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그대의 빛나는 마음 (북한 문학 속의 백석)

가난한 그대의 빛나는 마음 (북한 문학 속의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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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분단 이후 북한에 남은 시인 백석,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글을 썼는가
그저 쓰고 싶은 글을 마음 가는 대로 쓰는 것. 이는 문학이 생겨나게 하는 토대이자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져야 할 조건일 터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조건은 그러나 20세기 한반도의 문학인에게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당연하기는커녕 그들에게 자신이 쓰고픈 글을 마음 놓고 쓰는 일은 극소수만 누리는 행운에 가까웠음을 오늘의 우리는 곧잘 잊곤 한다. 말할 나위 없이 그 주된 이유는 정치권력의 검열과 감시였다. 민주화 이전 한반도의 남쪽도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그 북쪽에서는 특히 권력의 비위를 거스르는 문학이 존립할 자리 자체가 없었고, 문학인 자신은 글쓰기를 멈춘 채 침묵하거나, 아니면 글 한 줄, 낱말 하나 고르는 데 생사를 걸어야 했다. 그와 같은 침묵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인물이 1930년대 조선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았던 백석이다. 분단 후 고향인 이북에 남은 그는 1960년대 초까지 시, 아동문학(동시와 동화시), 평론, 번역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으나, 1962년에 쓴 동시 「나루터」 이후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진 1996년까지 30년 넘는 세월 동안 아무런 작품도 발표하지 않았다. 글을 안 쓴 것인지 못 쓴 것인지는 밝혀진 바 없다. 그러나 그가 그 시기 북한이 아닌 다른 곳의 거주민이었다면 사정이 사뭇 달랐으리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상상이다.
문학평론가이며 가천대에 재직하고 있는 이상숙 교수의 『가난한 그대의 빛나는 마음 - 북한 문학 속의 백석』은 바로 백석이 분단 후 북한에서 펼친 문학 활동을 두루 살핀 연구서다. 저자는 분단 후 백석의 문학 활동을 세 시기로 구분한다. 소련(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문학 번역에 몰두하던 1940년대 후반~1955년, 스탈린이 죽고 나서 소련에 도래한 ‘해빙기’에 힘입어 북한 문학계에도 훈풍이 감도는 가운데 백석이 가장 활발하게 창작에 임했던 1956~1958년, 그리고 “사실상의 숙청”을 당해 1959년 1월 량강도 삼수군 관평리에 ‘현지작가’로 파견된 이후 1962년까지가 그것이다.
이 책의 「만주 시절 - 러시아 문학 번역과 시인의 슬픔」, 「백석의 번역시」, 「백석의 번역소설」은 백석이 1940년 만주에 이주한 뒤 방금 말한 첫 번째 시기를 통과하기까지 번역가로서의 활동을 조명한 장들이다. 문학 경력 처음부터 백석은 번역가이기도 했다. 1935년 첫 시 「정주성定州城」을 내놓기에 앞서 영어 산문들과 존 던John Donne, 데이비스William Henry Davies 등의 영시를 번역해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만주에 살 때는 러시아어 소설들을 번역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해방 후 북한 사회가 소련을 모범으로 삼은 데 발맞춰 수많은 소련 소설, 시, 평론을 번역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저자에 따르면 장편 소설을 포함한 번역소설이 수십 편이고, 번역시 또한 200여 편이 넘는 분량이라고 한다. 그중 많은 부분이 아직 미답의 영역에 속하지만 기왕에 입수된 작품들에 관한 한 번역의 수준도 높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중론이다. 실제로 저자는 백석이 조선어로 시를 쓸 수 없었던 1940년대 초반 만주에서 번역한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소설들을 예로 들어, 그 이전에 백석이 시에서 보여준 남다른 언어 감각과 어휘 구사(가령 백석이 만든 말로, 시에서는 사용한 적 없는 ‘검트레하다’ 같은 형용사)가 번역에서도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이렇게 양과 질 모두 주목할 만한 까닭에 저자는 백석의 번역 활동을 문학적 잉여 행위나 창작열의 대체물로 여길 것이 아니라 백석 문학을 지탱하는 엄연한 한 축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대중 선전과 고무의 수사, 김일성 찬양으로 대표되는 북한 시단의 풍토가 백석에게는 맞지 않아 절필하고 싶었지만 호구지책으로 번역을 택했고 번역을 통해 자신의 문학관을 설파하고 문학인의 지조를 지켰다”고 보려는 태도를 조심스럽게 경계한다. 추측일 뿐 증거도 논거도 없다는 점에서다. “백석의 번역이 어떠한 ‘문학적 선택’이었을 수도 있고 그랬으리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가정을 용인하는 것에서 일단락될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번역문학 작품의 분석을 통해 귀납적으로 이른 결론이어야 한다.” 백석의 번역문학에 대한 접근이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지금 새겨볼 발언일 것이다. 저자가 참여한 연구팀이 발굴하여 그 전문이 이 책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백석의 번역소설 두 편, 「자랑」과 「숨박꼭질」도 흥미로운 읽을거리다.
저자

