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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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중국 전국 중기 사상가 신도의 철학서 『신자』. 이 책은 전희조의 <수산각총서>에 수록된 ‘신자’를 저본으로 삼아 완역한 것이다. 치국의 문제에서 법제의 역할에 주목하면서 권세의 작용에 대해서도 강조한 신도의 도가적 사상, 법가적 사상을 알아볼 수 있다. 가오류수이의 주석본을 참고하였다.
저자

신도

저자신도(愼到,BC395∼BC315)는중국전국(戰國)중기의사상가다.신도의사상은자연을숭상했던도가사상에서출발했다.하지만부국강병과약육강식의통일전쟁이전횡하는전국시기에자연순응의무위로는영원할수없다고판단했다.그리하여그는현명한군주는치국에오직법치를근거해야부국강병을이룰수있다고법가를옹호하며적극적으로법치를주장했다.특히신도는법치로써사사로운욕망을억제할수있다는점을법제의가장큰공로로여겼고,법치를통한민심의통일을주장하기도했다.신도의사상에대해서는당시백가쟁명중어떠한학파에속했었는지시대별로이견을보이고있다.사마천은〈사기〉에서신도를도가(道家)로분류했고,반고(班固)의〈한서〉와〈통지(通志)〉,그리고〈선진제자합편(先秦諸子合編)〉등에서는그를법가(法家)로구분했다.반면에청대의〈사고전서(四庫全書)〉와현대의〈자서백가(子書百家)〉·〈백가전서(百家全書)〉등에서는신도를잡가(雜家)로분류하기도했다.

목차

해설
지은이에대해

1.위덕(威德)
2.인순(因循)
3.민잡(民雜)
4.지충(知忠)
5.덕립(德立)
6.군인(君人)
7.군신(君臣)
8.일문(逸文)
발(跋)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중국전국중기사상가신도의철학서.
도가에서출발한신도의사상은전국시기라는사회적배경으로인해법치를옹호하게된다.신도는치국의문제에서법제의역할에주목하면서권세의작용에대해서도강조했다.이러한신도의중세(重勢)사상은후기의법가이론이성립하는데중요한영향을주었다.신도의도가적사상,법가적사상을확인해볼수있다.

이책은전희조(錢熙祚)의≪수산각총서(守山閣叢書)≫에수록된≪신자≫를저본(底本)으로삼아번역역한것이다.그리고필요에따라서가오류수이(高流水)가역주한≪신자전역(愼子全譯)≫[구이저우인민출판사(貴州人民出版社),1996]을참고했다.그리고일문(逸文)과관련해≪군서치요(群書治要)≫와1935년에왕쓰루이(王斯睿)가저술한≪신자교정(愼子敎正)≫에수록된내용을상세하게대조해교감(校勘)했다.

≪신자(愼子)≫출현의사회적배경
신도(愼到)는전국(戰國)중기의중요한사상가다.중국역사상춘추(春秋)와전국시기는대변혁시기로서일대전환기에해당한다.정치상주(周)왕조의명맥은유지되었지만천자(天子)가제후를통제하는능력을상실해서왕실은쇠락했다.경제적으로철기와우경(牛耕)의보급으로사회적생산력이비약적으로발전하면서대량의토지가개간되었고,급속한사유화가진행되었다.사상ㆍ문화방면에서는공자같은사상가의출현으로사학(私學)이발전해,교육과문화가귀족의독점에서벗어나대중화되는데공헌했다.춘추시기학술상의백가쟁명(百家爭鳴)의분위기는전국시기에더욱발전하면서사상은상호영향을주었고,각사상들의통합국면이출현하기도했다.특히이시기사상가는주로부국강병(富國强兵)을통한중국통일의이론모색에매진하기도했다.

신도(愼到)의도가(道家)적사상
신도의자연숭상사상은노자의“도법자연(道法自然)”사상의영향으로볼수있다.그러나노자가주장한“무위(無爲)”가인위적인것을반대하며소극적으로자연적인혜택을기다리는것이라면,신도의자연상태란사람이자연을이용하는상태를의미했다.신도가숭상하는자연사상은도가에근거했지만노자의소극적인도가사상의일면을적극적으로극복하고자했다.
또한신도는“자연순응”의용인(用人)사상을주장했고이와연관지으면서‘자연의규칙을준수하고백성의정서에순응한다’는“인순(因循)”의개념을도출했다.신도는이런자연규율을준수해직무를수행하고동시에민심에순응하면국가는곧흥성하지만,이런자연규율을어기면국가는위태롭게된다고했다.그리고그는용인(用人)과관련해서군주는무위(無爲)를,신하는유위(有爲)를해야한다는사상을제창했다.신도의“군무사(君無事)”하며“신유사(臣事事)”한다는사상은노자의“무위이치(無爲而治)”사상의계승과발전이라할수있겠다.노자가언급한무위사상이란주로치국의원칙이라는측면에서제시한것이지만포괄적인원칙을제시했을뿐구체적인방법을언급하지못했다.이런측면에서신도의용인(用人)사상은노자의무위사상을실천하고실현하는비교적구체적인방법과시책의제시라할수있다.

신도의법가(法家)적사상
신도는치국의문제에서법제의역할에주목하면서한편으로는권세의작용에대해서도강조했다.군주가법제를실행하기위해서는반드시권세를이용할줄알아야한다고했다.그렇지않으면군주는법제의관철은물론이고법제를실행하는과정에서한사람도부릴수가없다고했다.그리고권세는특정한조건에서결정적인역할을한다고했다.그의“중세(重勢)”는법치사상의중요한특징중하나며,초기법가의중세파(重勢派)관점은후기법가사상에중요한영향을주기도했다.법가를집대성했던한비(韓非)는<난세(難勢)>편을저술하면서신도의중세(重勢)사상에대해언급하기도했고,중세사상에영향을받아법(法)·술(術)·세(勢)를결합해서비교적완전한법가이론체계를수립해국가와백성을통치하는이론체계를완성하기도했다.
신도는국가통치에유일하게법치만을근거로해야하는것은오직법치의실행을통해서상벌의객관적인표준의도출과상하의화목이가능하기때문이라고여겼다.법치의실행을,사사로운원한을제거하고공평과정의를실현해상하가화목할수있는객관적인근거로삼았다.또한법치로써사사로운욕망을억제할수있다는점을법제의가장큰공로로여겼다.신도는입법(立法)을사행(私行)과대립시키면서,입법으로사사로움을제어함으로써법치의공정성과배타성을확보하려고했던것이다.하지만“군주”와“존현(尊賢)”을대립시켜“군주가직위에있으면현자는존중받지못한다”라고한것은법치(法治)와인치(人治)를극단적으로대립시키는주장으로,신도사상의한계다.

≪신자(愼子)≫의집일(輯佚)과저본(底本)
량치차오(梁啓超)는일찍이<고서진위급기연대(古書眞僞及其年代)>라는문장에서신무상(愼懋賞)이집일한≪신자내외편≫이위서임을처음지적했고,현대에이르러서는뤄건쩌(羅根澤)과팡궈위(方國瑜)등의학자가위서임을증명하기도했다.이후궈모뤄(郭沫若),판원란(范文瀾),후스(胡適),장다이녠(張岱年),허우와이루(侯外盧),양룽궈(楊榮國)등의학자들은≪신자≫를언급할때원론적으로≪자휘≫본을주로참고하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