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태 케이스 (국가 상징에 대한 한 연구)

안익태 케이스 (국가 상징에 대한 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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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애국가에 국가(國歌)의 자격을 묻다
한미 FTA, 영화 스크린쿼터 등 사회와 현실의 첨예한 이슈에 예리한 정론으로 지식인의 책무를 다해온 한신대 이해영 교수가 ‘애국가’를 들고 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음악적 가치가 아닌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기호로서 애국가가 과연 국가(國歌)로 적절하고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는지, 그리고 정치적 행위로서 국가란 무엇인지 불편하지만 마주해야 할 물음을 우리에게 묵직하게 던진다. 그리고 이 질문은 저자가 오랫동안 치열하게 찾은 자료들의 제시와 분석, 날카롭고 곧은 정치·역사적 관점 속에서 역동적으로 전개된다.

국가(國歌)는 시민 주권의 구현체인 국가(國家)와의 정서적 결속이자 충성의 서약이다. 따라서 국가(國歌)는 정치적이고 시민 종교적인 면을 강조할 수밖에 없으며 공동체의 합의된 가치인 애국을 담아야 한다는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국가(國歌)로서의 자격을 현재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자리에서 부르고 듣는 안익태의 [애국가]에 묻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숭고한 애국심을 지닌 [애국가]의 작곡자이자 한국을 빛낸 세계적인 음악가라는 휘장 속에 가려진 안익태의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행적과 [애국가]의 변천 과정을 통해 과연 우리가 [애국가]를 국가로 제창하는 것이 적절하며 이것에 대해 합의할 것인지 우리에게 판단을 요구한다.
저자

이해영

1962년마산에서나고부산혜광고등학교를나왔다.서울대학교외교학과및동대학원을마친뒤독일(당시로선서독)마부룩(Marburg)대학교에서철학박사(Dr.Phil.)학위를받았다.그뒤서울대학교지역종합연구소특별연구원을거쳐한신대학교국제관계학부교수로지금에이른다.이대학에서국제평화인권대학원원장을맡은적이있고,그뒤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스크린쿼터영화인대책위,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투기자본감시센터,참여연대,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KNCC,국제통상연구소등다수의시민단체에서직간접적으로활동해왔다.산업통상부,몇개의국회상임위,국회입법조사처등에서도오랫동안자문을한바있다.21세기정치학회이사를했고,한국안보통상학회,국제지역학회부회장을맡고있기도하다.박사학위논문으로『그람시와하버마스:시민사회,생활세계그리고정치』(독문,1994)를상재했고『독일은통일되지않았다:독일통합10년의정치경제학』(2000),『낯선식민지,한미FTA』(2006)를저술했다.이밖의공저로『한미FTA하나의협정엇갈린진실』(2008),편저로『1980년대:혁명의시대』(1999),『한미FTA국민보고서』(2006),『한미FTA는우리의미래가아닙니다』(2007)가있다.논문으로「칼슈미트의정치사상:정치적인것의개념을중심으로」(2004)(『21세기정치학회보』14(2)호),「역사문제와‘동맹의논리’:‘아미티지-나이보고서’를중심으로」(2016)(『씨알의소리』2016년,11·12호)등다수가있다.
주된연구영역은서양정치사상과국제정치경제다.대학에선마키아벨리,그람시,슈미트,하버마스등을강의한다.국제관계에서는국제통상을주되게하면서한미관계도연구하고있다.최근에는오리엔탈리즘과지정학에각별한관심을갖고연구하고있다.

목차

책머리에
들어가는말

1.안익태[애국가]의탄생
2.‘프린스리’는누구인가?
3.더블린에서베를린으로
4.그러면에하라고이치는누구인가?
5.[에텐라쿠(월천악越天樂)]인가,[강천성악(降天聲樂)]인가?
6.슈트라우스의[일본축전곡]과에키타이안
7.독일협회(獨日協會,Deutsch-JapanischeGesellschaft)와나치독일
8.1942년9월18일그날의[만주국]
9.우리에게만주국이란?소설가박영준,그리고에키타이안의경우
9.1.만주국의민족협화
9.2.소설가박영준의[밀림의여인]개작
9.3.에키타이안의[만주국]개작
10.[애국가]논쟁:국가상징의재구성을위하여
10.1.두개의‘분단’애국가의형성
10.2안익태[애국가]의공고화:이승만과박정희
10.3.봉인과도전