이상숙

문학평론가,가천대학교교수.1969년서울에서태어나고려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하고같은학교대학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민족문화연구원연구교수,HarvardUniversityKoreaInstituteFellow를거쳐2007년이후현재가천대학교교수로재직중이다.1995년〈세계일보〉신춘문예평론부문에당선하였고2005년한국문학평론가협회제6회젊은평론가상을수상했다.평론집『시인의동경과모국어』(2004),『통일시대남북의시』(2017),공저『한반도분단과평화부재의삶』(2013),편저로『백석문학전집2』(2012),『박재삼시선』(2013),『정지용시선』(2013),『북한의시학연구』(2013)등이있다.

목차

서문

분단후백석을이해하기위하여
백석연구와오늘의백석
작품연보로보는백석의문학
1956년모스크바의해빙과평양의백석
1959년붉은편지와삼수관평의백석
분단후백석을읽어야하는이유

만주시절-러시아문학번역과시인의슬픔
백석과러시아문학번역
만주의인기작가바이코프
식인호
초혼조
밀림유정

만주시절백석의내면
내선만문화좌담회
슬픔과진실,조선인과요설

백석시에대한북한문단의평가
1930년대시인백석에대한평가와텍스트확정의문제
풍속,언어,운율을바라보는북한문학의‘인민’적관점

북한시인백석
「등고지」의의미
시정詩情,서정,언어
북관의풍경과공동체의유대감

백석의사회주의
사회주의와공민의도덕
작가의역할과번역자백석
사회주의와시인백석의거리

백석의번역시
백석의번역시연구를시작하기전에
백석번역문학의경계境界와번역의배경
러시아의서정과백석의선택

백석의번역소설
조소朝蘇친선과「자랑」
엘레나베르만의「숨박꼭질」

주석

부록:백석번역소설전문
자랑
숨박꼭질

백석연보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이상숙교수가보는북한내백석문학의제2기는1956년에발생한두가지사건이크게영향을끼친시기다.그하나는스탈린사후소련공산당서기장흐루쇼프의스탈린비판이불러온자유화흐름이고,다른하나는그와반대되는방향에서북한의김일성이반대파를진압하고개인숭배를강화하는계기로삼은이른바‘8월종파사건’이다.소련사회전반의억압적규율과문화예술계의경직성에변화를가져온자유화흐름은북한에도반향을일으켜,기존북한문학의도식주의에반기를들고서정성과개성을강조하는문학인들이나타난다.백석도그중한사람이었다.이시기백석은소설번역을줄이고시번역(주로인민의언어에바탕을두고서정성이돋보이는시인들의작품)을늘리면서동화시집『집게네네형제』(1957)를발간하는한편아동문학평론을발표하기시작하며,1957년부터는동시가아닌시창작도10여년만에재개한다.
이시기백석이지녔던생각은아동문학관련논쟁에서잘드러난다.아동문학에서도사상성이가장중요하다는리원우등에맞서백석은아동문학도문학으로서시정詩情과철학에입각하여창작되어야하고음악성과해학성도고려해야한다고주장하는평론들을썼다.“시는깊어야하며,특이하여야하며,뜨거워야하며진실하여야”한다고믿는백석에게바람직한아동문학은“현실의벅찬한면만을구호로웨치며흥분하여낯을붉히는사람들의시이전인상식”을배격하고“아동들의인간성속바탕깊이아름다운것과옳은것에대한강렬한사랑을아울러길러주”는문학이었다.방법론적으로는구비전승의옛이야기에실린풍자와낭만성(낙천성),해학성이문학으로서의동화문학이지향할바라고보았다.저자는백석의이러한신념이잘배어있는작품이『집게네네형제』라고평가한다.“전래의민담과동화를아이들의입말로변형시키고동물을의인화하는환상의수법으로생활속의교훈과인정세태를설명한이동화시집은백석의시론과아동문학론이결집된것으로볼수있다.”
