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 문집

이옥 문집

$16.00
Description
문체반정의 대표적인 희생자 이옥의 글들을 엮은 『이옥 문집』. 이 책은 틀에 박히지 않은 묘사, 고루하고 딱딱한 글이 아니라 생생하고 자유로운 글을 썼다 해서 과거 응시를 금지당하고, 두 번이나 군대에 가야 했던 선비, 이옥의 글들을 수록하고 있다. 죽는 날까지 자신의 신념대로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이옥의 글에 담긴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

이옥

저자문무자(文無子)이옥(1760∼1814)은자(字)가기상(其相)이고,본관은(本貫)은전주(全州)며,본가는경기도남양(南陽)이다.그는젊은시절성균유생으로한양에서활동했다.조부이동윤(李東胤)은서족(庶族)무반(武班)출신이고,부친이상오(李常五)는1754년에진사에급제했으며,이옥은성균유생시절인1790년에생원시에급제했다.슬하에는1남4녀를두었는데아들의초명은우태(友泰)다.그의성장을알려주는연보가없어생애를정확히알수는없지만,그의저술등을통해서추적해보면,그는30세를전후해한양에서성균유생의신분으로활동했다.1792년에임금이성균유생들에게열흘에한번씩내려준글제에따라지은그의글이순전히소설문체로작성되었다고지적을받은적이있다.당시선비들은이런소설문체를유행처럼답습했는데정조는당시성균유생들로하여금매일사륙문(四六文)50수를채우게해문체를바르게한후에과거시험에나아가도록명했다.정조의문체반정은바로이를계기로시작되었다.그의문집<봉성문여(鳳城文餘)>의<추기남정시말(追記南征始末)>에의하면,그가성균유생으로있던1796년(36세)에정조가그의문체를보고괴이하다고과거를보지못하게했다가충청도정산현에충군(充軍)하게했다.그해9월에다시돌아와과거시험에응시했으나,문체를고치지못해다시영남삼가현(三嘉縣)으로이충(移充)편적(編籍)되었다가사흘후에다시한양으로돌아왔다.1797년(37세)에별시(別試)초시(初試)에서장원을차지했으나,그의책문이근래의격식에어긋났다해서방말(榜末)에붙여졌다.방말이었지만과거에급제를했으므로문체로인한죄를용서받을수있었는데도그는충군에대한청원을하지않은채고향으로돌아갔다.1798년(38세)이되던봄에삼가현에서소환독촉이심해지자,형부,병부,예부에들러서청원을했지만허락을받지못했다.결국1800년(40세)10월에다시삼가현에내려가118일동안을그곳에머물고이듬해2월에귀향했다.그뒤그의활동에대해서는자세히알수없다.다만신유옥사(辛酉獄事)가일어났던1801년(41세,순조1년)에그는잠시귀경했지만,성균유생시절에교분을나누었던김려(金?)와그의아우김선(金?)그리고강이천(姜彛天)등과헤어져서다시본가에돌아와은둔자적하며일생을마칠때까지저작활동에몰두했다.

목차

운문(韻文)

1.이언(俚諺)

아조雅調
염조艶調
탕조宕調
비조비調

2.부(賦)
개구리가우는사연후편後蛙鳴賦
물고기들의먹이사슬-병오년여름에쓰다魚賦一丙千夏
용처럼생긴포도나무草龍賦
거미의충고蜘蛛賦
아들다섯가진어미의탄식五子구賦

산문(散文)

1.논설(論說)

