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엽, 변화와 굴곡이 심한 격동기-
“역사 앞의 죄인과 의인이 뒤범벅이 된” 시대에 “의롭고 억울한 사람들의 고난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변호사의 자리에서 피고인의 자리로 위치가 바뀌면서도 그 길을 묵묵히 걸어온 거칠고 굵직한 삶
전 감사원장이자 제1세대 인권 변호사로 1988년 민변 창립을 주도하고 201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 받은 한승헌 변호사의 평전
“역사 앞의 죄인과 의인이 뒤범벅이 된” 시대에 “의롭고 억울한 사람들의 고난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변호사의 자리에서 피고인의 자리로 위치가 바뀌면서도 그 길을 묵묵히 걸어온 거칠고 굵직한 삶
전 감사원장이자 제1세대 인권 변호사로 1988년 민변 창립을 주도하고 201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 받은 한승헌 변호사의 평전
“변호사는 원래 인권을 지켜주고 찾아주는 것이 본분인데,
그것을 자꾸 인권 변호사라고 부르면 안 되잖아요.”
한국 법조사 유일의 기록과 역사를 간직한 《한승헌 평전》
“내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실로 평탄치 않은 기복이 드러나 있다. 인생의 명암을 놓고 말하면 명과 암의 극과 극을 한 몸으로 겪어야 했다. 내 이력서에는 양지도 보이지만, 연보에는 그와는 달리 음지가 짙게 번져 있다. 고백건대 나는 음지 속에서 더 많은 깨달음을 얻었고, 인간적으로 성숙했으며 본색을 키웠고 보람을 찾을 수 있었다. 음지의 체험은 그런 의미에서 내 삶의 양지였으며, 그래서 나는 나를 키워준 음지에 감사한다.”
고(故) 한승헌 변호사가 자서전 《한 변호사의 고백과 증언》 표지에 뽑은 〈자화상〉의 한 대목이다. 사람은 물론 초목들까지도 양지를 향한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사와 세상사는 ‘양지쟁탈전’이래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그래서 인간군상에는 ‘양지족(陽地族)’과 ‘해바라기족’이 득세하는 경우가 흔하다. 초목이 햇볕을 향하는 것은 자연현상이지만 ‘인간 양지족’의 경우는 무슨 현상이라고 할까. 대체 무슨 조화인지, 나무는 음지에서 자란 목재가 더 결이 곱고 단단하다고 한다. - 〈책머리에〉
이 책은 총 26장으로 이뤄져 있으며, 각 장마다 한승헌 변호사의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목차와 소주제를 담고 있다.
제1장 일제말기 한빈한 가정에서 출생하여 알바를 하며 중고교를 다닌 이야기를 담은 〈출생과 성장〉·제2장 전북대에 진학하여 군법무관 때 아내와 결혼한 이야기와 검사 생활 5년만에 사직한 이야기를 다룬 〈대학 진학과 사회 활동〉·제3장 31세에 변호사로 전직해 검찰과 사법의 흑역사를 훑어본 〈변호사의 길〉·제4장 시국사건 변론기를 담은 〈시국사건 전담 변호사로〉·제5장 김지하 ‘오적’ 필화사건과 월간 《다리》 필화사건 등 변론기를 담은 〈저항과 시련의 1970년대〉·제6장 반공법 위반에 대한 김준희 교수의 남북 유엔 동시가입 필화사건 변론 등을 담은 〈유신정변기의 정치사건〉·제7장 한 변호사의 나이 34세, 문학에 재능이 있어 법조인이 된 후에도 문예의 울타리를 쉬이 넘나들며 한국기자협회 법률고문이던 때 ‘방관죄’라는 글로 사회 방관자를 질타한 일화와 《법과 인간의 항변》을 펴낸 이야기를 담은 〈다양한 사회 활동〉· 제8장 살얼음 같은 긴급조치 시국에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사건, 긴급조치 1호 장준하·백기완 등 변론기를 담은 〈박정희 긴급 조치 시대〉·제9장 민청학련 사건 변론에 있어 “본 변호인은 저 바닥에 놓여 있는 빈 의자를 변호하러 온 것이 아니라, 방금 퇴장당한 청년학생들을 변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와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입정시켜주면 변론을 하겠다”는 발언으로 학계와 종교계의 움직임을 일으킨 정황 등을 담은 〈민청학련사건과 인혁당사건〉·제10장 대통령 후보 김대중 변론과 민주회복국민회의 등 민주화운동단체 참여하며 받은 탄압 등을 다룬 〈유신정권의 정치보복에 맞서〉·제11장 필화사건 전담 변호인에서 필화 피고인이 된 사연을 기록한 