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은 힘이 세다 (우리 시대의 교양, 천자문 깊이 읽기 | 양장본 Hardcover)

천자문은 힘이 세다 (우리 시대의 교양, 천자문 깊이 읽기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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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천자문은 힘이 세다』는 저자 김근 교수가 2003년에 출간한 『욕망하는 천자문』의 틀을 바탕에 두고 그 내용 중 많은 부분을 새로 써서 펴내는 책이다. 책의 머리말에 따르면 『천자문』은 “단순한 아동 독서물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와 영향력을 가진 명실상부한 고전”이며 “세계와 인생을 읊은 장편 서사시이고, 그 콘텐츠는 중국 고전 작품들을 망라해 다시 쓴 것이어서 동아시아의 전통 사상이 그대로 압축돼 있”(6쪽)는 풍요로운 텍스트다.
저자

김근

인천에서태어나자라나고서울대학교중어중문학과를졸업했다.이어그곳대학원에서창석蒼石이병한선생의지도아래문학석사및박사학위를받았다.미국버클리대학에서연구교수를역임했고,계명대와한양대중어중문학과교수를거쳐서강대중국문화전공교수로정년퇴임을했다.교수재직시절에는주로언어와이데올로기,특히권력으로서의문화에관한논문을많이썼다.지금은노원교육복지재단이사장으로봉사생활을하면서『동아시아를만든중국고전명시명문100선』을집필중에있다.지은책으로는『한자는어떻게중국을지배했는가』,『욕망하는천자문』,『한시의비밀』,『한자의역설』,『예란무엇인가』,『유령의노래를들어라』등이있으며,역서로『여씨춘추역주』,『설문해자통론』등을펴냈다.이외에『한부漢賦의문학적주체성에대한재조명』등다수의논문을발표했다.

목차

책머리에

1부문자로다시만드는세상
2부사람을지탱하는기둥들
3부왜수양을해야하는가
4부권력이숨기고드러내는것
5부지식인의신화와현실
6부중국중심주의의지리학
7부세상을다스리는기술
8부소외를견디는지혜
9부일상의이데올로기
10부몸은타서없어져도

