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 (법화의 세계가 현현한 구름 속에 드러난 보탑)

운주사 (법화의 세계가 현현한 구름 속에 드러난 보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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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전남 화순군 도암면에 위치한 운주사는 천불천탑의 골짜기로 유명하다. 1980년대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고, 최근에는 세계문화유산 등재까지 추진되었으나 아직도 그 실체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지역 언론인으로 평생 향토사에 천착해온 김정호 씨는 운주사를 천태종계 사찰로 규정하고 그 탑들을 불교 법화의 세계를 구현한 야단법석의 현장으로 보았다.
1984년 이후 전남대학교박물관 팀에서 운주사에 관련하여 조사한 설화 및 구전 전설은 21편에 달하고, 운주사에 관해 발표된 소설이나 기록물은 50여 편이 넘어설 정도로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다. 창사 전설에 견준 운주사 관련 시는 100여 편이 훨씬 넘고, 국내 신문 및 잡지류는 거의 한 벌꼴 이상의 기획물을 싣기도 했다.
저자는 이처럼 수백 명의 학자들이 동원되어 기록한 시대적 배경, 지역의 특수성, 지역 인문 환경의 변화 들을 향토 사학의 입장에서 검토하고 보완하였다.
저자

김정호

1937년진도에서태어나조선일보,전남일보,광주일보,무등일보등에서근무했다.무등일보편집국장,전라남도농업박물관장,사단법인향토문화진흥원장,광주광역시전라남도문화재위원,문화재청민속감정위원,문화관광부21세기문화정책위원,진도문화원장등을역임했다.광주광역시시민대상,장보고선양국민포장,화관문화훈장,대동전통문화대상등을수상했다.저서로『영호남의인문지리-동서지역갈등의사회사』『광주산책』『한국의귀화성씨』『요새의땅,광주상무대』등50여권이있다.

목차

화보02
머리말17


제1장운주사답사
운주사탑상구경26
운주사최초의기록31
부처의상징,안개머무는곳33
운주사와영축산34
주목받는운주골36
풍수의현장체험46
운주골의풍수(風水)51
국역진호(國域鎭護)의땅54
‘야단법석’무대의현장57
야단법석(野壇法席)의기록들61
운주사의서민성64


제2장석실불감의두불상
탑은입간판인가?68
야단법석의무대장치70
설법무대의개막연출74
허공에떠있는다보탑(多寶塔)78
수레바퀴크기의연잎탑82



칠성별공간은메타버스83
『법화경』의내용과운주사88
성춘경의병배좌불론(倂背坐佛論)95
강우방의비로자나불론99
박형상의‘운주사현장의배경과『법화경』’102
천책의「다보탑경찬소(慶讚疏)」인용글103
도선과운주사104
천태종과6산문(六山門)107


제3장운주사산천배경
천태산과창세기설화110
중국도교사상유입114
중국도교의유입118
화순화학산의지리환경122
불이잦은화학산129


제4장석실불감의재검토
『법화경』의구조136
영산회상도의본디모습138
두부처의탑중분좌(塔中分座)142
영산회상과운주사149
영축산(靈鷲山)의상징성151
운주골불상의검토153
불상에대한관심155


제5장고려말기전남지역불교
장보고와법화원160
강진대구면청자요지와천태산165
정혜(定慧)결사와백련(白蓮)결사의바탕170
전남연해안의소외와종교181
백년결사(百年結社)의전개182
몽골유목민의침략과티벳불교185
개경의묘련사(妙蓮寺)189
탐진천태종과개성의천태종192


