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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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레프니콜라예비치톨스토이

저자:레프니콜라예비치톨스토이(Lev.N.Tolstoi;1828∼1910)|
러시아의작가.
도스토예프스키와더불어러시아문학을대표하는세계적인문호.
남러시아야스나야폴랴나에서명문백작가의4남으로출생한그는,처녀작《유년시대》에이어《소년시대》,《세바스토폴이야기》로작가로서의지위를확립하였다.
62년결혼으로가정생활에서평안을찾은그는,문학에전념하여《전쟁과평화》,《안나카레니나》등을탄생시켰다.그의나이쉰살이조금지난1880년대초,일대정신적위기를맞아세계관이변모하면서사상가또는종교가로탈바꿈하게된다.의식적인생활을하면서부터그의관심은오로지삶과죽음의문제로기울어졌다.
주요작품으로는《인생론》,《예술이란무엇인가》,《참회록》,희곡《산송장》,단편《무도회의뒤》,논문〈종교와도덕〉등이있다.
1910년성자다운간소한생활을추구하는그의이상에어긋나는가정을포기하고수도원을향해방랑의길을떠나지만결국시골의한적한역에서폐렴으로숨을거두고만다.

역자:김진욱
서울대학교사범대졸업.한국교재개발공사주간역임.
역서:<갈매기의꿈>,<젊은여성을위한인생론>,
<적극적사고방식>,<제3의물결>,<작은것이아름답다>등이있음.

목차

이책을읽는분에게5

사랑이있는곳에하느님이계신다17
인간에게많은땅이필요한가40
촛불67
사람은무엇으로사는가84
두노인128
대자(代子)167
한가한사람들의이야기199
빛이있는동안에빛속을걸어라207

변명의말(체르토코프)308

연보313

출판사 서평

이책을읽는분에게

도스토예프스키와더불어러시아고전문학의거봉(巨峰)인레프니콜라예비치톨스토이(LevNikolaevichTolstoi)는,1828년8월28일에제정(帝政)러시아의유서깊은명문귀족집안에서태어났다.그의출생지인야스나야폴랴나는톨스토이애독자에게는성지(聖地)와도같은곳이며,현재도톨스토이를기리며이곳을방문하는사람들의발길이끊이지않고있다.
톨스토이는15세때까지그곳에서지냈는데,그동안에2세때에어머니를,9세때에는아버지를여의었다.그후에는먼친척인타치야나와알렉산드라라는두부인에의해양육되었다.타치야나는‘사랑하는일의행복’과‘꾸밈없는조용한생활의아름다움’을톨스토이에게가르쳐그의생애에큰영향을미쳤고,알렉산드라는그의어린영혼에신앙심을심어주었다고전해진다.어린나이에부모를잃은톨스토이는고독하고내성적인나날을보내게되는데,일찍부터성인세계의부정(不正)을감지하여의혹의눈길을보내며인생의문제를진지하게생각하는소년으로성장하였다.

그는15세때에카잔대학에입학하여처음2년동안은동양어학과에서,진급시험에낙제한후에는법학과에서2년의대학생활을보냈지만,자신이공부에열중하지않은일은생각지않고‘대학은학문의무덤’이라단정하여1847년에자퇴(自退)하고말았다.그후농업경영에전력하기로결심하고,자신이상속받게되어있던영지(領地)인야스나야폴랴나로돌아갔다.그의나이19세때였다.이후4년간의농촌생활은<지주(地主)의아침>(1856)에상세히그려져있다.
하지만너무일찍현실의벽에부딪쳐자신의이상(理想)이맥없이무너져버렸음을알고또한자신의행동에서허위의냄새를맡은톨스토이는,절망과자기혐오에빠져술과여자와도박으로도피하게된다.이것은그의생애에서최초의위기였다.1852년에그는이러한생활을단념하고군대복무를지원하여,레르몬토프와인연이있는고장인카프카즈에서군무(軍務)에종사하게되었다.평원(平原)뿐인중앙러시아에서는꿈에도생각할수없는,높은산악으로둘러싸인카프카즈의대자연은톨스토이를부활시키고오랫동안잊고지냈던신(神)의존재에다시금눈을돌리게하였다.

1853년에크림전쟁이시작되자혈기왕성한톨스토이는곧도나우군(軍)에의전속을지원하여,1854년11월부터이듬해8월에걸친유명한세바스토폴리포위전(包圍戰)에참가,성(城)을지키는데따르는온갖괴로움과전투의처절함을경험하게되었다.이전투에서죽음과대결하고있는동안에그는계시(啓示)에의해자기생애의목적을뚜렷이파악하게되었다.그것은기독교에의한온인류의합일(合一)이라는꿈이었지만,시기는아직무르익어있지않았다.
전쟁이끝난후의수년동안은세바스토폴리전투의용사로서또신진작가로서두도시에서방탕한생활을보내고몇차례의외국여행도즐겼지만,그는항상고향에대한그리움을강하게느꼈고지주(地主)로서거기에정착하여새로운생활을개척하려는희망을버리지않았다.

