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비르의 노래 (양장본 Hardcover)

카비르의 노래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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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개신교 목사로서, 종교 간 경계를 넘어 동서양의 고전과 경전을 새로이 해석해 온 이현주 목사가 인도의 전설적인 종교가 카비르의 시를 번역했다. 카비르는 15세기 인도에서 태어나 힌두와 이슬람을 비판적으로 계승·통합해 독창적인 신앙 체계를 구축한 인물로, 무의미한 종교 예전들과 미신을 강하게 반대하며 당대 종교 교리들을 비타협적으로 비판해서 교리주의자들에게 멸시를 받았다. 그가 일생을 통해 지은 방대한 양의 시는 그 자신이 문맹이었던 탓에 인도 민중의 입을 통해 내려오다가, 훗날 제자들이 엮은 문집 〈비자크〉와 시크교의 성전 〈아디 그란트〉로 일부가 전한다. 이 시집은 〈비자크〉와 〈아디 그란트〉에 실린 카비르의 시편의 영문판본을 저본으로 삼고 있다.
저자

카비르

저자카비르Kabir(1440추정∼1518년)는북인도바라나시에서브라만의사생아로태어나,가난한이슬람교도직공아래에서자랐다고전한다.청년기에힌두교비슈누파의저명한구루라마난다를사사했다.하지만힌두교도로개종한것이아니어서,훗날유일한신에대한바크티(절대적신애信愛)를기반으로,힌두교와이슬람을비판적으로통합하여독자적인일신교를개척했다.우상숭배·고행·희생·목욕·순례·제사나푸라나(Pur?na)와코란의성구(聖句)를무의미하다고배격했다.그는모든신앙에공통적인것을가진단일한교단으로인도교도도회교도도결집할것을호소하고,진실한신앙은사람들을분리시키는종교적의식의준수에있는것이아니라,인도교도도회교도도똑같이도달할수있는심정과행위의내적인고결함에있다고주장했다.정규교육을받지못한문맹으로,죽을때까지종교가다운행색없이직공생활을고수했다.그는요가행자,고행자,회교탁발승(托鉢僧)의기생적인생활을비난했으며자신의사상을국민들이알수있는단순한언어로기억하기쉽고거장답게구성한시의형식으로서술하여,공인된종교의비판에서도현저한활동을하였다.그가지은방대한양의시가제자들이엮은문집〈비자크〉와시크교성전〈아디그란트〉를통해전한다.

목차

옮기고엮은이의말

카비르의노래
각설이타령
달노래
요일노래
슬로카

테마로읽는카비르의숨겨진노래
하나님을찾는데대하여
믿음과헌신에대하여
영혼에대하여,영혼을위하여
성품에대하여
삶에대하여
부에대하여
말의가치에대하여
죽음에대하여
위선에대하여
마음에대하여
방화에대하여
유혹에대하여
나자신에대하여

용어풀이

출판사 서평

인도의전설적인종교지도자이자수행자이며그루인카비르가남긴시편들을
우리나라에본격적으로소개한최초의카비르시집!

“희랍에호메로스가있고이태리에단테가있고독일에괴테가있고영국에셰익스피어가있고중국에도연명이있다면,인도에는이사람이있다고할만한바로그사람,카비르!”
-〈옮기고엮은이의말〉중에서

개신교목사로서,종교간경계를넘어동서양의고전과경전을새로이해석해온이현주목사가인도의전설적인종교가카비르의시를번역했다.카비르는15세기인도에서태어나힌두와이슬람을비판적으로계승·통합해독창적인신앙체계를구축한인물로,무의미한종교예전들과미신을강하게반대하며당대종교교리들을비타협적으로비판해서교리주의자들에게멸시를받았다.그가일생을통해지은방대한양의시는그자신이문맹이었던탓에인도민중의입을통해내려오다가,훗날제자들이엮은문집〈비자크〉와시크교의성전〈아디그란트〉로일부가전한다.이시집은〈비자크〉와〈아디그란트〉에실린카비르의시편의영문판본을저본으로삼고있다.

