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름 중에 제일 좋은 거름은 발걸음이여 (아버지와 흙으로부터 배운 이야기)

거름 중에 제일 좋은 거름은 발걸음이여 (아버지와 흙으로부터 배운 이야기)

$13.50
Description
이 책은 충북 진천의 들판에서 나고 자란 시인이자 국어교사 장인수의 산문집이다. 서울에서 진천까지, 주말마다 농사 짓는 부모님을 따라 들판으로 나선 시인이 관찰한 농촌의 사계절이 오롯이 담겨 있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는 일에서부터, 여름 장마와 농작물을 지키기 위한 농부의 노고, 가을걷이와 풍성한 들판의 살림살이를 비롯해 고요한 농촌의 겨울나기를 시인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기록하고 있다.
저자

장인수

1968년충북진천군초평면들판에서나고자랐다.고려대학교국어교육과를졸업했고2003년계간《시인세계》신인상으로등단했으며27년간국어교사로근무하고있다.나무꾼,촌놈,바보,패랭이청년등의별명이있다.『유리창』,『온순한뿔』,『교실-소리질러』,『적멸에앉다』등의시집과『삶을새롭게디자인하는창의적질문법』이라는교육서적을펴냈다.쉽고간결하며경쾌하고재미있는글쓰기를추구하고있으며일상과신비를융합하는상상력과은유의힘을지향하고있다.

목차

제1부
01들판은울음곳간,하늘은울림통이된다/02노을과소나기가소등을넘는다/03소는눈부신치아와눈망울을지녔다/04뿔과수염은구름냄새를맡는다/05달빛은곤충들의몸부림을좋아한다/06들판은관능적이다/07미물들의꿈틀거림은얼마나매혹적인가/08새벽달은숫돌에낫과칼을벼린다/09마당을가로질러무정천리를간다/10흙은실컷부풀어오르는감성이다
제2부
01꽃피우느라나무는얼마나힘들었을까/02꽃씨를받으며엄마는꽃몸살을앓았다/03풀은인간의삶을맘껏넘나든다/04풀은예측불가능한난세를즐긴다/05배추는들판의관능이고색계였다/06흙색과꽃색은서로를핥고스민다/07벼자라는소리에개가짖는다/08부처님도함께고추농사를짓는다/09뿌리는땅과하늘의무한접속을꿈꾼다/10아버지의몸에는꽃의수액이흘렀다/11햇마늘은입안을극락으로만든다
제3부
01들판은드넓은울음곳간이더라/02들판에는광란의에로스가펼쳐진다/03그물에걸리지않는바람처럼사유할까/04누구나고달픈인생길을허덕인다/05들판에서새참먹는재미를아느냐/06빗소리가읽어주는반야심경을듣는다/07시간과고독과인생이함께걷는다/08십리길이천리길을건너간다/09일어나라달리다굼,일어나라/10하늘의열락이천하를품는다
제4부
01문풍지는우주의숨소리로울었다/02마시자!어스름한잔의불빛을/03달빛은지구를비추는개구쟁이다/04자전거를타면바람의성분이된다/05매일어떤장소와시간을이동한다/06가장좋은걸음은발걸음이다/07재래시장엔흥건한카니발의언어가산다/08불편함을즐기는것이즐거움이다/09눈도울고코도울고귀도울더라/10아버지는늙어서도영원한청년이다/11아버지도불장난을하다가오줌을쌌다/12아버지는아들친구의친구가되었다/13인수야,니망좀잘봐라

출판사 서평

들판으로부터배운것들
이책은충북진천의들판에서나고자란시인이자국어교사장인수의산문집이다.서울에서진천까지,주말마다농사짓는부모님을따라들판으로나선시인이관찰한농촌의사계절이오롯이담겨있다.봄에씨앗을뿌리고모종을심는일에서부터,여름장마와농작물을지키기위한농부의노고,가을걷이와풍성한들판의살림살이를비롯해고요한농촌의겨울나기를시인특유의섬세한필치로기록하고있다.
저자는대자연의섭리로가득한이들판에서생명의본질과자연의언어를체득했다고말한다.관능이넘쳐나며광야같은고독과적멸이있는곳,시간의속성마저다르게느껴지는이곳들판에서저자는풍성한‘취(趣)’를만끽하며걷고,뛰고,놀다가들판의이야기를기록해두기로마음먹었다.

“들판에는풍성한‘취(趣)’가있다.늘신나서어쩔줄모르는마음!뭔가재미난일이없나하고눈동자를뱅글뱅글굴리는마음!세상에대한순순한호기심!사물의변화에매순간자신을열어놓는자세!사물을취하되사물의변화와더불어놀고싶은마음!대상을만져보고창조적으로사용하며사물에서새로운의미와가능성을드러내는시선!그것이취(趣)였다.들판은온갖취(趣)로가득했다.”(「들어가는말-들판의소년이광야의울음을찾아서」중)

그러나들판이란사색과흥취뿐만아니라생업의현장이기도했다.일손이바쁜철이면꼭두새벽에고사리손이라도보태야했던어린시절,야반도주라도하는가족들처럼이고지고일터로향하던새벽길,그렇게한바탕일을마치고들에서먹었던아침밥.노동의현장이기도한들판에서저자는언제나계절과자연의미세한변화를감지하는법을배웠다.농작물속에숨어든작은미물들에서부터논밭에피어난잡초와꽃을바라보며생명의유한함과고유함을발견하고,소와염소를비롯한가축을돌보며삶의무게와생육의비밀을조심스레관찰했다.그리하여‘만물의영장’이라불리는인간이당연하다는듯세상의중심이되어다른생명을희생제물로삼는대신,모든생명이제가치와역할을존중받으며나란히존재하는‘들판의인문학’은불가능한것인지,진지한성찰과깊은질문을남긴다.