〈피고인이 되기까지〉·제12장 9개월 만에 석방돼 출판사 삼민사를 운영한 이야기와 ‘으악새’ 모임을 결성 과정을 기록한 〈낭인시절 거쳐 출판업〉·제13장 한 변호사가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엮이게 된 이야기와 김천소년교도소에서의 수형 생활을 담은 〈전두환 5공시대의 시련〉·제14장 전과 2범에서 변호사로 복권되고, 저작권 강의를 위해 저작권의 국제적 흐름을 익히고자 국제기구와 선진국 등 구미 8개국 세계여행 이야기를 담은 〈자유로운 영혼으로〉·제15장 《민주교육》지 사건 변론과 6월 민주항쟁 전후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을 발족하고 민주당과 재야단체, 변호사들이 시국 문제로 거리 시위에 나서며 상임공동대표의 직함으로 한 발 앞장선 한승헌 변호사의 발언 등을 수록한 〈법조계에 복귀하여〉·제16장 국본에 참여한 변호사들이 ‘국가 권력의 조직적 억압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변호사 모임으로 민변이 창설하고 그 활동과 《한겨레》 창간위원장으로 힘을 보탠 이야기가 담긴 〈멈추지 않는 활동〉·제17장 1998년 3월 감사원장 임명장을 받아 대통령 소속이지만 독립적 지위를 갖는 국가기관으로서 감사원의 직무 원칙을 충실히 이행하고 1998년 감사원 개원 50주년에 원훈과 원의 상징물을 새로 정한 이야기 등 짧은 공직 시절의 이야기를 다룬 〈감사원장 시절〉. 이 장에는 한승헌 변호사가 지켜온 원칙과 그에 따라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적인 지위로 운영된 감사원의 소명이 담겨 있다. “나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청와대를 드나들었다. 혹시 대통령께서 감사원의 직무상 독립에 어긋나는 말씀을 하신다면, 그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몇 가지 ‘모범답안’으로 정리하여 머리에 입력해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 재임 중 한 번도 그것을 써먹을 기회가 없었다. (중략) 모든 감사는 감사원의 독자적인 판단과 책임하에 이루어졌다.”(본문에서) ·제18장 감사원장 퇴임 후 주요 활동상과 노무현 탄핵 관련 변호인단 선정된 이야기를 다룬 〈재야로 돌아오다〉·제19장 회갑문집 《한 변호사의 초상》을 재조명한 〈회갑문집에 보이는 초상〉·제20장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을 맡아 반개혁 세력의 두터운 층위와 저항을 경험한 일에 대해 이야기한 〈사법제도 개혁에 나서다〉·제21장 자신의 숙원 사업으로서 100건이 넘는 시국사건 중 67건에 대한 변론 실록을 수록한 《한승헌 변호사 변론사건 실록》(전 7권)과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한 변호사의 언변과 유머에 관해 다룬 〈더 넓은 광장을 향하여〉·제22장 변호사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사회원로의 위상에서 전하는 한 번호사의 대사회 발언을 실은 〈사회원로의 직설 발언〉· 제23장 법조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계 명작을 다룬 《법창으로 보는 세계명작》과 법조 55년을 맞아 출간된 기념 선집 4권 등 저서 출간 이야기를 다룬 〈석양에 더욱 빛나다〉·제24장 재심을 통해 42년 만에 ‘어떤 나무’ 필화사건의 무죄 판결을 받은 이야기와 ‘천 년의 바위’와같이 시간이 지나도 권력에 야합하여 이익을 취하거나 물욕을 탐하지 않고 위선을 모르는 노년 이야기를 담은 〈노후의 유유자적〉·제25장 한 변호사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경향신문에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를 연재하고 시집을 간행하며, 일찍이 기록의 중요성일 인식하고 실천한 한승헌 변호사가 마지막 저서 《그분을 생각한다》(문학동네)를 쓰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여생의 과제, 기록과 정리〉 그리고 끝으로 제26장 〈생의 나래를 접다〉에는 향년 88세로 그가 떠난 자리에, 시대를 아우르는 얼굴이자 어른이었던 한승헌 변호사를 기리고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추모하는 글이 수록되어 있다.