출판사 서평

여전히살아있는천자문,어떻게읽어야할까?
우리시대의눈으로읽는천자문,천자문을통해본우리시대와인간

『천자문』이중국을만들었다

『천자문은힘이세다』는저자김근교수가2003년에출간한『욕망하는천자문』의틀을바탕에두고그내용중많은부분을새로써서펴내는책이다.『천자문』과익숙하지않은세대를위해,앞선책의빈곳을메우고생각을진전시켜써낸새로운교양서다.
알다시피『천자문』은지금부터1,500여년전,중국양나라무제의명에따라주흥사周興嗣가편찬했다고알려진한자학습서다.저만큼오랜세월동안이책은중국은물론이고우리사회에서도최고의한자교육교재였다.그러나『천자문』은단순한한자학습교본을넘어중국인들뿐아니라우리의생각과행동과무의식을빚어내고단단하게만드는막중한역할을해왔다는것이『천자문은힘이세다』의출발점에자리잡은문제의식이다.책의머리말에따르면『천자문』은“단순한아동독서물이아니라그이상의가치와영향력을가진명실상부한고전”이며“세계와인생을읊은장편서사시이고,그콘텐츠는중국고전작품들을망라해다시쓴것이어서동아시아의전통사상이그대로압축돼있”(6쪽)는풍요로운텍스트다.“이텍스트가이제막글을읽기시작한학동들에게주입되다시피읽혀왔으므로우리사회에서도그정신적영향력은거의절대적이었다.우리에게오래도록반복되는행위들이어디에서기원하였는지를알고싶으면『천자문』에서그답을대부분찾을수있을정도”(6~7쪽)라고저자는적는다.어떻게그럴수있었을까.또『천자문』은구체적으로어떻게그런역할을감당했는가.저자는『천자문』의모든구절을꼼꼼하고섬세하게읽어나가면서이를밝혀낸다.
『천자문은힘이세다』의『천자문』독해는먼저여기등장하는낱낱의한자들의어원과의미를자세히뜯어보는데서시작한다.그방법중하나는갑골문甲骨文,금문金文,소전小篆같은고문자古文字의모양을통해해당한자의유래를추적하는것이다.이와함께한자의발음(또는字音)에기대어그뜻을헤아려보는또다른방법도동원된다.즉한자가지닌성聲과운韻(이를테면‘동녘동東’자의‘dong’이라는독음에서‘d’는성,‘ong’는운에해당한다)에주목하여,어느한자가다른한자들과맺는쌍성雙聲관계(‘동東’과‘덕德’처럼두글자의성이같은경우)와첩운疊韻관계(‘동東’과‘홍紅’처럼두글자의운이같은경우)를실마리삼아어원과의미를찾아내는방법이다.아무런관련이없는줄알았던한자들이이쌍성·첩운의마법같은그물망에걸려서로어깨동무를하고있음이드러날때의재미,발견의기쁨을독자들은『천자문은힘이세다』를읽는동안놓칠수없을것이다.
그와같은그물질을통해『천자문』에담긴글자와문장의의미가물바깥으로떠오르면,저자는그것들을넓은맥락안에펼쳐놓고들여다본다.넓은맥락이란한자를탄생시키고갈고닦은중국의오랜역사이며,멀쩡히푸른하늘을『천자문』을따라검다고(천지현황天地玄黃,하늘과땅은각각검고누르다)익혀온우리의역사이고,그둘을아우르며넘어서는보편적인인간의삶이다.이렇게살필때한자가드러내고또숨기고있는가치관과믿음,편견의얼개가노출된다.저자는먼저‘권력’이라는렌즈를들고그얼개에다가간다.곧,문자文字가어느개인과집단이제필요와욕망에따라세운규율과질서를어떻게정당화하는지,다른한편그규율과질서에지배당하는자들을어떻게밀어내고소외시키는지에초점에두고『천자문』을읽어낸다.
예를들어‘여모정렬女慕貞烈남효재량男效才良’(여자는지조가곧고굳음을흠모하고남자는재사才士와현인賢人을본받는다)이라는구절을보자.저자는고대한문에서문장을만들때는남존여비男尊女卑의관념에따라남자,또는남자에해당하는단어가앞에놓이는것이일반적인데도굳이‘여女’를앞에둔점에눈길을준다.정렬,곧‘지조를지키는일’에남녀가있을수없겠지만그일은따로여성에게맡겨앞장세우고,남자에게는그뒤에가서‘재주있는선비’(才)와‘현명한인재’(良)를본받는일을할당해주는이문장의짜임에대해저자는이렇게설명한다.“이구절의‘량良’자는앞에나온대구들에서압운押韻해온‘방方’·‘상常’·‘상傷’등의글자와같은운韻으로맞춰야한다는논리에따라여성을앞의출구로보내‘정렬’의의무를맡게하고남성은뒤의대구로피할수있는훌륭한핑계가된다”(191쪽).그러니까거칠고어려운임무는남에게넘기고자신은우아한역할과지식을독점하는것을합리화하는차별이데올로기,부당한권력의작동이여기서포착되는것이다.
이러한예는물론여성에대한남성,백성에대한임금,어린아이에대한어른,소수민족들(중국이보기에는‘오랑캐’)에대한중국의우위와지배를당연하게여겼던봉건사회의질서를반영한다.그러나이구절은그러한질서를지극히자연스러운듯이서술함으로써그질서를사실상만들어내는기능을동시에수행한다.이는곧장『천자문』전체에도해당하는이야기다.『천자문』은해와달과별의움직임에서부터정치와경제의운영,사람다운도리와윤리,겨자와생강,나귀와노새에이르기까지인간을둘러싼온갖사물과제도와습속,즉세계전체에관해말하는것처럼보이지만,그세계는‘있는그대로의세계’가아니라중국의특정한가치관과연루된문자에의해선별적으로편집된세계다.그런데도그편집된세계는교과서의형태로거듭읽히고학습되는가운데사람들이묵묵히수납하고따라야할규범적세계로자리잡는다.인공적인것이‘자연’으로올라서는셈이다.이렇게보면,중국이『천자문』을낳았지만거꾸로『천자문』이중국을만들었다고도말할수있다.『천자문은힘이세다』가“사물이란언어에의해창출”(50쪽)된다거나“고대중국의세계는문자에의해축조·유지”(109쪽)되었다고말하는이유,그리고이책의1부에‘문자로다시만드는세상’이라는제목이붙은까닭이여기에있을터다.