그의이러한희망은34세때인1862년에실현되었는데,그로부터약50년동안,몇차례의여행을제외하고는고향을떠나지않았다.
결혼하여조상대대로물려온영지(領地)에틀어박힌톨스토이는지주로서의농촌생활을진심으로사랑하고,도시지식인들과의교제를피하며영지의경영과창작활동에전념했다.그가자신의작가로서의천분(天分)을자각한때는카프카즈시절이며,당시그는처녀작<유년시대(幼年時代)>를써서《현대인》지(誌)에익명으로발표했다.

<유년시대>는그속편인<소년시대>,<청년시대>와함께톨스토이자전(自傳)소설의3부작을이루는데,같은의미에서그의초기의작품,이를테면<세바스토폴리이야기>,<지주의아침>,<카자흐사람들>따위도이작가의내면생활을묘사한자전적소설이라할수있을것이다.톨스토이는몇번이나자신은작가가아니라고말하고문학이외의훨씬중요한목적을품고있음을암시했으며,마침내는그때까지의자신의작품을모두부정하게되었지만,그러나역시그는타고난작가였다.펜을잡는일이야말로그의천직(天職)이었고또실제로그는죽음에이르기까지펜을놓지않았다.
러시아귀족의명문(名門)에서태어난톨스토이는당시러시아일반사회,특히농민의비참한생활을목격하곤언제나양심의가책을받아번민했으며,특권을가진귀족지주는불우한일반대중에게그대가를지불할의무가있다고생각했다.그러기위해서는무엇보다도먼저농민의생활을향상시킬필요가있다고생각한그는,자신의영지에농민을위한학교를창설하고교과서까지스스로만들어교육에진력했으며,농민해방운동에도협력을아끼지않았다.

《안나카레니나》집필중에세아이와예의두친척아주머니를잃은톨스토이는인생의의미를진지하게생각하게되어,‘예술은인생의거울이다.인생이의미를가질수없게되었을때,이미거울의유희(遊戱)는흥미를끌지못한다’고하여마침내예술을포기하기에이르렀다.하지만철학이나과학도삶과죽음의문제에해답을내려주지못했다.톨스토이는절망하고괴로워했다.그러한그에게구원의손을뻗쳐절망으로부터그를다시소생시켜준것은,민중의소박한신앙―자신을위해서가아니라하느님을위해살아간다는―이었다.
1870년대말부터1880년대에걸쳐일어난톨스토이의전기(轉機)는,《안나카레니나》의주인공중한사람인레빈,즉톨스토이자신에의해일찍부터예언되었다.그는3년동안열심히교회에다니며어떻게든경건한기독교도가되려고노력했지만,인습(因習)에젖은러시아정교회라는벽이그러한그의앞을가로막고있었다.사형제도와전쟁을공공연히긍정하고다른종파에증오의눈길을보내는러시아정교회의실태를,그의이성(理性)은도저히용납할수없었던것이다.

마침내구원받을길없는러시아정교회와완전히손을끊고복음서의연구에몰두한톨스토이는,그성과를<교의신학비판(敎義神學批判)>,<4복음서의요약색인과번역>,<우리는무슨일을해야할것인가>,<요약복음서>등의종교적논문으로정리하였다.그리고그집대성(集大成)이《나의신앙》이고,거기에이르는영혼의고뇌를기록한것이《참회록》이었다.톨스토이는철학이나과학에는인류를이끌힘이없다고생각하고,모든인간은자신들로서는이해할수없는존재,즉‘하느님’을위해살아가야한다는결론을내리게된것이다.
이른바톨스토이이즘의기본이되어있는것은‘산상(山上)의수훈(垂訓)’이며,그는노여워해서는안된다,간음해서는안된다,맹세해서는안된다,악으로써악에대항해서는안된다,어떠한사람의적도되어서는안된다는가르침(톨스토이는이를다섯가지의계율〔五戒律〕이라부르고있다)은결국‘하느님을사랑하고,또자신의이웃을자기자신처럼사랑하라’는말로요약된다고말하고있다.

인간의이성(理性)은하느님으로부터부여받은,진리를알기위한유일한수단이고또인간의유일한이성적활동은사랑이라는,복음서에의거한톨스토이의독자적인교의(敎義)는,전세계지식인들의마음에깊은감명을주었으며,그중‘악에대항하지말라’는주장은인도의간디에의해계승되었다.
톨스토이는문학이나예술은무의미하다고선언하고,그전기(轉機)이후로도덕적·종교적인평론이나논문의집필쪽으로관심을돌리게되었지만,그래도끊기어려운욕구에이끌리어소설쓰는일을계속하였다.자신의손자가《안나카레니나》를읽고있는걸보고“왜좀더유익한책을읽지않고,그런쓸모없는책을읽느냐”고말한톨스토이는,종교활동에유익한작품을쓰겠다는구실로1886년에는<이반일리이치의죽음>을,1889년에는《크로이체르소나타》를,그리고1899년에는《부활》을발표하였다.그는역시본질적으로는뭐니뭐니해도작가였던것이다.