제6장운주골주변인문
능주의역사와도암주민204
12세기능주성씨206
도암일대땅이름과종교215
불국토운주골221
도암과운주사동네223


제7장운주사중창과발굴조사
운주사중창사업228
법진비구니의중창사업231
1980년대정부의관심232
운주사지발굴과학술조사234


맺음말 다시보는운주사238
자료260
참고문헌279
김정호저서목록286

출판사 서평

운주사의풍수
지금은영구봉(또는다탑봉)이라불리는양성이씨선산정상에서내려다보면운주골은영락없는배형국의모습을하고있다.특히석양때서쪽능선에그늘이지면길이200여미터길이의큰범선이정박해있는모습이다.중심부에있는석실불감은선장실에비길만하고석실불감을중심으로남북쪽에일렬로서있는탑들은마치범선의돛처럼보이는데,이탑들은일주문곁까지뻗어있다.풍수를모르는관광객이라도이곳에서운주사일주문쪽을바라보면커다란범선이돛대6개를세우고마치항해를준비하는것처럼보일것이다.때문에1930년대이곳이름이‘구름이머무는곳’운주(雲住)에서‘배가운항하는곳’운주(運住)로불리기도했다.
풍수와관련하여이곳의지리를더욱자세히살펴보면불교의경전『법화경』에나오는‘삼계화택(三界火宅)’을떠올리게한다.무등산의전라남도의아버지산이라면화악(학)산은어머니산이다.이화악산의북쪽에불교와인연인깊은천태산과개천산이있고,그기슭에운주사와개천사가위치해있다.천태(天台)는지상과천상을오가는통로를뜻하고개천(開天)중국신화의주인공반고가하늘과땅을만든것을의미한다.그리고화악산서남쪽으로50km거리에는삼계봉이있다.여기서나오는‘삼계’는세강의경계를이르는지명이지만앞서말한불교의욕계,색계,무색계를떠올리게한다.삼계가불타는집이라는뜻처럼이곳은병화가잦았고백성들의피난처이기도했다.이러한배경을살피면운주골의불탑과석불무리가형성된수수께끼가어째서많은것인지짐작할만하다.


운주골불탑의야단법석(野壇法席)
특히저자는운주골에조성된불탑들을가리켜“석가모니가영축산에서행한영산법회의야단법석을가장잘반영한시설”이라고설명한다.‘운주사천불천탑’이란명칭때문에운주사에마치천개의탑이있는것처럼오해할수있다.실제로남아있는탑은21기이고불상은미완성이거나깨진것등을모두합해도100여분정도다.
그러나실망할일은아니다.이로인해생겨난재밌는이야깃거리가무궁하게생성되기때문이다.저자는이에대해『법화경』에서는“조탑이성불하는데가장큰공덕”이되는데“불상을천불이상모신곳은세계도처에있으나탑을한공간에10개이상세우는곳은드물다”고설명한다.그렇기에“법문이실행되는동산이나숲,나무아래,승방,불전,신도의집,산골짜기,들판에라도탑을건설해공양하면이곳은깨달음의도장이되고열반을이룬다”(『법화경』21장여래신력품)는가르침처럼운주골의불탑이야말로이야단법석(野壇法席)의표현에가장적절한현장이라는것이다.이에더하여9층탑을비롯한여러탑들에기단이없는것은“설법을듣기위해땅에서솟아올랐기때문”이라고추측했다.석가모니가영축산에서제자들에게설법을할때마다건넛산에서높은탑들이솟아올랐다는이야기와유사하다.운주사의석실불감또한“석가모니가다보탑부처의초청을받아탑실자리를반으로나누어같이앉았다”는내용을형상화한것이라설명했다.
1987년운주사대웅전을중창할때당시간송미술관의관장최완수씨의큰조력이있었다.이대웅전에모신석가모니불상기문을1990년에최완수씨가지었다.그는보제루주련현판을원중식전각학회장에게의뢰해걸게하였는데,이현판중‘천탑용출편만산(千塔湧出篇滿山)’이라는구절이있다.중창불사관계자들또한이절이야단법석의현장을현상화한것이라감지했던모양이다.


운주사에얽힌도선국사창사설
운주사는선각국사도선이국토균형을잡기위해이곳에불상불탑1천개씩을세웠다는행주형국비보설이전해지면서서민문학의용광로가되었다.고려시대때국토비보사찰이라알려진선암사,운암사,용암사에대한이야기가천책스님이쓴『호산록』에전해지고있는데,이중에서운암사에대한이견이많다.이탓인지도선이창건했다는삼암사중운암사는운주사의뿌리라는주장이고개를내밀만도하다.더구나이절이고려말몽골의침략과압제를받았던시기의진주용암사중창에빗댈경우운암사또한같은염원을담은절이라는정서가가능하기때문이다.절의이름은비록운주사이지만다탑사찰유적으로는천태종의경전『묘법연화경』과가장밀접하게연결되어있다.
기록이풍부하고역사도시대에따른재해석이많은세상에서,기록도부족하고기존의전형에서벗어나조성된운주골유적은세계문화유산에등재되더라도보는이들이각기다른상상력으로바라볼게분명하다.이번에출간된김정호원장의책은수많은신비로운이야깃거리를간직한운주사를새로운눈으로살펴볼수있는데큰도움이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