북관기녀의밤중통곡을논함-원사실을병서北關妓夜哭論-幷原
접시꽃에대해蜀葵花論

2.잡문(雜文)
매미가고하다蟬告
원통경圓通經
서풍을논하다論西風

3.기문(記文)
호상에서씨름을구경하고湖上觀角力記
저잣거리의소매치기불奸記
담배연기경문烟經
방언때문에方言

4.전지(傳誌)
거지간교를면한성진사成進士傳
호랑이잡은산골아낙捕虎妻傳

5.문여(文餘)
사당패의생활상社黨
무당굿巫祀
무가사설의와전巫歌之訛
가마를탄여도적乘轎賊
석굴에서도적들이엽전을주조하다石窟盜鑄

해설
지은이에대해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이옥의작품은≪담정총서≫에수록된문집들에주로소개되어있지만,그의시문학론과민풍시이언(俚諺)은≪예림잡패(藝林雜佩)≫<이언인(俚諺引)>에수록되어있고,희곡집≪동상기(東床記)≫도따로전한다.
≪담정총서≫는조선후기정조가문체반정정책을펴면서패사소품체의대표적인인물로지목한담정김려에의해서간행된필사본이다.김려의문집≪담정유고≫권10<총서제후(叢書題後)>에는김려가편찬한문집의제후(題後),예를들어김시랑의<현수관소고권후>를시작으로이익지(李益之)의<죽장산고권후(竹莊散稿卷後)>등여러편이수록되어있다.이를근거로보면≪담정총서≫에는39권의문집이수록되어있을것이다.
이총서는통문관(通文館)에소장되어있었는데그내용의일부를맨처음소개한이는연민(淵民)이가원(李家源)선생이다.선생은≪이조한문소설선≫(민중서관,1961년)에이옥의전문학(傳文學)23편중15편을뽑아소개했다.이옥에대한본격적인연구는역자의석사학위논문<이옥연구>에서그의생애와세계관을중심으로이루어졌다.<이옥연구>는이옥의문집일부만을소장자로부터얻어보고소개한것이어서작가생애에대한오류가없지않았다.그뒤에역자는<이옥의문학이론과작품세계의연구>에서그의생애와세계관그리고문학이론과작품세계를재론한바있다.≪예림잡패≫에수록된<이언인>은국립중앙도서관에수장된필사본을역자가학계에처음소개해알려지게된자료다.<이언인>제목아래기록된저자는연안(延安)이옥(李鈺)으로되어있는데이것때문에이옥의본관에대해서학계에혼란이야기되기도했다.<이언인>의서문에해당하는<일난(一難)>,<이난(二難)>,<삼난(三難)>은이옥의시문학론이라고할수있다.그리고<이언>에는그의작품66편의절구가수록되어있는데‘아조(雅調)’‘염조(艶調)’‘탕조(宕調)’‘비조’등으로구분되어있고민풍시(民風詩)성격이강하다.≪동상기≫는현재까지5편의이본이전한다.
이옥의현실에대한인식태도를살펴보면생애전·후반이상당한차이를보인다.성균유생시절에쓴음양오행이나불교의윤회에관한글등에서는유교적경험론에입각한합리주의적사고를보여준반면에,문체로인해입신의길을포기한뒤에쓴글등에서는신비체험의세계에대한관심을보이면서현실에대해반유교적이고,비합리주의적인인식태도를보여준다.인간의존엄성에대해서는인간본래의모습과계층간의역할이따로있음을전제하고소속된계층에관계없이인간존엄성을인정했다.그리하여군자(君子)와야인(野人)과의관계를상보적관계로파악해민생의역할을분명히했고,평등주의에입각해민생의존엄성도긍정적으로수용했다.민중들의반도덕적행위에관심을보이면서민중들의이런행위에대한근본적책임이지배계급의민중수탈에서비롯되었다고해서유교적도덕주의를엄격히실천할것을지배계급에요구하기도했다.전통문화에대해서도그는남다른관심을보였다.그가문체때문에삼가[三嘉,다른이름은봉성(鳳城)]현에충군되어그곳에머무는동안에견문했던것을기록한<봉산문여>는당시의영남민속을연구하는데중요한자료다.그는여기서종래의모화적(慕華的)의식에서탈피해우리것에대한새로운인식과함께투철한자존의식으로화이론(華夷論)을극복하려는의지를보여주었다.전통문화에대한주체의식은그의문학관에도그대로반영되어조선사람은조선의문학을해야한다고주장했다.
본역서에서는이옥의모든작품을소개할수없으므로작품유형별로선별해서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