“나는 본시 조용히 살고 싶었다. 내 성품도 야성(野性)과는 촌수가 멀었다. 그런데 내 희망과는 달리 세상의 거센 바람에 휩쓸려 거친 들판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내 인생은, 앞에서도 썼듯이 ‘나무는 조용히 있고 싶어 하는데, 바람이 멎어주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는 말 그대로였다.
세상의 수난에는, 그냥 앉아서 영문 모르고 당하는 희생(victim)과 불의와 맞서 싸우다가 당하는 희생(sacrifice)이 있다고 한다. 나의 작은 고난이 그 어느 쪽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내가 선두의 사람, 즉 앞장서서 일을 꾸미고 이끄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 대열의 어중간한 자리에서나마 결코 이탈하지 않고 꾸준히 따라다녔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군사독재 아래서는 다른 선택이 없기도 했다.” - 〈책머리에〉(한승헌 자서전, 《한 변호사의 증언》(한결레출판, 2009) 재인용)
1934년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노성리에서 무녀독남로 태어나 전북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57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여 5년간 검사로 근무하다, 1965년 31세에 변호사로 변론의 길에 들어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활동하기 시작한 한승헌 변호사는 작가들의 필화사건 변론에 이어 인권 변호사로 영역을 넓히며 동백림 사건·통일혁명당 사건·민청학련 사건·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등을 주요 변론했다. 한승헌 변호사가 처음 맡은 일은 천상병 시인의 ‘동백림 사건’으로 34명이나 되는 사건 피고인 중 유일하게 변호인이 없던 천상병 시인을 구치소로 찾아가 착수금 없이 선임계 도장을 받아냈다. 한승헌 변호사는 이러한 초심으로 평생 사회적 약자와 문인·양심수·학생·노동자의 편에 섰다. 또한 인권 변호사이면서 시인이자 수필가로 필력을 날리고 촌철살인 유머로 암흑시대에 신음하는 민초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었다.
한승헌 변호사는 한평생, 서예 스승인 검여 유희강 선생이 “소외받는 사람들의 가까이 있으라”며 준 ‘산민(山民)’이라는 호를 실천하며 법조 60년- 한결같은 자세를 유지했다. 《한승헌 평전》은 마른 체구에 판사·검사·변호사·피의자·방청인을 모두 겪은 한국 법조사 유일의 기록과 역사를 간직한 한승헌 변호사의 평전이다.
2023년 4월 20일, 한승헌 변호사 서거 1주기를 맞아 출간된 《한승헌 평전》을 통해서 산민의 파란 많은 삶, 사이사이 그의 유머와 정신이 깃든 음지와 양지에 발을 들이고 그가 그래왔던 것처럼 그의 생에 걸친 이야기와 지나온 길을 여러 사람이 함께 발을 맞추어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자꾸 인권 변호사라고 부르면 안 되잖아요.”
한국 법조사 유일의 기록과 역사를 간직한 《한승헌 평전》
“내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실로 평탄치 않은 기복이 드러나 있다. 인생의 명암을 놓고 말하면 명과 암의 극과 극을 한 몸으로 겪어야 했다. 내 이력서에는 양지도 보이지만, 연보에는 그와는 달리 음지가 짙게 번져 있다. 고백건대 나는 음지 속에서 더 많은 깨달음을 얻었고, 인간적으로 성숙했으며 본색을 키웠고 보람을 찾을 수 있었다. 음지의 체험은 그런 의미에서 내 삶의 양지였으며, 그래서 나는 나를 키워준 음지에 감사한다.”
고(故) 한승헌 변호사가 자서전 《한 변호사의 고백과 증언》 표지에 뽑은 〈자화상〉의 한 대목이다. 사람은 물론 초목들까지도 양지를 향한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사와 세상사는 ‘양지쟁탈전’이래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그래서 인간군상에는 ‘양지족(陽地族)’과 ‘해바라기족’이 득세하는 경우가 흔하다. 초목이 햇볕을 향하는 것은 자연현상이지만 ‘인간 양지족’의 경우는 무슨 현상이라고 할까. 대체 무슨 조화인지, 나무는 음지에서 자란 목재가 더 결이 곱고 단단하다고 한다. - 〈책머리에〉
이 책은 총 26장으로 이뤄져 있으며, 각 장마다 한승헌 변호사의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목차와 소주제를 담고 있다.
