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김수영

길 위의 김수영

$22.00
Description
김수영 시인이 걸어간 영욕의 장소 예순네 곳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 도서가 ㈜도서출판 삼인에서 출간됐다. 『길 위의 김수영』이라 명명된 이 책은 김수영문학관 운영위원장인 저자가 출생부터 사망까지 김수영의 행적 전반을 심층 취재하여 지은 책이다. 김수영 시인은 수식어가 필요 없는 한국 현대문학사의 아이콘이지만 지금까지 그와 관련된 잘못된 이야기들이 사실인 양 세간에 퍼져 있었다. 저자는 ‘김수영 삶 바로잡기’라는 목표하에 이 책의 집필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책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저자는 김수영의 삶을 드러내는 장치로 ‘길’과 ‘장소’를 선택하고 김수영이 머문 예순네 장소에 얽힌 김수영 삶의 빛과 그림자를 쫓았다. 김수영의 유작, 철저한 현장 답사, 문단 원로들의 생생한 인터뷰, 꼼꼼한 자료 분석을 거쳐 완성된 이 책을, 고은 시인은 ‘정밀하고 성실한 발품의 다큐멘터리’라고 평했다. 한편 이 책에는 그동안 공식적인 발언을 삼가 왔던 김수영 시인 원가족들의 증언이 상당수 수록되어 있어 세평에 기대지 않고 김수영 시인의 실체를 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은 총 다섯 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김수영 시인의 출생부터 선린상업학교 졸업까지(1921~1941), 2부에서는 도쿄 유학 시절부터 김현경 여사와의 결혼 직후까지(1941~1949), 3부에서는 6·25전쟁 시 의용군으로 징집되어 북에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후 석방될 때까지(1950~1952), 4부에서는 가족과의 재회부터 박인환 시인의 죽음까지(1952~1956), 5부에서는 시인협회 작품상 수상부터 김수영 사후 문학관 건립(1957~2013)까지를 주요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

홍기원

경남진해에서출생했고고려대재료공학과를나왔다.군의문사를당한김두황열사추모사업을20년넘게하고있다.1980년대중반에는노회찬전의원과함께인천에서노동운동을했다.1992년부터유홍준교수의한국문화유산답사회활동을시작해전국의문화유산현장을누볐다.도봉문화원사무국장을하던때도봉현대사인물자료를만들면서김수영시인본가유족과인연을맺어10년째이어오고있다.지금은김수영문학관운영위원장직을맡아김수영의시정신을기리고알리는일에매진하고있다.저서로는『성곽을거닐며역사를읽다』(살림,2010)가있다.

목차

서문
추천사

1부떠오르는태양
종로2가김수영생가/종로6가집/조양유치원/계명서당/어의동보통학교/
동묘/적십자병원,순화병원/선린상업학교/용두동집/현저동집

2부자유의지를따라
일본도쿄/진명고등여학교/부민관(현서울시의회)/만주길림/마리서사/
연희전문학교(현연세대학교)/한청빌딩/충무로4가집/전전명동/성북구돈암동신혼집

3부생환기적
일신국민학교/전곡과연천/개천,북원,순천,평양/해군본부,중부서/
이태원육군형무소,인천포로수용소/부산서전병원,부산거제리포로수용소,거제도포로수용소/
경기공립여중학교/영희국민학교/경기도화성군사랑리/영등포집Ⅰ/국립온양구호병원

4부낡아도좋은것들
영등포집Ⅱ/부산초량동판잣집/신당동집Ⅰ/미도파백화점/전후명동/
현대문학사/종삼/군산전원다방과군산YMCA/을지로사거리와남대문통상업은행/
성북동집/본가성북동집/구수동집/마포종점/망우리박인환시인묘

5부온몸으로온몸을
공보관공보실/도봉동집Ⅰ/동아일보사/민족일보사/도봉동집Ⅱ/예총회관/
신구문화사/민음사/창작과비평사/강릉자혜병원/신당동집Ⅱ/조선일보사/
서빙고대공분실/부산미화당백화점/경주불국사청마시비/광화문발렌타인/
예총회관광장/김수영시인묘/김수영문학관

