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이한열 (쓰러져 일으킨 그날의 이야기)

1987 이한열 (쓰러져 일으킨 그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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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87 이한열』은 그동안 우리가 잘 몰랐던 이한열과 그를 둘러싼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한열이 의식을 잃은 1987년 6월 9일부터 그의 장례식이 치러진 7월 9일까지 약 한 달 동안의 궤적을 따른다. 이를 통해 독자는 이한열이 왜 폭압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는지, 사람들은 왜 이한열을 지켜야 했는지, 이한열은 왜 지금도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는지 알 수 있다. 이한열기념사업회가 30년 동안 축적한 방대한 기초 자료와 다수의 증언이 바탕이 된 만큼, 이야기의 결은 촘촘하다.
저자

김정희

저자김정희는이한열이입학한같은해인1986년에연세대학교사회학과에입학했고,1987년6월9일이한열이쓰러진시위현장에서있었다.그인연이이어져2011년부터(사)이한열기념사업회일을하고있다.<동아일보>출판국에서기자로10년동안일했고,이후자유기고가로서몇권의책을번역,편집했다.

목차

친구를추억하며
그해여름의기억(소설가김영하)

프롤로그
꽃이피었다

1부
중요한약속
그래도앞에선다
힘드니까쉬었다가라
신발찾아가세요
우리한이
한장의사진
세브란스의기적
모두가만든걸개그림
연세공동체
운동의풍경
뜨거운동행
나의중학교동창한열이
그들이강요당한분노
계엄령이선포된다면

2부
한열이손에힘이없어요
불을붙이겠다
최종사인‘최루탄’
작별을준비하며
그림으로음악으로
가자,광주로가자
옷속에숨긴낫
그의나이스물둘

에필로그
어머니
그리고남은사람들
그리고남은물건들

*감사의글
*책이나오기까지도움을주신분들
*‘잃어버린시간을찾습니다’프로젝트후원자명단

출판사 서평

30년전의이한열을만나다!
우리가몰랐던그때-그곳의이야기

이책은이한열열사의마지막한달,그리고
그를둘러싼모든이의뜨거운분투기다!

1987년6월,우리가몰랐던이한열의이야기

1987년은한국현대사에서기념비적인해다.몇십년동안이어진군부독재가막을내리고직선제개헌안이공포되었기때문이다.특히그해6월에있었던민주항쟁은거대한분수령을이루었다.그때국민들이거리에나와한목소리를내지않았다면대한민국의민주화는더욱어려워졌을지모른다.
이과정에서국민들을더욱똘똘뭉치게만든인물이바로이한열이다.이한열은그해6월10일에예정된국민대회를하루앞두고쓰러졌다.모교인연세대학교에서학우들과함께출정식을갖다가경찰이쏜직격최루탄을맞고의식을잃었다.그렇게말도안되는사고가일어나자정부에대한국민들의분노는더커질수밖에없었다.
이한열이병실에누워있는사이에국민들은여권으로부터6.29민주화선언을이끌어냈다.그렇게국민들사이에희망의기운이퍼지는사이에이한열은영면했다.때는7월5일,사인은최루탄이었다.당시그의나이는스물둘에불과했다.
이책은그동안우리가잘몰랐던이한열과그를둘러싼여러사람의이야기를담고있다.이한열이의식을잃은1987년6월9일부터그의장례식이치러진7월9일까지약한달동안의궤적을따른다.이를통해독자는이한열이왜폭압에쓰러질수밖에없었는지,사람들은왜이한열을지켜야했는지,이한열은왜지금도중요한인물로기억되는지알수있다.이한열기념사업회가30년동안축적한방대한기초자료와다수의증언이바탕이된만큼,이야기의결은촘촘하다.

공권력의폭압에쓰러지고만스물두살청년

연세대학교경영학과86학번이한열.그는그런사람이었다.집에서는더할나위없는효자,학교에서는모두가인정하는진국이었다.매사에성실하고책임감이강했다.자신보다불우한사람을걱정했을뿐아니라부당한사회를고민하곤했다.학과공부에부지런했던만큼학생운동도게을리하지않았다.
그래서1987년6월10일국민대회를하루앞두고학교에서열린총궐기대회에도적극참여했다.그날이한열은몇몇학우들과같이‘소크(soc)’를맡았다.“시위하는학생들과전투경찰들사이에최소한의거리를확보하고,경찰들이시위대를공격할경우이를막기위해무장상태에서시위대를보호하는이들”(26쪽)이바로소크다.그날따라누나가이른외출을만류할정도로몸살이심했음에도이한열은일찍집을나섰다.자신과한약속,학우들과한약속은반드시지켜야했기때문이다.
헌데그날전경들의진압은유난스러웠다.최루탄이생각보다많이터졌고,그중다수가학생들에게직격으로날아왔다.최루탄이하늘에서큰포물선을그리며날아오거든그것을직접확인하고피하곤하던보통때와달랐다.당황한학생들은황급히학교안쪽으로피신했다.
그러나단한사람,이한열만은그러지못했다.직격탄에맞고홀로길한복판에쓰러졌다.그렇게이한열은폭압에의식을잃고말았다.