북한에서백석문학의제3기는저만한의견도수용할의사가없었던,8월종파사건이후광범한숙청을치르며일인지배체제를구축해온권력에의해백석이심심산골의목축노동자겸현지작가로파견되는데서비롯한다.이대목에서저자가새삼일깨워주는것은문학뿐아니라사회와이념을대하는관점에서백석과북한권력사이에존재한메울수없는간극이다.저자가보기에백석은사회주의,공산주의를인간의품격과도덕성,예의,인정같은가치를집약적으로상징하는이념으로이상화하는“낭만적인식”또는“낭만적환상”을품고있었다.예컨대“오늘우리가사회주의사실주의문학속에서행복됨은진정한문학이라는것을언제나인도주의적문학으로서,언제나인간의건강하고즐겁고선량한사상을주장옹호하여오는문학으로서인정하는때문”이라는백석의문장은이러한사회주의이해와이어져있지만,이는인도주의와선량함도계급투쟁과당파성에기반해야하며문학인스스로‘열렬한공민적빠포스(열정을뜻하는러시아어)’를지닌공산주의투사의한사람이어야한다는북한권력및문단의지배적이념과너무나멀리있는것이었다.
현지작가파견이후백석은그지배적이념의요구에일단따르는모습을보인다.백석이북에서쓴총16편의시중대부분이이렇게나왔다고할수있다.몇몇시에서백석의시다운개성과특장이느껴지기는하지만상당수는“백석특유의서정과섬세한언어감각”을찾을수없고상투적인정치적수사와관념어를남발하는가운데예정된결론을향해치닫는북한시의전형에가깝다는것이저자의판단이다.그러면서도저자는이들시가전형적인북한시들과다른점을시의화자-시인이유지하고있는대상과의거리를들어지적한다.화자-시인이정작자신이이야기하는대상에완전히몰입하거나동일화하지않고관찰자또는방관자로머물고있다는것이다.이또한북한사회와문학에서용납될수없는점이었고,실제로백석은북한문예당국의지침에따른듯한창작의시기를오래지않아접은뒤기나긴침묵속으로진입한다.
저자에따르면,이렇게마감된‘북의시인’백석의문학은북한의문학사에서잊혀진존재나다름없었다.1950년대와60년대에출간된북한의문학사에는1930년대의백석시뿐아니라1960년대백석문학의경우에도존재와평가가전무하다고한다.이런풍토에서희귀한예외로저자가소개하는책이1995년에나온류만의『조선문학사』다.이책의제9권에서류만은1930년대백석의시가“독특한운률적인맛을돋구고있으며시에서공간적인비약을많이하면서보다풍부한생활적인이야기,생동한세부들을특색있게삽입하였다”며“민족적풍속을독특한시풍으로그려낸백석의시는민족적인모든것이짓밟히던시기시문학의진보성,민족성을지켜내는데서한모습을보여주었다”고호평을한다.이상숙교수는이를두고북한문학사서술의다양성과포용성의한증표로긍정적으로평가하지만,북한문학계에서백석을비롯해남북한이공유한시적자산에관하여소통할소양과균형감각을갖춘문학사가를찾아보기어렵다는사실을아쉬워한다.
여기서우리는처음에꺼낸물음으로되돌아간다.후기백석의문학적침묵은의도된선택이었던가,창작능력의고갈을뜻하는것인가.침묵도발화의방식이라면,백석은자신이동의할수없는세상의진행에글쓰기를통해동참하기를거절함으로써자신의문학과삶을지켜내려한것일까.이문제에관해저자는그어떤단정적인발언도하지않는다.저자도언급하듯이자료가한정되어있기때문일것이다.당장백석이북에서출간했다는어린이책『네발가진멧짐승들』(1958년출간추정),『물고기네나라』(1958년추정),『우리목장』(1961년추정)에대해서남쪽의연구자들조차아직실물을확인하지못하고있는형편이다.이공백과부재를메울수많은탐사와탐문과시간이요청된다는의미에서도백석문학은여전히완결되지않은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