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소낙비(외)

동백꽃 소낙비(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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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농촌의 소작인과 도시의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1930년대의 빈민생활을 즐겨 다룬 김유정의 작품 모음-
〈봄봄〉 〈산골 나그네〉 〈노다지〉 등 15편 수록
열두 살 때 제동공립보통학교에 들어가면서 신학문의 첫 걸음을 내디딘 김유정은 휘문고보 시절에 안회남(安懷南)과 같은 반에 다녔다. 이어 연희전문 문과를 중퇴한 후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창작에 정열을 쏟은 것이 유정의 일생이었다. 그의 생애를 편의상 나눠보면, 출생 후부터 연희전문을 중퇴하기까지를 성장기로 볼 수 있다. 이 정신적, 문학적 성장기를 그는 3·1운동의 좌절 이후 반민족적인 탄압 아래서 프로 문학과 국민문학이 날카롭게 대립하던 속에서 보냈다. 이어 제2기는 연희전문을 중퇴한 후 데카당(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허약과 파산과 실연으로 방랑하던 1929년부터 1931년까지의 시기가 된다. 그 이후 유정은 일단 데카당의 생활을 청산하고 귀향하여 그곳에서 농촌 계몽 운동을 하는 한편, 습작기를 지나 문단에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방랑을 청산한 1931년부터 작고하기까지를 제3기로 부를 수 있다. 이처럼 김유정은 성장기·방랑기·창작기라는 3기의 각각 특이한 생활을 하면서 짧은 창작 기간 중 우리나라 단편문학사에 귀중한 작품들을 남겼다.
저자

김유정

저자:김유정(金裕貞;1908∼1937)

강원도춘성군출생.휘문고보를거쳐연희전문학교문과중퇴.

1935년〈소낙비〉가조선일보신춘문예에당선되고,〈노다지〉가조선중앙일보신춘문예에가작입선하여작품활동을시작함.

‘구인회’의일원으로참가했으며,그후폐결핵에시달리다가1937년29세의나이로일찍세상을떠남.

〈금따는콩밭〉,〈봄봄〉,〈만무방〉등의많은단편작품을통해작가특유의해학및인간들의욕망,또는해학을배제하고착취체제에내재하는모순등을그려냈다.

목차

이책을읽는분에게5

소낙비17
산골35
금(金)따는콩밭54
봄봄71
땡볕88
산골나그네98
동백꽃113
안해124
슬픈이야기139
봄과따라지151
정조(貞操)160
가을174
따라지186
노다지215
솥230

연보254

출판사 서평

이책을읽는분에게

가난과실연,병고와실의의만29년을살았던유정(裕貞)은죽은후에안장될땅을못구하여,그가남기겠다던결핵균과함께한상자의재로화한채한강에흩날려내려갔다.
강원도춘천에서2남6녀중일곱째,차남으로태어나귀엽게자라다가여섯살에어머니를여읜후여덟살에는아버지마저잃어삼촌과형,누나를번갈아가며보호자로삼았던그는따라서정서적으로항상불안하고실의에빠지게되었다.후일기생에대한짝사랑편지는그에게더할수없이좋은습작기의문장연습이되었으며,이는또한작품<두꺼비>의모체도된다.그가짝사랑한많은기생들은말할필요도없이일찍가버린어머니상(像)의추구에서나온것이었다.
열두살때제동공립보통학교에들어가면서신학문의첫걸음을내디딘그는이어휘문고보시절에안회남(安懷南)과같은반에다녔다.이어연희전문문과를중퇴한후떠돌이생활을하면서창작에정열을쏟은것이유정의일생이었다.
그의생애를편의상나눠보면,출생후부터연희전문을중퇴하기까지를성장기로부를수있다.이정신적,문학적성장기를그는3·1운동의좌절이후반민족적인탄압아래서프로문학과국민문학이날카롭게대립하던속에서보냈다.
이어제2기는연희전문을중퇴한후데카당(방탕한)생활을하면서허약과파산과실연으로방랑하던1929년부터1931년까지의시기가된다.그이후유정은일단데카당의생활을청산하고귀향하여그곳에서농촌계몽운동을하는한편,습작기를지나문단에나오게되었다.그래서방랑을청산한1931년부터작고하기까지를제3기로부를수있다.
이처럼유정은성장기·방랑기·창작기라는3기의각각특이한생활을하면서짧은창작기간중우리나라단편문학사에귀중한작품들을남겨주었다.
《김유정전집》에실려있는26편의소설의무대를보면다음과같다.산촌이나농촌을무대로한것이12편,서울이무대인것이11편,광산촌이1편,기타2편이다.
여기서산촌과농촌을무대로한작품은거의예외없이강원도그의고향처럼빈촌으로되어있다.따라서이것은그의생애제1기와제2기의영향을받고쓰여진작품들이다.
서울을무대로한것은학창시절과제3기의영향에서쓰여진작품이많으며,광산을무대로삼은것은제2기의방랑기때직접체험한사실을바탕으로삼고있다.유정의경우그의체험은곧자신의문학이었다.그는겪지않고가보지않은곳은무대로삼지않았다.
다시그의26편의주요작품에등장하는대표적인인물중50명을골라그직업을분석해보면다음과같다.
소작인·머슴22명,자작농·마름2명,지주3명,학생3명,기생·바걸·들병이11명,노동자·여공3명,무직4명,상인1명,기타1명(거지아이).
소작인이압도적인다수를차지하고있다.그리고여성의경우는거의서비스업에종사하는것으로되어있다.주인공들의학력은거의없고학생이나전문학교출신이몇명있을뿐이다.
유정이작품활동을했던1930년대의농촌은식민지라는굴레에봉건주의적억압이있었던두개의사슬을가진감옥과같았다.따라서그의소설의주인공중절대다수를차지하고있는소작인이나머슴들의생활은곧1930년대한국농촌의모습을전형적으로보여준것이라고할수있다.
그는당시소작인들의이익을가로채가는농민의적을세가지로나눠서작품속에다그려주고있다.즉지주와마름,각종세금과부역,관리들의횡포와진흥회등의간섭을내세우고있다.
유정은작품속에서지주나마름을곱게그리지않는다.마치고대소설에나오는악의화신처럼이들을묘사해준다.