농투사니부모님이삶에서길어올린지혜
저자는언어를가장섬세하고밀도있게다루는시인이자,아이들에게우리말을가르치는교사다.그런저자에게평생을농부로살아온부모님의언어란별안간땅강아지나벼룩처럼툭튀어나와자연과삶의파문을일으키며영혼의수면을치고가는물수제비같은것이었다.

“부모님의언어는농사꾼의언어요,길바닥에너부러진자갈같은언어요,패랭이꽃같은언어다.풀의언어이며가축의언어다.질경이와바랭이와망초가자라는곳에서길어올린어휘들이다.부모님이쓰시는속담이나사투리는대자연의순연(純然)한거름냄새며,이슬이고,야생화의향기라고나할까.”(「들어가는말-들판의소년이광야의울음을찾아서」중)

십리밖에서도들릴것처럼큰소리로말싸움을하다가도나무그늘에서나란히막걸리를들이켜며언제그랬냐는듯도란도란해지는노부부의다정함,폭우가쏟아지는장마철이든함박눈이퍼붓는한겨울이든들판의농작물곁으로‘가장좋은거름’인발걸음을멈추지않는아버지의성실함과우직함,비오는날하루종일퉁퉁불은발에서장화를벗겨내며엉덩방아를찧느라터져버린어머니의웃음등이저자의애정과연민어린시선을통해생생하게되살아난다.문명의편리를누리지못하고고된노동을숙명처럼받아들이며살아오신부모님의언어는평생자연과함께하는삶속에서길어올린지혜를거름으로태어났기에세월의흐름에따라그무게와밀도,반향과울림을더해간다.살아온세대와경험이다르다해도몸으로경험한삶과그삶에서나오는언어는시공간을초월해오래도록살아남지않는가.
또한저자에게아버지의존재는모든것의핵심은뿌리이며버릴것과기를것을분별해야한다는가르침,식구들을먹이기위해가축의도살과손질도스스럼없이해내는모습,불타버린집에서도아들의책가방을제일먼저구해내던든든한웃음,들판의온갖냄새가배어있는체취를통해무엇보다도숭고하고고답적인배움을전해주던살아있는교본이었다.저자는그런아버지의언발자국에자신의발을포개어보며,검게그을리고땀에젖은아버지의근육을경탄하며,잠든아버지의갈라진발등을애처로워하며가만히그곁에눕는다.아들은점점그렇게아버지가되어간다.

시인의언어로담아낸농촌의사계
저자는유난히청각에민감한편으로,과거를생각하면언제나소리가먼저들려오는사람이라스스로를소개한다.이책을읽는동안개구리우는소리,댑싸리비로마당쓰는소리,소가되새김질하는소리,숫돌에낫가는소리,문틈으로황소바람들이치는소리,아궁이에서솔가지타닥타닥타는소리,손펌프질로우물물길어내는소리,찔레덤불에서날아오르는벌떼소리가들려오는경험을할수도있다.책은그만큼감각적이고생동감있는묘사로그득하다.현대문명의편리함뒤로사라져버린그리오래지않은옛시절의추억과온기가시인의섬세한묘사로되살아난다.산문속에서도군데군데시를읽는듯탁월한우리말문장과리듬을만나볼수있다는사실만으로도이책을펼친것에후회가없을것이다.

“자세히들여다보면꽃은그냥꽃이아니다.꽃마다향기와색깔이솟아난다.노란피,빨간웃음,파란절망,분홍빛현악4중주,초록꽹과리,하얀뽕짝이차고넘쳐흘러간다.꽃밭은색채의군무이며,범람이며,해일이며,탕진이며,고갈이며,사막이며,은하수이며,격랑이며,초신성이다.꽃밭은색깔의현기증이며,순교이며,아우성이며,진군이며,순례이며,아제아제바라아제이며,나무아미타불이다.꽃은세계안에있는빛의총량을잘게쪼갠것이다.그쪼개진것들의퍼짐이다.”(「흙색과꽃색은서로를핥고스민다」중)

이토록깊은감수성과상상력을불러일으키는힘은과연드넓은초평의자연속에서체득한저자의야성과꾸밈없는천진함이라해도무방할것이다.한껏절망하고,부르짖고,미쳐날뛰며있는그대로존재해도되는자연속에서그는어느새자연과닮은사람이되었다.초평의들판과동식물에서부터바람과눈송이와빗방울과염소와새떼들을비롯해관능의희열과우주의열락까지를자유롭게오가는솔직하고건강한사유.때로는경쾌하고,때로는감정이흘러넘치며,때로는엉뚱하고삐딱한언어들이인간과생에대한온기를가득품은채지면위에펼쳐진다.자연스럽게,저들판에넘쳐나는흥(興)과취(趣)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