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이 끄집어낸 고종석의 속엣말

황인숙이 끄집어낸 고종석의 속엣말

$14.00
Description
희유한 우정이 빚어낸 대화, 밖으로 나온 속엣말
이 책은 ‘서얼’로 표상되는 소수자의 눈을 지닌 작가 고종석과 그의 삼십년지기 친구인 시인 황인숙의 대화다. 오랜 시간 벗으로 서로를 이해해 온 황인숙 시인의 눈과 입을 빌어, 주류에 편승해 안전하고 편안한 길을 가기보다 비주류로 자발적 소외를 감행하고 있는 문제적 지식인의 허심탄회한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낡은 진영논리가 수명을 다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번영과 생존을 위해 모든 면에서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이 지점에서 다양성과 소수성의 존중은 필수적이다.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어느 중간, 붉은색도 푸른색도 아닌 회색이 정치사회적 제도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라는 생태계의 건강한 균형을 위해서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 책을 통해 성숙하고 관용적인 사회로 도약하는 데 가늠자가 되어줄 지식인 발언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척진 것도 모난 것도 없는 ‘고양이 시인’ 황인숙과 세상에 까탈스럽고 문제 많은 고종석은 동년배에 성별을 넘어선 삼십년지기다. 맨 무릎을 맞대고 앉은 채 뇌출혈 후유증 이야기와 담배 끊으라는 잔소리가 오가고, 어린 시절 소년잡지 이야기에 순간 그 시절로 함께 돌아가는 영락없는 절친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두 사람의 자잘한 일상과 관심사를 따라가다 보면 편안한 친구들의 평범한 수다를 듣는 것 같다. 그러나 세상 다정한 누이처럼 속속들이 헤아려주는 친구 황인숙이기에 남들은 선뜻 하기 어려운 질문도 가능하다. 책에서는 수년 전 경향신문에 게재한 ‘절필선언’에서부터 신영복 선생의 부고를 듣고 SNS에 남긴 소감과 그 뒷이야기까지, 황인숙이라는 친구 앞이기에 더 솔직하고 가볍게 털어놓을 수 있는 고종석의 속 이야기가 펼쳐진다.

모든 것을 빠르고 간편하게 처리해주는 문명의 이기로도 아직 대체 불가능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일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는 오랜 시간 정성들여 가꾸었기에 무르익은 우정의 깊이와 향기가 느껴진다. 부서진 마음, 조각나고 단절된 일상 속에서도 우리 자신을 잃지 않을 거울이 되어줄 친구, 다 포기하고 싶을 만큼 우울한 날에도 솔직하게 기댈 수 있는 친구, 그런 친구와 나누는 밥 한 끼, 차 한 잔이 있어 삶은 견딜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을 갈망하는 시대, 그만큼 삶을 생기있고 윤기나게 해주는 것이 또 있을까.
저자

고종석

저자고종석
소설가,언론인,언어학자.1959년서울에서태어나성균관대학교법률학과를졸업하고,서울대학교와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언어학석사박사과정을마쳤다.프랑스외무부의지원을받아파리에서중견언론인연수프로그램‘유럽의기자들’을이수했고,한겨레파리주재기자와한국일보논설위원을지냈다.지은책으로『고종석의문장』(전2권),『플루트의골짜기』『언어의무지개』『문학이라는놀이『『정치의무늬』『사소한것들의거룩함』『사랑의말,말들의사랑』『언문세설』『코드훔치기』『고종석의유럽통신』등이있다.주저『감염된언어』가영어와태국어로번역되었다.

목차

기억저편의고유명사들
망상은실현되는법이없다
절필과상처,말할수있는것과말해야하는것
친구들사이에서나했으면좋았을말
보수주의자의모험,그리고염세주의
대선우울증과반사실적추론
문학의윤리와정치참여
지적유희와고종석의책들
자살이라는건병사에지나지않는다
페미니스트와언어의해리
좋게쓰이는열정과차가운삶
좋은시를읽는것은섹스를하는것과같다
지옥으로가는길은선의로포장되어있다
형이상학적감각주의가만든낭만적누이
언어수집가의컬렉션리스트
내몸에새겨진작가와시인들
음악과영화,그리고서울
센티멘털리즘을자극하는도시,파리에대하여
탕헤르에대한몇가지태도
감정을불러일으키는도시체험
보스턴과샌프란시스코사이에암스테르담이있다
사랑과섹스,그리고동성애
로망티크,고향을찾아타향으로가다
사피엔스의불가피한잠재적위험