부록
김수영시비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태양의기상을가진청년의열망과억만개의모욕

1946년3월《예술부락》2집에「묘정의노래」를발표하며문단에데뷔한김수영시인은1968년6월16일불의의교통사고로눈을감을때까지「달나라의장난」,「거대한뿌리」,「풀」등주옥같은작품들을써내현대문학사에커다란족적을남겼다.저자는김수영시인이거쳐간장소를중심으로그의삶을추적하는데,그과정이격동의현대사가남긴상처가강한의지를가진문학가를만났을때어떻게문학으로승화하는가를밝히는거대한서사로읽힌다.
저자는김수영시인의삶에굴곡을남긴두사건으로유년기에앓았던전염병과6·25전쟁에주목한다.1921년11월27일종로2가58-1번지할아버지집에서태어난김수영시인은손이귀한집안의장남으로어릴때부터특별한대우를받고자랐다.조양유치원,계명서당,어의동보통학교에서수학했는데,총명함이남달라기울어가는가세를회복해줄것이라는집안의기대를받았다.그러던그가보통학교를졸업하고중학교에진학할무렵,급성장티푸스에감염되는사건이발생한다.죽음의문턱까지갔던그는여러병원을전전한끝에간신히목숨을부지한다.그는질병을치료하느라중학교입학시험을또래보다1년늦게치르게되는데,두차례에걸친시험에서모두낙방하고만다.병을치료하며입시를준비하는게탁월한학업능력을가진김수영에게도어려웠던것이다.집안에서는1년이늦은김수영에게한해더재수를시킬수없어서2차시험지원학교였던선린상업학교의야간부인전수과에김수영을입학시킨다.이학교에다니던학생들은졸업후에좋은직장을얻는것이목표였고,집안에서김수영에게거는기대도그런것이었다.그러나김수영에게는다른꿈이있었다.그래서동료들과어울리지못하고외톨이로지낼수밖에없었다.당시김수영의심정은선린상업학교교지인『등우』특별호에실린그의시에잘나타나있다.시를보면“누구에게도침범되지않는위용”을가진태양을닮고싶어하는청년의열망을읽을수있다.그열망은저자가수차례강조하는시인의‘자유의지’로발전한다.

장엄한아침이었다
나는언덕에올라
융융하게떠오르는아침해를본다
보라!!
그힘찬모습을……
누구에게도침범되지않는위용……
나는견딜수없었다
그리고소리쳤다
-아아그것이다!
인생은바로그런것이다!라고