제1장 일제말기 한빈한 가정에서 출생하여 알바를 하며 중고교를 다닌 이야기를 담은 〈출생과 성장〉·제2장 전북대에 진학하여 군법무관 때 아내와 결혼한 이야기와 검사 생활 5년만에 사직한 이야기를 다룬 〈대학 진학과 사회 활동〉·제3장 31세에 변호사로 전직해 검찰과 사법의 흑역사를 훑어본 〈변호사의 길〉·제4장 시국사건 변론기를 담은 〈시국사건 전담 변호사로〉·제5장 김지하 ‘오적’ 필화사건과 월간 《다리》 필화사건 등 변론기를 담은 〈저항과 시련의 1970년대〉·제6장 반공법 위반에 대한 김준희 교수의 남북 유엔 동시가입 필화사건 변론 등을 담은 〈유신정변기의 정치사건〉·제7장 한 변호사의 나이 34세, 문학에 재능이 있어 법조인이 된 후에도 문예의 울타리를 쉬이 넘나들며 한국기자협회 법률고문이던 때 ‘방관죄’라는 글로 사회 방관자를 질타한 일화와 《법과 인간의 항변》을 펴낸 이야기를 담은 〈다양한 사회 활동〉· 제8장 살얼음 같은 긴급조치 시국에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사건, 긴급조치 1호 장준하·백기완 등 변론기를 담은 〈박정희 긴급 조치 시대〉·제9장 민청학련 사건 변론에 있어 “본 변호인은 저 바닥에 놓여 있는 빈 의자를 변호하러 온 것이 아니라, 방금 퇴장당한 청년학생들을 변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와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입정시켜주면 변론을 하겠다”는 발언으로 학계와 종교계의 움직임을 일으킨 정황 등을 담은 〈민청학련사건과 인혁당사건〉·제10장 대통령 후보 김대중 변론과 민주회복국민회의 등 민주화운동단체 참여하며 받은 탄압 등을 다룬 〈유신정권의 정치보복에 맞서〉·제11장 필화사건 전담 변호인에서 필화 피고인이 된 사연을 기록한 〈피고인이 되기까지〉·제12장 9개월 만에 석방돼 출판사 삼민사를 운영한 이야기와 ‘으악새’ 모임을 결성 과정을 기록한 〈낭인시절 거쳐 출판업〉·제13장 한 변호사가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엮이게 된 이야기와 김천소년교도소에서의 수형 생활을 담은 〈전두환 5공시대의 시련〉·제14장 전과 2범에서 변호사로 복권되고, 저작권 강의를 위해 저작권의 국제적 흐름을 익히고자 국제기구와 선진국 등 구미 8개국 세계여행 이야기를 담은 〈자유로운 영혼으로〉·제15장 《민주교육》지 사건 변론과 6월 민주항쟁 전후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을 발족하고 민주당과 재야단체, 변호사들이 시국 문제로 거리 시위에 나서며 상임공동대표의 직함으로 한 발 앞장선 한승헌 변호사의 발언 등을 수록한 〈법조계에 복귀하여〉·제16장 국본에 참여한 변호사들이 ‘국가 권력의 조직적 억압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변호사 모임으로 민변이 창설하고 그 활동과 《한겨레》 창간위원장으로 힘을 보탠 이야기가 담긴 〈멈추지 않는 활동〉·제17장 1998년 3월 감사원장 임명장을 받아 대통령 소속이지만 독립적 지위를 갖는 국가기관으로서 감사원의 직무 원칙을 충실히 이행하고 1998년 감사원 개원 50주년에 원훈과 원의 상징물을 새로 정한 이야기 등 짧은 공직 시절의 이야기를 다룬 〈감사원장 시절〉. 이 장에는 한승헌 변호사가 지켜온 원칙과 그에 따라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적인 지위로 운영된 감사원의 소명이 담겨 있다. “나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청와대를 드나들었다. 혹시 대통령께서 감사원의 직무상 독립에 어긋나는 말씀을 하신다면, 그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몇 가지 ‘모범답안’으로 정리하여 머리에 입력해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 재임 중 한 번도 그것을 써먹을 기회가 없었다. (중략) 모든 감사는 감사원의 독자적인 판단과 책임하에 이루어졌다.”(본문에서) ·제18장 감사원장 퇴임 후 주요 활동상과 노무현 탄핵 관련 변호인단 선정된 이야기를 다룬 〈재야로 돌아오다〉·제19장 회갑문집 《한 변호사의 초상》을 재조명한 〈회갑문집에 보이는 초상〉·제20장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을 맡아 반개혁 세력의 두터운 층위와 저항을 경험한 일에 대해 이야기한 〈사법제도 개혁에 나서다〉·제21장 자신의 숙원 사업으로서 100건이 넘는 시국사건 중 67건에 대한 변론 실록을 수록한 《한승헌 변호사 변론사건 실록》(전 7권)과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한 변호사의 언변과 유머에 관해 다룬 〈더 넓은 광장을 향하여〉·제22장 변호사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사회원로의 