고전(거슬러)읽기의모범을보이다

그렇다면인공지능의시대라는21세기에,그것도(저자가곳곳에서설득력있게이야기하는대로)봉건주의의폐해에오래발목을잡혀온우리가남의나라옛적봉건사회의교과서를왜여전히기웃거려야할까.말할나위없이봉건시대와중국의울타리안에갇힌전언(message)과가르침이『천자문』의전부가아니기때문이다.전부이기는커녕,저자에게『천자문』은시공간의제약을넘어인간이라는종족에대해무수히많은것을말해주고생각케하는‘욕망의텍스트’다.사람은왜권력을갖고싶어하는가?어째서그토록타인에게인정받는것을갈구하고이름(名)에집착하는가?그러면서도때로는왜모든것을내려놓고한적한곳에파묻혀유유자적하기를고대하는가?『천자문』이욕망의텍스트인것은인간의저다채롭고때로는서로충돌하는욕망들을함축하고있다는점에서도그러하지만,그욕망을통어하고인도하기위해옛사람들이궁리해낸중용中庸,예禮,오상五常(사람에게서흔들려서는안되는다섯가지정신적기둥인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같은이념적지침들이흩뿌려져있는공간이기때문이기도하다.
『천자문』에담긴인간적욕망이현대를사는우리의욕망과본질적으로다르지않다면,그리고그욕망에대응하려고안된윤리적방책들이오늘에와서쓸모없어졌다고함부로말할수없다면,『천자문』을우리시대의문제들과대결하기위한길잡이나연장으로활용할가능성은사라지지않는다.『천자문은힘이세다』가공들여하고있는작업이바로그것이다.곧『천자문』이던져놓은화두를우리시대의여건속에끌어들이고,한편으로는원래의가르침을거슬러,다른한편으로는그맥락을넓혀서사유와성찰을펼치는일이다.예컨대남의단점을함부로말하지말라는‘망단피단罔談彼短’의당부를거슬러“단점들을말하는사이에우리는진실을경험하게된다”(209쪽)는결론을이끌어내는것이전자의경우다.그런가하면과거의엘리트들이백성을불쌍히여겨폭군을토벌했다는‘조민벌죄弔民伐罪’의맥락을확장해서,기득권을버린채대중과함께하려는지식인들이대거사라져버린우리사회의현실을살핀뒤민중이“스스로진실과마주하는역량을길러야한다”(124쪽)고말하는데로나아가는대목은후자의방향을대변하는예가될것이다.이러한작업의과정에서돋보이는것은『천자문』의시대와우리시대를연결하고거기서솟아나는쟁점들을찾아해석하는솜씨의정교함과생각의깊이다.그점에서『천자문은힘이세다』는고전에대한비판적독서,또는고전의결(grain)을거스르고맥락을확장하여그작품에새로운의미를주는책읽기의한본보기라고하기에모자람이없어보인다.
그러므로,『천자문』이단순한한자학습서가아니었듯이『천자문은힘이세다』는예사로운천자문해설서와격을달리한다.이책의장점은『천자문』에대한심층해석에그치지않고그책과직간접적으로연관되는동양및서양사상의정수와만나는경험을제공한다는데서도찾을수있을것이다.『천자문은힘이세다』는공자,장자,맹자,묵자등의사상을적절한문맥에서끌어들이고그것들을서구의현대적사유(『천자문』을욕망의텍스트로대하는시각에걸맞게,이책이자주참조하는것은욕망과언어의이론가자크라캉의작업이다)와순탄히어우러지게만드는흥미로운사례를보여준다.하지만이런사상편력이현학이나박식함의과시로빠지지않는것은선학들의생각을동시대의사회와인간에더가까이다가가기위한자원이외의용도로쓰려는욕심이저자에게없기때문이다.타인들의생각을향해나아가는길은언제나저자앞의현실로돌아오기위한길이다.그결과“냉정한돈의논리를숭상하는”(165쪽)신자유주의가주도하는시대의화사한외양과그뒤에깔린어둠을,치열하되독단에흐르지않고실사구시적으로응시하는한지식인의두터운사유를담은책이우리에게주어졌다.학자들이아닌일반독자들을위해쓴책이어서어렵지않게읽힌다.저자의중후한문체틈새로문득모습을비치는풍자와아이러니도이책을읽는즐거움을더해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