출판사 서평

대화,사적인방담에서공적인발화로
상대를이루는양자,혹은다자가전제되는대화라는형식속에서발화되는말의내용이문학적텍스트가될수있을까.이책은그것이가능하다는것을말해준다.문학적텍스트라는것이어떤공명을일으키는모티프가되어현실의조건을환기하게하고나아가가려져있는진실까지를추론하게하는것이라면말이다.저널리스트이자소설가로,그리고언어학자로왕성한지적활동과인상적인저작을보여준고종석과생명과사물의본질과그관계의양상을섬세한눈으로살피며숭고하고순정한한국현대시의스타일을확립한시인황인숙이나눈대화를있는그대로기록한이책은,사적인소통의과정에서발화되는언술이어떻게공적인의미망을포섭하면서문학적공명을일으킬수있는지를매력적으로보여준다.고종석과황인숙은전폭적인상호신뢰와견고한우정을바탕으로깊은심연속에도사리고있는,그런바탕이아니라면쉽게끄집어낼수없는이야기들을허심탄회하고진솔하게낚아올린다.고종석에대해서라면,아마도이세상에서가장섬세한‘간주관성intersubjectivity’을확보하고있을황인숙이주로묻고이에고종석이답을하는형식을취하고있는이대화는적재적소에서빛을발하는정서적교감이풍요롭게교차되면서의미있고매혹적인텍스트로변주된다.

고종석은한국사회지식인지도에서매우개성적인좌표를가진희유한존재다.그는주로진보,중도로분류되는언론에서일하면서진보담론의활발한생성과전개에적지않은화소를제공해온바있다.한편『기자들』이라는전작장편소설을출간하며소설가로데뷔한이래,첨예한언어미학을추구하며촘촘한서술과실험적인구성이인상적인작품들을발표하면서한국소설의한영역을개척하기도했다.또한깊고넓은언어학적지식을통해한국어와언어일반의심층을톺아보는양질의인문서를집필하기도했는데,이는강단밖지식인으로서그가대중의교양강화라는책무에유연하게대응해왔다는증거다.그런데그가언젠가부터시대와불화하는인상을보여주기시작했다.특히노무현정권출범이후분출되기시작한다양한사회적의제와현실정치현안에대한담론장에서그는논쟁상대들과격전을치렀고다수의적을만들었고거기서내상을입었다.그는일관되게인간의기본권과생존권,정치에부과된도의적책임,자유주의에입각한중도적가치등을옹호했던것인데기질적으로소수자의감성을지닌그로서는패배가전제된싸움이었다.그는늘소수로,소수자의자리를지켰다.그것은전체주의와파시스트를반대하는그의일관된기조를생각하면지극히자연스러운선택으로보인다.특히신영복선생의사후전사회적인애도분위기속에서그가한발언으로그는공공의적으로뭇매를맞고심대한상처를입고‘절필’이라는작가로서는죽음과도같은선언을하기도했다.고종석은황인숙과의대화에서,이렇듯‘다수주의’라는민주적가치로은폐된전체주의의폭력에맞서다가사회적소외와고립을자초한자신의심경을고해하듯허심탄회하게밝히고있다.

“철들무렵부터난내눈길이늘소수집단한테쏠리는걸느꼈어.다시말해서‘다수결주의’라는의미의민주주의에대해어떤거부감비슷한걸느꼈어.철들무렵이라는건,내가전라도사람이라는걸알았던무렵,그리고전라도라는기표가한국정치와문화에서독특하게작용한다는걸알았던무렵이라는뜻이야.그건지금도마찬가지야.예컨대어떤학술회의에서땅이둥글지않고평평하다고주장하는학자들이더많아서땅이평평하다고결론나는건정말끔찍하고불합리하지만,나같은반-민주주의자한텐정치적사회적과정에서의다수결주의도끔찍해.많은사람들이그렇게생각하니까그생각이옳다는생각말이야.그건조선일보독자가가장많으니까그신문의견해가옳다는생각과다름없고,선거를통해합법적으로집권해서국민다수의지지를받았으니나치즘이옳다는생각과다름없어.그런견해는대중이늘이성적으로판단하고행동한다는가정에근거할수밖에없는데,나는대중을신뢰하지않아.그런점에서나는반-민주주의자지.나는포퓰리스트들을경멸해.그포퓰리스트들의먹이가되는대중을경멸하듯.그렇지만진정한민주주의는다수결원칙보다상위에있는근본적규범들을포함하고있고,그규범들하나가소수집단에대한배려라고생각한다는점에서나는민주주의자야.물론내이런민주주의관에반대할사람이많겠지.그렇다면나는민주주의자이길포기하고자유주의자를자임할거야.소수집단에대한배려야말로자유주의의핵심가치중하나니까.”

