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길 박용길 (살림, 기도 그리고 편지)

봄길 박용길 (살림, 기도 그리고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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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감옥 밖에서 감옥 안의 사람과 함께 역사를 만들다
“제가 매일 편지를 써 보냈다고 해서 그게 무슨 큰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일제강점기·해방·전쟁·민주화운동으로 점철된 20세기에서 21세기 초반에 이르는 한반도 역사를 기독교운동·민주화운동·통일운동의 최전선에서 살아낸 여성 박용길(1919~2011, 호 봄길)의 삶을 담은 전기 『봄길 박용길』이 나왔다. 목사이자 시인이자 사회운동가였던 남편 문익환이 59세에 처음 감옥에 들어가 77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섯 차례 수감된 기간을 전부 합치면 10년이 넘는다. 육십을 바라보는 때에 민주화운동에 발을 들여 감옥 안에서 더 많은 세월을 살았으면서도 글로써 행동으로써 생산적이고 실천적인 삶의 후반기를 일궈갈 수 있었던 것은, 감옥 밖에서 감옥 안의 그와 함께했던 박용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결정적이었지를 반증한다. 박용길은 남편 문익환이 감옥 안에 있는 동안, 가족 중심의 구속자석방운동을 벌인 동시에 감옥 안의 남편에게 거의 매일 손편지를 써 보냈다. 그녀가 남긴 3천여 통의 편지는 민주화와 통일의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서로 독려하며 여성의 몸으로, 마음으로 역사를 살아낸 궤적이다.
『봄길 박용길』은 한반도의 수난사를 운명처럼 짊어진 박용길의 93년 삶을 그녀가 남긴 기록과 대화를 기본 자료로 하여 쓰인, 한 인간의 삶을 중심에 두고 나열한 한국사로서, 60컷의 사진 자료를 포함했다. 교회 여성 지도자로서, 민주화운동 시대에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한 투사로서, 통일의 여성 사도로서 박용길의 위상을 자리 매기고자 한 이 전기는 총 4부로 구성되었다. 1부 ‘전쟁의 시대, 가족’에는 어린 시절과 요코하마신학교 유학 시절에 이어 문익환과의 결혼, 민족 동란으로 인한 피난 생활이 그려져 있다. 2부 ‘개척의 시대, 살림’에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 전국연합회 임원이자 한빛교회 장로, 또한 기독교 여성·가정 전문지인 《새가정》의 운영위원으로 활약했던 모습이 펼쳐져 있다. 3부 ‘죽음의 시대, 편지’에서는 4.19 혁명의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여 인권과 민주화운동에 나서게 된 시기가 소개된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를 이끌며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여 1987년 6월의 함성에까지 치닫는 봄길의 발걸음을 따라갔다. 아울러 문익환에게 보낸 3천여 통의 편지와 그녀의 기도문 중 일부를 선별해 실었다. 마지막 4부 ‘손을 잡는 시대, 사랑’에서는 남편과 사별한 뒤 그와 같이했던 통일의 꿈을 이루고자 금기를 깨고 분단선을 넘은 일, 그리하여 양심수를 지원하던 이에서 스스로 양심수가 된 봄길의 행보를 담았다.
『봄길 박용길』은 지치지 않고 샘솟는 영성의 힘을 현실운동으로 가져간 여성, 역사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한 여성의 삶인 동시에, 한국 기독교와 민주화운동이 어떻게 연결되었으며, 여성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연대와 사업들이 어떻게 실현되어갔는지, ‘어머니-가족-여성’의 ‘살림-기도-편지’ 정신이 어떻게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을 이끌어갔으며 어떤 가능성으로 나아갈지, 삼일운동에서 촛불혁명까지 이어지는 거리 평화시위의 토양을 더 굳게 다져간 과정을 바라보게 하는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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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경아

한신대학교기독교교육과졸업.《새누리신문》취재기자,CBS편성국작가,《새가정》객원기자로활동.국립국악원어린이국악창작음악극〈솟아라도깨비〉와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교육원환경교육동화〈꼬물락의나들이〉집필.

목차

추천의글시대적소명을살아낸한여성을기억하며|한명숙
책을펴내며부드럽고거룩한분노의영성,박용길

전쟁의시대,가족
기미년가을,황해도
1920년대광산촌마을공동체
평안북도와서울을오가며
일제의고등학교서열
시조대회의남색저고리
안동교회에서길을찾다
요코하마의학창시절
청년문익환
어지러운시절의사랑
이사람과결혼할수없다면
만보산의까만연기
첫번째아기
해방과혼돈,난민과폭도
털리고또털리며남으로
하늘의처분
북간도에간조선실학자들
황금동대가족
전쟁,아이들의울음소리
그래도가족은계속된다

개척의시대,살림
여성순교자를기억하기
두어머니
실향민들이개척한한빛교회
수유리캠퍼스의부인들
여신도회가시작한일
그들은예수님의여제자였다
1950년대에나온가정잡지
여성장로와함께기도를