(1)하나인심을정말잃었다면욕보다읍의배참봉댁마름으로더잃었다.본디마름이란욕잘하고,사람잘치고,그리고생김생기길호박개같아야쓰는거지만…….(<봄봄>에서)
(2)올농사는반실이니도지도좀감해주는게어떠냐고.그러나지주는아무말없이고개를모로흔들었다.정이러면일년품은빼야할테니나는그논에다불을지르겠수,하여도잠자코응치않는다.(<만무방>에서)

(1)은마름이라는사람들이얼마나뻔뻔스럽고비인도적이냐는것을말해주고있으며,(2)는지주들의도조(賭租)가얼마나부당한것인가를말해준다.이와같은지주와마름에대한간접적인비난은<금따는콩밭>,<소낙비>,<동백꽃>등에도가끔나타난다.<동백꽃>은마름의딸에게소작인의아들이꼼짝없이당하는이야기며,<소낙비>는지주신분의사람에게소작인의처가돈을얻기위해당하는이야기다.
그다음소작인들을괴롭혔던각종세금에대해서작가는이렇게쓰고있다.

(3)가혹한도지다.입쌀석섬,보리,콩두되의소출은근근댓섬.나눠먹기도못된다.본디밭이아니다.고목느티나무그늘에가리워여름날오고가는농군이쉬던정자터이다.그것을지주가무리로갈아도지를놓아먹는다.(<총각과맹꽁이>에서)
(4)요즘눈바람은부닥치는데조밥꽁댕이를씹어가며신작로를닦는것은그리수월치도않는일이었다.떨면서그지랄을또하려니생각만하여도짜장이에서신물이날뻔하다만다.(<솥>에서)

(3)은지주에게바쳐야할도지에대한서술이다.소작료가일찍이우리나라만큼높은곳은없었다.가장많은것으로는생산량의9할을받았던경기도에서,적기로는평북의2할까지있었다고한다.유정의소설배경이었던강원도는대개5할전후였다고한다.(4)는일제(日帝)가그들의착취를보다쉽게하기위하여신작로를닦는데강제부역을시키던일을말해주고있다.이밖에도유정의작품에는나타나있지않지만수리조합비,철도부설부역등허다한수탈과강제노역에시달렸던것이당시의농민들이었다.
특히소작료가비싸자신이지은농사를밤중에몰래훔치다가자기형에게들켜무안을당하는<만무방>은당시의소작인생활을실감있게그려준걸작이다.
마지막으로각종집회와관리들의횡포에의한농민들의괴로움을보여준것으로는진흥회가나오는<총각과맹꽁이>와농민총회가등장하는<솥>등이있다.진흥회란1930년대에일제가만든농민탄압단체였다.즉소작인들의쟁의를사전에탐지해서그활동을막으며쓸공출을잘내도록하는한편,궁극적으로는황국(皇國)농민을만들려는일종의계몽적성격을가진어용단체였다.이진흥회가농촌집집마다찾아다니며피곤한농민들을더한층못살게굴었다.
이상1930년대의농촌문제세가지를유정의작품을통하여살펴보았다.그런데여기서우리는그의작가적한계를간과해서는안될것이다.당시농촌에서는소작인조직이생겨지주들에대항한투쟁이맹렬히일어났었다.그들의최대쟁점은소작료3대7의비율이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유정의작품에는결코지주에게덤비는농민은하나도없다.<만무방>의응칠이가지주의뺨을갈기는것으로되어있으나,사실그는소작인으로서의농민이라기보다는부랑자에가깝게묘사되어있다.
유정이그린소작인들은왜그들이못사는지,무엇이그들의적인지를몰랐다.이것은곧작가김유정이갖는인생파적인한계에서온것으로오늘의우리에게무척아쉬운감을주는것이다.
그럼유정의작품무대중제2위를차지하고있는서울과이에관련된관료관(官僚觀)은어떤지살펴보자.