자유주의자가받은상처,그리고내면풍경
고종석의근년의지적활동은전에비해확실히위축된것으로보인다.소셜미디어라는그가선택한활동공간의특성이그런것을조장한혐의가짙지만,여러발언에서위악의자기조롱의태도가보인다.이것은그의적대자들에게그가지식인으로서마땅히가지고있어야할균형과품위를잃었다는방증으로인용되기좋은것이었다.최근의고종석에게서는그가청장년시절에보여준엄정한균형을갖춘예지와분별력,겸손과절제같은것들이다소간풍화된흔적이보인다.그런데그것을퇴행적인변개라고할수있을까.그것은오히려어떤첨단의정신이갖는자연스러운진화에가깝다고보는게맞을것이다.오히려고종석이노출하고있는몇가지문제들은우리사회가,정치적지형과집단의감수성이한예민한지식인개인에게얼마나기괴한정식적억압을가하고있는지를더할나위없이사실적인모습으로보여주는것으로보인다.지식인은,더군다나작가적자의식이첨예한고종석같은지식인은얼마든지자신을파괴하는것으로세상의참혹성을표현할수있다.더욱이고종석은2017년말뇌출혈로쓰러졌다가가까스로회복되기도한다.그것이의도적이든의도적이지않든중요한것은고종석스스로자신을흔들고무너뜨리고다시세우는정신의모험속에서우리시대의비루함과위기를가장적나라한언어로보여주고있다는것이다.시인황인숙은참으로놀랍게도고종석의이러한정신적풍모를,여기까지이른풍화의연혁을,이모든것을다읽어낸다.읽어내는것뿐만아니라깊은이해와연대에까지이른다.
고종석은자신이소수자의정체성을가진자유주의자임을황인숙과의대화에서일관되게밝힌다.고종석의지분이있다고믿어지는언론계,문단,그리고정치담론의장에서그는언제나비주류였다.비주류적삶의소여에매진할수밖에없는자유주의자는주류사회가자신의제도를지켜내기위해곧잘견지하는태도,다시말하면엄숙주의,권위주의에태생적으로저항감을느낄수밖에없다.자신을일러엄정하고정결한신성을얘기하는이들에게,'그렇지않다.당신도얼마든지불순할수있다'를증명하는것,그의권위를우습게여기고조롱하는것,그것이우리사회의비주류지식인,자유주의자의리얼한화법이다.고종석에게이것을감추는것은일종의위선이고가식이다.이책은남성사회라는주류사회의위선과가식에괴로워하고그것에저항할수밖에없는남자지식인의초상-우리사회의슬픈자화상이담겨있다.

황인숙,부드러운기품
고종석은오래전황인숙을“부드러운탐미주의자”로규정하면서그고유한개별성이“급진적탐미주의자가선함을희생시키고서야빚어낼법한,치명적이리만큼날카로운아름다움을그가예사로빚어”내는데있다고짚은바있다.고종석이예리하게짚은대로이책에서확인할수있는또하나의매혹은인터뷰어를자처한,다시말해조역을기꺼이감당한시인황인숙의부드러운아름다움이다.그아름다움은포용력과유연함을거느린다.황인숙은인터뷰이고종석의심중을섬세하게헤아려그안에맺힌속엣말을끄집어내는역할을더할나위없이맞춤하게수행함으로써상대성이있는대화에있어서주역과조역의구분을있는듯없는듯무색하게만들고균질적인일체감을확보하면서이대화록이사적인방담을넘어공적인발화로서사회적소용을가지는것을가능하게한다.그것은물론황인숙이고종석의인간적내력과지적편력,그가쓴수많은저작물들,그의상처와한계까지를정밀하게이해하고헤아리기에가능한일일것이다.이들의대화는황인숙의조율과안내에따라겉도는법없이꼬리에꼬리를물고소용돌이치듯다양한화제들을건드리거나육박하면서인터뷰이의누설욕망을자극하고그의미를심화시킨다.이책에서는두사람을일관되게“고종석+황인숙”이라고표기하고있는데,이는이들이주체와객체로분리되어있는게아니라‘더해진(+)’단일한존재로서통합된발화의주체를이루고있음을의미한다.두사람이나눈말이개인의진실과사회적진실을두루감당하는것역시황인숙의균형과절제에대한미적감각에크게빚지고있다.언젠가고종석이황인숙의언어를가리켜“독자의정념을이끌어내는법없이,독자의살갗을간질인다.의도된것인지타고난것인지는모르겠으나,이런관능의절제가감각적언어에기품을부여한다”고쓴적이있는데,그기품이이대화에서도여지없이발휘되고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