쓰러진그를지켜야했고,결국지켜냈던사람들

당시공권력은잔인했다.정부에반하는이들을응징한것은기본이요,공안사건으로숨지는이가생기면사망원인을은폐하기위해시신을탈취해몰래처리하기도했다.세브란스병원중환자실에들어간이한열도안전할수없었다.그해박종철고문치사사건을경험한학생들은이사실을잘알고있었다.
이한열이입원하자마자학생들은경비에나섰다.총학생회가나서서학우들의경비참여를호소했다.그러자학생들은소속과학번을불문하고경비에나섰다.순서와규칙을정해이한열곁을지켰다.참여자수는하루평균500명에달했다.연세대학생뿐아니라다른학교학생들까지지원을자청했다.이에교수들과교직원들도뜻을함께했다.이처럼수많은사람이이한열을통해하나가되었다.
그러나예기치않은시기에위기가발생했다.많은학생이6.29민주화선언을접하고긴장을풀었다.선언직후병원을경비하는인원수가급격히줄었다.하루2500명에이르기도했던인원수가100명밑으로떨어졌다.정권과제도가아직그대로인데,이한열이아직누워있는데,세상은이미들떠있었다.
가장큰위기는이한열이숨을거둔7월5일새벽에찾아왔다.이한열이사망하자마자경찰병력이대거병원에투입되었다.안그래도경비인원수가줄은상황에서꾸준히경비에나서던학우들까지그날따라학교에없었다.당시경비인원은50명도채되지않았다.다행히이한열의사망소식이빠르게학생들사이에빠르게퍼지면서경비인원은몇시간만에급증했다.결국경찰의탈취는실패로돌아갔지만,이한열이눈감은그날은그야말로일촉즉발의시기였다.

마지막까지이한열을괴롭힌공권력,그이면의알려지지않은이야기

이한열이쓰러진후,공권력은줄곧그를괴롭혔다.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요원은세브란스병동을감시했고,경찰들은이한열의사망직후시신을압수해가려고했다.경찰측은장례식에서도딴죽을걸었다.장례준비위원회가운구행렬의동선을짤때서울시청앞이포함되는것을막았다.서울시청과청와대가가까웠기때문이다.
급기야장지를결정하는과정에도정부가끼어들었다.정부는이한열의죽음에정치적인의미가부여되는것을막아야했다.그래서유족들에게일반묘역을강권하기까지했다.결국이한열은다수의뜻에따라광주5.18묘역에묻혔지만,마지막까지공권력이보인방해공작은혀를내두를정도였다.
그럼에도공권력의편에서있던사람들을모두악한으로치부할수는없다.자신의의지와상관없이공권력에굴복해충성을다해야했던이들도분명히있었기때문이다.특히대학교앞에서자기또래학생들과맞서야했던전투경찰들의고충은이루말할수없을것이다.시위현장에나선그들은학생들의증오는물론시민들의분노까지감내해야했다.실제로1987년6월당시연세대앞에서전투경찰로시위를진압했던최모씨는“학생들을막으려해서막은게아니라,막지않으면죽을수도있을것같아서,살기위해막았다”(133쪽)라고토로한다.시위에소극적으로임하는자는고참의구타까지각오해야했다.

방대한자료들이엮어낸생생한기록지

이외에도이책에는많은사람의다양한이야기가등장한다.쓰러진학우를처음부축한이종창,이한열의신발을주워가족에게전달한이정희등이한열의동문들은물론그누구보다가슴아파했을가족들도말을아끼지않는다.특히어머니의담담한에필로그는심금을울린다.여기에이한열을지키지못해줄곧죄책감에시달린총학생회장우상호(현국회의원),총학생회사회부장으로서삭발까지감행한우현(배우),쓰러진중학교동창의소식을듣고충격을금치못한박철민(배우)등유명인들도이한열에얽힌가슴찡한이야기를털어놓는다.저자를비롯한이한열기념사업회가모은방대한자료들이오롯이빛을발한다.
이한열사망30주기를맞아기획된본단행본은1987년이한열과그를둘러싼사람들의미시사다.이한열한사람의전기가아니라쓰러진그와그의뜻을지키기위해앞장섰던다수에대한기록이다.그동안제대로정리되지않았고밝혀지지않았던이야기들이씨줄과날줄로엮였다.‘우리’가앞장서고힘을모은다면세상을바꿀수있다는이책의교훈은지금도유효하다.1987년6월과이한열을막연히어둡거나어렵다고생각하는독자들에게이책은기대이상의감동과공감을불러일으킬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