위상에서 전하는 한 번호사의 대사회 발언을 실은 〈사회원로의 직설 발언〉· 제23장 법조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계 명작을 다룬 《법창으로 보는 세계명작》과 법조 55년을 맞아 출간된 기념 선집 4권 등 저서 출간 이야기를 다룬 〈석양에 더욱 빛나다〉·제24장 재심을 통해 42년 만에 ‘어떤 나무’ 필화사건의 무죄 판결을 받은 이야기와 ‘천 년의 바위’와같이 시간이 지나도 권력에 야합하여 이익을 취하거나 물욕을 탐하지 않고 위선을 모르는 노년 이야기를 담은 〈노후의 유유자적〉·제25장 한 변호사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경향신문에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를 연재하고 시집을 간행하며, 일찍이 기록의 중요성일 인식하고 실천한 한승헌 변호사가 마지막 저서 《그분을 생각한다》(문학동네)를 쓰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여생의 과제, 기록과 정리〉 그리고 끝으로 제26장 〈생의 나래를 접다〉에는 향년 88세로 그가 떠난 자리에, 시대를 아우르는 얼굴이자 어른이었던 한승헌 변호사를 기리고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추모하는 글이 수록되어 있다.
“나는 본시 조용히 살고 싶었다. 내 성품도 야성(野性)과는 촌수가 멀었다. 그런데 내 희망과는 달리 세상의 거센 바람에 휩쓸려 거친 들판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내 인생은, 앞에서도 썼듯이 ‘나무는 조용히 있고 싶어 하는데, 바람이 멎어주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는 말 그대로였다.
세상의 수난에는, 그냥 앉아서 영문 모르고 당하는 희생(victim)과 불의와 맞서 싸우다가 당하는 희생(sacrifice)이 있다고 한다. 나의 작은 고난이 그 어느 쪽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내가 선두의 사람, 즉 앞장서서 일을 꾸미고 이끄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 대열의 어중간한 자리에서나마 결코 이탈하지 않고 꾸준히 따라다녔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군사독재 아래서는 다른 선택이 없기도 했다.” - 〈책머리에〉(한승헌 자서전, 《한 변호사의 증언》(한결레출판, 2009) 재인용)
1934년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노성리에서 무녀독남로 태어나 전북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57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여 5년간 검사로 근무하다, 1965년 31세에 변호사로 변론의 길에 들어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활동하기 시작한 한승헌 변호사는 작가들의 필화사건 변론에 이어 인권 변호사로 영역을 넓히며 동백림 사건·통일혁명당 사건·민청학련 사건·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등을 주요 변론했다. 한승헌 변호사가 처음 맡은 일은 천상병 시인의 ‘동백림 사건’으로 34명이나 되는 사건 피고인 중 유일하게 변호인이 없던 천상병 시인을 구치소로 찾아가 착수금 없이 선임계 도장을 받아냈다. 한승헌 변호사는 이러한 초심으로 평생 사회적 약자와 문인·양심수·학생·노동자의 편에 섰다. 또한 인권 변호사이면서 시인이자 수필가로 필력을 날리고 촌철살인 유머로 암흑시대에 신음하는 민초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었다.
한승헌 변호사는 한평생, 서예 스승인 검여 유희강 선생이 “소외받는 사람들의 가까이 있으라”며 준 ‘산민(山民)’이라는 호를 실천하며 법조 60년- 한결같은 자세를 유지했다. 《한승헌 평전》은 마른 체구에 판사·검사·변호사·피의자·방청인을 모두 겪은 한국 법조사 유일의 기록과 역사를 간직한 한승헌 변호사의 평전이다.
2023년 4월 20일, 한승헌 변호사 서거 1주기를 맞아 출간된 《한승헌 평전》을 통해서 산민의 파란 많은 삶, 사이사이 그의 유머와 정신이 깃든 음지와 양지에 발을 들이고 그가 그래왔던 것처럼 그의 생에 걸친 이야기와 지나온 길을 여러 사람이 함께 발을 맞추어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한승헌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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