아래로내려가정직을성취하는영적해방의노래
카비르의시(詩)는날카롭고재미있고그리고겁이없다.온갖권위주의,기득권과힘,기술,제도에의존하는종교적권위주의를통렬하게무너뜨린다.그들이브라아민사제들이든무슬림설교자들이든요가수련자들이든아니면탐욕스러운순례자들이든스스로거만하게구는직업종교인들을그냥놔두지않는다.
카비르는사회개혁가,신비주의자,황홀경에빠진풍자시인등여러호칭으로불리지만그중어느것도적확한건아니다.그의작업은이런저런방식으로의식의불꽃을일으켜사람들을깨워서자유로워지게하는쪽으로기울어져있다.그는경쾌한일격(一擊)으로,속임수익살로,진솔한대화로또는드라마틱한예화로이일을시도한다.그의반경(半徑)은광대하다.인간심리에대한그의깊은이해는놀랍기만하다.그의해방은근본적으로정직(正直)을성취하는데있다.진실을,자기자신의뿌리깊은탐욕또는자기죽음에대한진실을정직하게대면하는데그의해방이있는것이다.

지금까지알려진바에따르면카비르는15세기북인도에서살았다.그가1448년에태어나1518년에죽었다고말하는학자들도있다.그의고향은지금도가장중요한힌두교순례지들가운데하나인성스러운강가강변바라나시였다.그의사회적신분은미천했고집안은이슬람으로개종한지얼마안되는직조공계급이었다.비록힌두교국가인인도에서소수자로살아야했지만12세기에서18세기중반영국의지배를받게되기전까지는무슬림이중동아시아전역을장악했다.이슬람이많은개종자들을얻은것은문화적정치적성향때문이었다.평등사회를지향하는이슬람의이념에매력을느껴조금이라도지배층에줄을대고싶은자들,힌두교경건주의(바크티)구루들이나성자들과유사한수피들의가르침에이끌린다수의기능공계층이이슬람으로개종한것은오히려당연한일이었다.수피들과무슬림신비주의자들은종단(sect)을형성해서좀더조직적으로가르침을전파하였다.그들은무엇을주장하거나겉치레를하지않고아래로내려가는모습을보이면서동시에자신의경험과사랑에바탕을둔시와음악으로놀라운열정과카리스마를뿜어냈다.

카비르시에나타난사유특성과전승과정
카비르라는이름은무슬림이지만진실에접근하는그의방식은이슬람보다힌두교와불교전통의영향을더많이받은것으로보인다.전설은그를저명한힌두구루인라마난다의제자로만든다.천박한직조공이어떻게브라아민을속여서자기를제자로받아들이게만들었는지에대한이야기가대중에널리퍼졌다.카비르시(詩)에자주등장하는‘람’(Ram)은하나님(God)의다른호칭이지만,대표적인도설화‘라마나야이야기’에나오는신인동형적화신(化神,avatar)은아닌게분명하다.그의람은전지전능의이름,주문(呪文),사람의언어로설명불가능한경계너머위없는존재를가리킨다.
카비르는꼴도없고형상도없고몸으로성육신하지도않고이야기도없는하나님을예배하는북인도바크티의‘니르군’(nirgun)학파에속한시인들가운데서도탁월한인물이다.하지만카비르가신들의형상,이야기,화신들을중요시하는대중힌두교를아주등진건아니다.그는오히려(‘꼴-안의-하나님’을숭배하는)‘사군’(sagun)학파시인들과도교류하고대중의존중받는성자들이나‘니르군’과‘사군’의관점을오락가락하는시인들의서클에도자유롭게드나들었다.
카비르에관한모든얘기들이역사적근거가없거나있어도매우빈약하게있는전설이다.수많은얘기들이세월과함께만들어졌는데그모든것들이하나같이동의하는내용은그가무슬림직조공이었다는것이다.대부분전승들이그가문맹(文盲)이었다고말한다.그의시들이입에서입으로전해지면서노래로불렸을것은틀림없는사실이다.
그런데그노래들이어떻게언제기록으로남게되었을까?우리가알고있는대부분의작품들이‘니르군’학파사람들에의하여기록되었고그들의서고(書庫)에보관되었다.16세기에푼잡에서는‘시크판드(panth,종파)’가,라자스탄에서는다두판드가,지금의웃타르프라데시와비하르에서는카비르판드가형성되었다.1604년에완성된것으로보이는시크종파의문집에많은카비르의노래들이들어있지만그보다더많은것들이다두종파의문집과카비르종파의‘동방전승’에포함되어있다.이‘동방전승’에‘비자크’가들어있다.시인이죽고나서백년쯤뒤인17세기에편집이마무리된것으로보인다.오늘우리가읽고있는인쇄본에는뒤에첨부된노래들도들어있다.
실제로어떤노래가본디카비르의입에서나온것인지우리로서는알수가없다.어떤유식한학자가있어서이구절은카비르것이고이구절은아니라고분별하는작업에일가견을이루면서그구절들이뜻하는바를이해하지못한다면분명카비르는그에게도날카로운힐난의일침을가할것이다.우리는메시지의중심윤곽,스타일의특성,반복해서나오는이미지와주제들,그(또는그에게영향받은자들)의안목을알아볼수있고그것들이한지역에서다른지역으로한시대에서다른시대로옮겨가는동안어떻게바뀌었는지도어느정도알아볼수있다.좀더자세히그런것들을알고싶은사람은여러학자들의본문분석과역사비평을참고할수있을것이다.