참고문헌·사진및도판출전
맺는말

출판사 서평

에키타이안에게애국을묻다
애국가가포함된[코리아판타지]는1938년더블린에서초연됐다.안익태는인터뷰에서자신이조선의새[애국가]의작곡가라고말하지만임시정부는안익태작곡의[애국가]신곡조의사용을허가했을뿐이었다.더블린초연이후안익태는에키타이안EkitaiAhn이라는이름으로활동하며에하라고이치江原綱一의베를린저택에2년반가까이기거했다.에하라고이치는다름아닌주베를린만주국외교관으로위장한일본정보기관총책이었으며,다양한분야에있는300여명의정보원을관리했다.저자가제시하는구체적인정황들은에키타이안이일본정보기관의특수공작원이나정보원이었다는의심을지울수없게한다.최소한에키타이안은유럽에서추축국중심으로연주여행을하며일본제국을선전하는고급나팔수역할을하고편익을제공받았다.

일본궁중음악에서우리전통음악으로의둔갑
저자는안익태의행적만이아니라그의작품들이가지고있는친일적성격을파헤치고후에이작품들이우리앞에나타날때까지의변모들을보여준다.우선[강천성악(하늘에서내려온음악)]은전통아악에서아이디어를얻어1959년작곡된것이아니다.악보와음원은존재하지않지만일본아악의선율을서양악기로편곡해전시유럽에서선전용으로연주한[에텐라쿠]의개작일가능성이높다는것을남아있는영상자료를비교하여저자는밝히고있다.
또한에키타이안은리하르트슈트라우스가대일본제국2600년을축하하기위해작곡하고일본천황에게헌정한[일본축전곡]의지휘를맡았다.출생지를평양이아닌동경으로적은에케타이안의나치독일의제국음악원회원증에는나치독일비밀경찰의‘정치적관점에서흠결이될만한기재사항없음’이라는스탬프가찍혀있다.나치비밀경찰로부터정치적흠결이없다는확인을받았다는의미는제2차세계대전당시독일과일본의관계로부터충분히유추할수있다.당시독일협회(獨日協會)에대한고찰을통해서도이를알수있다.독일과일본은예술과문화교류를통해정치적·군사적관계를더욱공고히하려했으며그중심에독일협회가있었던것이다.그리고에키타이안의베를린필연주회는바로이독일협회의주최로이루어질수있었다.

[만주국환상곡]의[한국환상곡]으로의변신
에키타이안은1942년만주국건국10주년경축음악회를위해만주에서유행하는선율들을활용하여[만주국환상곡]을만든다.이곡의작사는일본정보기관총책에하라고이치가맡았다.문제는우리가부르고듣는애국가가[만주국환상곡]의피날레부분이라는것이다.일본제국이만주사변이후세운괴뢰국가인만주국의건국을축하위해만든곡을우리의국가로재사용하는것에다름아니다.
에키타이안은친일부역의산물인[만주국환상곡]을1944년파리해방을앞두고파시스트독재국가스페인으로도주하면서악보를폐기했다.그리고1938년더블린판을개작하여새롭게1944년판[한국환상곡]을냈다.작곡가가자신의작품에서유사한주제를되풀이하는일은드물지않지만스스로만든[애국가]를‘매국’의도구로재활용하다그것을다시애국이라주장하면서그중간과정을마치없었던것처럼우긴다면그것이야말로언어도단이다.

상상의법정을열때
해방이후안익태의애국가는많은비판을받았지만대한민국의정식국가(國歌)에대한필요성으로점차확산되었다.법정(法定)국가는아니지만‘관행상’국가로기능한것이다.이후안익태는이승만정권에친화적인태도를취했으며박정희정권에도영합하는행위를보였다.2000년[만주국환상곡]영상이발견되기전까지애국적인물로영예와권력을누렸던것이다.
반민족행위처벌법은폐지되었지만우리는상상의법정을열어이른바‘기억투쟁’을해야한다.에키타이안은민족정신과신념을배반하고일본침략주의에협력하는부역을했다는것은바뀌지않는다.여기에대하여저자는통일전까지는현행그대로두거나제2의애국가를만들어부르기,공론화하여새로운애국가를공모하기등의대안들은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