(5)대도시를건설한다는명색으로웅장한건축이날로늘어가고한편에서는낡은단층집은수리조차허락지않는다.서울의면목을위하여얼른개과천선하고훌륭한양옥이되라는말이었다.(중략)기름때가짜르르한헌누더기를두르고거지가이런상점앞에버티고서서나리!돈한푼주우,하고…….(<심청>에서)

도심지를조금만걸어가면거지들이우우몰려드는것을유정은자주묘사했다.<봄과따라지>는바로거지아이가행인들에게구걸하는모습을그린작품이다.그는거지,바걸,실직자등의사람들을곧잘따라지에비유했다.
1930년대경제공황의여파는식민지에까지휘몰아와서서울은실직자와거지의집결지가되었다.이농(離農)의상경도서울인구를늘렸다.따라서유정에게서울이란시골의소작인이나마찬가지로가난에찌들린생활의터전으로인식되었다.근대화랍시고건물만화려하게들어서는,가난을해결해줄생각은아예없었던시대의도시풍경을유정은그려준다.
<따라지>는서울에존재하는온갖따라지인생들이셋방에들어서살아가는작은지옥의생활을묘사하고있다.매일주인으로부터방세독촉을받는것은소작인이지주에게도조를재촉받는것과너무나닮았다.

(6)“저런자식두!못두생겼다.저게아마경성부고쓰까인거지?”
“글쎄,그래도제법넥타일다잡숫구.”(<따라지>에서)

유정의작품에는관료들이안나온다.다따라지인생들이다.여기서는방세를받겠다고주인댁에서,독학으로부청에까지출세를했다는조카를불러와독촉한다.이를맞은편방에서문틈으로내다보고있던바걸들이주고받는대화다.이대화속에는고쓰까이로부터고관대작에이르는식민지관리들에대한불신과증오심이스며있다.
이와같은균형잃은도시속에서그럼노동자들은어떻게묘사되어있는가.유정은다양한노동자를주인공으로삼지는않는다.그러나광부와양복점여직공이등장하여당시식민지시대의노동자생활을보여주고있다.

(7)낮같은때공장에서일을하다가깜빡졸적이있다.그러다삐끗하면엄지손가락을재봉틀에박는다.마는뺄수는없고그대로서서쩔쩔매는것이다.그러면감독은와서뒤통수를딱때리고,“조니까그렇지”하고눈을부라린다.(<생의반려>에서)

경무과분실양복부에다니는여공의경우를묘사한것이다.이런작업장에서여공들은다히스테리환자가되어있다.<따라지>에도경무과제복공장의여공이나오는데역시히스테리환자다.
여기서주의할점은왜하필이면경무과제복공장에다니느냐는사실이다.그것은1930년대당시일제가민족적차별로한국인의산업공장을적극억압했기때문이다.당시의공장중91퍼센트가일본인이운영하는것이었고,약2퍼센트는관공서가운영했다.반면한국인경영공장은약5퍼센트정도였다고한다.
뿐만아니라직공들의노동시간에까지그들은민족적차별을두었다.1930년대일본에서는1일노동시간8~10시간을실시한것이45.3퍼센트,10~12시간이46.3퍼센트였다.그런데한국에서는12시간이상노동이46.9퍼센트나되었다.따라서직공들은작업중졸기일쑤였고사고가많았다.그러나보상은일체없었으며감독의손에목이달려있었다.게다가임금역시일본노동자의절반밖에받지못했다.
유정은이처럼농촌의소작인과도시의노동자를중심으로한1930년대의빈민생활을즐겨다루면서도여성관에서는서구적인자유연애론을구가하기도했다.그러나대개의경우그는봉건적인여필종부의여인상을제시하고있어동시대의이상(李箱)과좋은대조를이루고있다.
유정은우리의고전문학에서골계(滑稽)의전통을그대로이어받았다.어느설문에서그는<흥부전>을감명깊게읽었다고했는데,사실그의묘사법은<흥부전>에뿌리를박고있는듯하다.―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