죽음의시대,편지
4월19일깨어난사람들
이제세상으로나갈밖에
삼일절쉰일곱돌맞이
구치소뒷산에서노래를
보랏빛투쟁,씩씩한사랑
가족운동이없었다면
신앙공동체의실험갈릴리교회
편지가할수있는일
매일매일하루도거르지않고
1979년에일어난일들
전대미문의음모
눈물을닦고,그래도편지
민가협의해바라기들
6월의맨앞에선어머니

손을잡는시대,사랑
평양으로,감옥으로가게하라
처음앓는감옥병
분신정국과노구의사제
문익환을심고
꽃을안고군사분계선을넘다
양심수봄길의가슴속눈물
불어라통일바람!
햇볕을받자부는바람
인생은흘러간다
당신의덕이죠

엮은이의글언제나봄
주석-참고문헌
연보봄길박용길의삶

출판사 서평

전쟁의시대,가족
“제일생의채찍,거울,그리고힘이되어주시겠습니까?”(문익환의청혼편지중에서)

삼일운동이전국을휩쓸었던1919년가을,황해도에서태어난박용길은대한제국기마장교였으나한일합병이후광산분석기사로일하던아버지의근무지를따라네살때부터평안북도대유동에서어린시절을보냈다.열살때부터는원래부모의출신지인서울에서학교를다녔고경기여고를졸업한뒤요코하마신학교로일본유학을떠났다.그곳에서공덕귀를비롯하여신앙을바탕으로평생뜻을함께할친구들을만났고,문익환도조선인신학생들의모임에서처음만났다.문익환의건강이좋지않다고염려하여결혼을반대했던박용길의가족은‘6개월을살더라도문익환과결혼하겠다,그마저도안된다면평생을혼자전도사로살겠다’는그녀의선언에문익환의건강을병원에서직접점검하고결혼을허락했다.1944년서울에서결혼식을올린두사람은중국용정으로떠났다.문익환의집안이19세기말북간도로이주하여명동촌을중심으로터를닦은조선실학자출신이었기에.
목회자의아내로살림을시작한박용길은해방직전에낳은첫아기를홍역으로잃고,해방직후엔조선인피난민들이중국떠나는것을지원하느라이듬해에야피난을떠나두달여끝에서울에도착했다.둘째를임신한상태의피난길이었고그렇게1953년정전협정직전까지호근·영금·의근·성근을낳고키웠다.시아버지문재린목사의시무지를따라시댁식구들과서울·경상도·제주도로옮겨다니며,그리고미국유학중이던문익환이유엔군으로일본에서근무할땐한인교회전도사가되어도쿄에서지내며.일제강점기에태어나어느덧35세가된네아이의엄마박용길에게,전쟁없이산다는것이얼마나행복한일인가를뼈저리게깨닫기에충분한세월이었다.

개척의시대,살림
“예수님의여제자들,숨은봉사자,믿음의부인들”

1955년에미국유학을마치고돌아온문익환이한신대교수로임용되어가족들은한신대캠퍼스사택에정착했다.박용길은문재린목사인도로설립된실향민교회인서울중앙교회(한빛교회의모태)의집사로서,시어머니김신묵권사와짝을이루어교회살림을도맡았으며,경기여고동창들과원광회등의모임을통해전후구호활동에도적극적으로앞장섰다.1956년부터는한국기독교장로회(이하기장)여신도회임원이되어고희때까지교회여성운동의중요한축을담당했는데,김신묵이아이들돌봐주기를자청하며며느리를지원했기때문에가능한일이었다.
박용길은여신도회전국연합회서기·청유부장·기획부장·총무등을역임하면서여러행사와사업을이끄는한편으로여신학자로서의면모도보여주었다.《그달의양식》창간호에「예수님의여제자들」이란글을게재하여‘예수가여성의지위를존중했다’는여성주의적입장을일찍이강력하게드러내기도했다.한국교회연합활동에도역량을발휘하여,1954년이래지금까지도출간되고있는기독교가정잡지이자여성잡지인《새가정》의출판과운영에참여했다.1970년에는지금‘통일의집’이자리한수유동에터를잡았고1975년엔한빛교회의첫여성장로로안수받았다.1988년에는기장여장로회회장으로선출되어교회여성들의지도력향상을위해보다광범위하게영향력을발휘했다.

죽음의시대,편지
“매일매일하루도거르지않고날아갈소식을
매일매일하루도거르지않고받으시길”