1882년에모스크바시세(市勢)조사에참가해빈민굴을시찰하게된톨스토이는,농촌뿐만아니라이곳에서도가난한시민들이지옥같은생활에시달리고있는것을보고격분하여,그악의원인이그것을허용하고있는국가권력에있음을폭로하고그악을조장시키고있는특권계급이나국가,교회,과학,문명에공공연히도전하겠다고선언하였다.그러기위해서는,그러한악에가담하기를거부하고금전과토지의사유(私有)를포기하며,악의근원인국가에봉사하지않고사랑과근로와자기희생적생활을하는것이무엇보다도중요하다고생각하였다.이러한사상을넓히는수단으로서그는<바보이반>,<사랑이있는곳에하느님은계신다>,<인간에게많은땅이필요한가>,<촛불>,<사람은무엇으로사는가>,<두노인>등의훌륭한단편(短篇)을발표하였다.
하지만톨스토이가종교적인평론을쓰거나복음서연구에몰두하고있을동안은아직참고있던부인이나아이들도,그가귀족지주의생활양식을버리고농민과같은생활을시작하자그에게등을돌리고말았다.이전에는가정적인사랑으로《전쟁과평화》나《안나카레니나》집필을도와준부인소피아도,이제는혐오감을안겨줄뿐이었다.톨스토이는고독했다.어린시절의추억이서린야스나야폴랴나도그에게는더이상안주(安住)의땅일수없었다.부부의반목은날이갈수록격화되어갔다.

《부활》에묘사된감옥내의예배당장면을문제삼은러시아정교회에의해정식으로교회로부터파문(破門)을선고받았을때,톨스토이의노여움은최고조에달했다.그는항상‘악에대항하지말라’고주장했지만,실제로는그자신이당시의러시아의악과싸우고있었던것이다.‘악에대항하지말라’는가르침의가장충실한사도(使徒)였던톨스토이가러시아혁명의가장강력한추진자이며선구자가된비밀이여기에숨어있다.가정안에서는고립되고정부로부터는위험인물로백안시당하게된톨스토이는,모든것을버리고혼자가되는데서최후의해결책을구하였다.그는1910년10월29일아침,“생애의마지막며칠동안을고독과정적속에서지내고싶다”는글이쓰인쪽지를남기고몰래집을나와방랑길에올랐다.가출(家出)의비밀을알고있던사람은,가족중의유일한이해자(理解者)였던장녀알렉산드라와친구인의사뿐이었다.

이윽고톨스토이가랴잔―우랄선(線)의조그마한간이역인한랭한아스타포보역에서폐렴으로쓰러졌다는뉴스가온세계를놀라게하였다.1901년에도며칠동안가출했던적이있는톨스토이는,이리하여마침내그처절한바람을이룬것이다.며칠후에질환이급변하여그는마침내불귀(不歸)의객(容)이되었다.“지상에는수백만명의사람들이괴로워하고있다,그런데왜당신들은나한사람의일에만구애되는가?”라고불만을나타내고,“진리를……나는정말사랑한다……왜사람들은……”이라고한것이그의마지막말이었다고전해지고있다.1910년11월7일(신력〔新曆〕으로는11월20일)의일이다.
그의유체(遺體)는82년의생애대부분을보낸회상의땅인야스나야폴랴나의조용한숲속에장방형으로마련된,묘비도없는무덤속에조용히잠들어있다.

톨스토이의생활원칙은루소의‘자연으로돌아가라!’는사상이며,원시적이며간소한생활이야말로최상의것이라하여,도시문명과결부되는모든것을배척하였다.톨스토이의마음을끌어당긴것은‘자연인(自然人)’의생활이며,그가동경한것은어머니인대지(大地)에직결되는생활이었다.

이신조(信條)는그의생활뿐만아니라예술에도통하는것이었다.톨스토이에의하면진정한예술은,첫째인간의생활에기여하는것이어야하고,둘째오늘날유행하고있는예술처럼미(美)나향락추구를목적으로하는것이아니라종교적감정에의거한것이어야하며,셋째하나의국민이나하나의계급에만적용되는것이아니라널리일반대중에게도이해되는보편적인것이어야한다.그러기위해서는우선그표현과형식이간소하고단순명료해야했다.그러한의미에서이책에수록된네편의단편은그조건을완전히갖춘것이라할수있다.
러시아고전문학은일반적으로인생을위한문학,교훈을가진문학으로알려져있다.이교훈적인경향은특히톨스토이문학에서절정에이르고있다고생각된다.이러한경향을역겨워할사람도있겠지만,이는어쨌든톨스토이자신이수십년동안의정신적고뇌끝에체득한사랑의복음이자톨스토이문학의정수(精髓)이기도하므로,그길이의짧음에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