번듯한직장에취직하여집안을일으켜세울것이라는어른들의기대를저버리고1942년2월김수영은도쿄로유학을떠난다.어린시절연인인고인숙을만나려는의도가다분했다는게저자의설명이다.집안사정은아랑곳하지않는장남의무책임한특권이자자유의지의발로였다.선린상업학교1년선배인이종구의도움으로도쿄에안착한김수영은미즈시나하루키의연극연구소에서자유로운예술정신을만끽한다.그러던중태평양전쟁을일으킨일본이조선학생들의징집을실행하자징집을피해서울로돌아올준비를한다.이때강제징집된이종구는서울에가면한여학생을찾아가자신의징집소식을전해달라는부탁을김수영에게한다.1944년2월초,서울로돌아온김수영은진명고등여학교로그여학생을찾아간다.이것이김수영과김현경의첫만남이었다고저자는말한다.
일본에서돌아온김수영은부민관으로안영일을찾아가연극연출보조일을시작한다.일본이태평양전쟁총동원체제를가동하자언제징용으로끌려갈지몰라불안해하던김수영은1944년가을,가족이가있는만주길림으로떠나연극활동을이어간다.1945년7월이지나면서일본의전세가기울고만주길림이불안과혼란에휩싸이자김수영가족은길림집대문을엑스자로못질을한채몸만황급히서울로돌아온다.서울로돌아온김수영은1945년말에박인환시인이문을연책방‘마리서사’를드나들며연극에서시로전향하고,《예술부락》주간으로있던조연현에게건넨20여편의시중「묘정의노래」가1946년3월에발행된《예술부락》2집에실리면서문단에데뷔한다.1949년엔‘신시론’동인지2집인『새로운도시와시민들의합창』에「공자의생활난」과「아메리카타임지」두편의시를수록하여박인환,김경린,임호권,양병식등과함께이름을올린다.
1944년2월첫만남을가졌던김수영과김현경은1949년초결혼식도올리지않은채성북구돈암동에방을얻어동거에들어간다.가족들에게조차인사한번안시킨당시로서는파격적인행보였다.“가족들에게소개하는절차도없었고,결혼반지도필요없었고,친척과친구들에게알리지도않았고,식을치르지도않았다.둘의감정이맞으면그만이었고,둘이좋으면그만이었다.일체의관습적인형식을배제한측면에서둘은모더니스트로서첨단을걸었다.”라고저자는말한다.신혼의단꿈은이듬해발발한6·25전쟁으로산산조각이나고말았다.김수영가족은막내이모의트럭을타고피난을가기로했지만,막내이모의트럭은피난인파와차량에길이막혀김수영가족을태우러오지못했다.서울이인민군의점령하에들어간뒤김수영은8월3일인민군에게의용군으로붙들려평안남도북원리까지끌려간다.북원훈련소에서갖은고초를겪은김수영은훈련소를탈출하여서울에돌아오지만경찰에게체포되어고문을당한뒤부산거제리포로수용소로이송되어포로생활을한다.1952년11월28일충남온양국립구호병원에서‘민간인억류자’신분으로석방된김수영은선배이종구와아내김현경의동거를목도한다.북원훈련소에서목숨을걸고탈출한뒤,포로수용소로이송되어적색포로들에게인민재판을받아죽음직전까지갔다가생환한그에게아들마저버리고간아내와믿고의지했던선배의동거는“억만개의모욕”이었다.김수영은이모욕을가족애와문학으로치유하고한국현대문학사의거대한뿌리로일어선다.1955년4월김현경과재결합한김수영은1957년엔천상병시인의호평을받으며시인협회작품상을받았고,1959년생전유일시집『달나라의장난』을춘조사에서출간한다.1960년4·19혁명을기점으로는현실참여의식이강한시를써내우리에게대표적인저항시인으로자리매김한다.1967년12월부터1968년3월까지이어령과벌인‘순수-참여’논쟁과1968년4월13일부산미화당백화점문학세미나에서발표한세기적시론「시여,침을뱉어라-힘으로서의시의존재」는한국현대문학사의명문건으로남아있다.

“『길위의김수영』이라는제목의교정쇄를펴자마자오래전의그‘노상에서’와홍기원이심혈을바친『길위의김수영』이내기억속에서자석으로붙어버린다.그리하여‘길위의죽음’은곧‘길위의삶’으로환치되어생전의훤칠한김수영으로환원되고있다.무연고無緣故같은우수와풍자를씨줄날줄로삼은시인의초상은신화적이었다.그는결코나그네가아닌데도시대의나그네로동아시아전역을충전의무대로삼았다.그의산촌山村테너의변성기없는육성과숫돌갈아낸서슬퍼런감성과은유추방의직설,기교가아닌파격의진술,불협화음의화음,거기에허망한역설의인식을배태한언어의사금파리가연달아살아난다.그리하여어쩌면‘그의죽음이시의죽음그것이아니었을까!’라는틀려도좋을직감에사로잡힌다.이정밀하고성실한발품의다큐멘터리야말로김수영시세계를매개하는하나의작품으로성취되고있다.장하다.”
-고은(시인)

“김수영은한국문학사의거대한뿌리이다.하지만격동의근현대를거치며그의행적은온전히정리되지못하고때로는오인되기도했다.홍기원은출생부터사망에이르기까지김수영과깊은관련이있는예순네곳의장소를따라김수영의행적전반을심도있는취재를바탕으로조밀하게기술한다.이를충실히따라가다보면모두는역사속에난맥처럼흩어져있는김수영의삶의궤적이저절로하나하나자리잡아가는것을느끼게될것이다.”
-김대현(문학평론가)