기장여신도회임원모임장소인기독교회관301호는1974년민청학련군법회의재판이있던날부터구속자가족의사랑방이되었다.구치소를오갈때,시위가있을때,재판이열릴때,또맡겨둘물건이있을때,구속자가족들은여신도회사무실을찾아왔다.박용길은구속자들과가족들을어머니의마음으로돌보며구속자가족협의회결성에적극동참함으로써민주화운동의긴여정에발을들여놓았다.
박용길의옥바라지는1976년,그녀가58세되던해에시작되었다.3.1민주구국선언사건때부터문익환은사망하기전까지총여섯차례수감되었다.남편이옥고를치르는동안박용길은밖에서가족들의투쟁조직을이끌며성장해갔다.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회원들과거리로나서평화시위의역사적장을열어갔다.양심수가족들은가족모임을통해혼자가아님을확인하면서,입에검은십자가붙이기,재판방청권불태우기,양산·부채에글씨써서시위하기,옷에붉은십자가달고재판정들어가기,보라색옷입기,보라색숄뜨기등으로늘함께행동했다.박용길외에이소선·이휘호·이종옥·김석중등여성들이중심이되어굳건히싸운가족운동은1970,80년대민주화운동을가능하게만든원동력이었다.
박용길은감옥에있는남편에게편지로감옥밖의소식을전하면서그가우울해하거나외로워하지않도록활력을불어넣어주었고,사소한일상사까지공유함으로써늘함께임을환기시켰다.꽃잎을말려편지지에문양을디자인해붙이거나노래와시를옮겨적는등그녀의탁월한손재주와디자인감각,기발한아이디어들이,감옥으로가는서신에발휘되었다.여신도회·가족운동일을볼때와마찬가지로꾸준하고성실하게마음을담아보냈다.편지는부부의외로움과그리움을달래면서,그들이각자처한자리에서뜻을굽히지않고의로운길을계속가도록북돋는매일매일의믿음의증표같은것이었다.

손을잡는시대,사랑
“나는꽃다발을들고군사분계선위에올라섰다”
“봄,여름,가을,겨울이다봄길인당신께”

박용길이김일성주석의1주기조문을위해북한을방문하고군사분계선을넘어판문점으로귀환한것은그녀의나이77세때였다.1994년문익환이사망한뒤통일맞이칠천만겨레모임을설립하고난이듬해였다.남편의방북기간이열흘도채되지않았던데반해그녀는한달여를북한에머물렀고,53년만에어머니의묘를찾았고옛이웃들과상봉했다.그녀는귀환하자마자국가보안법위반으로수감되었고국제앰네스티양심수로인정받았으며집행유예로4개월뒤석방됐다.2000년대초반부터는6.15남북공동선언실현을위한통일연대공동준비위원장을맡았고,2005년에민주화와남북화해에헌신한공로로국민훈장모란장을수여받았다.같은해남과북이언어이질화를극복하고함께사용할사전을만드는‘겨레말큰사전’사업도착수하도록이끌었다.
칠순,팔순을넘어서까지기독교운동·민주화운동·통일운동에서박용길이걸은행보는한어른이사회에발휘할수있는선한영향력을보여준다.서로다른세대들이어울리고힘을합쳐만들어가는역사를가능하게하는한어른의리더십을.누구든지딛고갈수있도록그자신을내어주는길,그것이봄길의삶이었다.봄길은2011년93세에노환으로삶을마감했다.겨레장으로장례가치러진뒤엔경기도마석모란공원문익환의곁에안장됐다.3천통이넘는편지를주고받았고,아름다운꿈을함께꾸었던,그렇게역사의한복판으로손잡고들어갔던연인의옆자리에.
십년넘게책나오길기다리다세상을뜨신박용길장로님에게죄송한마음금할길이없지만,한편으로는책이한참후에나오게된것이다행이라는생각도든다.책이바로일찍나왔더라면봄길박용길의전기는방북이야기로마무리되었을지모르고,그랬더라면진정한통일꾼으로서생의마지막을불태운행적은다뤄지지못했을것이다.“모든것에때가있다”며느긋해하던봄길의모습이떠오르지않을수없다.-한국염(봄길박용길전기편집위원회를대표하여),‘책을펴내며’중에서

[박용길의이력]
봄길박용길은1919년에황해도수안면에서태어났고,네살때평안북도대유동으로이사하여6남매중넷째딸로어린시절을보냈다.서울경성공립여자고등학교(현경기여고)를졸업한뒤1937년일본요코하마공립여자신학교에들어갔고,이듬해조선인신학생들의모임에서문익환을처음만났다.1944년문익환과결혼하여중국만주에서목회자의아내로신혼살림을시작했고해방과전쟁중에서울·경상도·제주도·일본도쿄를오가며호근·영금·의근·성근을낳고키웠다.1955년에한신대캠퍼스사택에정착했고,경기여고동창들과전후구호활동에앞장섰으며,한국기독교장로회여신도회전국연합회임원으로고희때까지교회여성운동의중요한축을담당했다.1970년에지금통일의집이자리한수유동에터를잡았고1975년엔한빛교회의첫여성장로로안수받았다.1976년3.1민주구국선언사건때부터10년넘게남편을옥바라지했으며,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회원들과거리로나서평화시위의역사적장을열어갔다.1994년문익환이사망한뒤통일맞이칠천만겨레모임을설립하여통일운동을이어갔고,1995년김일성주석1주기조문을위해직접북한을방문했다.이일로국가보안법위반으로수감,국제앰네스티양심수로인정,집행유예로4개월뒤석방됐다.2005년에민주화와남북화해에헌신한공로로국민훈장모란장을수여받았다.2011년93세로삶을마감하고경기도마석모란공원문익환의곁에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