카비르가관심을가졌던주제
인도종교전통에서‘해방’(liberation)―‘무크티’‘니르바나’‘사바야사마디’라고부르는―은일반적으로태어남과죽음의수레바퀴에서,‘삼사라’로알려진고통과미망의세계에서벗어나는것을의미한다.이런해방은삶으로부터의별리(別離)를강조하는것처럼보인다.실제로고립(孤立)을뜻하는‘카이발야’라는말로해방을부르는학파도있다.하지만영적인해방은계속되는환생속에서이루어질수있고이루어져야한다고주장하는힌두교와불교의전통도있다.바크티힌두교와대승불교는,전자의경우하나님사랑을,후자의경우존재하는모든것의상호의존을강조한다.이런맥락에서는인간이삶,죽음,세상으로부터가아니라제한된자아상(像)과습관적인집착으로부터해방되어야하는것이다.

카비르의주된관심이영적해방,의식의성숙에있었음은분명하다.하지만그성숙은아래로,바닥으로내려가는데있다.그것은사소한자기-기만과거짓도간과하지않고모든죽음에대한크고작은두려움을직시하는것이다.그리고그것을지극히평범하고단순한언어와비꼬이고수상한언어들로노래하고있다.
한전설에따르면그가죽었을때힌두와무슬림이서로시신을가져가겠다며다투었다고한다.양쪽다생전의카비르로부터비난과공격을당했지만그정신의고결함을자기네것으로삼으려했던것이다.그들은장례법이서로달랐다.무슬림은코란의구절을인용하여시신을매장하였고힌두는베다경의주문에따라서화장을했다.천에덮인카비르의시신이양진영중간에놓여있었다.힌두와무슬림이칼을뽑아들었다.유혈극이벌어지려는일촉즉발의순간,누군가시신덮은천을벗기자거기나타난것은시신이아니라한무더기꽃다발이었다.양쪽에서꽃을갈라한쪽은불에태우고다른한쪽은땅에묻었다.
이이야기에서카비르는자기말을한마디도알아듣지못하면서자기가남긴유물을두고다투는어리석은종파주의자들을죽어서도비웃는다.오늘우리시대에도비슷한드라마가계속되고있음은별로놀랄것없는일이다.1992년,북인도의한도시에서성난힌두교도들이카비르사후에건설되었을것으로보이는이슬람사원을무너뜨렸다.거기에서태어난것으로알려진신(神)람의신전을세우기위하여터를해방시켰다는게그들의주장이었다.5백년전에카비르가남긴노래들이새삼스럽게들릴수밖에없다.

종파주의를앞세워서로갈등과폭력으로치닫는모습은카비르가죽은지오백년이지난현대에이르러도크게다를것이없다.극단적인종파주의를해체하고조화를모색하는사람들은지금도자주카비르를인용한다.

사랑하는이를힌두는람이라부르고
투르크는라힘이라부르는데,
그러면서서로죽이니
누가알것인가,그비밀을.

카비르는정치적인물이아니었지만,사회의불의와폭력을치유하고자한다면그의시는많은영감과힘을준다.한편으로그런불의와폭력으로입은상처를치유하고,반성과함께영적인깨달음의기회를얻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