅변으로명성이높았으나,로마의클라우디우스황제때에황후메사리나의참소로코르시카섬에서8년동안유배생활을하다가,클라우디우스황제가메사리나와이혼하고아그리피나가새로황후가되자유배에서풀려나,아그리피나가데려온,전남편의아들의개인교수가되었다.이아들이장성하여유명한폭군네로황제가되었던것이다.
이렇게해서권력과선(線)이닿게되자세네카는원치도않는출세가도를달려집정관(執政官)의중책을맡게되었으며황제와황후의특별한배려로막대한재산까지손에굴러들어와사람들의선망과질투대상이되기도했다.특히제자이던네로가54년에황제로즉위하게되자,로마의실권은사실상세네카의수중에있었다고해도과언이아니었다.그런데네로는치세초기에는선정을베풀었으나,세월이흐름에따라폭군으로변해세네카를차츰눈엣가시처럼여기게되었다.그러던차에네로를제거하려던음모사건에세네카가가담했다는혐의를씌워,세네카는사형을선고받게되었다.
세네카의애처파우리나는남편과함께죽기로결심하고사형집행인에게간청하여허락을받자세네카도이에동의했다.“우리가함께죽을결심을한것은정당한행위라고생각한다.우리는기꺼이죽지만,후세의사람들은내아내의이름을길이기억할것이다”하고세네카는말했다한다.이리하여세네카는62세의나이로생애를마쳤다.그의시체는유지(遺志)에따라장례도치르지않고그대로화장되었다.
세네카는플라톤이나견유학파와에피쿠로스의영향을많이받았으며,영혼과육체의구별을강조하여스토아학파의이론을발전시켰다.그에의하면철학이란덕을행하는처세의학문이다.인간이인간다운까닭은올바른이성을따르는데있으며,이이성에따르면자연의도에일치하는생활을할수있다는것이다.또한그는신을만물의제1원인으로보고,신의의지가세계의법칙이라고주장했다.그는말한다.
“우리는대체어디로가야하는가?이육체의속박을떠나는순간,우리의영혼은어디서구원을받을것인가?우리눈에보이는이모든창조는신의의명령을확인하게하는것으로,우리는신을우리의지배자내지지도자로모시고신의뜻을따라야한다."
세네카의《행복론》은덕성에바탕을두고있다.그에의하면삼라만상가운데인과관계가가장긴밀한것은행복과덕성의관계이며,덕성이있는곳에가장자연스러운행복이조성되고,행복이있는곳에언제나덕성이따르게된다는것이다.“훌륭한것은날을얼마나예리하게다듬었는가에따라결정되는것이며,결코칼집이얼마나찬란한가에따라결정되는것이아니다.마찬가지로인간을존귀하게하는것은돈이나그밖의소지품이아니라그사람의덕성이다”라고그는말한다.인간은자연그대로사물을보지않고그릇된견해를받아들여거의모든사물에대해잘못된판단을내리기때문에재물과명예와권력등을실제보다과대평가하는오류를범하고있다는것이다.
세네카의주장에서가장돋보이는것은죽음에대한추구다.그런의미에서그는죽음의철학자라고해도과언이아니다.“인간은죽어서어디로가는가?그것은알수없다.인간이죽음을두려워하는것은이때문이다.그러나죽음을피할길이없다.그러므로우리는죽음을기꺼이맞이해야한다.이와같은그의주장의이면에는내세에대한기대내지소망을엿볼수있다.그에의하면"인생은영원에이르는서곡이다.”그는이어서이렇게말하고있다.“삶이끝난곳에우리는타계의시원(始原)을기대할수있으며거기서다른세계가전개된다.이현세에서우리는단지먼거리에서방황하게될뿐천국의그림자도찾아볼수없다.”그러나그의신관(神觀)은너무나단순하며이성으로죽음을해명하여종교적인차원에서올바로이해하지못한아쉬움은있으나,부귀와영화의절정에이른그가평소에끝까지자기철학에투철하여검소하고순박한생활로일관한데서실천적인철인의면모를찾아볼수있다.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